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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참봉 황윤석(黃胤錫)선생이 남긴 시문(詩文)
황윤석(黃胤錫)선생은 37세 때인 1766년에 장릉참봉으로 명을 받아(영조 42년 6월 18일)
후임 참봉 강세동(姜世東) 선생이 명을 받아(영조 44년 6월 17일) 부임할 때까지 2년여 동안 영월에서 남긴 시문입니다.
*영조 42년 6월 16일 갑인 1766년 최수겸(崔守謙)
*영조 42년 6월 18일 병진 1766년 황윤석(黃胤錫)
*영조 44년 6월 17일 계유 1768년 강세동(姜世東) <영월부읍지 선생안>
원문인용 및 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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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집총간 > 이재유고 > 頤齋遺藁卷之三
頤齋遺藁卷之三 / 詩
酒泉懷古
昔聞元霧巷。高躅此山中。佐翼初何與。沈冥遂自終。同聲梅月子。慕類栗亭翁。南松有宰樹。應指越江東。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문집인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주천회고(酒泉懷古)〉라는 작품입니다.이 시는 세조의 왕위 찬탈(계유정난)에 대항해 절개를 지킨 생육신(生六臣) 중 한 명인 원호(元昊, 호는 무항·霧巷)의 자취가 서린 강원도 원주 주천(酒泉)을 지나며 그의 충절을 기린 회고시입니다.
酒泉懷古 (주천회고): 주천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昔聞元霧巷 (석문원무항) 예전에 원무항(元霧巷, 원호) 선생에 대해 들었으니,
高躅此山中 (고촉차산중) 고결한 발자취가 바로 이 산중에 남아있네.
佐翼初何與 (좌익초하여)( 수양대군의) 좌익공신(佐翼功臣) 책봉에 처음부터 어찌 관여했겠는가,
沈冥遂自終 (침명수자종) 깊이 은거하여 마침내 스스로 세상을 마쳤도다.
同聲梅月子 (동성매월자) 뜻을 같이한 이는 매월자(梅月子, 김시습)요,
慕類栗亭翁 (모류율정옹) 그 부류를 사모한 이는 율정옹(栗亭翁, 권절)이로다.
南松有宰樹 (남송유재수) 남쪽 소나무 아래에는 무덤가의 나무(단종의 릉)가 있으니,
應指越江東 (응지월강동) 응당 영월의 동강(越江) 동쪽을 가리키고 있으리라.
한국문집총간 > 이재유고 >
頤齋遺藁卷之三 / 詩
奉審莊陵
亭亭華表出雲端。羊馬無聲松柏寒。烏帶遺臣趍傴僂。紅衣老僕說平安。千年逝水流冤盡。一種空山葬聖難。剩喜先朝延寶曆。不須怊悵臉邊汍。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문집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봉심장릉(奉審莊陵)〉이라는 작품입니다.
'봉심(奉審)'이란 왕명으로 능침을 받들어 보살피고 점검하는 일을 뜻하며, '장릉(莊陵)'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던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의 능(강원도 영월 소재)입니다. 황윤석이 관직에 있을 때 단종의 능을 공식적으로 살핀 후, 그곳에서 느낀 처연함과 후대 임금(숙종·영조)에 의해 단종의 명예가 회복된 것에 대한 감회를 시로 표현했습니다
奉審莊陵 (봉심장릉): 장릉을 봉심하며
亭亭華表出雲端 (정정화표출운단) 우뚝 솟은 화표석(華表石)은 구름 끝까지 뻗어 있고,
羊馬無聲松柏寒 (양마무성송백한) 석양(石羊)과 석마(石馬)는 소리 없는 가운데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은 쓸쓸하구나.
烏帶遺臣趍傴僂 (오대유신추구루) 검은 띠를 맨 유신(관원)은 허리를 굽혀 종종걸음으로 나아가고,
紅衣老僕說平安 (홍의노복설평안) 붉은 옷을 입은 늙은 능지기는 능역이 평안함을 아뢰네.
千年逝水流冤盡 (천년서수류원진) 천 년을 흘러가는 저 물은 원한을 다 흘려보냈으련만,
一種空山葬聖難 (일종공산장성난) 이 외로운 산에 임금을 장사 지내기 얼마나 어려웠던가.
剩喜先朝延寶曆 (잉희선조연보력) 다행히도 선조(앞선 임금들)께서 종묘사직의 운수를 연장하셨으니,
不須怊悵臉邊汍 (불수초창검변환) 더 이상 슬퍼하며 뺨 위로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으리라.
핵심 시어 및 배경 해설
화표(華表): 능묘 앞에 세우는 망주석(望柱石)이나 화표석을 뜻합니다. 멀리서도 이곳이 신성한 왕릉임을 알리는 시각적 표지입니다.
양마(羊馬): 왕릉을 지키기 위해 무덤 주변에 세워두는 돌로 만든 양(石羊)과 말(石馬)의 형상입니다. 소리 없이 고요한 왕릉의 적막함을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오대유신(烏帶遺臣): 흑단령에 검은 띠를 맨 조정의 관원, 즉 왕명을 받들어 능을 점검하러 온 시인 자신(황윤석)을 의미합니다.
홍의노복(紅衣老僕): 조선 시대에 능을 지키고 관리하던 하급 관리나 능지기(수릉봉사 등)를 가리킵니다.
장성난(葬聖難):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어 사사된 후,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매장했던 아픈 역사를 함축합니다.
선조연보력(先朝延寶曆): 숙종 대에 이르러 단종의 묘가 '장릉'으로 격상되고 정식 왕으로 복권(1698년)되었으며, 영조 대에 이르러 단종을 향한 추모와 예우가 확고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가 비극의 역사를 바로잡고 왕조의 정통성(寶曆)을 바로 세웠음을 기뻐하는 대목입니다.
초창검변환(怊悵臉邊汍): '초창'은 슬퍼하고 한탄함이며, '환(汍)'은 눈물이 흐르는 모양입니다. 과거의 원한과 비극이 후대 임금들에 의해 모두 신원(伸冤)되었으므로, 이제는 장릉을 마주하며 마냥 눈물 흘리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頤齋遺藁卷之三 / 詩
子規詞 八絶○幷序
賤臣少讀列聖御製。至端廟寧越郡樓作二篇。輒低徊涔淫。不自識其何爲而肰也。今適來守陵下。感愴益激。噫民生秉彜。天所同賦。凡有血氣。孰不憐之。雖相後三百餘歲。尙令人太息。彼一時北面而二心者。亦獨何哉。記十年前嘗訪六臣祠墓。髮竪膽裂。歸語人曰使爲靖難元勳遺裔者。必不生心過此。况於本陵乎。秋風漸厲。秋夜漸永。獨處多病。無寐。敢依二篇演之。仍名子規詞。庶來者有知云爾。
華山漢水舊城池。風雨驚飛短翮垂。說到東來安用悔。悠悠天意竟難知。
淸泠浦上鐵崖層。草綠花紅怨不勝。卻羡沿籬嗚咽水。猶能西去謁英陵。
啼時白日爲無輝。竹裂江空正憶妃。怊悵刀山還劒閣。夜來猶道不如歸。
梅竹蕭森月向低。數聲長笛亦悽悽。終宵血染無人見。遮莫山村叫一鷄。
錦城消息白雲空。膓斷初寒十月中。從此越江花落盡。年年再拜只村翁。
甑山高竝鉢山靑。樵徑依微晝亦冥。不待哀鳴應有淚。美人歌曲更堪聽。
秪今休復訴幽冤。淸廟喬陵盛事存。正是梨花寒食節。天家一騎遣開門。
寂寞秋齋病未眠。經行隨處尙餘憐。他時月白風淸夜。歷歷賡歌又幾篇。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을 지키는 관직(守陵)을 맡았을 때, 단종이 남긴 서글픈 시들을 읽고 감회가 복받쳐 지은 〈자규사(子規詞) 8절(八絶)〉입니다.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이 영월 관풍헌(군루)에 유배되었을 때 지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한시 〈자규시(子規詩)〉와 〈자규사(子規詞)〉를 어릴 적 읽고 눈물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백성들의 마음속에 깃든 보편적인 충심과 연민을 담아낸 명문입니다.
子規詞 八絶○幷序 (자규사 8절○서문을 함께 싣다)
賤臣少讀列聖御製 (천신소독열성어제) 천한 신하(황윤석 자신)가 젊은 시절 역대 임금들의 어제(御製, 임금이 지은 글이나 시)를 읽다가,
至端廟寧越郡樓作二篇 (지단묘영월군루작이편) 단종(端宗) 대왕께서 영월의 군루(郡樓, 관풍헌)에서 지으신 두 편의 시에 이르러서는,
輒低徊涔淫 (첩저회잠음) 번번이 (그 슬픈 시구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눈물을 흘렸으니,
不自識其何爲而肰也 (부자식기하위이연야) 그것이 어찌하여 그러한지(왜 그토록 눈물이 나는지) 내 스스로도 알지 못했습니다.
今適來守陵下 (금적래수릉하) 이제 마침 이 능(단종의 장릉) 아래를 지키는 관직에 오게 되니,
感愴益激 (감창익격) 느껴지는 슬픔과 서글픔이 더욱 격해집니다.
噫民生秉彜 (희민생병이) 아! 백성들이 타고난 떳떳한 도리(秉彜, 임금을 향한 충성심과 인륜)는
天所同賦 (천소동부) 하늘이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해 주신 것이니,
凡有血氣 (범유혈기) 피와 기운(살아 있는 생명)이 있는 자라면
孰不憐之 (숙불련지) 누구인들 단종 대왕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雖相後三百餘歲 (수상후삼백여세) 비록 (단종 대왕의 비극이 있은 지) 삼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지만
尙令人太息 (상령인태식)(삼백 년이 지난 지금도)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탄식하게 만드는데,
彼一時北面而二心者 (피일시북면이이심자) 그 당시 임금을 북향해 모시면서도(北面) 두 마음(二心)을 품었던 자들은
亦獨何哉 (역독하재) 도대체 어찌 된 인간들이란 말인가!
記十年前嘗訪六臣祠墓 (기십년전상방육신사묘) 기억하건대 10년 전에 내(황윤석)가 사육신(死六臣)의 사당과 무덤을 방문했을 때,
髮竪膽裂 (발수담렬) (그들의 기개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쓸개가 찢어지는 듯(간담이 서늘해지는 듯) 전율했었다네.
歸語人曰 (귀어인왈) 돌아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使爲靖難元勳遺裔者 (사위정난원훈유예자) “설령 정난원훈(靖難元勳, 계유정난의 공신들)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必不生心過此 (필불생심과차)반 드시 딴마음을 품지 못하고(부끄러움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이곳을 지나갈 것인데,
况於本陵乎 (황어본릉호) 하물며 (사육신의 묘도 그러한데) 여기 단종 대왕의 본릉(장릉)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라고 했었지.
秋風漸厲 (추풍점려) 가을바람은 점점 사나워지고,
秋夜漸永 (추야점영) 가을밤은 점점 길어만 가는데,
獨處多病 (독처다병) 이곳에 홀로 머물며 병이 많아져
無寐 (무매) 통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敢依二篇演之 (감의이편연지) 이에 감히 단종 대왕께서 남기신 두 편의 시(자규시·자규사)에 의거하여 그 뜻을 부연해 넓히고(演),
仍名子規詞 (잉명자규사) 그에 따라 이름을 〈자규사(子規詞)〉라 붙이니,
庶來者有知云爾 (서래자유지운이) 바라건대 미래에 올 이들(후세 사람들)이 내 뜻을 알아주었으면 할 따름이다.
子規詞 八絕 其一 (자규사 8절 중 제일)
[제1수: 유배길의 참담함]. 한양을 떠나는 참담함(제1수)
제1수 (상실과 원망): 한양(화산한수)이라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날개 꺾인 새가 되어 동쪽 영월로 밀려난 무력감과 부조리한 천의(天意)에 대한 원망.
