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성을 지키려는 안간힘
교육을 통해서 남성은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배우지만 그 권위가 모든 남성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란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앎의 의지'와 '권력'이 공모된 관계라고 분석한 미셸 푸코의 말처럼 지식은 권력과 밀착되어, 지배자는 권력의 지지 기반으로 소수 지식인이나 관료층을 옹호해 왔다.
사실 지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돈을 많이 벌거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하층보다는 상층의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이 주어진다. 이처럼 특권을 지닌 소수의 사람에게 유리한 목표를 다수의 사람에게 적용시켜 똑같은 모양으로 성취하라는 것은 모순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남성은 자신의 삶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지위나 경제적, 정치적 능력이나 힘을 지니지 못한 채 '성취'나 '성공'에 대한 부담만을 가진다. 이러한 교육을 받을수록 남성은 스스로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에 더욱 얽매이고 지적 콤플렉스는 깊어진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낮고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내비치려 한다.
많은 남성이 지적 콤플렉스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직업 세계에서 지위를 얻고 성공하려면 지적인 능력과 학벌이 필요해서 그것에 매달리는 것이지 여자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도 교육이 남성 우월 신화를 낳는다면, 결국 남성의 지적 우월 신화는 여성을 상대적으로 낮춤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설문 조사에서도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 주었는데, 많은 남성이 똑똑한 여자에게 자존심이 상하고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로 남성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남성 우월 신화가 깨어지고, 남자다운 남자로서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의 지적 콤플렉스는 남자다움을 드러내고 남성의 우월성을 지키려는 안간힘으로 나타난다.
암탉을 울지 못하게 하라
남성은 지식이나 학문 등 지적인 분야나 직업, 일의 세계를 곧 남성의 능력을 펼치고 실력을 겨루는 장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 속에 여성이 진출해 오는 것을 싫어하며 여성은 남성을 수발하는 내조의 자리를 지키고 남성은 지적 권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문 조사에서
"남자와 맞서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는 재수없다"
는 문항에 55%가 그렇다고 대답하였고, 그 중 40세 이상의 남성이 69.1%나 되어 나이가 든 남성일수록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벽녘 울음 시각을 지키지 못하면 신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는 수탉을 위하여 암탉은 잠을 자지 않고 지키고 앉아서 수탉의 잠을 깨워 주었다는 우리의 민화가 있다. 닭도 이러하거늘 천하의 여인들이여 내조의 미덕이 어떤 것이란 것을 조용히 생각하며 반성하라. 내분비 기관의 이상으로 수탉 시늉을 하는 못난 암탉을 종종 보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이런 암탉들은 잘 낳던 알도 갑자기 낳지 않게 되고 머리볏이 수탉마냥 커지며, 수탉 울음 소리며, 암탉 등에 이상한 관심을 가지는 등...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닭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내들은 기억하라.
이 세상엔 의외로 고장난 여인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남성들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일의 세계에서 여성과 겨룬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여성이 직속 상사이거나 높은 지위에 있을 때 기분은 더 복잡하다. 설문 조사에서
"여성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라는 문항에 응답자의 65.7%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20.8%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 13%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문항은 특히 연령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 주는데, 25세 이하에서는 그렇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56.6%, 26--30세에서는 61.8%, 31--40세에서는 71%, 41세 이상은 82.5%로 나타나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은 남성일수록 여성 상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승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즉 남성끼리 겨루기도 힘겨운데 여자까지 끼여든다면 그야말로 남자로서 상처받은 자존심은 회복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남성은 여성 상사가 술자리나 로비 활동을 함께 하기가 어렵고 성격이 깐깐해서 원만하게 상하 관계를 풀어 나가지 못하므로 상사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어떤 이유로든 상사에 대한 불만은 있게 마련이다. 남성이 여성 상사를 싫어하고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에는 직장이나 일, 사회의 여러 전문적인 분야를 남성 세계로 유지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방어 심리가 깔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남성끼리의 경쟁 속에서 지적인 우월감을 갖기는 커녕 남자로서의 위신을 지키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자에게까지 밀린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자보다는 낫다"
는 남자로서의 우월감은 사회 체계 속에서 남성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래서 남성은 연인이나 성적 쾌락을 나누는 대상이 아닌 여성 동료나 여성 거래자, 또는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을 대할 때에도 끊임없이 자신은 남자요, 상대방은 여자임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오퍼상을 경영하는 한 남성이 거래 회사 여성과 나눈 대화에서 바로 이러한 점을 엿볼 수 있다.
남: 결혼은 하셨습니까?
여: 아뇨, 아직. 얼마나 주문하시겠습니까?
