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보이지 않는 숨결, 영원히 펄럭이는 부재(不在)의 찬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Wind from the Sea)〉, 1947, 패널에 달걀 템페라, 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 소장.
1. 닫힌 방, 흐르는 시간의 틈새를 깨우다
어둡고 고요한 다락방, 오래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리는 순간 정지해 있던 공기가 일제히 흔들린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의 1947년작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Wind from the Sea)〉은 바로 그 짧은 순간을 붙잡은 그림이다. 와이어스는 거창하거나 극적인 대상을 찾지 않았다. 그가 바라본 것은 메인주의 한적한 시골집에 있는 평범하고 잊힌 한구석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공간에서 화가는 시간의 흔적과 부재의 감각을 포착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바람에 들려 올라간 낡은 레이스 커튼이다. 오랜 시간을 견딘 천은 곳곳이 해지고 빛이 바랬으며, 성긴 올 사이로 바깥의 빛이 서늘하게 스며든다. 창밖으로는 메인주의 들판과 먼바다의 풍경이 희미하게 펼쳐진다. 방 안에는 사람이 없다. 오래된 창틀과 바랜 천, 그리고 그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만이 이 공간의 시간을 조용히 증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빈 방은 비어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방 안으로 들어와 정지해 있던 시간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적과 고독의 풍경 앞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시 〈바람〉을 떠올리게 된다.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이 시에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세계의 움직임이며, 떠난 이를 향해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을 찾아 헤매는 슬픔의 운동이다.
나의 종말이 찾아왔으나,
너는 여전히 살아 있구나.
그리고 바람은 울부짖으며 울며,
집과 숲을 뒤흔드는구나.
배 한 척 한 척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선창가에 있는 모든 배들을.
바다의 끝없는 저 멀리서 온
비행의 날개처럼.
그것은 대담함 때문도 아니요,
정처 없는 분노 때문도 아니라,
슬픔 속에서 너를 위해 바칠
말들을 찾아내기 위함이라.
시의 첫 문장은 죽음과 삶 사이에 남겨진 거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은 떠났지만 세계는 계속 움직인다. 바람은 불고, 숲은 흔들리고, 배들은 물결 위에서 몸을 뒤척인다. 그러나 그 거대한 움직임 속에는 떠난 이를 향해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 와이어스의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커튼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가장 선명한 흔적을 남기는 순간이다.
2. 떠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 남는다
와이어스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의 삶과 완전히 떼어놓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작품이 그려진 1947년은 와이어스가 아버지 뉴얼 콘버스 와이어스를 기차 사고로 잃은 직후였다. 아버지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와이어스에게 예술의 세계를 열어준 스승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을 단순히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작품의 미학적 울림은 오히려 좁아진다. 그림에는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형상이 없다. 얼굴도, 손도, 유품도 없다. 대신 와이어스는 사라진 사람의 자리를 비워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시에서도 떠난 이는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떠난 존재의 형상이 아니라, 그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움직이는 세계의 징후인지도 모른다. 바람은 그 징후 가운데 하나다.
"슬픔 속에서 너를 위해 바칠 말들을 찾아내기 위함이라." 바람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바람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한다. 와이어스 역시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커튼이 흔들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애도는 때로 직접적인 고백보다 사물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더 깊어진다. 떠난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커튼이 흔들린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방 안의 공기가 움직인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가 머물렀던 공간은 여전히 어떤 기척을 품고 있다. 이때 부재는 단순한 빈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 된다.
3. 부재는 어떻게 현존이 되는가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커튼이라는 사물 자체보다 커튼과 바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천뿐이다. 따라서 커튼의 펄럭임은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적인 흔적으로 바꾸는 매개가 된다.
애도도 이와 닮아 있다. 떠난 사람의 육체는 더 이상 곁에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귓가에 되살아나는 목소리, 익숙한 물건의 촉감, 덩그러니 놓인 빈 의자, 창가에 잠시 머무는 빛처럼 사소한 것들이 부재한 사람을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낸다.
와이어스의 화면에는 인간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은 곳곳에 배어 있다. 낡은 창틀과 오래된 천, 창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한때 이곳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을 누군가의 시간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 그림의 빈 공간은 허무가 아니다. 그것은 한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자리다.