華山漢水舊城池 (화산한수구성지) 삼각산(華山)과 한강(漢水)은 옛 도읍의 성곽과 못 이건만,
風雨驚飛短翮垂 (풍우경비단핵추) 모진 비바람에 놀라 날아가다 짧은 날개마저 아래로 처졌구나.
說到東來安用悔 (설도동래안용회) 동쪽(영월)으로 오게 된 것을 말한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엇하리,
悠悠天意竟難知 (유유천의경난지)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의 뜻(天意)은 끝내 알기가 어렵도다.
*화산한수(華山漢水): '화산'은 서울의 북한산(삼각산)을, '한수'는 한강을 뜻합니다. 즉, 단종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왕위에 올랐던 공간인 조선의 수도 한양(漢城)을 상징합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옛 성과 못(舊城池)'이 되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습니다.
*풍우경비단핵추(風雨驚飛短翮垂): '핵(翮)'은 새의 깃촉이나 날개를 뜻합니다. 계유정난과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실패라는 거대한 정치적 격변(모진 비바람) 속에서, 아무런 힘도 없던 어린 왕이 놀라 쫓겨나며 결국 날개가 꺾여 추락하듯 유배길에 오른 무력하고 가련한 처지를 비바람에 날개가 처진 새(자규)에 비유했습니다.
*설도동래안용회(說到東來安用悔): 한양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강원도 영월로 유배 오게 된 비극적인 현실을 담았습니다.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기에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후회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절망감과 체념을 담담하게 토로합니다.
*유유천의경난지(悠悠天意竟難知): 정당한 왕위를 사친(숙부 세조)에게 빼앗기고 머나먼 오지로 쫓겨나 죽음을 앞두게 된 이 부조리한 운명 앞에서, 시인은 단종의 입을 빌려 "도대체 하늘의 뜻은 무엇이기에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라며 아득한 하늘을 원망하고 탄식하며 시를 끝맺습니다.
子規詞 八絕 其二 (자규사 8절 중 제이)
[제2수:청령포의 고립과 효심].
청령포의 고립과 세종을 향한 그리움(제2수)
제2수 (고립과 효심): 청령포의 철벽(철애층)에 갇힌 채, 가시울타리를 넘어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능(영릉)이 있는 서쪽으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강물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
淸泠浦上鐵崖層 (청령포상철애층) 청령포(淸泠浦) 위에는 철벽 같은 절벽이 겹겹이 쌓여 있고,
草綠花紅怨不勝 (초록화홍원불승) 풀은 푸르고 꽃은 붉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서글픈 원망을 이기지 못하겠구나.
卻羨沿籬嗚咽水 (각선연리오열수) 오히려 부러워라, 울타리를 따라 흐르며 오열(嗚咽)하는 저 강물이여!
猶能西去謁英陵 (유능서구알영릉) 그대(강물)는 오히려 서쪽으로 흘러가 영릉(英陵)을 뵐 수 있으리니.
*청령포상철애층(淸泠浦上鐵崖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는 뒤로는 칼로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암벽(육육봉)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서강(西江)이 휘감아 흐르는 거대한 천연의 감옥이었습니다. '철애(鐵崖, 철벽 같은 절벽)'라는 표현은 단종이 느꼈을 숨 막히는 고립감과 단절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초록화홍원불승(草綠花紅怨不勝): 계절은 흘러 봄과 여름이 오고 풀은 푸르며 꽃은 붉게 피어납니다. 세상의 풍경은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데, 자신의 처지는 비참하게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이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이 도리어 단종의 가슴속 깊은 원망과 한(怨)을 더욱 자극합니다.
*각선연리오열수(卻羨沿籬嗚咽水): 청령포 유배지 주변에 쳐진 가시울타리(籬)를 따라 흐르는 강물 소리가 마치 슬피 우는 소리(嗚咽)처럼 들린다는 표현입니다. 시인은 이 비장한 소리를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단종의 슬픔에 공감하는 자연의 울음으로 표현했습니다.
*유능서구알영릉(猶能西去謁英陵): 영월을 흐르는 물줄기는 결국 서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이어집니다. 시인은 그 강물이 서쪽(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으로 갈 수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단종의 입장에서 자신을 그토록 아꼈던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능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품에 안기고 싶지만, 몸이 묶여 갈 수 없는 한을 "강물이 부럽다"라는 기막힌 역설로 승화시킨 절창입니다.
子規詞 八絕 其三 (자규사 8절 중 제삼)
[제3수: 정순왕후를 향한 눈물]
아내(정순왕후)를 향한 눈물과 절규(제3수)
제3수 (단장과 연정): 칼산 같은 지옥(도산검각) 속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자규의 울음소리에 피가 마르며 한양에 홀로 남겨진 아내를 향해 부르짖는 처절한 그리움.
啼時白日爲無輝 (제시백일위무휘) (자규새가) 피나게 울 때면 한낮의 태양조차 빛을 잃고,
竹裂江空正憶妃 (죽렬강공정억비) 대나무는 쪼개지듯 아파하고 강물은 텅 빈 듯 쓸쓸한데, 지금 한창 왕비(정순왕후)를 그리워하네.
怊悵刀山還劒閣 (초창도산환검각) 슬프도다! 칼날 같은 산과 검각(劒閣)처럼 험준한 바위벽에 갇혀,
夜來猶道不如歸 (야래유도불여귀) 밤이 찾아오면 여전히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不如歸)"라며 울부짖는구나.
*제시백일위무휘(啼時白日爲無輝): 자규새(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처절하여 천지신명도 감동하고, 한낮의 밝은 태양빛마저 빛을 잃어 세상이 암흑처럼 변해버린다는 극적인 과장입니다. 단종의 슬픔이 우주적 공명을 일으키고 있음을 뜻합니다.
*죽렬강공정억비(竹裂江空正憶妃): 주위의 대나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고 서강(西江)의 물줄기가 텅 빈 것처럼 고요한 적막 속에서,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평생의 반려자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憶妃) 있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도산환검각(刀山還劒閣): '도산'은 지옥의 칼산이고, '검각'은 촉나라로 들어가는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촉도(蜀道)의 관문입니다. 영월의 기암괴석과 단종을 에워싼 유배지의 지형이 마치 살벌한 칼날 지옥이나 거대한 감옥 벽과 같다는 절망적 심경을 비유한 것입니다.
*불여귀(不如歸): 자규새의 울음소리를 한자로 의음화(擬音化)한 표현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밤마다 우는 새소리가 단종에게는 "한양 집으로, 내 아내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 부르짖는 절규로 들리는 것입니다.
子規詞 八絕 其四 (자규사 8절 중 제사)
[제4수: 마지막 밤과 사사(賜死)]
梅竹蕭森月向低 (매죽소삼월향저) 매화와 대나무는 쓸쓸히 우거졌고 달마저 야위어 가는데,
數聲長笛亦悽悽 (수성장적역처처) 어디선가 들려오는 몇 줄기 긴 피리 소리 또한 처량하기 그지없구나.
終宵血染無人見 (종소혈염무인견) 밤새도록 (자규새가 피를 토해) 온 산을 붉게 물들여도 보는 이 하나 없는데,
遮莫山村叫一鷄 (차막산촌규일계) 산촌의 닭 한 마리가 기어이 홰를 치며 울어 새벽을 알리는구나.
*도산환검각(刀山還劒閣): '도산'은 지옥의 칼산이고, '검각'은 촉나라로 들어가는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촉도(蜀道)의 관문입니다. 영월의 기암괴석과 단종을 에워싼 유배지의 지형이 마치 살벌한 칼날 지옥이나 거대한 감옥 벽과 같다는 절망적 심경을 비유한 것입니다.
*불여귀(不如歸): 자규새의 울음소리를 한자로 의음화(擬音化)한 표현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밤마다 우는 새소리가 단종에게는 "한양 집으로, 내 아내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 부르짖는 절규로 들리는 것입니다.
*[제4수 해설]
단종이 영월 관풍헌에서 맞이한 마지막 밤의 서막과 죽음의 전조를 묘사합니다. '소삼(蕭森, 쓸쓸함)'한 풍경 속에 들려오는 피리 소리는 죽음을 앞둔 이의 슬픈 심경을 대변합니다. 자규새가 밤새 피를 토해 온 산을 물들였다는 표현(終宵血染)은 단종이 흘린 억울한 피눈물을 상징하며, 아무도 그 죽음을 지켜보거나 도와주지 못한 고립무원의 비극을 '보는 이 없다(無人見)'로 극대화했습니다.
子規詞 八絕 其五 (자규사 8절 중 제오)
[제5수: 주인을 잃은 영월과 엄흥도]
錦城消息白雲空 : 한양(錦城)의 소식은 흰 구름 낀 허공처럼 아득하기만 한데,
膓斷初寒十月中 : 첫 추위가 몰아치는 시월 중순,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이 밀려오네.
從此越江花落盡 : 이제부터 영월의 동강(越江)에는 모든 꽃이 져 버렸으니,
年年再拜只村翁 : 해마다 (단종의 묘에) 절을 올리는 이는 오직 시골 노인(엄흥도)뿐이로다.
*[제5수 해설]
이 시는 단종이 실제로 사사된 역사적 타임라인인 1457년 음력 10월 24일의 비극을 정조준합니다. '초한십월중(初寒十月中)'은 단종이 승하한 영월의 시린 겨울 날씨와 시인의 끊어질 듯한 슬픔(장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단종이 죽자 영월의 모든 자연(꽃)도 생명을 잃었으며(花落盡), 세조의 서슬 퍼런 감시 때문에 조정의 그 누구도 시신을 거두지 못할 때, 영월의 호장이었던 시골 노인(只村翁)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밤에 몰래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절을 올렸던 가슴 아픈 의리를 기리고 있습니다.
[제6수: 장릉 주변의 쓸쓸한 산세]
甑山高竝鉢山靑 (증산고병발산청) 시루산(甑山)은 높이 솟고 발산(鉢山)은 푸른데,
樵徑依微晝亦冥 (초경의미주역명) 나무꾼 길은 희미하여 대낮에도 어둑컴컴하구나.
不待哀鳴應有淚 (부대애명응유눈) (자규새의) 슬픈 울음소리를 기다리지 않아도 절로 눈물이 흐르는데,
美人歌曲更堪聽 (미인가곡갱감청)( 단종 대왕을 기리는) 아름다운 노래와 시를 어찌 차마 다시 들을 수 있으랴.
*증산·발산(甑山·鉢山) / 초경의미(樵徑依微): 영월 장릉을 둘러싸고 있는 실제 지명들입니다. 시루산(증산)과 발산의 울창하고 어두운 숲길을 묘사하여, 오랜 세월 버려진 묘역으로 남아있던 단종릉 주변의 섭섭하고도 처연한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제7수: 단종의 명예 회복과 국가 제사]
秪今休復訴幽冤 (지금휴복소유원) 이제는 숨은 원한(幽冤)을 다시 호소하지 말지어다,
淸廟喬陵盛事存 (청묘교릉성사존) 종묘(淸廟)에 신위가 모셔지고 능침(喬陵)이 온전해진 성대한 일이 남아있네.
正是梨花寒食節 (정시이화한식절) 마침 배꽃 피는 한식(寒食) 명절을 맞아,
天家一騎遣開門 (천가일기견개문) 조정(天家)에서 보낸 한 기마 관원이 능침의 문을 열고 제사를 올리는구나.
*청묘교릉성사존(淸廟喬陵盛事存): 숙종 24년(1698년)에 단종이 정식 왕으로 복위되면서 신위가 종묘(淸廟)에 영원히 모셔졌고, 무덤 또한 어엿한 왕릉(장릉)으로 격상된 역사적 사실을 뜻합니다. 과거의 비극이 국가에 의해 정의롭게 바로잡혔음을 선포하는 대목입니다.
