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시절을 그리워한다
배고프고 가난했고 힘들었던 기억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아름다웠던 추억도 많이 간직한 시절~다시 회상에 보면 철도 없었고 창피한 일도 때로는 부끄러운일도 있지만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먼 그리움으로 때로는 살아있다는 존재감으로 메아리되어 시도 때도 없이 마음속에 찾아든다
속담에 "쥐 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 라는 말도 있고~" 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라는 말을 가끔식 하지만
쥐 구멍에도 먹고 살 길이 있다라는 다소 생소한 말로 이 글을 쓴다
때는 바야흐로 내 나이 일곱 살때 유랑을 즐기던 아버지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지고 도피처로
대구에서 부산으로 잠시 살다가 다시 친척이 있는 경남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 라는
시골로 이사를 가게되었고 삼년 반 동안 김해에서 살았다
한 번도 농촌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대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김해평야를 무대로 마음껏 동심을 발휘하며 그 일대를 누비고 다녔던 어린시절들을
다 말 할 수는 없고 오늘은 쥐 구멍 파기에 관해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보기로 한다
들녘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농부들은 가을걷이에 한창일 때 , 형과 나는 학교수업을 파하고 집에 오자마자
책보따리를 집어던지고 호미와 자루하나 들고 쥐구멍을 파러 들에 나간다
쥐구멍을 왜 파느냐고 물어신다면 먹거리를 위해 쥐가 모아놓은 곳간을 터는 일이다
원래 쥐라는 동물은 영특하고 부지런하여 겨울내내 먹을 양식을 얻기위해
주로 곡식을 추수할 때쯤 들에 있는 나락(쌀)을 자기창고에 많이 비축해 둔다
익은 벼의 머리 부분을 잘라서 창고에 쌓아 두는데 쌓는 기술이 가관이라!
사람보다 지혜롭고 더 정교하고 세밀하며 가지런히 차곡차곡 곡간에 모아두는데 나락을 빼내기도
힘들정도로 틈이없이 꽉 채워 놓으며 부지런한 쥐는 이런 창고를 열 몇개씩이나 만들어 놓는다
쥐구멍 안에는 안방, 유아방, 곡식저장고, 기타 방들이 있고 곡간에는 나락, 밤, 도토리, 고구마, 대추
고추등 각종 열매들과 미꾸라지 등등 작은 민물고기가 있으며 어쩌면 사람사는 모습처럼 유사한 점이 많다.
들에 나가서 우리형제가 먼저 하는일은 쥐구멍을 찾아다니는데 찾은 다음에는 쥐구멍안에 나락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일도 노하우가 생겨서 대충보면 입구에 곡식의 흔적들이 남아 있으므로
대강 알수가 있다.
확인이 잘 안될 때에는 구멍안에 손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 일은 형이 항상 내게 시켰다
한번은 쥐 구멍안에 손을 넣다가 뭐가 꽉 무는 바람에 놀라서 손을 빼어 내니 피가 펑펑
쏟아지는게 아닌가! 아~~이런 상황을 미리 파악한 형이 야속했지만 맨손으로 뱀을 잡아 죽이는 용감한 어린이가 그 깟 일로 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픔을 참고 바로 응징하기로 결정하고 주변에 불이 잘타는 지푸라기 등을 주워 모아
쥐구멍안에 연기를 불어넣어 쥐를 질식사 시킨 후에야 분이 좀 풀렸다
형이 늘 나에게만 이 일을 시킨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으며 그 사건 후에는 쥐구멍에 손을 넣는 일은
가위 바위 보로 결정했고, 먼저 막대기를 넣어보는 지혜도 생겨났다
농부 아저씨는 우리를 싫어하신다.