남: 천 벌이요, 사귀는 사람 있어요?
여: 아뇨, 가격은 적당하십니까?
남: 네, 미팅해 봤어요?
여: 네, 기한은 언제까지면 되겠습니까?
남: 연말쯤, 시간 날 땐 뭐 해요?
여성이 화를 내고 나가 버려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그는 도대체 그녀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남성들은 일을 부드럽게 처리하게 위해 그런 농을 건넨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 여성을 동등한 지적인 경쟁자로 인정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만 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잘 수긍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 대리, 오늘은 더 예쁜데, 남편이 잘해 주나 봐"
라든가,
"저 앵커우먼은 갈수록 예뻐지는데 연애하나"
,
"저 여자는 출세가 빠른 걸 보니 무슨 빽이 있는 게 틀림없어"
라는 식의 말에는 여성의 능력을 비하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성의 편견이 담겨 있다.
특히 남성들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유대를 돈독히 해 주는 음담패설 속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이 되기 일쑤이다. 남성은 음담 패설을 나누면서 집단적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환상을 즐기며 남자로서 우쭐함까지 느낀다고 한다. 여성 상사를 성적 상상의 대상으로 삼거나 비난하면서 남성은 남성 문화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여성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처럼 남성은 집단의 힘을 빌려 내적으로 분열된 자신의 갈등과 불안감을 숨기거나 벗어나려 한다.
똑똑한 여자는 좋으나 나보다 유능한 아내는 싫다
설문 조사에서 현대의 대다수 남성은 이상적인 아냇감으로
"예쁘고 능력 있지만 다소곳한 여성"
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맞벌이를 원하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능력 있고 똑똑한 여성을 배우자로 원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남성들은 아이의 양육을 전담하는 어머니의 자질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여성의 지적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로 직장으로 진출하는 우먼 파워를 막을 수 없음을 실감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남성도 있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37세의 ㅇ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즈음에는 정말 똑똑한 여자가 많습니다. 남자가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이제는 여자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성을 무시하고서는 절대로 사회 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여성이 똑똑한 것은 좋지만 남편을 능가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조사에서
"결혼한 여자의 학력은 나보다 높지 않은 것이 좋다"
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63.4%,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18.6%,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 사람이 17.6%로 나타나 약 2/3 정도의 남성이 아내의 학력이 자신보다 높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대학 강사 부인을 둔 어느 40대 남성은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고백한다.
(아이를 낳은 후 늦게 대학원에 진학한 아내는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회사에 다니는 나는 집안 일과 아이 보기를 열심히 도와 주며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우리 부부는 잘해 나갔다. 그런데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아내의 생활은 더욱 바빠졌고, 사사건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아내가 점점 부담스럽다. 아내를 찾는 전화가 잦아질수록 나 자신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말을 꺼내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공부방은 아내의 책으로 가득찼고, 한 구석에 꽂힌 내 책 몇 권은 왠지 내 모습인 것 같아 불안하다. )
설문 조사에서
"똑똑한 여자는 부담스럽다"
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60.8%, 대체로 그렇지 않다가 22.5%, 전혀 그렇지 않다에 15.8%가 답하여, 많은 남성이 지적인 여성을 만나는 것을 편치 않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은 능력 있고 똑똑한 아내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대개 호의적이고 외조를 잘 하던 남성도 아내가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해지면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인다. 자신을 얕보는 듯한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만 사소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도 남자답지 못한 것 같아 이리저리 참다 보면 부부의 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이혼이나 외도로 이어지는 수도 있다. 남성이 여성의 지적인 능력이나 똑똑함을 인정하는 기준은 바로 남성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아내가 더 나아 보이기 시작하면 남성은 당황하고 불만을 느낀다. 이 때 남성의 불만은 대부분 아내가 살림이나 육아 등 여자로서의 의무를 잘 못한다든지 남편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나타난다.
남성이 여성 앞에서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마음껏 펼쳐 보이지 못할 때 열등감은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문적인 일의 세계에서 학력이나 학벌, 지식 수준을 가지고 돈 잘 벌고 출세한 가장의 권위를 지킨다고 생각하므로 가장이나 남편으로서 위신을 세우기 어려워지면
"여편네가 뭘 안다고 나서"
라는 식의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심한 경우 아내를 구타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의 육체적인 힘은 지적인 능력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불의에 맞서고 약한 자를 보호하는 데 쓰여질 때 더욱 추앙받는다. 그러나 남성은 스스로 지적으로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종종 폭력을 사용하여 육체적 힘을 과시함으로써 남자다움을 드러내려 하는데, 이는 곧 그 남성의 지적 콤플렉스의 깊이를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