*한식절(寒食節) / 천가일기(天家一騎): 단종을 정식 왕으로 대우하여, 매년 봄 한식날이 되면 임금(天家)이 직접 관원(一騎)을 영월 장릉으로 파견해 정중히 국행 제사를 지내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원한으로 가득했던 영월 땅이 국가적 추모의 공간으로 승화되었음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제8수: 밤새 잠 못 이루며 시를 마치는 시인의 감회]
寂寞秋齋病未眠 (적막추재병미면) 적막한 가을 서재에 병든 몸으로 잠 못 이루고,
經行隨處尙餘憐 (경행수처상여련) 지나온 곳곳마다 (단종 대왕을 향한) 연민의 정이 여전히 남아있네.
他時月白風淸夜 (타시월백풍청야) 훗날 달 밝고 바람 맑은 어느 날 밤에,
歷歷賡歌又幾篇 (역력갱가우기편) 내 시를 이어 부르며(賡歌) 화답할 이가 또 몇 편의 시를 남겨줄 것인가.
*갱가(賡歌): 남이 지은 시의 운자나 뜻을 이어서 부른다는 뜻입니다. 황윤석은 자신이 단종의 자규시를 이어 이 8편의 시를 지었듯, 후세의 또 다른 누군가가 달 밝은 밤에 이 의로운 정취를 알아보고 자신의 시에 다시 화답해 주기를(庶來者有知) 소망하며 연작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자규사 8절〉 전체 구조 총평
이재 황윤석의 〈자규사 8절〉은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단종의 비극을 바라보았던 역사의식과 감정의 변화를 완벽한 예술적 완성도로 담아낸 연작시입니다.
억울한 유배(1~3수)와
고독한 죽음(4~5수)이라는 과거의 비극을 절절하게 고발한 뒤,
쓸쓸한 무덤의 산세(6수)를 거쳐
국가의 신원과 정당한 복권(7수)이라는 역사의 정의를 확인하고,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후세와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려는 미래의 다짐(8수)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한시 문학에서도 보기 드문 수작입니다.
한국문집총간 > 이재유고 >
頤齋遺藁卷之三 / 詩
越江
遙遙天陰水。歷歷酒泉川。未信鑑湖在。空聞錦瀨傳。小航纔候渡。羣鴈肯來眠。便欲臨流返。回頭一悵肰。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越江 (월강): 영월의 강가에서
遙遙天陰水 (요요천음수) 아득하고 아득히 흘러가는 저 물 위로 하늘마저 흐린데,
歷歷酒泉川 (역력주천천) 지나온 주천(酒泉)의 시냇물은 눈앞에 역력히 떠오르는구나.
未信鑑湖在 (미신감호재) (이 아름답고 슬픈 강이) 중국의 그 유명한 감호(鑑湖)와 같다는데 나는 믿지 못하겠고,
空聞錦瀨傳 (공문금뢰전) 비단결 같은 여울(錦瀨)이라는 명성 또한 부질없이 들려올 뿐이네.
小航纔候渡 (소항재후도) 작은 배 한 척이 겨우 강을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羣鴈肯來眠 (군안긍래면) 기러기 무리 무심히 내려앉아 졸려 하는구나.
便欲臨流返 (편욕임류반) 차라리 이 흐르는 물을 마주하고 발길을 돌리고 싶으나,
回頭一悵肰 (회두일창연) 머리를 돌려 (단종의 자취가 서린 영월을) 바라보니 서글픈 마음 걷잡을 길 없도다.
*요요천음수(遙遙天陰水): 강물은 아득히 흘러가고 하늘은 잔뜩 흐려 있습니다. 시의 첫머리부터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비바람 속에 쫓겨나듯 영월로 밀려와 날개가 꺾였던 단종의 참담함(자규사 제1수의 '풍우경비')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킵니다.
*주천천(酒泉川): 영월로 들어오기 직전 지나온 강원도 주천의 시내를 뜻합니다. 앞서 〈주천회고〉 시에서 보았듯, 주천은 생육신 원호가 단종을 그리워하며 평생 숨어 살던 충절의 공간입니다. 영월 초입에 다다르자 그 의로운 자취가 머릿속에 '역력히' 스쳐 지나감을 고백합니다.
*감호(鑑湖) / 금뢰(錦瀨): '감호'는 중국 소흥에 있는 거울같이 맑고 아름다운 호수이며, '금뢰'는 비단처럼 고운 여울을 뜻합니다.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 지닌 빼어난 자연경관을 비유하는 시어들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아무리 이곳 경치가 아름답다고 한들, 어린 임금이 억울하게 피를 흘린 비극의 장소인데 내 눈에 그것이 비단처럼 곱게 보이겠는가"**라며 거절(미신, 공문)합니다. 이는 자규사 제2수의 '풀은 푸르고 꽃은 붉어 원망을 이기지 못하겠네(草綠花紅怨不勝)'와 완벽하게 궤를 같이하는 문학적 장치입니다.
*회두일창연(回頭一悵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 비장하고 무거운 역사의 현장을 외면하고 차라리 도망치듯 발길을 돌리고 싶지만, 끝내 고개를 돌려 단종의 외로운 능침이 있는 영월 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인의 깊은 연민과 서글픔(悵然)을 담으며 시가 끝납니다.
* '한양을 떠나는 참담함'과의 문학적 연결고리
황윤석은 영월의 강(월강)을 바라보며, 300년 전 한양의 찬란했던 성곽(華山漢水)을 뒤로하고 이 거칠고 흐린 강가(天陰水)로 끌려와 결국 작은 배(小航)를 타고 청령포 감옥으로 건너가야 했던 단종의 유배 당시 심경을 그대로 추체험하고 있습니다. 경치가 아름다울수록 비극은 더 시리게 다가오기에, 시인은 머리를 돌리는 순간 밀려오는 거대한 슬픔에 가슴을 부여잡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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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嚴戶長
翩肰一馬向淸泠。當路烏頭刮眼明。謠俗尙傳嚴戶長。風聲幷聳六先生。斜陽古里空秋黍。宿草荒山定暮螢。異日天饒爲越伯。石碑須表亞卿榮。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 시는 앞서 감상하신 〈자규사 5수〉의 마지막 구절("해마다 절을 올리는 이는 오직 시골 노인뿐이로다")에서 언급되었던 인물, 즉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 지낸 영월의 호장 엄흥도(嚴興道)를 단독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높은 충절을 찬양한 명시입니다.
嚴戶長 (엄호장): 호장 엄흥도를 기리며
翩肰一馬向淸泠 (편연일마향청령) 한 필의 말이 가볍게 달려 청령포(淸泠浦)로 향하는데,
當路烏頭刮眼明 (당로오頭괄안명) 길을 가로막은 투구(또는 까마귀 머리 형상의 바위)가 눈을 비비고 보듯 선명하구나.
謠俗尙傳嚴戶長 (요속상전엄호장) 민간의 노래와 풍속(풍문)에는 여전히 엄호장(嚴興道)의 이야기가 전해지니,
風聲幷聳六先生 (풍성병용육선생) 그 높은 명성(風聲)은 사육신(六先生)과 나란히 우뚝 솟아 있도다.
斜陽古里空秋黍 (사양고리공추서) 석양이 비치는 옛 고을에는 가을 기장(수수)만 부질없이 자라 있고,
宿草荒山定暮螢 (숙초황산정모형) 묵은 풀만 우거진 거친 산에는 저물녘 반딧불이만 외로이 날아다니네.
異日天饒爲越伯 (이일천요위월백) 훗날 하늘이 나에게 영월의 우두머리(越伯, 영월부사)가 되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石碑須表亞卿榮 (석비수표아경영) 돌을 깎아 신도비를 세워, 그가 추증받은 참판(亞卿)의 영예를 반드시 드러내리라.
*핵심 시구 및 역사적 배경 해설
*청령포(淸泠浦)와 엄호장: 엄흥도는 영월의 토착 향리(호장)였습니다. 1457년 단종이 사사된 후 세조의 보복이 두려워 모두가 외면할 때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라며 자식들과 함께 시신을 거두어 현재의 장릉 자리에 가매장했습니다.
*병용육선생(幷聳六先生): 엄흥도의 지위는 비록 변방의 미천한 향리(호장)에 불과했으나, 임금을 향해 보여준 목숨을 건 충절의 무게는 조정의 고위 관료로서 장렬하게 순절한 사육신(六先生)의 기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고 나란히 우뚝 솟아 있다고 격찬하는 대목입니다.
*추서(秋黍)와 모형(暮螢): 단종의 비극이 일어난 지 300년이 흐른 영월의 쓸쓸한 가을 풍경입니다. 나라는 공신들의 세상이 되었고 영월은 거친 산(荒山)이 되었지만, 그 황량함 속에서도 엄흥도가 뿌린 충의의 정신은 저물녘의 반딧불이(暮螢)처럼 여전히 깜빡이며 역사를 밝히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아경영(亞卿榮): '아경'은 조선 시대에 정2품 관직인 참판(參判)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엄흥도는 사후 오랜 세월이 지나 숙종 대에 공조좌랑에 추증되었다가, 영조 대에 이르러 그 충절을 높이 평가받아 공조참판(정2품 아경)으로 격상되어 추증되었습니다.
*이일천요위월백(異日天饒爲越伯): 황윤석은 영월의 역사를 보살피는 장릉참봉의 관직을 지내며 이 시를 지었습니다. 그는 "만약 하늘이 내게 더 큰 기회를 주어 이 영월 고을의 수령(越伯)으로 임명해 준다면, 참판으로 복권된 엄흥도의 무덤과 사당에 커다란 석비(石碑)를 세워 그의 영예를 천하에 대대적으로 알리겠다"라는 지식인으로서의 의로운 다짐과 부채의식으로 시를 매듭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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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淸泠浦和前輩 幷後序
淸泠浦上美人詞。不是無心來去時。年少寢郞猶白髮。遺音要遣越兒知。
是日浦上出入。余爲唱美人詞。余之不爲此殆過二十歲矣。至是率口而發。崔參奉及同舟人皆愀肰不樂。因記前輩詩江頭誰唱美人詞。正是孤舟月落時。惆悵戀君無限意。世間惟有女娘知。或曰此李東岳安訥所作也。抑金龍溪止男旣得此詞於女娘。翻以傳諸後世。而今越中謳兒未必傳而唱之耳。偶聞戊寅洪尙書象漢祗役陵下。退休舘所。有歌此者。輒掩袂潸肰曰無以唱也。乃知聲音之感人深矣。遂次詞字韻。竝記洪台事以示來者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황윤석의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한시 〈청령포에서 선배의 시에 화답하다(淸泠浦和前輩)〉와 그에 딸린 '후서(後序, 뒤에 붙이는 발문)'입니다.
이 글은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그를 배종(陪從)했던 의금부 관리(도사)가 밤에 강가에 앉아 눈물로 지었다고 전해지는 슬픈 노래, 즉 〈미인사(美人詞)〉(또는 사미인곡/속미인곡 계열의 가사)의 전승 내력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 노래가 수백 년 동안 지식인과 민초들의 심금을 어떻게 울렸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귀중한 산문 문화재입니다.
〈청령포에서 선배의 시에 화답하다(淸泠浦和前輩)〉
淸泠浦上美人詞 (청령포상미인사) 청령포 강가에서 들려오는 저 〈미인사(美人詞)〉는,
不是無心來去時 (부시무심래거시)( 오가는 나그네가) 무심히 왔다 가며 읊조릴 수 있는 노래가 아니로다.
年少寢郞猶白髮 (연소침랑유백발) (나이 어린 단종을 지키던) 젊은 참봉(寢郞)도 서글픔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으리니,
遺音要遣越兒知 (유음요견월아지) 그가 남긴 애절한 소리를 모름지기 영월의 아이들(越兒)에게도 전하여 알게 하노라.