그 이유는 호미로 구멍을 파면 도랑 주위에 둑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한번은 도망가다가 신발이 벗겨지는 바람에 붙잡혀 호미랑 자루랑 모두 다 빼앗기고
꿀밤 세례를 맞은 적이 있다. 원인은 신발(검정고무신) 때문임을 분석하고 달리다가 신발을
공중으로 날려 잡고 뛰는 연습을 늘 하곤 했으니 일찍이 직업관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말처럼 용감한 우리 형제가 쥐구멍을 파는 일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둑질 같기도
하고 심지어 쥐 집을 송두리째 부숴버리고 다 강탈해가니 날 강도나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래도 일말에
가책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어짜피 쥐들도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놓은 농부들의 곡식을 몰래 빼내어
자신들의 창고에 숨겨두는 짓이나 우리가 그 훔친 물건을 잠시 실례하는 것은 피장파장인 셈이다
하루에 보통 열에서 스물 개 정도 쥐구멍을 터는데 수확이 많을 때는 반 자루, 적을 때는 반의 반자루 정도 소득을 올린다.
어머니께서는 나락(장물)을 밥해먹기는 좀 거북하신지 훔쳐온 나락을 햋빛에 잘 말린 후 찐쌀을 만들어 주시는데
먹을 것이 없었던 그 시절에 겨울 내내 주머니에 가득 넣어 허기 질때 간식으로 즐겨먹 곤 하였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당시 끼니를 굶는 날이 허다했으니 그 땐, 다들 왜 그리도 궁핍하게 살았는지!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먹을 것이 풍족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먼 옛날 동화같은 이야기로 느껴지겠다
한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가을걷이가 한창 일 무렵,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이 넓은 천지에 우리집이나 땅은 왜 한 평도 없을까!
어린 나이 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으며 교회서나 때로는 집에서 남 몰래 예수님께 매일 배불리 먹게 해 돌라고 기도를 드린 적도 있다
풍년이 들어가는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꿈과 이상을 키워가는 내마음에도 어느새 가슴가득 풍년이 들어 있었다
덧붙여,
어릴 때 다니던 교회는 집에서 거의 십리나 떨어진 큰마을 어귀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동네에선 가장 큰 건물이며
철탑으로 세워진 종각이 우뚝 솟아 멀리서도 잘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예배당~
대문이나 담장도 없이 교회울타리는 사리나무나 혹은 꽃이나 나무들로 경계를 치고
가을이면 코스모스나, 국화, 해바라기 등 이름모를 꽃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손잡고 어울려 다니면서 교회가는 것이 가장 신나고 즐거웠으며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쳐도 그것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반사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성경이야기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게 들었으며
큰 한지에 쓰인 어린이 찬송가를 이쁜 여선생님이 한 소절씩 가르쳐 주시면 목청이 터지도록 따라불렀고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그의 한달 가량 연극이나 성경암송 노래를 연습하기위해 밤마다 매일같이 불 빛 하나 없는 어두운 시골길을 동네 아이들과 신나고 즐거운마음으로 다녔다
볏 집단을 몇 개씩 들고 그것으로 횃불을 밝혔으며 교회를 다니는 길목에는 절간이 있어서 그 곳에가면 더 큰소리로 "고요한밤 거룩한밤"을 부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나다 놀래서 일어 난 스님들이 내복바람으로 빗자루들고 우리를 쫓아 온 웃스광스러운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목소리가 큰 이유인지 매년 성탄절 독창은 늘 내 차지였다
마루바닥이 너무 낡아서 걸을 때 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던 시골예배당.!!
성경이야기를 마음에 곱게 새기며 부르던 찬송가 가사내용을 그대로 배우고 믿었던 사랑의 예수님 !
철없던 어린시절부터 믿고 의지하였던 그 분!!
지금도 변함없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세월을 뛰어넘어 그 가치와 의미는 다르지만 아직도 경외케 하시니 그 분께 영광이며 나에게는 감사함이라.
이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추억들이 그 무엇보다 비견될 수 없는 보석으로
영롱한 빛으로 지워지지않는 그리움으로 내마음에 고스란히 새겨져있다.
첫댓글 특이한경험을 하셨군요 ~저는 농촌태생이라 나면서부터 들일 밭일 하면서 자랐지만 쥐구멍 파는일은 금시초문입니다.
