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Give without Take 가치의 발란스를 깨뜨리라
제목: 누가복음 14 : 12 - 14
일시: 2012. 4. 29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사람이 말이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한다. Give and Take 의 원리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일반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Give and Take 라는 원리에서 Give는 진정한 Give 가 아니다. 받을 것까지 계산하고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Sell 일 뿐이다. 그러한 Give는 거래인 것이다. 이미 Take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Give는 매우 불순한 기부이다. Take 는 상당히 강렬한 취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Take는 가지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Take를 동반한 Give는 이미 색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Give이다. 그래서 Give and Take 가 아니라, 그저 Take 없는 Give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Give는 취하려고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다. Give and Take 가 아니라, give away 하라. Give away 란 신부를 신랑에게 넘겨주다 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부자들을 청하지 말라.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고 한다.
우리는 돈이 될 만한 사람, 내 명성에 어울리는 사람, 내 사업과 앞길에 도움이 되는 사람만 골라서 사귀지 않는가? take를 위해서 give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손해 보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다.
II. Give and Take가 아닌 Give를 하게 되면 발란스가 깨진다. 그러나 그런 발란스는 부지런히 깨야 한다. 싼 것은 발란스를 맞출 수 있지만 진정 값진 것은 발란스를 깰 수 밖에 없다. Give and Take에서 오고가는 것은 알고 보면 형편없이 값싼 것들이다. 그래서 거래가 되는 것들이다. 거래가 되는 것들은 사실 싸구려들이다.
쾌락은 싸다. 그러나 사랑은 비싸다. 침대는 싸다 그러나 단잠은 살 수 없는 것이다. 건강보조식품과 영양식은 비싼게 아니다. 그러나 건강은 값이 없다. 책은 별로 비싼 게 아니다. 그러나 지혜는 값이 없다. 하우스는 수억정도 하겠지 그러나 스위트홈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진짜 비싼 것, 즉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들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주는 것이다. Give away 해서 선물로 주는 것이다.
교회소식에 보면 골수를 드려야겠다고 한다. 최정옥집사님은 조혈이 잘 안되어서 골수를 이식받아야 한다. 그래야 피를 생성해 낼 수 있다. 옛날에는 뼈에 바늘을 넣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기술이 아주 발달해서 그냥 피를 뽑아서 Knochen Mark Spende Unterzuchung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그냥 피검사하듯이 해서 피의 특징이 맞으면 헌혈하듯이 피를 주면 다 된다. 부모도 안되고 자녀도 안되고 형제자매들만이 아주 높은 가능성이 있는데, 가족 중에 같은 이가 없다. 그러면 같은 골수를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 Blut Bank 로 가야하는데 거기에는 골수를 기증하겠노라고 컴퓨터에 등록된 사람들은 다 나온다. 독일에서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 찾으니 거기에 있었다. Good News는 4명이나 같은 사람을 찾았다. Bad News는 아무도 관심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달라고 하면 안 되는가 싶은데 결코 개인정보도 주지 않고 누구에게서 받는지 누구를 주는지도 모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금 답답하기는 한데, 그 이유는 왜 그런가? 피나 장기 우리 몸에 중요한 그런 것들은 매매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건강과 죽고 사는 문제, 이와 같이 아주 중요한 부분은 매매가 안된다. 진짜 귀한 것은 값이 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은 값이 나간다. 영어에서 Valuable 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치가 있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Invaluable 이라는 단어가 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이라는 뜻이다. being beyond price. 너무 귀중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unvaluable 이 있다. un은 반대 제거라는 접두사이다. unvaluable 아래에는 가치가 없다는 뜻이 있다.
13-14절을 보라.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들은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청함을 받을 때 얼마나 귀한 초청일 것인가! 누가 우리와 같은 사람을 청할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얄팍하게 거래하여 Give 했으니 Take 하려는 생각으로 우리가 나누는 것을 값싸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나누는 것을 아주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 비싸서 값을 매길 수 없게 해야 한다. 값을 매기면 값이 없어지고 값을 매기지 않으면 값이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견적이 안 나온다. 이미 파산난 우리에게 주님이 무엇을 건지겠다고 거래를 하실 것인가? 주님은 그분은 값없이 돈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마태복음5장 산상수훈에 나오는 주님의 메시지를 보라. 얼마나 발란스를 극명하게 깨뜨리셨는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말씀을 알지 않는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오른뺨을 때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폭력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혹은 “내가 참지”하면서 인내하는 사람이 있다. 대단하다. 그러나 더 대단한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왼뺨도 들이댄다. 물론 때려봐 하고 깡패처럼 하는 것이 아니다. “속이 풀리신다면 때리세요” 라고 할 것이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상상의 발란스를 깨어라. 우리 삶의 상식의 발란스를 깨어라. 그것이 오늘 주님의 말씀이다.