파스테르나크의 바람도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바다에서 육지로, 숲에서 집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경계를 통과한다.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듯한 이 움직임은 존재와 부재 사이에 미묘한 통로를 만든다. 결국 부재는 완전한 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라진 존재는 기억과 감각, 공간과 사물의 흔적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되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말을 불러내는 것, 와이어스의 커튼은 바로 그 역설을 보여준다.
4. 찰나를 영원으로 붙잡는 손
와이어스는 달걀 템페라의 섬세하고 건조한 물성을 통해 이 장면을 구축했다. 특히 레이스 커튼의 성긴 올과 낡은 섬유의 질감은 수많은 미세한 붓질을 통해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토록 정밀하게 그려진 천이 화면 안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화는 흐르는 시간을 멈추어 세우는 예술이다. 와이어는 그 정지된 화면 안에 오히려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스쳐 지나가는 한순간의 바람을 영원히 지속되는 장면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실제의 바람은 곧 지나간다. 커튼은 다시 내려앉고, 창가에 머물던 빛도 사라진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그 순간이 끝나지 않는다.
파스테르나크의 시에서도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배를 흔들고 숲과 집을 뒤흔들며 먼 바다에서부터 계속 불어온다. 그것은 자연의 움직임인 동시에, 남겨진 자의 슬픔이 지속되는 하나의 형식이다. 애도 역시 그렇다. 시간이 흐른다고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슬픔은 형태를 바꾼다. 격렬한 울음이었다가 침묵이 되고, 어느 날에는 아주 작은 감각으로 돌아온다. 한때는 견디기 어려웠던 기억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오히려 조용한 그리움으로 남기도 한다.
와이어스가 붙잡은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변화의 순간이다.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잠시 흔들리는 한 장의 커튼. 그것은 떠난 사람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할 뿐이다. 그리고 그 증언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부재가 남긴 흔적을 오래 응시하게 된다.
창문을 통과한 실제의 바람은 잠시 방안을 흔들고 다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림 속의 바람은 그 순간에 영원히 붙잡혀 있다. 커튼은 영원히 펄럭이고, 빛은 영원히 낡은 레이스 사이로 스며든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 애도는 망각과 다른 시간이 된다. 떠난 사람을 억지로 되돌려놓는 것도 아니고, 그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미세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사라진 존재가 우리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머무는지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말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는 때로 말보다 먼저 바람이 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람이 흔드는 커튼을 바라보며 비로소 알게 된다. 부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한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 안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라는 것을.
와이어스의 커튼은 오늘도 그 바람 속에서 흔들린다. 보이지 않는 바람은 지나가지만, 그 흔들림은 그림 속에 남는다. 어쩌면 애도의 시간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은 떠나고 바람은 지나가지만,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남긴 흔들림만은 오래도록 우리 안에서 계속될 것이다.
□ 작품 캡션
미국의 20세기 사실주의 거장 앤드루 와이어스의 대표작이다. 화가가 여름마다 머물며 수많은 영감을 받았던 메인(Maine)주 사우스 쿠싱의 이웃집, '올슨 가옥(Olson House)'의 다락방에서 포착한 찰나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와이어스의 예술적 스승이자 영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기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제작되었다. 화면에는 인간의 형상이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오래된 창문이 열리며 들이닥친 세찬 바다 바람과 그로 인해 격렬하게 요동치는 낡은 레이스 커튼을 통해 거대한 '부재의 기척'을 시각화한다.
화가는 안료에 달걀노른자를 섞어 쓰는 고대의 '달걀 템페라(Egg Tempera)' 기법을 사용했다. 물감이 아주 빠르게 마르는 템페라의 특성상 화면 위의 정교한 레이스 올과 먼지 쌓인 창틀의 질감은 화가의 수천, 수만 번에 걸친 집요한 붓질의 결과물이다. 이 느리고 고통스러운 노동의 방식을 통해 와이어스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바람의 찰나성을 영원의 시간 속에 박제해 냈다. 안과 밖의 경계인 '창문'을 매개로 슬픔과 고독의 내부 세계를 광활한 외부 세계와 연결하며, 상실을 마주한 인간의 애도와 존엄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엔드루 와이어스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잘 감상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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