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 18일,
로디지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짐바브웨공화국으로 발족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로디지아는 1850년대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에 의해 탐험이 이루어져.
이후 영국 케이프 식민지의 수상이던 세실 로즈가 보어인에 의한 식민지 국가인 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국에 대한 압력과 북방지역의 개척을 목적으로 1889년에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를 설립했다. 이듬
해에 마타베렐랜드와 미죠나랜드의 광산 개발권을 획득하여 두 지방을 병합해 로디지아(Rhodesia, 로즈의
흑인부족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남(南) 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를 중심으로 백인의 이민이
진행되었고, 1923년에는 백인만의 주민투표로 남 로디지아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1924년에는 북
로디지아(현 잠비아)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925년에 쿠퍼 벨트라 불린 구리 광산이 북
로디지아에서 발견되면서 이를 계기로 북 로디지아도 개발이 진행되었다. 북 로디지아에서 개발이
진행되자 남 로디지아의 백인을 중심으로 1953년에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취급하면서 흑인측의 불만이 높아지자 1963년에 연방은 해체되고 1964년에
북 로디지아는 잠비아로 독립을 이루었다.
백인의 지배가 강했던 남 로디지아에선 백인우위 지역에서 유색인종의 차별정책 및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이에 흑인저항세력이 생겨나 1961년에는 소련의 지원으로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ZAPU),
1963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으로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ZANU)이 각각 결성되어 북한이
ZANU 병사들에 대한 무기와 훈련을 지원하며 게릴라전 양상을 보였다.
1955년 북 로디지아의 키트웨
1960년 로디지아의 그루웨
그러자 백인 농장주를 중심으로 한 로디지아 전선이 결성되어, 1964년에는 이 전선을 이끈 이안
스미스(Ian Douglas Smith, 1919년 ~ 2007년)가 남 로디지아 식민지 정부의 수상으로 취임하여
흑인의 독립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더나아가 남 로디지아는 1965년 11월 11일에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 총독을 추방시켜버렸다. 이에 UN은 이를 비난하며 1966년에 부분적인 경제제재,
1968년에는 전면적인 경제제재를 실행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취급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포르투갈령이던 모잠비크에서 물자가 수출되면서 근간산업을 백인자본에 지탱했던 로디지아엔
별 효과가 없었다.
이안 스미스와 그 가족들
또 백인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비인종주의적 성격과 다수지배의 원칙을 앞세워 1961년 헌법 및
1965년 헌법을 개정하여 1969년에 신헌법을 만들어 국민투표(물론 백인만)에 부쳐 73%의 지지를
이끌어내 신헌법을 가결한 후 1970년 3월 2일에 로디지아는 공화제로 이행했다.
Opening of the First Republic of Rhodesia Parliament, 28 May 1970
어려서부터 백인우월주의를 몸소 배우고 있는 백인년
한편으로 흑인측의 게릴라 전선도 한층 격화되어 백인정권측도 포르투갈과 남아프리카의 군사지원 및
용병을 고용하여 흑인 게릴라와 내전상태에 돌입했다. 1975년에 포르투갈에게서 모잠비크가 독립하자
흑인 게릴라의 운동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 때문에 처음엔 괜찮았던 로디지아의 경제도 대폭으로 피폐해지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경제재제와 UN의 압박으로 결국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조정을 통하여 1979년에 국명을
짐바브웨 로디지아로 개칭했다. 흑인의 참정권을 인정하긴 했지만 정부각료의 대다수가 백인이
관여하여, 재편성된 국군도 백인이 주체가 되는 등 백인의 권익이 그대로 보장되었다.
이 때문에 흑인의 저항운동은 다시 격화되어 내전은 장기화되었는데, ZANU의 로버트 무가베(Robert
Gabriel Mugabe, 1924년 2월 21일~. )가 승리를 거두자 결국 전쟁에 지친 로디지아 정부는 1979년
8월에 반정부 게릴라측과 협상하여 랭커스터 하우스 제헌협정을 체결하면서 휴전하여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일단 영국령으로 되돌아간 후 이듬 해인 1980년 4월 18일에 로디지아
공화국은 짐바브웨 공화국으로서 정식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와 그의 아내 그레이스 무가베(Grace Mugabe, 1965 - ),
31살의 나이 차이를 돈과 권력으로 극복…
무가베의 사치를 잘 알수 있는 무가베의 별장 중의 하나
무가베는 흑인 우월주의를 주장하였고, 백인들의 농장들을 강제로 빼앗음. 저항하는 자들은 몽둥이로
때려 죽이기도 함. 사진은 불타는 백인 농장.
하지만 짐바브웨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무가베는 특히 2008년에는 막장 경제정책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크고 아름다운 초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에 짐바브웨의 이름이 알려지는데 크게 공헌했다.
경제학적으로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우 중 하나. 실제로 현존하는 국가 중에서는 가히 최고 수준이다.
무가베가 마르크스 레닌주의 단체인 ZAPU를 탄압하며 짐바브웨의 정치는 혼란을 겪었고 백인들을
축출하며 장악한 농장은 무가베의 독재체제 하에 계획경제가 실패하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불러
아프리카의 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짐바브웨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의 상징이며 로버트 무가베의 최대 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