2009년 6월 13일 Daum view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에 게재한 '노을이의 작은 일상'님의
'시어머님의 실수, 바로 30년 후의 내 모습'이라는 글을 감명깊게 읽고 이곳에 올립니다
얼마 전, 6남매 곱게 키워내고 소라껍데기처럼 시골에서 83세의 기운 없는 노인이 되어버린 시어머님을 병원도 갈 겸 해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토요일에는 대중목욕탕을 다녀오고 휴일에는 멀지 않은 바닷가 삼천포항을 다녀왔습니다. 한낮 날씨는 제법 초여름 같아 대교를 지나 더 잘 볼 수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차를 세워 구경하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게 되었습니다. 통통통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뱃고동소리를 듣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바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끝없는 희망을 어머님과 함께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점심으로 맛있는 회와 매운탕을 배불리 먹고 시장에 들러 장어와 해물 생선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야야! 어디 좀 세워봐라.”
“왜요? 어머님, 속이 안 좋으세요?”
“화장실 좀 갈란다.”
“여보! 어디 적당한데 좀 세워봐.”
국도에서 차를 세워 갈만한 곳이 없어 건너편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이라는 건물로 차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문이 꽉 닫혀있는 게 아닌가.
“여보! 이를 어째?”
할 수 없이 건물 뒤편에 있는 운동장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보게 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잘 앉지도 못하는 어머님을 잡고 겨우 소변을 누게 하려는데 그만 설사를 줄줄 하시는 게 아닌가. 화장지로 뒤처리해 드리고 주위에 있는 흙을 파서 묻어놓고 나오면서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 배 아팠어요?”
“응. 어제 목욕탕 갔다가 네가 주는 우유 먹고 나니 그렇네.”
“그럼 왜 말을 하시지 그랬어요?”
“아니야. 괜찮아.”
“.......”
아들보다는 며느리인 내게 의지하시는 어머님이신데,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에서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삼천포 대교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향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와 침대에 앉아있는 어머님 곁에 다가섰던 아들 녀석이,
“엄마! 할머니한테 이상한 냄새나!”
“무슨 말이야? 어제 엄마랑 목욕까지 갔다 왔는데.”
“몰라. 한번 가 봐!”
정말 큰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급하게 옷을 내리다가 팬티에 찔끔거렸고, 바지 허리춤까지 묻어 있었습니다. 시어머님은 혼자 해결을 해 보려다 화장실 이곳저곳 다 묻혀놓고 나왔고 팬티만 갈아입었으니 몸에서 냄새가 안날 수가 있겠습니까.
“어머님! 말씀을 하시지요.”
“아니, 아닙니다. 얼른 목욕 시켜드릴게요. 화장실로 가요.”
“........”
어머님이 민망해 하실 것 같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씻겨 드렸습니다.
밖으로 나와 아이들에게는
“나이가 들면 노인 냄새가 나는 법이야.”
“엄마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될 건데?”
샤워코롱과 향수로 냄새를 날렸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는 두 녀석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고 해도 나이 든 냄새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을 시켜 약국에 가서 지사제를 사와 드시게 했습니다. 이튿날이 되어도 또 실수를 하고 이번엔 이불까지 씻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남편이 시간을 내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4일 만에 설사는 멎었고 몸이 많이 호전되어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시골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밥만 해 드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비록 며칠 아니었지만, 병시중 드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란 걸 실감하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실수를 하신 시어머님을 보니 친정엄마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깔끔하시고 정갈하신 엄마였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중풍으로 몇 년을 고생하시다 막내가 시집을 가는 것도 보질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계시다 보니 욕창이 찾아 와 갈비뼈가 다 보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옷을 좀 잡아주라고 하는 엄마의 당부에도 무서워서 피하곤 했는데 엄마는 하루에 몇 번을 소독하고 기저귀 갈아 끼우고 씻겨드리는 일을 2년 동안 하셨습니다. 이웃에 살며 자주 찾아왔던 사촌 올케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에게 전하였습니다.
“작은 어머님은 얼마나 깔끔하신지 몰라. 병시중하시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해. 그런 상황에서도 안방에 들어서면 아무런 냄새 하나 나지 않았으니 말이야.”
엄마는 우리 집에 와 계시면 직장생활을 하고 돌아오는 딸이 안쓰러워 쓸고 닦고 아이들 기저귀까지 뽀얗게 삶아 바람에 햇살에 늘었다가 곱게 차곡차곡 제자리에 담아놓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당신이 몸이 좋지 않아 우리 집에 와 계실 때, 팬티에 오줌을 찔끔 거리면서도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엄마! 이제 기저귀 차자.”
“아니, 아니야.”
하루에 몇 개를 그리고 며칠을 벗어내더니 당신이 포기 하셨습니다.
“막내야! 기저귀 채워줘!”
“알았어. 엄마.”
그렇게 며칠 안 되는 나날을 돌봐 드리면서 정성을 다하지 못했기에 늘 후회만 남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난 뒤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시어머님에게는 후회 없도록 성의를 다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어머님 셋째며느리인 나에게 더 편안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를 닮아 가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 사람 사는 냄새 가득한 살아있는 시장
우리 아이들에겐 할머니에게 전화라도 자주 하라고 말을 합니다.
“할매! 밥 무것나?”
무뚝뚝한 아들 녀석이 어릴 때 키워준 할머니라 그런지 존댓말이 안 나온다며 반말을 합니다.
“반찬은 있나?”
몇 마디 하지 않고 뚝 끊어 버립니다.
“뭐라고 하셔?”
“응 엄마가 해 준 반찬으로 밥 먹었데.”
“좀 살갑게 대해라. 할머니한테.”
“알았어. 알았어. 난 공부하러 갈란다.”
“요녀석이~”
“바이”하며 손을 흔들며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30년 후 바로 내 모습입니다.
어머님!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려 주시길 소원해 봅니다.
출처 :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게시자 : 노을이의 작은 일상(2009.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