후서(後序)
是日浦上出入。余爲唱美人詞。余之不爲此殆過二十歲矣。至是率口而發。崔參奉及同舟人皆愀肰不樂。이날 청령포를 드나들며 내가 〈미인사〉를 소리 내어 불렀다. 내가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지 거의 20년이 넘었는데, 이곳에 이르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저절로 흘러나온 것이다. 동행한 최 참봉(崔參奉)과 같은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안색이 변하며 슬퍼하였다.
因記前輩詩江頭誰唱美人詞。正是孤舟月落時. 惆悵戀君無限意。世間惟有女娘知。그로 인해 선배 문인의 시가 생각났다. "강나루 저편에서 그 누가 〈미인사〉를 부르는가, 마침 외로운 배 위로 달이 지는 때로다. 슬프다, 임을 그리워하는 끝없는 그 마음을, 세상에서 오직 여인(기생)만이 알아주는구나"라는 구절이다.
或曰此李東岳安訥所作也。抑金龍溪止男旣得此詞於女娘。翻以傳諸後世。而今越中謳兒未必傳而唱之耳。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 시는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혹은 용계(龍溪) 김지남(金止男)이 어느 여인<기생>에게서 이 〈미인사〉 노랫가락을 전해 듣고, 이를 한시로 번역하여 후세에 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 영월(越中)의 노래하는 아이들은 이 노래를 다 전해 받지 못해 부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偶聞戊寅洪尙書象漢祗役陵下。退休舘所。有歌此者。輒掩袂潸肰曰無以唱也。乃知聲音之感人深矣。遂次詞字韻。竝記洪台事以示來者云。우연히 들으니, 무인년(1758년)에 홍상서 상한(洪象漢)이 장릉(단종릉)에 와서 공무를 집행하고 객사에서 쉬고 있을 때, 누군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홍상서는 즉시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차마 더는 부르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하니, 소리와 노랫가락이 사람을 감동하게 함이 이토록 깊음을 알겠다. 이에 마침내 〈미인사〉의 '사(詞)' 자 운치를 따서 시를 짓고, 홍 상서의 일화를 함께 기록하여 후세에 오는 이들에게 보여주노라.
*핵심 배경 및 문학적 의의 해설
*미인사(美人詞)의 기원: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될 때 금부도사(단종을 압송하던 의금부 관리)가 밤에 굽이치는 여울가에 앉아 서글픈 마음을 담아 지은 한글 노래(俚語, 속요)가 시초입니다. 여기서 '미인(美人)'은 미녀가 아니라 '그리운 나의 임금(단종)'을 뜻합니다.
*이안눌과 김지남의 전승: 임진왜란 전후의 대문장가인 이안눌(1571~1637)의 시 〈문가(聞歌)〉가 인용되었습니다. 1617년(만曆 丁巳) 김지남이 비극의 현장인 금강(영월 동강)에 왔다가, 단종을 모시던 이들의 후손이나 기생(女娘)들이 처연하게 부르던 이 〈미인사〉 가락을 듣고 한시문으로 기록하여 세상에 보존시켰던 역사를 황윤석이 고증하고 있습니다.
*홍상서 상한(洪象漢, 1701~1769)의 눈물: 정2품 판서(상서)를 지낸 고위 관료 홍상한이 영월 장릉에 제사를 받들러 왔다가 밤에 이 〈미인사〉 노랫소리를 듣고 옷소매가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입니다. 영조 대의 정승급 관료조차 300년 전 단종의 슬픔이 배어 있는 멜로디 앞에서는 무장 해제되어 통곡할 만큼, 영월 청령포라는 공간과 그곳의 소리가 가진 '정서적 파급력'이 엄청났음을 보여줍니다.
*황윤석의 감회: 황윤석 자신도 20대 시절 이후 이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다가, 청령포의 깎아지른 절벽과 흐르는 물을 마주하자 자신도 모르게 20년 만에 노랫가락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고백합니다. 배에 탄 동행들이 모두 가슴 아파한 풍경을 통해, 영월 땅 전체가 단종의 거대한 슬픔을 기억하는 '기억의 저장소'임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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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端廟遺址正在碑閣小東。亂石二堆。隱約榛莽間。
越峽蓁蓁亂石堆。魯宮陳跡使人哀。何年玉玦田中得。今日龜碑江上開。楓赤菊黃殘照返。水淸沙迥小船迴。凄凉不忍成秋賞。卻悔慇懃問路來。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황윤석의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한시 〈단묘유지(端廟遺址, 단종의 옛 터)〉와 그 앞에 붙은 짧은 설명(소제, 小題)입니다.
이 시는 단종이 거처했던 영월의 비극적인 옛 지점(관풍헌이나 청령포의 어가 터)을 직접 목격하고 읊은 작품입니다. 화려했던 왕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잡풀 속에 거친 돌무더기만 남은 처참한 현실과, 훗날 영조 대에 이르러 그 자리에 왕의 흔적을 기리는 비석과 비각(碑閣)이 세워진 역사적 변화를 대조하며 서글픈 감회를 노래했습니다 [2, 3].
원문과 한글 번역, 그리고 각 시구의 세부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제(小題) 및 한글 번역
端廟遺址正在碑閣小東。亂石二堆。隱約榛莽間。: 단종 대왕의 옛 터(遺址)가 마침 비각(碑閣)의 바로 조금 동쪽에 있다. 거친 돌 두 무더기(亂石二堆)가 잡목과 풀숲(榛莽) 사이에 은약(隱約,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남아 있구나.
2. 한시 원문 및 한글 번역
越峽蓁蓁亂石堆 (월협진진난석퇴) 영월 골짜기(越峽)엔 수풀만 무성하고 거친 돌무더기만 쌓여 있으니,
魯宮陳跡使人哀 (노궁진적사인애) (단종이 폐위되어 머물던) 노산군 궁궐(魯宮)의 묵은 흔적이 사람을 서글프게 하네.
何年玉玦田中得 (하년옥결전중득) 어느 해에나 밭 가운데서 (임금이 차시던) 반달 모양의 옥(玉玦)을 다시 얻을 수 있으랴,
今日龜碑江上開 (금일구비강상개) 오늘날 강가에는 (영조께서 세우신) 귀부(龜趺, 거북 받침)를 갖춘 비석이 우뚝 열려 있구나.
楓赤菊黃殘照返 (풍적국황잔조반) 단풍은 붉고 국화는 노란데 석양의 쇠잔한 햇빛(殘照)이 되비치고,
水淸沙迥小船迴 (수청사형소선회) 강물은 맑고 모래벌판은 아득한데 작은 배 한 척이 돌아 나가네.
凄凉不忍成秋賞 (처량불인성추상) 풍경이 너무 처량하여 차마 이 가을 경치를 즐길(秋賞) 수가 없으니,
卻悔慇懃問路來 (각회은근문로래) 이곳저곳 은근히 길을 물어가며 애써 찾아온 것을 오히려 후회하노라.
3. 핵심 시구 및 역사적 배경 해설
*비각소동(碑閣小東) / 구비강상개(今日龜碑江上開):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단서입니다. 영조 39년(1763년) 영조 임금은 단종이 청령포에서 홍수를 피해 옮겨와 머물다 승하했던 영월 객사 자리에 '단종어가유지비(端宗御駕遺址碑)'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도록 명했습니다.
황윤석은 영조가 세운 신령스러운 거북 받침 비석(龜碑)을 보며 비극의 정화(淨化)를 느끼는 동시에, 바로 그 옆(소동) 잡풀 속에 버려진 진짜 옛 흔적인 돌무더기(亂石)를 보며 가슴 아파합니다.
*노궁(魯宮): 단종이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처음에 강등되었던 칭호가 '노산군(魯山君)'이었습니다. 따라서 '노궁'이란 단종이 영월 유배 시절 머물렀던 가련한 거처를 뜻합니다. 한때는 어엿한 임금의 공간이었으나 이제는 무너진 돌더미가 된 현실을 가리킵니다.
*옥결(玉玦): 고대 중국에서 군주나 귀족들이 허리띠에 차던 반달 모양 혹은 고리 모양의 귀한 옥입니다. 왕의 권위와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옥결)이 잡풀 우거진 시골 밭때기(田中) 구석에 뒹굴고 흔적만 남았을 비참한 역사를 은유합니다.
*처량불인성추상(凄凉不忍成秋賞): 산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고 들에는 노란 국화가 피었으며, 맑은 강물과 아득한 모래톱이 어우러진 영월의 가을은 객관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곳이 어린 왕이 눈물 흘리다 죽어간 자리임을 알기에 "차마 가을 경치를 즐길 수 없다"라며 시선을 돌립니다.
*각회은근문로래(卻悔慇懃問路來): 시의 마지막 구절은 황윤석 특유의 격정적인 연민을 보여줍니다. 단종의 자취를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현지인들에게 간절하고 정중하게(慇懃)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건만, 막상 잡초 속에 무너진 돌무더기를 마주하니 가슴이 너무 찢어지듯 아파서 "차라리 길을 물어 찾아오지 말 걸 그랬다"라는 역설적인 후회로 슬픔의 깊이를 극대화하며 시를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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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彰節祠
曾拜鷺梁江上祠。南崖疑塚至今悲。天翻地覆滄桑世。雪壓霜欺松柏姿。如水精神無不在。此邦香火更相宜。應知夜夜鵑樓月。長照莊陵陟降時。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황윤석의 시 〈창절사(彰節祠)〉입니다.'창절사(彰節祠)'는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사당으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김시습, 남효온 등 생육신 일부와 엄흥도, 박심문 등 포함)의 위패를 모시고 그 충절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시인은 과거 한강 변(노량진)에서 사육신의 묘소를 참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지가 개벽하는 격변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그들의 절개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단종의 능(장릉)이 있는 이 영월 땅에서 그들을 모시는 제사(향화)가 얼마나 마땅하고 의로운 일인지를 깊은 감회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원문 및 한글 번역
彰節祠 (창절사): 창절사에서 충신들을 기리며
曾拜鷺梁江上祠 (증배노량강상사) 일찍이 노량진(鷺梁) 한강 변에 있는 사육신의 사당에 절할 때도,
南崖疑塚至今悲 (남애의총지금비) 남쪽 언덕에 주인을 알 수 없게 만든 무덤(의총)들을 보며 지금껏 슬퍼했었네.
天翻地覆滄桑世 (천번지부창상세)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엎어지는 상전벽해(滄桑)의 모진 세상 속에서도,
雪壓霜欺松柏姿 (설압상기송백자) 눈이 누르고 서리가 기만해도 꺾이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松柏)의 자태를 지켰도다.
如水精神無不在 (여수정신무불재) 물과 같이 맑고 깨끗한 그들의 정신은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으니,
此邦香火更相宜 (차방향화갱상의) 이 고을(단종의 영월)에서 제사 횃불(香火)을 받드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고 어울리도다.
應知夜夜鵑樓月 (응지야야견루월) 응당 알겠도다, 밤마다 자규루(鵑樓)를 비추는 저 저무는 달빛이,
長照莊陵陟降時 (장조장릉척강시) 장릉(莊陵)에서 (단종의 신령이) 오르내리실 때를 오래도록 비추고 있음을.
2. 핵심 시구 및 역사적 배경 해설
*노량강상사(鷺梁江上祠) / 남애의총(南崖疑塚): 서울 노량진 한강 변에 위치한 사육신묘(死六臣墓)를 뜻합니다. 당시 사육신이 처형당한 후 그 시신을 은밀히 거두어 묻었기에 정확히 누구의 무덤인지 확실치 않아 '의총(疑塚)'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황윤석은 〈자규사 서문〉에서 "10년 전 사육신의 묘를 찾았을 때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라고 고백했던 기억을 이 시의 첫머리로 다시 소환하고 있습니다.
