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 고 이남종 열사! 대한민국 육군 학사장교 대위 출신으로서 현 정권과 국방부 및 군장성,장교들의 민주주의의 훼손과 방조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특검과 박근혜사퇴을 요구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짓었습니다.
[고인의 약력]
1973. 6 전남 구례 출생
1991. 2 광주 서강고 졸업
1991. 3 조선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과 입학
1996 육군 소위 학사장교 임관
2001 육군 대위 예편
[이남종 열사가 남긴 유서]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젊은 민주시민 이남종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
[김주언 칼럼] 근현대사 폭정에 항거한 인물들의 죽음 연상...자살이 아니라 불법선거 획책·은폐 세력의 타살
[미디어오늘김주언 언론인]
계사년을 보내고 갑오년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목도했다. 2013년 마지막 날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를 외치며 분신한 고 이남종 열사가 주인공이다. 이 열사는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두개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몸에 불을 붙였고
새해 벽두에 그는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을 단순한 '자살'로 치부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지난 대선당시 불법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려는 세력이 죽인 것이다. 이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이다. 그래서 '살인자'들은 불법선거와 은폐·왜곡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고 책임져야 한다.
이번 '살인사건'의 진상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고인의 유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총칼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라고 규정했다. 또한 "공권력의 대선
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고인의 진단은 함께 간직해야 할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고인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모든
두려움을 불태우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이 유서에는 비장함이 묻어난다.
1973
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조선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학사장교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택시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했고 편의점에서 매니저로 일해 왔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어려운 주변을 돕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시민 사회는 고인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장례를 민주시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4일 오전 9시 30분
고인이 마지막을 보낸 서울역 광장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유해는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안치된다.
▲ 고 이남종 열사 분향소 ⓒ 연합뉴스
박
정희 유신 독재시절부터 민주열사들의 죽음은 이어졌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시절에 많은 민주열사들이 젊은 나이에 민주화를 외치며
죽어갔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한 이후에는 이토록 처절하고 가슴아픈 죽음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가슴쓰린 민주시민의 죽음을
목도하게 됐다. 이는 박 대통령 취임이후 유신시절로 역주행하고 있는 사회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열사의 죽음을 접하면서
김상진 열사가 데자뷰된 것은 자연스럽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절정에 달하던 1975년 4월11일. 당시 서울대
농대생이던 김상진은 수원 교정에서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뒤 할복했다. "어두움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그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과 합법을 가장한 부조리와 악, 그리고 비민주적 허위성과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했다. 그는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김
상진은 194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68년 서울대 농대 축산과에 입학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1974년 2학기에 복학했다.
그는 후배들에게는 부드럽고 포용력 큰 선배였다. 김상진의 유해는 사망한 지 12시간도 되지 않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벽제
화장터에서 서둘러 화장됐다. 물론 장례식도 없었다. 박 정권은 이후에도 장례식을 금지했다. 이남종 열사의 유서를 공개하지 않고
생활고 비관으로 몰아가려는 박근혜 정부의 경찰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서울대 동료들은 5월 22일 장례식을 강행했다.
세칭 '오둘둘'로 알려진 이날 시위로 학생 56명이 구속됐다. 기관원들과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강의실에 난입해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도서관에 있다가 연행돼 제적됐다. 김 열사가 의거한 장소에는 기념표석이 설치돼
있다.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김상진 열사의 자결은 유신독재의 몰락을 잉태한 신호탄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혁당 관련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공포정치'가 극에 달하던 시기에 일어났다. 그로부터 4년 뒤 박정희는
측근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고 유신독재는 종막을 고했다. 박정희의 딸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한 명의 민주시민이
목숨을 끊었다. 부정선거를 은폐하기 위해 '공안몰이'로 국민을 겁박하는 시기와 겹쳐 있다. 국민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버지와 그의 딸은 왜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을 적으로 보고 있는가. 왜 국민에게 항복을 강요하는가.
박
근혜 정부 1년동안 대한민국은 유신독재 시절로 역주행해왔다. 국가기관 불법 대선개입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민주헌정질서는 무너지고
법과 공권력의 신뢰는 추락했다. 국민대통합은 온데 간데 없고 극단적 갈등과 대결이 사회전반에 소용돌이치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도 안녕하지도 않다. 한반도 주민의 미래는 더 위태롭고 위험해졌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뜻에 불복하고 국민에게
복종을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경구를 모르는가.
