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가톨릭 신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역정을 함께한 정신적 버팀목이자 응원군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첫 부인인 고(故) 차용애 여사의 집안이 독실한 가톨릭이었던 인연으로 서울교구 지인의 소개로 윤형중 신부로부터 교리를 배웠고, 1957년 7월13일 노기남 대주교 숙소에서 장면 박사를 대부로 해서 김철규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가톨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헨리 8세에게 저항하다가 순교한 '유토피아'의 작가 토마스 모어(1477∼1535)를 본받으라는 의미로 김철규 신부가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을 지어줬다고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야 지도자 시절부터 가톨릭 지도자들과 민주화 운동의 방향을 상의할 정도로 각별했다. 특히 올해 2월 선종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은 남달랐다.
김 추기경은 1976년 명동성당 앞 3.1 구국선언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투옥되자 직접 면회를 갔고,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당선미사를 베풀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자 2월17일 이희호 여사와 함께 명동성당을 직접 찾아 조문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투옥됐을 때 김 추기경이 진주교도소와 청주교도소에 직접 찾아왔고, 이희호 여사를 통해 100만원씩 2차례나 차입금을 넣어준 적도 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87년 평민당 총재 자격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예방했으며,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0년 3월4일 로마 교황청을 국빈 방문해 요한 바오로 2세와 재회했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교황청 방문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가톨릭 관계자들은 김 전 대통령이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미사에 참여하는 성실한 신앙인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 낙선한 1992년부터 1997년 말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천주교 서교동 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김종국 신부는 1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매주 성당에 오시면 항상 앉는 자리에만 앉으셨다"면서 "신민당 총재 시절 '총재님은 어떻게 그렇게 지식이 풍부하십니까'라고 여쭸더니 바로 '감옥에 갇혀보십시오'라고 답하셨다"고 추억했다.
김 신부는 "성당 사목회 고문이셨던 김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동네 아저씨처럼 소탈한 모습으로 성당을 찾았다"며 "개신교 신자였던 이희호 여사는 인근 교회를 다니셨지만 성당에 중요한 행사나 미사가 있을 때는 항상 두 분이 함께 오셨고, 내가 지금 봉사하는 영등포 토마스의집에 대해서도 자주 신경을 써 주셨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1992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실 당시 성당에서 파티를 열어 드렸으며, 김 전 대통령의 세례명이 토마스 모어인 것과 관련,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에 대해 좀 더 연구하셔서 대통령이 되면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달라고 성당 사람들이 권했다"고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가톨릭의 사형제 폐지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그는 지난 2007년 가톨릭신문에 실은 특별기고문에서 "나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간신히 살아난 바 있다. 이러한 경우 가장 기가 막힌 일은 재심에 의해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릴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대통령으로 재임한 5년 동안 사형을 한 건도 집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신앙이나 민주인권에 대한 소신에 연유한 것이었다"며 "사형 집행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고,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에도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다. 모든 사형수를 무기로 감형시키고자 했지만 부처간 합의가 되지 않아 몇 명을 감형하는 데 그친 것이 지금도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 위로부터 1993년, 1999년의 김수환 추기경과 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2월17일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찾은 김대중 전대통령>
chaehee@yna.co.kr
첫댓글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올립니다.
레오님,고맙습니다.....벌써 1주기가 되었군요.
레오님, 한국의 많은 성인은 짧은 신앙생활중 순교로 시복되었지만 김대중 대통령님 같이 장구한 세월 꾸쭌히 신앙을 증거하고 그 신앙 안에 최선을 다 한 분은 드물어요. 대통령님의 간증을 보면 납치되든 배에서의 기도중 예수님 나타나시어 애원하셨단 말씀을 어떻게 여기시나요? 헛개비 보고 말씀하신 것으로 여기진 않겠지요? 대통령님을 누구보다 신앙면에서 존경합니다.
대통령님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년 사이에 대통령님과 추기경님을 한꺼번에 잃게될줄은 몰랐습니다. 두 분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