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파리
칼바람이 난무하는 눈 쌓인 동산, 앙상하게 서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가
서걱 대고 있는 풍경을 보노라면, 계절적인 추위보다 마음이 더 시려와
고개를 돌리고 만다.
생의 겨울에 들어서 있는 나의 시어머니, 89세의 노령으로 체중 31 킬로그램을 가지고
몸이 무거워 바퀴달린 삼각지팡이에 의지하고 식사하러 거실로 나온다.
움직이는 송장 같다는 이미지를 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가족모임이 있는 날에는
등받이에 기대 앉아, 밥도 한 공기 국 한 그릇 소주잔에 술도 두어 잔 한다.
뼈에 걸쳐진 피부는 겨울 이파리 같아서 핏줄이 튕겨 나올 것 같고,
다림질 하지 않은 옷가지 같은 얼굴에 저승꽃이 흐드러지게 펴 칙칙한 모습.
일어나 앉거나 설 때 지지대가 필요한 식물처럼, 허리를 두른 압박붕대의료기.
한 걸음 뗄 때마다 끙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오는 노구, 백년도 못살고 그렇게 시드는 생.
그런 어머니에게 치매나 암이 비켜가서 감사한다.
하여 병마의 시달림이 거의 없이 오직 자연스럽게 생명의 불꽃이 천천히 소진 되어 가고 있다.
아! 인생이란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 그래서 종교에 입문하고
내세의 생명이라도 믿어 의지하고 싶은 것이리라.
어머니의 상황이 이런대도 자식들에게 자주 와 달라 하지도 않고 뭐 달라고 하지도 않는
보통의 노인들과는 다른 우리 어머니!
당신 기력이 좋으실 때는 가진 것이라고는 원호 청에서 나오는 연금이 고작이었는데도
자식들 앞에서 큰소리 떵 떵 치며 너희들 없이도 살 것이다. 라고 하면서 며느리 들을 냉정하게 대하셨고,
요구사항도 당당하게 말했다. 배려와 이해보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사람들을 판단했고, 배운 데로 왜 못하냐?
나무라시며 교과서대로 해야만 다정한 눈길을 주시는 엄하고도 냉정한 분이셨다.
손자들은 할머니를 무서워해서 오시기라도 하면, 언제 가실지 그것부터 알고자 했었다.
그런데 팔순에 들어 병석에 누우시면서 시어머니는 엄마가 된 것이다.
더 늙기 전에 여행갈 수 있으면 가고, 될 수 있는 대로 즐겁게 놀다오라 당부도하시니 말이다.
자주 드리지 못하는 오랜만의 전화방문도 나무라지 않고 고맙다고 진실로 고맙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이년 째 극구 사양하는데도 며느리에게 파란 배춧잎 30장을 하얀 봉투에 넣어 건네주는 거다.
처음에는 민망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단호하게 사양했다.
고집 피우는 며느리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시애미가 주는 것은 돈이 아니냐며 서운해 했다.
진정 주고 싶은 마음을 알게 된 난 애교를 피우며 받는 것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되겠다 싶어,
“어머니 고맙습니다.” 라며 받을 때 어머니의 얼굴은 포근해 졌다.
언제나 며느리 손에 건네주는 정! 남기는 한마디가 본심이 들어 있다 해도 정말 총명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멈아 아범 외출할 때 용돈 주거라”, 내지는
“아범 양복 한 벌 사줘라”
며느리 몰래 아들에게 주었다가, 나중에라도 며느리가 알게 되면 아들에게 어떤 영향이
끼칠지 염려 하시는 마음이 보여 짠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때로 내 아들이 며느리
몰래 엄마 손에 용돈 쥐어 주며 ‘어머니 쓰세요.’ 라고 속삭여 준다면 무척이나 행복할 것 같다.
때로 남편이 그렇게 해도 눈감아 줄 수 있는데, 남편은 혼자서 어머니를 뵈러 간적이 없다.
어찌 되었든 89살 연세에 이런 총기가 유지 된다는 것이 놀랍다.
'어머니, 전 당신을 본받고 싶습니다! 겨울 이파리처럼 생명이 꺼져 가도
정도正道 잃지 않는 어미로 며느리와 아들과 딸과 사위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라일락(나영애)
첫댓글 시어머니에 대한 정이 묻어납니다. 이제는 친어머니가 되셨나 보네요. 아마 현명한 시어머니와 현명한 며느리가 만나셨다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쉽지 않는 결과 입니다. 세월이 28년정도 소요 되었으니까요...시아주버니께서도 이제야 별로 유쾌하지 않은 집안의 과거사를 속속들이 들려 주셨습니다.
전 이제야 진정한 가족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젊은 날의 자만은 얼마남지 않은 노을에 들어서면 모두를 이해할 수있는 아량과 넉넉함으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가 봅니다. 엄하고 냉정한 원칙주의 자, 그렇게 당당했던 분이 고부간의 서먹함을 녹이고 자애로운 어머니와 효부로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 인간애로 승화시킨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변하신 것은 어머니랍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내게 기대하지마라. 난 냉정한 사람이다.' 라는 말씀에 정말 쪼라 붙었지요.
그런 분이 병석에 누우시면서 달라 지셨고 어머니 노후에 삼남매 시가 형제들은 화기애애 집안이 알콩달콩 행복하답니다.
어린 며느리가 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 합리한 기대라고 생각됩니다. 어른이 아이를 이끌면서 잘해 주면 며느리는 순종하기가
편해 질 것 같아요...전 그리해보고 싶은데 뜻대로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노력해야겠지요...감사합니다.
엄하고 냉정하셨던 시어머니가 따스한 정을 주는 엄마로 바뀌셨군요.
참 가슴 데우는 얘기입니다. 아무나 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 연세에 총기도 좋으시고 당당하게 잘 살아오신 분 같습니다.
어머님도 라일락 님도 서로의 복이지 싶습니다.
좋은 본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네, 복이지요.. 연세 드시면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 되었는데,
저도 나이들어 머지않아 며느리 볼날이 되어서인지, 철이 들었는지, 바싹마른 어머니를 뵙고 있으면
곧 나에게도 다가올 미래라는 생각에 한없는 연민이 느껴 집니다.
그대로 고통없이 생을 누리다가 평안히 떠나시길 빌고 있지요..감사합니다..
긴 인고에 세월 뒤에 찾아온 복록입니다. 그분의 남은 삶은 가족들과 함께 회한과 행복이 가득하시겠습니다. 라일락 님. 감사히 읽습니다.
지난 목요일은 극도로 피곤하여 인사도못나눈채 돌아왔습니다.
다녀 가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는 목요일이면 또 볼텐네요 뭐...
어머님이 와병 중이시지만 그래도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평화로운 여생 잘 누리다 가시기 빕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곳의 글까지 들여다 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신 명절 되십시요.
저도 언제 가실지 모를 어머님께 이번 추석에는 애교 떠는 며느리가 돼 보렵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하시면 어머님이 아주 좋아라 하실 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