올해는 갑오년이다.
120년 전 '갑오경장'과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다. 갑오경장이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면 동학농민전쟁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했던 농민군의 함성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둘 다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2주갑(周甲)을 맞는 근대사의 양대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구한말 외세를
끌어들이고 국권을 상실했던 아픔을 다시 겪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동북아 정세가 구한말과 비슷한 형세로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형국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변화할 기미가 없다. 새해에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20년만의 갑오경장'이라는 애드벌룬도
띄웠다.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 '경장(更張)'은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조인다는 뜻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종북몰이'에서 드러났듯이 '공포정치'를 통해 비판세력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되뇌어왔던 '국민 행복시대'는 '국민 항복시대'로 변질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박 대통령의 갑오경장은 성공할 수
있을까.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개혁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다시 동학농민전쟁처럼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이 위협받을수록 국민의 연대와 결속이 더욱 강력해진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촛불집회는 6개월이 넘도록 지속되고 갑의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을의 저항도 강력해졌다. 철도와 의료 민영화에 맞선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연대투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고압 송전탑에 맞서는 밀양주민의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젊은 세대의 변혁의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한 민주시민의 죽음은 갑오년 벽두 국민의 울분을 자극하고 있다.
동학농민
전쟁의 지도자 전봉준은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뒤 이런 시를 남겼다. "때를 만나니 천지도 내 편이더니(時來天地皆同力)/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찌할 수가 없구나(運去英雄不自謨)/백성을 사랑한 정의 무슨 허물이더냐(愛民正義我無失)/나라위한 일편단심 누가
알아주리(愛國丹心誰有知)." 이남종 열사의 유서에 남겨진 애끓는 외침을 닮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근혜 정권 퇴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검을 외치며 분신한 고 이남종 열사의 영결식이 그의 죽음을슬퍼하는 많은 시민들의 참여 속에서 진행했다. 이남종 열사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열사들과 한 자리에 묻힌다.
민
주투사 고 이남종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위원장 박선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4일 9시 반 서울역 광장에서 2천여명의 추모객들과
함께 이남종 열사의 영결식을 진행했다. 김동한 장로(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를 촉구하는 개신교평신도시국대책위원장)은
영결기도문에서 "정의를 위해 고난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말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실천한 고 이남종 열사는 예수살기를 몸 바쳐 실천한 작은 예수"라고 추모했다.
김
동한 장로는 이어 "가짜대통령 박근혜 독재정권 하에서 1년 동안 전전긍긍하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땅의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 시민사회단체운동가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 그 공포와 두려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일어서라고 절규하신 고 이남종
열사의 그 죽비소리를 정언명령으로 이어받아 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사에서 "평범했지만 위대한 열사여! 이제 우리는 흔들리는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되겠습니다. 영면하소서"라고 이남종 열사를 기렸다. 이날 영면식에서 이남종 역사가 분신 전 서울역 고가에서 펼쳤던 '박근혜 사퇴!
특검실시!'라는 현수막을 재연한 대형 만장기가 걸리기도 했다. 시민들도 근처 고가도로에 이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펼쳤지만 경찰이
바로 수거해갔다.
이날 이남종 열사의 영면을 바라는 추모글이 넘쳐나고 있다. 정의․평화 ․민주 가톨릭행동
추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 故 이남종씨의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데 두려움을 제가 다 안고 가겠다'는 유언을 되새기며 故
이남종씨의 모습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 의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모두의 마음속에 '불사의 희망'으로 되살아 날 것"이라고
추모했다.
▲ 고 이남종 열사 영결식(사진출처=언론노조 트위터)
트위터에서도 @dramakim2020은 "억울하고 슬프고 눈물겹지만 마지막 가시는 발길엔 그래도 '시민'들이 함께 있었다"고 남겼고, @Hurphist는 "과거 전태일의 분신 때보다 더 치열한 결단"이라고 남겼다.
장례위원회는 이남종 열사의 노제를 이날 오후 3시 전남 광주에서 진행한 후 5·18 망월동 민주묘역에서 열사의 시신을 안장한다.
한
편 많은 추모 시민들을 불려모은 이남종 열사의 영결식에 정작 언론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故 이남종 민주열사 시민 장례위원회는
공식 트위터에서 "고발뉴스, 뉴스타파, JTBC, 팩트TV 등이 보이고, KBS MBC SBS는 없고, TV조선과 채널A는
쫓겨나고. 갑갑한 나라"라고 남겼다.