*천번지부(天翻地覆) / 설압상기(雪壓霜欺): 세조의 왕위 찬탈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격변과 피바람(천번지부) 속에서, 온갖 고문과 가혹한 탄압(설압상기)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단종을 향한 지조를 지켜낸 사육신의 충절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차방향화갱상의(此邦香火更相宜): 영월 '창절사'가 지닌 역사적 상징성을 정조준합니다. 사육신과 충신들은 한양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주군(단종)의 릉이 바로 이곳 영월 장릉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영혼이 잠든 이 영월 땅(此邦)에서 그 임금을 지키려다 죽은 신하들의 제사(香火)를 모시는 것이야말로 역사적·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하고 마땅한 결합(更相宜)이라고 찬탄하는 것입니다.
*견루월(鵑樓月) / 장릉척강(莊陵陟降): '견루'는 단종이 머물며 자규시를 지었던 영월의 자규루(子規樓)를 뜻하며,
'척강(陟降)'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신령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림을 뜻합니다. 밤마다 자규루를 비추는 저 달빛은 사실 외로운 달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사육신과 충신들의 맑은 정신(如水精神)이 달빛이 되어, 영월 장릉을 오르내리는 단종 대왕의 영혼을 외롭지 않게 밤마다 영원히 호위하고 있는 것이라는 거대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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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觀風軒 壁上有圓齋鄭公樞,厖村黃公喜詩。此乃客舍東軒。端廟所御。東有梅竹樓舊址。
小舘連平楚。遙山出短墻。圓翁詩散綺。厖相句含蒼。宇宙斜陽裏。歌吟二水傍。臨風忽怊悵。梅竹舊樓荒。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황윤석의 시 〈관풍헌(觀風軒)〉과 그 앞에 붙은 상세한 설명(소제, 小題)입니다.
관풍헌(觀風軒)은 강원도 영월 객사의 동쪽헌(東軒)으로, 단종 대왕이 처소를 옮겨와 머무시다 끝내 사사(賜死)되신 실제 승하처입니다.
황윤석은 이곳 관풍헌 벽 위에서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 원재(圓齋) 정추(鄭樞)와 세종 대의 명재상 방촌(厖村) 황희(黃喜)가 남긴 옛 시를 발견하고,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흔적과 비극의 현장이 된 현재를 대조하며 깊은 감회에 젖어 이 시를 지었습니다.
1. 소제(小題) 및 한글 번역
觀風軒 壁上有圓齋鄭公樞,厖村黃公喜詩。此乃客舍東軒。端廟所御。東有梅竹樓舊址。: 관풍헌 벽 위에 원재(圓齋) 정추(鄭樞)공과 방촌(厖村) 황희(黃喜)공의 시가 걸려 있다. 이곳은 바로 영월 객사의 동헌(東軒)으로, 단종(端廟) 대왕께서 어거하시던(머무시던) 곳이다. 동쪽에는 매죽루(梅竹樓, 자규루의 옛 이름)의 옛 터가 있다.
2. 한시 원문 및 한글 번역
觀風軒 (관풍헌): 관풍헌에서 옛 현인들의 시를 보며
小舘連平楚 (소관련평초) 작은 객사(관풍헌)는 평평하게 우거진 숲과 이어져 있고,
遙山出短墻 (요산출단장) 멀리 보이는 산은 낮은 담장 위로 솟아 있구나.
圓翁詩散綺 (원옹시산기) 원재(圓齋 정추) 옹의 시구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고,
厖相句含蒼 (방상구함창) 방촌 정승(厖相 황희)의 시구는 푸른 기상(노련하고 깊은 멋)을 머금었도다.
宇宙斜陽裏 (우주사양리) 이 천지는 석양의 쇠잔한 햇빛 속에 잠겨 가는데,
歌吟二水傍 (가음이수방) 두 갈래 강물(동강과 서강)가에서 두 분의 시를 나직이 읊조려 보네.
臨風忽怊悵 (임풍홀초창) 바람을 맞이하니 문득 슬프고 한탄스러운 마음(怊悵)이 드나니,
梅竹舊樓荒 (매죽구루황) 매화와 대나무 어우러졌던 옛 누각(매죽루)이 이토록 황량하게 변해버렸음이여.
3. 핵심 시어 및 역사적 배경 해설
*원옹(圓翁) 정추(鄭樞, 1333~1382) : 고려 말의 문신으로, 공민왕 대에 신돈의 집권을 비판하다가 영월로 유배되어 관풍헌에 머물며 시를 남겼습니다.
*방상(厖相) 황희(黃喜, 1363~1452) : 세종 대의 황금기를 이끈 명재상으로, 그 역시 태종 대에 양녕대군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영월로 유배되어 관풍헌에 머물렀습니다.
황윤석은 조선 최고의 명재상(황희)과 대문장가(정추)가 유배와서 풍류와 지조를 노래했던 영광스러운 공간(관풍헌)이, 후대에 이르러 어린 임금(단종)이 갇혀 피눈물을 흘리다 죽어간 잔인한 비극의 현장으로 변모한 역사적 아이러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주사양리(宇宙斜陽裏) / 가음이수방(歌吟二水傍): 지는 해(斜陽)는 쇠락해가는 단종의 운명과 왕조의 슬픈 역사를 시각적으로 상징합니다. 시인은 영월을 휘감아 흐르는 동강과 서강(二水)의 물줄기 소리를 배경으로, 벽에 걸린 현인들의 시를 읽으며 깊은 명상에 잠깁니다.
*매죽구루황(梅竹舊樓荒): '매죽루(梅竹樓)'는 관풍헌 동쪽에 있던 누각의 원래 이름입니다. 단종 대왕이 이곳에 올라 피눈물 나는 자규시를 지은 이후로, 후대 사람들이 이 누각을 '자규루(子規樓)'라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황윤석은 단종이 숨 거둔 지 300년이 지나 잡풀만 우거진 채 황량하게 변해버린(舊樓荒) 누각의 터를 바라보며, 바람 속에 밀려오는 걷잡을 수 없는 서글픔(臨風忽怊悵)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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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愍忠祠
江上沿崖松徑微。幽幽祠屋對斜暉。當時狐鼠應羞死。莫作尋常婦寺譏。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황윤석의 시 〈민충사(愍忠祠)〉입니다.
'민충사(愍忠祠)'는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사당으로, 단종이 유배되어 사사당할 때 그를 끝까지 배종(陪從)하며 충성을 다했거나, 임금의 죽음에 분개하여 동강(錦江)에 몸을 던져 순절한 시종(侍從), 노복(奴僕), 궁인(宮人)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시인은 화려한 관직을 가진 고위 관료가 아님에도 오직 인간의 순수한 의리 하나로 목숨을 바친 이들의 영혼을 기리며, 당시 정권(세조 세력)을 잡고 호의호식했던 권력자들을 '여우와 쥐(狐鼠)'에 비유해 강렬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1. 원문 및 한글 번역
愍忠祠 (민충사): 민충사에서 순절한 이들을 기리며
江上沿崖松徑微 (강상연애송경미) 강물 위 절벽을 따라 난 소나무 숲길은 아스라이 희미한데,
幽幽祠屋對斜暉 (유유사옥대사휘) 그윽하고 고요한 사당(민충사) 건물은 지는 석양빛(斜暉)을 마주하고 있구나.
當時狐鼠應羞死 (당시호서응수사) (이들의 숭고한 죽음 앞에서는) 당시의 여우와 쥐 같은 자(狐鼠, 배신자들)들이 응당 부끄러워 죽어야 할 것이니,
莫作尋常婦寺譏 (막작심상부사기) 이들의 죽음을 결코 평범한 아녀자(婦)나 환관(寺)들의 부질없는 짓이라 비웃지(譏) 말지어다.
2. 핵심 시구 및 역사적 배경 해설
*강상연애(江上沿崖) / 유유사옥(幽幽祠屋): 민충사는 단종을 모시던 시종과 궁녀들이 단종 승하 후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순절한 낙화암(낙화절벽) 근처, 동강의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석양(斜暉)이 비치는 쓸쓸하고 고요한 사당의 풍경을 통해, 역사 속에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이들의 슬픈 넋을 시각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당시호서응수사(當時狐鼠應羞死): 이 시에서 가장 날카로운 도덕적 비판이 담긴 구절입니다. '호서(狐鼠)'는 여우와 쥐새끼라는 뜻으로, 어린 임금을 배신하고 세조의 편에 서서 정난공신(靖難功臣)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한명회, 신숙주 등의 권력자들을 통렬하게 비하한 표현입니다. 신분이 낮은 노복과 궁녀들조차 의리를 지켜 목숨을 버렸는데, 대단한 유학자를 자처하던 조정의 대신들이 임금을 배반했으니 "저 고결한 영혼들 앞에서 공신들은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역사의 심판을 내리고 있습니다.
*막작심상부사기(莫作尋常婦寺譏): '부사(婦寺)'는 아녀자와 환관을 뜻합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이들의 죽음을 "그저 지식이 없는 아녀자나 생각 없는 내시들이 감정에 치우쳐 따라 죽은 부질없는 짓(尋常)"이라고 폄하하는 시선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황윤석은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며(莫作), 이들이 보여준 행동이야말로 신분과 성별을 초월하여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고귀하고 떳떳한 의리(秉彜)의 극치라고 규정합니다.
3. 황윤석의 '영월 서사'가 가지는 민중성
황윤석의 영월 시편들을 추적해 보면 아주 독특하고 위대한 문학적 지향점이 발견됩니다. 시인은 사육신 같은 당대의 대지식인·고위 관료의 충절(〈창절사〉)을 기리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관직도 없는 시골 향리로서 목숨을 걸고 장례를 치른 호장 엄흥도(〈엄호장〉) 역사책에 이름 한 줄 기록되지 못하고 강물에 뛰어내린 궁녀와 종자들(〈민충사〉) 황윤석은 권력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 정작 지식인과 지배층은 비겁하게 머리를 숙였을 때, 역사의 정의와 인간의 도리를 끝까지 지켜낸 이들은 오히려 이름 없는 민초들과 약자들이었음을 주목했습니다. 그렇기에 민충사의 초라한 사당 앞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사대부들의 위선을 향해 거침없는 호통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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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立石 二絶
山杏斑斑海鷰飛。越中春思澹烟霏。悠肰跨馬西川去。深處游鱗幾許肥。
鱗癢鱗摩糓雨天。下流漁子逆行船。齊言細網垂來穩。白飯將炊素礫邊。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에 수록된 황윤석의 〈입석(立石) 2절〉이라는 연작시입니다.
'입석(立石)'은 강원도 영월의 웅장한 기암괴석이자 절경 중 하나인 선돌(立石)을 가리킵니다.
앞서 감상했던 시들이 단종의 비극과 관련된 어둡고 애절한 역사적 서사였다면, 이 두 편의 시는 영월의 아름다운 봄날 풍경과 서강(西江)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담아낸 반전 매력의 작품입니다.
1. 원문 및 한글 번역立石 二絶 (입석 2절): 영월 선돌에서 읊은 두 편의 시
[제1수] 선돌의 봄 풍경과 서강의 여유
山杏斑斑海鷰飛 (산행반반해연비) 산살구 꽃은 아롱지게 피어 있고 바다 제비는 날아다니는데,
越中春思澹烟霏 (월중춘사담연비) 영월(越中)의 봄날 흥취는 맑은 안개와 아지랑이 속에 잔잔히 흐르네.
悠肰跨馬西川去 (유연과마서천구) 느긋하게 말에 올라 타 서강(西江)을 향해 나아가니,
深處游鱗幾許肥 (심처유린기허비) 강물 깊은 곳에 노니는 물고기(游鱗)들은 또 얼마나 살이 올랐을꼬.
[제2수] 곡우 무렵 강가의 평화로운 어촌 풍경
鱗癢鱗摩糓雨天 (인양인마곡우천) 비늘이 가려운 듯 물고기들이 서로 몸을 비비는 곡우(穀雨) 무렵의 날씨,
下流漁子逆行船 (하류어자역행선) 강 하류의 어부들은 물결을 거슬러 배를 저어 올라가네.