III. 발란스를 깨뜨릴 때의 결과가 무엇인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원리에 따라, 발란스가 깨어질 때 웃음이 있다.
2년 전 이맘때에 교회카페 아이젠반 다이어리란에 글을 하나 썼는데, 이런 식으로 글을 하나 썼다. “천둥번개가 칠 수 있다고 하네요. 날이 안좋다는 말이지요. 날이 좋지 않을 때는 공부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해가 반짝 나서 날이 좋으면 활짝 핀 유채꽃밭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으세요” 라고 썼다. 사실 그래서 내 자신도 그 당시 가족들과 더불어 노란 유채꽃밭에 가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진 좀 찍는다는 형제하고 작정하고 나가서 사진을 찍고 왔는데 몇일 후에 그 형제가 사진을 현상해서 가지고 왔다. 노란 유채바다와 푸른 밀밭, 그리고 빨간 독일 시골집들의 지붕들... 상상만 해도 너무 멋진데 기대하고 그 뽑아온 사진들을 보는 순간 완전히 실망했다. 의외로 잘 안나온 것이다. 너무 강렬하니 우리는 다 초라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유채꽃밭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으세요 의외로 잘 안 나올 것입니다”라고 썼는데, 댓글에 권태희집사가 그 반전이 재미있었다고 한문장 썼다. 그 글을 읽고 몇 자 썼을 때의 태희집사를 생각했다. 그 특유한 카리스마틱한 웃음! 그런 웃음을 웃었을 것이다. 웃음은 언제 나오는가? 발란스가 깨어졌을 때이다. 유머는 발란스가 깨어졌을 때 나오는 것이다. 유채밭이 그렇게 예쁘면 사진찍고 아주 잘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에 미소가 나온 것이다.
훈훈한 이야기가 신문에 나오는 것을 보면 발란스가 깨진 것들이다. 미담들이 그렇게 나올 때 우리의 입가에는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각박하고 냉냉한 우리 삶과 사회 속에서
가난한 자들, 병든자들, 별볼일 없는 자들을 위해서 일하고 그들을 초청할 때 우리에게는 웃음과 미소가 나온다.
그 정도가 아니고 발란스가 깨어질 때 거기에는 에너지가 나온다. Give 한 것을 몇푼 Take 해서 이익을 챙겨먹는 것이 아니라, 그 얻어질 축복을 극대화하고 그 폭팔력을 키우는 것이다. 으뜸되기를 원하느냐? 세상은 말한다.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경쟁하여 밟으라. 에너지가 없다. 그러나 낮아지라고 할 때 발란스는 깨어지고 그 파괴력은 대단하다. 살기를 원하는가? 희생하라. 얻기를 원하는가? 버리라. 원수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발란스를 벗어나는 것은 에너지를 창출한다. 삶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Case를 경험하는가!
헝가리에 노숙자 사역을 하는 김흥근 서명희 선교사 부부가 있다. 그들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중앙역 동부역 서부역 등 몇 군데를 일주일 내내 그리고 일년 내내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말씀을 전하고 거리의 교회를 세워 사역하고 있다. 저희도 한 겨울에 한주일 노숙자 밥퍼사역을 도우러 간 적이 있다. 그분들을 만난 것은 동유럽선교사 대회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후 그분들이 이곳 라이프지히를 방문하였다. 그때 아내가 얼마나 잘해 드렸는지... 2박 3일을 있으시면서 최선의 섬김, 호박잎쌈도 해드리고 가실 때에는 쌀가마와 다른 것들도 드리고... 내가 옆에서 생각해도 그만큼 친한 것은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해 드릴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그분은 우리를 보면 그렇게 친근하고 헝가리에 어떤 분들이 갈 때 무슨 부탁을 해도 권목사님이 부탁하시니 무조건 하지요라는 식이다. 우리가 무게를 재는 친함의 발란스를 깨었다.
삶의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일하라. 다들 작다고 무시하고 큰 일을 기대할 때 발란스를 깨는 그 작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최고점수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작을수록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발란스을 깨뜨리라. 내게 지금 자리가 없고 나의 몫이 없다 할찌라도 다른 사람들로 나를 아쉬워하게 만들어라.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은 발란스를 깨는 것이다.
IV. Give and Take로 빠듯하게 살지 말라. 눈앞에 보이는 결실만을 바라보고 살지 말라. 그러한 결실은 사실 지극히 형편없는 값싼 것들이다. 값비싼 것들은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주님의 피가 어찌 우리에게 값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Take 없는 Give로 균형을 깨뜨려 보라. 발란스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깨어보라. 그것이 이 땅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주님의 원리이다. 이때 우리는 웃을 수 있다. Give and Take하는 사람은 꾀돌이처럼 머리 굴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잘 사는 것 같지만, 힘이 없다. 파워가 없다. 발란스를 깨는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못했던 축복이 있다. 균형을 깨뜨려 보라. 어떤 파워가 나오는지 삶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