부엉이굴에서 토끼훔쳐먹는 일은 있어도 쥐구멍 파는것은 보지를 못했네요 ~~ 그와중에도 신앙의 씨앗은 움트고 자라나고 있었군요 ~~
ㅎㅎ 얼마 전에 우연히 동향인 분을 만난적 있습니다 어릴적 얘기를 하다가 쥐 구멍을 팠던 사연을 말하니 그분은 전혀 모르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쥐 구명 파는일은 우리형제만 했나 싶습니다 왜냐면 익은 나락은 낫으로 얼마든지 모래 훔칠 수 있거든요 시시티브도 없는데 ㅎㅎ
감자도 수확한 자리에 호미로 캐다보니 작은것 들만 가끔씩 있었어 때론 캐지 않은 곳을 건드리고 싶지만 하나님이 보시고 계신다는 생각에 절대 그런 짓은 할 수가 없었지요 정의감에 불타며 용감하고 순진 했었지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는것이...
그때의 정겨움과 순수함이 아쉬워 이렇게 글을 올리신것 같네요..
이 세대에는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앗아갔는지...
점점 상막해져가는 것을 느끼며 슬퍼지는 마음 그지 없네요
하지만 우리는 고마움도 알고 배려함도 알고 .. 그러했기에...
그 고운 마음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세상에서 사랑이 사라져가는 허망함을 하늘의것으로 채워주시니..
이 또한 감사할줄 아는 우리의 여린마음...
그리고 아직도 옛것을 그리는 여운도 남아...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김도..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것 같습니다
가인님의 숨은 마음 ..이렇게 나누어 주시니 이 또한 감사하네요
어제 오전에 제 메일을 열어보았습니다. 보낸사람이 빠사치오라고 기록되어있더군요 그리고 제목이 어린시절 쥐구멍파기...? 응? 이상한 사람이 음란 메일을 보냈구나 판단하고 누르지도않고 스팸처리했습니다.....ㅎㅎ 이글을 보니 집사님이 저에게 보내었던 글이군요..그러고보니 언제인가 닉네임이 "빠사치오"라고 소개하신 적이있었는데 제가 깜빡 잊었습니다. 요즘에 스팸 메일이 하도 많이 날아와서 어지간한 것은 열어보지도않고 지우다보니...미안합니다..
실은 실수로 보내진 겁니다 ㅎㅎ ㅎ 아직도 한메일은 빠사치오라 쓰고 있는데요 어감이 좋지 않아서 교회카페에서만 가인열로 쓰고 있습니다 빠사치오는 ~남성 성역중 테너음에 두성으로가는 길목의 전환점이라 해야되나!! 하여튼 하이톤의 음역에 음색이 바뀌면서 풀어주며 나는소리라 해야되나!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태리언어 이며 성악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리의 기법입니다
ㅎㅎ 어린시절 소년들의 놀이는 소녀들과는 사뭇 차이가 있으니 타고난 기질이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어린시절 교회를 통해서 기쁨과 감동을 누릴수 있었던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요즈음 아이들은 무엇에 감동받는지 안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나이차가 너무나는 저 이지만 저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터라 푹 빠져 재마나게 읽었습니다.쥐구멍은 아니였어도 들판에서 산에서 안해본게 없네요,저야 목적이 놀이였는데 선배님들은 정말 춥고 배고픈 시절의 먹 거리를 찾아 무엇이든 해야만했던 그 시절...그래도 피난처 같은 교회에서 영의 살을 찌우셨으니 그 부분은 너무나 부러습니다.교회 모습과 교회에서의 아름다이 있었던 일들의 묘사는 뒤늦께 빛의자녀된 저로서는 무어보다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신앙의 밑거름으로 보입니다.어린시절을 떠 올리며 미소 짓게 하는 아름다운 글,순수한 신앙을 싹 틔우게 했던 옛 교회의 모습들...행복하게 읽고 갑니다...
지나간일들이나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더듬어 회상하다보면 희미스레하고 때론 미로와같이 어둠에 갇힐 때도 있지만 특별히 기뻣던 일이나 고생했던 기억들은 선명하고 투명하게 각인되는것 같아요 유진경님도 시골에서 자라났으니 어렴풋이 촌티나는 시골소녀의 모습을 영상해 봅니다 ㅎㅎㅎㅎ모습이야 어쨋던 그 시절은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서려있는것 같아요 분당모임에 초석을 심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신 내외분의 사랑의 수고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