齊言細網垂來穩 (제언세망수래온) 저마다 말하기를 "촘촘한 그물을 내리기에 딱 알맞게 잔잔하다" 하니, 白飯將炊素礫邊 (백반장취소력변) 하얀 자갈밭 가에서는 (갓 잡은 매운탕과 함께) 흰쌀밥을 지으려 연기를 피우는구나.
2. 핵심 시구 및 문학적 해설
*입석(立石, 선돌): 영월읍 방절리 서강 가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약 70m 높이의 절벽 바위입니다.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선돌'이라 불리며, 바위 틈새로 보이는 서강의 푸른 물줄기와 어우러진 풍경이 영월의 대표적인 절경입니다.
*산행반반(山杏斑斑) / 담연비(澹烟霏): 단종의 눈물이 서린 시에서는 피눈물을 뜻하는 붉은 철쭉이나 자규새가 등장했다면, 여기서는 연분홍빛 산살구 꽃과 평화로운 제비, 그리고 잔잔한 강안개(澹烟霏)가 등장합니다. 시인이 영월의 자연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즐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곡우천(糓雨天) / 유린기허비(幾許肥): 음력 3월 중순인 곡우(穀雨) 무렵은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고, 강물이 불어나 물고기들이 활발하게 산란 활동을 하는 시기입니다. 물고기들이 비늘을 서로 비비며 활발하게 노니는 생동감 넘치는 강 속 생태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했습니다.
*백반장취소력변(白飯將炊素礫邊): 이 시의 백미가 되는 종장입니다. 깨끗하고 하얀 자갈밭(素礫)에 솥을 걸고 하얀 쌀밥(白飯)을 짓는 풍경은, 가난하고 가혹했던 유배지의 역사 뒤에 감춰진 영월 민초들의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의 한 자락을 보여줍니다. 갓 잡은 싱싱한 강고기를 끓여 함께 먹으려는 어부들의 소박한 행복이 밥 짓는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듯합니다.
3. 황윤석의 영월 기행이 지닌 문학적 완성도
이 〈입석 2절〉을 통해 우리는 황윤석의 영월 시편들이 가진 진정한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시인은 영월의 처절한 비극(단종, 사육신, 민충사)에 깊이 공감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뜨거운 가슴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자연이 주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평범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할 줄 아는 여유를 지닌 위대한 실학자였습니다. 비극의 역사가 서린 서강(西江)은, 봄이 오면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물고기와 삶을 선물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치유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이재유고》 제3권의 영월 시편들은 슬픔과 기쁨, 역사와 일상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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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越中記事 三絶
園陵肅肅擁靑蒼。太乙鉤陳七十霜。猶有遺民憐舊事。隔林旛紙祭君王。右民祭
禁夢庵中發願塲。龍胡消息白雲鄕。秪今薦福殘僧在。淸梵疎鐘夜殷床。右僧祝
都護初來歷日良。內衙鉦笛慰悲凉。掾房莫掛梁間帛。一曲美人還斷膓。右官禳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월중기사 3절 越中記事 三絶 〉
1. [제1수] 백성들의 제사 (右民祭) 우민제
園陵肅肅擁靑蒼 (원릉숙숙옹청창) 단종의 능침(장릉)은 엄숙하고 고요하게 푸른 숲에 옹위되어 있는데,
太乙鉤陳七十霜 (태을구진칠십상) 임금의 기상이 서린 궁궐(한양)을 떠나온 지 어느덧 일칠십 년(70년/혹은 세월)이 흘렀구나.
猶有遺民憐舊事 (유유유민련구사) 그 옛날 비극을 가엾게 여기는 백성(遺民)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隔林旛紙祭君王 (격림번지제군왕) 숲 너머로 지전(紙錢)과 번(旛)을 나부끼며 옛 임금께 제사를 올리네.
[제1수 해설]영월 백성들이 조정의 공식 제사 외에도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단종의 넋을 위로하던 무속적·민간 신앙적 풍속을 기록했습니다. '번지(旛紙)'는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는 깃발(번)과 저승길 노잣돈을 뜻하는 종이돈(지전)으로, 백성들이 숲속에서 은밀하고도 정성스럽게 단종(君王)을 산신이나 영험한 신으로 모시며 제사 지내던 영월 고유의 문화를 보여줍니다.
2. [제2수] 승려들의 축원 (右僧祝) 우승축
禁夢庵中發願塲 (금몽암중발원장) 금몽암(禁夢庵) 사찰 안에는 (단종의 명복을 비는) 발원(發願)의 도량이 열리고,
龍胡消息白雲鄕 (용호소식백운향) 임금이 승하하셨다는 옛 소식은 흰 구름 낀 저승 세계(白雲鄕)처럼 아득하네.
秪今薦福殘僧在 (지금천복잔승재) 지금도 (단종의) 명복을 빌어주는(薦福) 나이 든 승려들이 남아있어,
淸梵疏鐘夜殷床 (청범소종야은상) 맑은 범패 소리와 띄엄띄엄 울리는 종소리가 밤이 되자 침상을 뒤흔드는구나.
[제2수 해설]금몽암(禁夢庵)은 영월 장릉 근처에 있는 실제 사찰로, 단종이 청령포에 계실 때 꿈속에서 보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전설적인 암자이자 단종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시인은 나라에서 버림받았던 임금을 위해, 수백 년 동안 매일 밤 맑은 불교 음악(淸梵)과 종소리(疎鐘)를 울리며 단종의 극락왕생을 축원해 온 승려들의 경건한 종교적 실천을 묘사했습니다.
3. [제3수] 관아의 액막이 제사 (右官禳) 우관양
都護初來歷日良 (도호초래역일량) 영월 도호부사(부사)가 새로 부임하여 좋은 날을 골라,
內衙鉦笛慰悲凉 (내아정적위비량) 관아 안마당(內衙)에서 징과 피리를 울리며 (단종의) 서글픈 영혼을 위로하네.
掾房莫掛梁間帛 (연방막괘량간백) 아전들의 방(掾房) 들보 사이에는 제발 무명천(목을 매는 비단)을 걸지 말라,
一曲美人還斷膓 (일곡미인환단장) 들려오는 〈미인사〉 한 곡조에 도리어 창자가 끊어질 듯 슬퍼지누나.
[제3수 해설] 영월에 새로 부임하는 고을 수령(도호부사)들이 치르던 독특한 통과의례인 '양재(禳災, 액막이 제사)'를 다룹니다.
과거 영월은 부임하는 군수들이 원인 모르게 급사하거나 불상사가 많아 '원혼이 서린 무서운 고을'로 통했습니다. 이에 새로 온 부사는 부임하자마자 음악을 울려 단종의 혼을 위안(慰悲凉)하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시인은 아전들의 방 들보에 제발 자살을 연상시키는 천을 걸지 말라고 경고하며, 관아에서 연주되는 슬픈 노래(미인사)가 새로 온 관원들의 간장마저 녹여버릴 듯 애절하다고 표현했습니다.
4. 종합평: 영월을 움직이는 거대한 '추모의 시스템’
황윤석이 기록한 〈월중기사 3절〉은 문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300년 전의 비극이 영월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그 입체적인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백성(民)은 산과 들에서 무속적인 '번지'를 태우며 왕을 신으로 모시고,
승려(僧)는 사찰(금몽암)에서 매일 밤 종을 치며 영혼의 극락왕생을 빌고,
지방관(官)은 관아에 부임하자마자 징과 피리를 불며 원혼을 달래는 굿과 제사를 지냅니다.
신분과 계층을 막론하고 고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단종 추모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었던 영월의 실제 풍속을 실학자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엮어낸 명작입니다.
이로써 황윤석의 《이재유고》 제3권 영월 연작은 단종의 역사적 사실(사육신, 엄흥도)에서 출발하여, 영월의 아름다운 자연(입석), 그리고 백성들의 살아있는 민속(월중기사)에 이르기까지 영월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거대한 인문학적 지도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문집총간 > 이재유고 >
頤齋遺藁卷之三 / 詩
仙巖歌 十章
錦江亭子豁秋空。緗菊丹楓在夢中。孤櫂南崖更餘興。水雲回望正東風。
遲遲匹馬竝輕藍。都護先行角早三。天遣驪翁成一對。永興前夕爲停驂。
蓬山西共鉢山纏。玉峙歸程鵬背連。絶頂相逢皆俊物。殷勤留遲小桃邊。
懸崖步步卽平原。忽漫東臨湍瀨喧。詰曲巖蹊仍木棧。午鷄聲在巨雲村。
行松十里遞高低。水面平開草色齊。從此窮源不自厭。漁郞何事武陵迷。
蜻蜓一葉宛中流。高笑吟吟失萬愁。還有短簫長笛好。小風吹泝綠陰洲。
寥落梨花記舊亭。庵空佛死戶長扃。無邊景物輸誰管。襖靄聲聲自釣舲。
日晩山光相與長。黃楊翠柏滿船凉。茫茫便恠瑤蟾墜。安得梯雲問月孀。
候吏叫時船子催。一篙灘淺步因來。紫煙側畔躋攀穩。還是江心百尺臺。
縹緲朱欄將上慵。西林候火已重重。歸來郤憶經行地。眞箇佳人別後容。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문인 이재(頤齋) 황섬(黃暹, 1544~1616)의 문집인 《이재유고(頤齋遺藁)》 제3권 시(詩)에 수록된 〈선암가 10장(仙巖歌 十章)〉입니다.
작가가 금강과 선암(仙巖) 등지에서 아름다운 가을과 자연 경치를 만끽하며 배를 타고 유람한 경험을 10개의 연작시로 읊은 것입니다.
1장: 금강 정자와 가을 풍경
錦江亭子豁秋空。緗菊丹楓在夢中。孤櫂南崖更餘興。水雲回望正東風。풀이: 금강의 정자가 가을 하늘을 향해 탁 트여 있고,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은 마치 꿈속인 듯 아름답습니다. 외로운 배를 몰아 남쪽 절벽으로 가니 흥취가 더해가고, 물과 구름을 돌아보니 마침 동풍이 불어옵니다.
2장: 동행과의 여정과 만남
遲遲匹馬竝輕藍。都護先行角早三。天遣驪翁成一對。永興前夕爲停驂。풀이: 한 필의 말과 가벼운 가마를 나란히 하여 더디게 가는데, 도호(都護, 고을 수령)가 먼저 행차하며 새벽 세 번의 뿔나팔 소리를 울립니다. 하늘이 검은 말을 탄 노인(驪翁)을 보내어 짝을 이루게 하니, 영흥에서의 전날 밤 말의 고삐를 멈추고 묵어갑니다.
3장: 산 정상에서의 만남
蓬山西共鉢山纏。玉峙歸程鵬背連。絶頂相逢皆俊物。殷勤留遲小桃邊。풀이: 봉래산은 서쪽으로 발산과 얽혀 있고, 옥치(玉峙)로 돌아가는 길은 대붕의 등처럼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뛰어난 인물들이니, 작은 복숭아나무 곁에서 은근하게 발걸음을 멈추고 머무릅니다.
4장: 험난한 바위 길과 마을 풍경
懸崖步步卽平原。忽漫東臨湍瀨喧。詰曲巖蹊仍木棧。午鷄聲在巨雲村。풀이: 깎아지른 절벽을 한 걸음씩 걸어가니 곧 평지가 나오고, 문득 동쪽으로 다가가니 여울물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꼬불꼬불한 바위 길은 나무 잔도로 이어지는데, 낮닭 우는 소리가 거대한 구름이 걸린 마을에서 들려옵니다.
5장: 끝없는 자연과 무릉도원
行松十里遞高低。水面平開草色齊。從此窮源不自厭。漁郞何事武陵迷。풀이: 십 리 길에 늘어선 소나무들은 높낮이를 바꾸어 가며 서 있고, 물줄기가 평평하게 열리며 풀빛이 고르게 펼쳐집니다. 여기서부터 물의 근원을 찾아 끝까지 가도 싫증 나지 않으니, 어부는 무슨 일로 무릉도원에서 길을 잃었단 말인가요.