이남종 열사는"국민들의 많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공권력의 선거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라며"두려움을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서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고 이남종 열사의 운구가 4일 오후 광주 노제를 위해 금남로로 들어서는 길에 2천여명의 광주시민들이 열사의 유지를 담긴 구호를 외치고 있다.ⓒ민중의소리
고(故) 이남종 씨의 마지막 길에 광주·전남 시도민 2천5백여 명(경찰 추산 1천여 명)이 운집해 열사 정신 계승을 다짐했다. 시민들은 금남로 전체 6차선 가운데 4개 차선과 인도에 빽빽하게 들어차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 이남종 열사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는 4일 오후 4시 30분께 금남로 노제를 진행했다. 민중의례와 열사약력이 소개된 뒤 조사와
조가, 조시, 조무, 유족 인사, 헌화가 이어졌다. 열사의 운구는 오후 6시께 하관식을 위해 장지인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옮겨졌다.
“특검실시, 박근혜 퇴진 위해 두려움없이 맞서 싸우겠다”
2천여명의 광주시민들이 4일 오후 금남로에서 이남종 열사 노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민중의소리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정태효 목사는 조사에서 “이남종 열사는 머뭇거리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떨쳐 일어나라고, 저희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가겠노라 약속했다”며 “고인의 뜻을 저희가 이어갈 수 있도록 고인께서 지켜봐 주소서”라고 말했다.
이어 “의인의 피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고 이남종 형제는 성령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도록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며 “‘박근혜는 퇴진하라, 특검을 실시하라’는 고인의 뜻을 받들겠다. 대선 부정선거 특검을
실시하고 박근혜 퇴진, 이명박 구속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임추섭 광주시국회의 상임대표는 조사에 앞서 고인과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면서 “천인공노할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
극한 선택을 하신 이남종 열사 앞에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갑오년 농민들의 피맺힌 함성이 오늘날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오고 있다”면서 “우리 모두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으로 굳게 단결하여 열사의 유지에
보답하자”고 말했다.
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돼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는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노동자,
시민들의)죽음의 행렬을 멈출 길은 고인의 말씀처럼 두려움을 잊고 맞서 싸우는 것”이라며 “사상과 정견을 뛰어넘어 단결해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호권 광주광역시의회 의장은 “이남종 열사는 열심히 조국을 사랑하다 2013년 12월 31일 부정선거 특검, 박근혜 사퇴를 외치고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해 산화하셨다”면서 “다시 한 번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사수, 쟁취하기 위해 고 이남종 열사의 깊은
뜻을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휘국 광주광역시 교육감은 “그가 광주의 아들이라는 게 슬프고 기가 막혔다. 어둠과 독재의 그늘에서 두려워 떨며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리에게 한 말 한마디가 기가 막혔다”면서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 지혜를 주시고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떨쳐
일어나 싸우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이제 두려움을 다 떨치고 일어나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가족 대표로 동생 이상영 씨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 개인의 일탈이라면, 우리 형의 죽음도 개인의 일탈이냐”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포와 결핍을 알긴 하느냐”고 절규했다. 이어 그는 “형님 가는 길에 함께 눈물을 흘려준 국민들께
감사하다”며 “형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전남 시도민의 눈물과 애도 속에 망월동 향해
노제를 마무리할 즈음 유가족 인사를 마치고 내려온 이남종 열사의 형과 동생이 눈물을 쏟고 있다.ⓒ민중의소리
운구가 금남로에 들어오는 길, 2천여 명의 시민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구호를 외쳤고 고인을 애도하는
눈물과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시민은 운구차를 더듬으며 통곡했고 또 다른 시민은 유족이 든 영정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아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금남로에 울려 퍼졌고 고인의 넋을 달래는 춤꾼의 조무가 이어졌다. 헌화를 마친 오후 6시께 고인의 운구와 유가족, 그리고 수백 명의 시민은 하관식을 위해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이동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예정됐던 노제는 서울 남대문 경찰서 항의 방문 탓에 약 1시간 30분 늦춰졌다. 고 이남종 열사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 등은 서울에서 영결식을 한 뒤 고인의 뜻을 훼손한 남대문경찰서를 항의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져 광주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5시로 예정됐던 촛불대회는 취소됐으며 노제와 하관식이 진행됐다.
광주 금남로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한 시민이 열사의 영정 앞에서 통곡하고 있다.ⓒ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