6장: 강 위에서의 풍류와 해학
蜻蜓一葉宛中流。高笑吟吟失萬愁。還有短簫長笛好。小風吹泝綠陰洲。풀이: 잠자리나 나뭇잎 같은 작은 배 한 척이 완연히 강 한가운데 떠 있습니다. 소리 높여 웃고 흥얼거리니 만 가지 시름이 사라집니다. 여기에 단소와 장적 같은 피리 소리까지 곁들이니 참 좋고, 잔잔한 바람은 푸른 그늘이 진 모래톱으로 불어 올라갑니다.
7장: 옛 정자의 쓸쓸함
寥落梨花記舊亭。庵空佛死戶長扃。無邊景物輸誰管。襖靄聲聲自釣舲。풀이: 쓸쓸히 떨어진 배꽃 속에서 옛 정자를 기억하는데, 암자는 비어 있고 불상은 쓰러졌으며 문은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이 아름다운 경치를 이제 누구에게 맡겨 관리할까, 아지랑이 자욱한 속에서 고기잡이배의 소리만 은은히 들려옵니다.
8장: 밤이 깊어가는 강가의 정취
日晩山光相與長。黃楊翠柏滿船凉。茫茫便恠瑤蟾墜。安得梯雲問月孀。풀이: 날이 저물어 가니 산 그림자도 함께 길어지고, 황양목과 푸른 잣나무 가지가 배 안에 가득해 서늘합니다. 아득한 밤하늘에 옥토끼(달)가 떨어지는 것이 문득 기이하니, 어떻게 하면 구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달 속의 선녀(항아)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9장: 높은 대(臺)에 올라 바라본 경치
候吏叫時船子催。一篙灘淺步因來。紫煙側畔躋攀穩。還是江心百尺臺。풀이: 구실아치가 소리치고 사공이 배를 재촉하는데, 여울이 얕아 상앗대 하나를 짚고 걸어서 내립니다. 자줏빛 안개 피어오르는 가를 따라 안정되게 기어오르니, 이곳이 바로 강 한가운데 솟아 있는 백 척 높이의 대(臺)입니다.
10장: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쉬움
縹緲朱欄將上慵。西林候火已重重。歸來郤憶經行地。眞箇佳人別後容。풀이: 가물거리듯 높은 붉은 난간에 막 올라가려니 게으른 마음이 드는데, 서쪽 숲에는 봉화나 등불들이 이미 겹겹이 켜져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문득 지나온 곳들을 다시 추억해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미인과 이별한 뒤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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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遺藁卷之三 / 詩
越州歌 九章章十句
有客東游字永叟。半生潦倒甘人蹂。讀書千卷果安用。不向朱門肯炙手。尙喜伊來賴天靈。將身可以資師友。誰遣烏紗便到頭。禹穴迢遼旅顔醜。嗚呼一歌兮歌初放。南望鄕山悄虛牖。
有父今年六十三。白首家食光因含。名聲偶入君王聞。公議豈忍成空談。趍庭自知非幹蠱。古人一養誠多慚。若敎晨昏侍不離。義方亦足從心涵。嗚呼再歌兮歌漸長。夢歸昨夜如脫銜。
有母于父齒加四。九載眼障風爲祟。持門久令心力損。兒大不能收醫治。德備慈嚴竟誰識。餘慶分明世世庇。尋常菽水已云歉。况乃千里當王事。嗚呼三歌兮歌更浩。寸寸手線空內記。
有弟生來差二歲。連業與我敦恭悌。靑陽發解還蹭蹬。惜哉一疾今非細。膝下何緣聽喚爺。出戶強笑回身涕。光陰不住愁易老。美質猶須加鏃礪。嗚呼四歌兮歌孔哀。安得奮飛聯棠棣。
有姊嫁與盧氏郞。柘籬栗園鵝川陽。機杼喞喞鳴不休。帲幪五雛身無裳。一別多時正堪憶。歸覲欣肰拜中堂。相逢詎幾旋北南。我馬瘏矣誰能將。嗚呼五歌兮歌轉苦。只願少留毋令傷。
有妹長飢在鼇山。老屋天寒雪拒。男叫女呱不自耐。良人玉潔常歡顔。莽蒼相分遽經年。來時小札徒回還。身沾寸祿亦何助。此心耿結難爲刪。嗚呼六歌兮歌正勞。期爾且師曹家班。
有妻糟糠髮半宣。少也枯悴仍沈綿。農家百事只聒耳。永日入厨無餘饘。世間迂慵孰似我。使君不曾晷刻便。西行歲歲漫裁縫。燈下砧邊遙可憐。嗚呼七歌兮歌益厲。引領但俟寒衣傳。
有子留依祖翁側。別後森肰想顔色。大者十五能觚翰。小者五齡逢客匿。詩書舊種或不絶。成敎終當服謹飭。愼莫悠悠學乃爺。入未供膳出癏職。嗚呼八歌兮歌復起。天曉踟躕至日稷。
有女閨中秀而癡。早學王母無非儀。阿月咿唔訓民音。阿甲居肰知誦詩。不辭拈針試補綻。牽衣問我歸來期。秪今山長水亦遠。秋氣憭慄嚬人眉。嗚呼九歌兮歌已闋。終古莫如離家悲。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0
이재유고(頤齋遺藁) 권지삼(卷之三)에 수록된 연작시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입니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한시로, 타향을 떠도는 지식인의 고뇌와 탄식을 담고 있습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1장
有客東游字永叟 (유객동유자영수)
어떤 나그네 동쪽으로 놀러 가니 자(字)가 영수(永叟)라네.
半生潦倒甘人蹂 (반생요도감인유) 반평생을 실의하고 불우하게 지내며 남에게 짓밟히는 것을 달게 받았도다.
讀書千卷果安用 (독서천권과안용)
책 천 권을 읽은 들 과연 어디에 쓰리오?
不向朱門肯炙手 (불향주문긍자수) 권세 있는 대문(주문)을 찾아가 권력을 잡고 손을 따뜻이 하려 하지 않았네.
尙喜伊來賴天靈 (상희이래뢰천령)
그나마 기쁜 것은 이리로 온 것이 하늘의 신령함에 의지한 것이니,
將身可以資師友 (장신가이자사우)
이 몸을 이끌고 스승과 벗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이라.
誰遣烏紗便到頭 (수견오사편도두)
누가 오사모(벼슬길)를 쓰게 하여 문득 머리에 이르게 했는가?
禹穴迢遼旅顔醜 (우혈초요려안추) 우혈(임금의 무덤이 있는 곳, 또는 먼 타향)은 아득히 먼데 나그네 얼굴은 초라하구나.
嗚呼一歌兮歌初放 (오호일가혜가초방)
아아! 첫 번째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처음으로 풀어내니,
南望鄕山悄虛牖 (남망향산초허유)
남쪽 고향 산을 바라보며 빈 창가에서 근심에 잠기노라.
*주요 시어 풀이
潦倒(요도): 나이가 들어 쇠약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실의하고 불우한 상태를 뜻합니다.
朱門肯炙手(주문긍자수): '자수(炙手)'는 손을 불에 쬐어 따뜻하게 한다는 뜻으로, 권세가 당당함을 비유합니다. 권문세가(주문)에 빌붙어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는 청렴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烏紗(오사): 오사모를 뜻하며, 관직이나 벼슬길을 상징합니다.
禹穴(우혈): 중국 월주(越州) 회계산에 있는 우왕(禹王)의 무덤 또는 장지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시의 배경이 되는 아주 멀고 낯선 타향을 비유합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2장
有父今年六十三 (유부금년육십삼): 아버지가 올해 예순세 세이신데,
白首家食光因含 (백수가식광인함): 흰머리로 집에서 봉양을 받으시며 온화한 빛을 머금고 계시네.
名聲偶入君王聞 (명성우입군왕문): 명성이 우연히 임금님의 귀에 들어가니,
公議豈忍成空談 (공의기인성공담): 조정의 공론이 어찌 차마 빈말이 되겠는가. (아버지가 천거되거나 관직을 제수받았음을 암시)
趍庭自知非幹蠱 (추정자지비간고): 아버지를 모시는 자식으로서 내 능력이 부족함을 스스로 아노니,
古人一養誠多慚 (고인일양성다참): 옛사람들의 효행에 비하면 진실로 부끄러운 점이 많도다.
若敎晨昏侍不離 (약교신혼시불리): 만약 아침저녁으로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실 수만 있다면,
義方亦足從心涵 (의방역족종심함): 아버지의 올바른 가르침을 마음속에 충분히 푹 젖어 들게 할 수 있으련만.
嗚呼再歌兮歌漸長 (오호재가혜가점장): 아, 두 번 노래를 부르니 노래가 점점 길어지는데,
夢歸昨夜如脫銜 (몽귀작야여탈함): 어젯밤 꿈속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마치 재갈 풀린 말처럼 자유로웠네.
2. 시의 핵심 주제
부친을 향한 효심: 63세가 되신 늙은 아버지를 곁에서 직접 모시며 가르침을 받고 싶은 자식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 벼슬길이나 외지에 나와 있어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하는 현실에서, 꿈속에서라도 자유롭게 고향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귀향의 염원을 '탈함(脫銜, 재갈을 벗음)'이라는 비유로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3장
앞서 보신 제2장(부친에 대한 노래)에 이어, 이번 장은 노모(老母)의 안타까운 건강 상태와 자식으로서 죄책감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有母于父齒加四 (유모우부치가사): 어머니는 아버지 나이보다 네 살이 더 많으신데, (어머니 나이 67세)
九載眼障風爲祟 (구재안장풍위수): 9년 동안이나 백내장(안장)을 앓으신 것은 풍질이 재앙을 부린 탓이네.
持門久令心力損 (지문구령심력손): 오랜 세월 집안을 이끌어 오시느라 마음과 기력이 다 상하셨는데,
兒大不能收醫治 (아대불능수의치): 자식이 장성하고도 의원을 모셔다 치료해 드리지 못했구나.
德備慈嚴竟誰識 (덕비자엄경수식): 자애로움과 엄격함의 덕을 갖추신 것을 끝내 그 누가 알아주리오,
餘慶分明世世庇 (여경분명세세비 (비)): 선한 덕의 보답(여경)이 분명하여 대대로 자손들을 비호해 주시리.
尋常菽水已云歉 (심상숙수이운겸): 평소에 소박한 음식(숙수)으로 봉양하는 것조차 이미 부족하다 말했는데,
况乃千里當王事 (황내천리당왕사): 하물며 이제 천 리 타향에서 나라의 공무(왕사)를 맡고 있으니 어찌하랴.
嗚呼三歌兮歌更浩 (오호삼가혜가갱호): 아, 세 번 노래를 부르니 시름 겨운 노래가 더욱 넓고 깊어지는데,
寸寸手線空內記 (촌촌수선공내기): 어머니가 한 땀 한 땀 기워주신 옷자락을 보며 마음속으로만 부질없이 은혜를 기억하네.
시의 핵심 주제
어머니의 질병에 대한 죄책감: 67세의 고령에 9년이나 눈이 어두운 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두고도, 자식으로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해드리지 못한 불효를 자책하고 있습니다.
타향에서 느끼는 한계: 평소 곁에 있을 때도 풍족하게 모시지 못했는데, 이제는 관직(왕사) 때문에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어 문안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나오는 어머니의 옷개 선(手線) 비유를 통해 극대화됩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4장
앞서 부모님에 이어, 이번 장은 두 살 터울 남동생의 과거 낙방과 깊은 병환을 지켜보는 형의 미안함과 애틋한 형제애(당체, 棠棣)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有弟生來差二歲 (유동생래차이세):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으니,
連業與我敦恭悌 (연업여아돈공제): 어려서부터 학업을 함께 이어오며 나와 공경과 우애를 두터이 하였네.
靑陽發解還蹭蹬 (청양발해환층등): 청양(靑陽, 사마시의 다른 이름 혹은 향시)에서 합격(발해)했으나 끝내 과거에 낙방하고 비틀거렸는데,
惜哉一疾今非細 (석재일질금비세): 애달프다, 한 번 얻은 질병이 이제는 결코 가볍지 않구나.
膝下何緣聽喚爺 (무릎아래하연청환야): 무릎 밑에서 어찌 자식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인연이 있겠는가. (동생이 병약하여 아직 자식을 두지 못했거나 대를 잇기 어려움을 탄식)
出戶強笑回身涕 (출호강소회신체): 문을 나설 때는 억지로 웃어 보이지만, 몸을 돌아서면 눈물이 흐르네.
光陰不住愁易老 (광음불주수이노):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 시름 속에 쉽게 늙어가는데,
美質猶須加鏃礪 (미질유수가족려): 동생의 아름다운 자질은 오히려 아직 더 갈고닦아야 하거늘.
嗚呼四歌兮歌孔哀 (오호사가혜가공애): 아, 네 번 노래를 부르니 그 슬픔이 너무나도 깊은데,
安得奮飛聯棠棣 (안득분비련당체): 어찌해야 날개를 떨치고 날아가 아가위나무(당체, 형제)처럼 서로 어우러질 수 있을까.
시의 핵심 주제
동생의 과거 낙방과 병환에 대한 안타까움: 재능이 뛰어남에도 과거에서 좌절하고(층등), 현재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동생을 보며 형으로서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절절히 드러납니다.
지극한 형제애(우애): 멀리 타향에서 관직 생활을 하느라 병든 동생을 돌보지 못하는 처지에서, 새처럼 날아가 동생과 함께 지내며 힘이 되어주고 싶은 애끓는 정을 '당체(棠棣, 《시경》에서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꽃)'라는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5장
앞서 부모님과 남동생에 이어, 이번 장은 가난한 살림 속에서 다섯 자녀를 키우며 고생하는 누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짧은 만남 뒤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有姊嫁與盧氏郞 (유자가여노시랑): 노씨 성을 가진 사내에게 시집간 누님이 계시는데,
柘籬栗園鵝川陽 (자리율원아천양): 산뽕나무 울타리와 밤나무 과수원이 있는 아천(鵝川)의 양지에 살고 있네.
機杼喞喞鳴不休 (기저즉즉명불휴): 베틀 소리가 짤깍짤깍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데,
帲幪五雛身無裳 (병몽오추신무상): 다섯 아이를 덮어주고 기르느라 누님 자신은 입을 치마조차 없구나. (가난과 헌신을 비유)
一別多시正堪憶 (일별다시정감억): 한 번 헤어진 지 오래되어 참으로 그리움이 사무쳤는데,
歸覲欣肰拜中堂 (귀근흔연배중당): 고향에 돌아가 뵈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안방(중당)에서 절을 올렸었네.
相逢詎幾旋北南 (상봉거기선북남):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내 북쪽과 남쪽으로 헤어지게 되었는가,
我馬瘏矣誰能將 (아마도의수능장): 내 말마저 병들고 지쳤으니 누가 나를 데려다줄 수 있으리오.
嗚呼五歌兮歌轉苦 (오호오가혜가전고): 아, 다섯 번 노래를 부르니 노래가 갈수록 괴로워지는데,
只願少留毋令傷 (지원소류무령상): 그저 고향에 조금만 더 머물러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네.
*毋 무: 1. 관(冠) 이름, 2. 하(夏)대의 치포관 이름, 3. 없다, 4. 아니다
2. 시의 핵심 주제
시집간 누님의 가난과 노고에 대한 안타까움: 다섯 아이를 키우며 쉴 새 없이 베를 짜면서도 정작 자신은 제대로 된 옷 한 벌 입지 못하는 누님의 눈물겨운 삶을 보며 애틋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의 탄식: 오랜만에 고향에서 누님을 만나 기쁨을 나눈 것도 잠시, 관직이나 공무로 인해 다시 남북으로 멀어지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심경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월주가〉는 이처럼 황윤석이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지은 연시(連詩)입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6장
멀리 떨어져 가난과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누이동생을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오라버니의 애틋한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유매장기재오산 (有妹長飢在鼇山)
오산(鼇山) 땅에 누이동생 있어 늘 굶주리는데,
노옥천한설거간 (老屋天寒雪拒) [원문 오자 교정: 拒 -> 關 또는 𨶏]
낡은 집 날씨마저 추워 눈조차 문을 가로막았구나.
남규녀고부자내 (男叫女呱不自耐)
아들과 딸들은 배고프다 울부짖어 견디기 어려운데,
양인옥결상환안 (良人玉潔常歡顔)
남편은 옥처럼 청결하여 언제나 웃는 얼굴만 짓는구나.
망창상분거경년 (莽蒼相分遽經年)
아득히 서로 헤어진 지 어느덧 한 해가 지났는데,
래시소찰도회환 (來時小札徒回還)
인편에 보낸 짧은 편지만 헛되이 오고 갈 뿐이네.
신첨촌록역하조 (身沾寸祿亦何助)
내 몸에 깃든 작은 녹봉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차심경결난위산 (此心耿結難爲刪)
이 마음속에 맺힌 걱정은 지워버리기가 어렵구나.
오호육가혜가정로 (嗚呼六歌兮歌正勞)
아, 슬프다! 여섯 번째 노래여, 노래하는 마음 정말 괴로우니,
기이차사조가반 (期爾且師曹家班)
바라건대 너는 당분간 조가반(曹家班)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무나.
💡 핵심 시어 및 표현 해설
오산(鼇山): 전라도 고창(高敞) 지역에 있는 산 이름으로, 황윤석의 누이가 출가하여 살고 있던 시댁의 위치를 뜻합니다.
양인옥결상환안(良人玉潔常歡顔): 남편(매부)의 인품이 옥처럼 깨끗하고 청렴하여 안빈낙도하지만, 집안의 생계나 가난에는 대책이 없어 오히려 속이 타들어 가는 누이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소찰도회환(來時小札徒回還): 편지만 간간이 오갈 뿐, 직접 만나 돕지 못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촌록(寸祿): 화자가 조정에서 받는 아주 적은 양의 녹봉을 낮추어 부른 말입니다. 누이를 실질적으로 돕지 못하는 자책감이 묻어납니다.
조가반(曹家班): 후한 시대의 유학자이자 역사가인 반소(班昭)를 의미합니다. 반소는 조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 '조대가(曹大家)'로 불렸으며,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여계(女誡)》를 지었습니다. 가난한 현실을 굳은 절개와 지혜로 이겨내기를 바라는 오라버니의 당부가 담긴 고사입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7장
앞선 제6장이 멀리 사는 누이동생을 걱정했다면,
제7장은 가난한 살림을 도맡아 고생하며 늙어가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유명한 고시 〈동곡칠가(同谷七歌)〉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목입니다.
유처조강발반선 (有妻糟糠髮半宣) 조강지처 내 아내는 머리칼이 벌써 반이나 희어졌는데,
소야고췌잉침면 (少也枯悴仍沈綿) 젊어서부터 초췌하더니 여전히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구나.
농가백사지괄이 (農家百事只聒耳) 시골집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은 귀에 시끄럽게 울려대는데,
영일입주무여전 (永日入厨無餘饘) 온종일 부엌에 들어간들 남은 죽 한 그릇조차 없다네.
세간우용숙사아 (世間迂慵孰似我) 세상에 세상 물정 모르는 게으름뱅이가 누가 나와 같으리오,
사군불증귀각편 (使君不曾晷刻便) 당신(아내)으로 하여금 잠시도 편안할 틈이 없게 만들었구나.
서행세세만재봉 (西行歲歲漫裁縫) 내가 서쪽(한양)으로 떠날 때마다 해마다 부질없이 옷을 마르고 기우느라,
등하침변요가련 (燈下砧邊遙可憐) 등잔 밑 다듬이질 소리 내는 곁의 모습이 멀리서도 참으로 가련하다.
오호칠가혜가익려 (嗚呼七歌兮歌益厲) 아, 슬프다! 일곱 번째 노래여, 노래가 갈수록 격해지니,
인령단사한의전 (引領但俟寒衣傳) 목을 길게 빼고 오직 추위를 막아줄 겨울옷이 전해져 오기만 기다리노라.
💡 핵심 시어 및 표현 해설
조강(糟糠): 술찌개미와 쌀겨라는 뜻으로, 가난을 함께 겪은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의미합니다.
침면(沈綿): 병이 오래되어 자리에 누워 앓는 모습을 뜻합니다. 젊어서부터 고생하여 몸이 약해진 아내의 안타까운 건강 상태를 보여줍니다.
무여전(無餘饘): 전(饘)은 되직하게 쑨 죽을 뜻합니다. 온종일 부엌에서 일하지만, 먹을 물기 있는 죽 한 그릇조차 넉넉지 못한 극심한 가난을 묘사합니다.
우용(迂慵): 세상 이치나 이익에 어둡고 행동이 느려 터진 것을 자책하는 말입니다. 화자 자신을 뜻합니다.
서행(西行): 황윤석의 고향인 전라도 고창(흥덕)을 기준으로 북서쪽, 즉 과거 시험을 보거나 관직 생활을 하기 위해 '한양(서울)으로 올라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침변요가련(砧邊遙可憐): 침(砧)은 다듬이돌입니다. 한양에 와 있는 화자가 고향 집 등잔 밑에서 밤새 자신에게 보낼 옷을 지으며 다듬이질을 하고 있을 아내의 외롭고 고된 모습을 멀리서 상상하며 가엾게 여기는 대목입니다.
인령(引領):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을 뜻합니다. 아내가 정성스레 지어 보내줄 겨울옷(한의, 寒衣)을 손꼽아 기다리는 처량한 처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8장
황윤석의 〈월주가(越州歌)〉 9장 중 제8장입니다.
제6장의 누이동생, 제7장의 아내에 이어 이번 제8장에서는 고향 집에 계신 할아버지께 맡겨두고 온 두 아들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아비로서의 당부, 그리고 자책감을 담고 있습니다.
유자류의조옹측 (有子留依祖翁側) 아이들이 있어 할아버지 곁에 머물러 의지하고 있으니,
별후삼연상안색 (別後森肰想顔色) 이별한 뒤로 선명하게 그 얼굴들이 눈앞에 떠오르는구나.
대자십오능고한 (大者十五能觚翰) 큰놈은 열다섯 살이라 제법 글을 쓸 줄 알고,
소자오령봉객익 (小者五齡逢客匿) 작은놈은 다섯 살이라 낯선 손님을 보면 숨어버린다네.
시서구종혹불절 (詩書舊種或不絶) 시와 책을 읽던 집안의 오랜 가업이 다행히 끊이지 않았으니,
성교종당복근칙 (成敎終當服謹飭) 가르침을 이루어 마침내 삼가고 정돈하는 도리를 따르겠지.
신막유유학내야 (愼莫悠悠學乃爺) 부디 바라건대, 빈둥거리며 너희 아비(나)를 본받지 말아라,
입미공선출환직 (入未供膳出癏職) 집에 들어와선 부모님께 공양도 못 하고, 나가선 관직을 병들게(소홀히) 할 뿐이란다.
오호팔가혜가부기 (嗚呼八歌兮歌復起) 아, 슬프다! 여덟 번째 노래여, 노래가 다시 일어나니,
천효지주지일직 (天曉踟躕至日稷) 하늘이 밝아올 때부터 서성거리다가 해가 기울 때에 이르렀구나.
💡 핵심 시어 및 표현 해설
조옹측(祖翁側): 아이들의 증조할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를 뜻합니다.
황윤석의 가계를 보면, 아이들은 고향에서 가문의 어른인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으며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연(森肰): '삼연(森然)'과 같은 뜻으로, 눈앞에 사물이 빽빽하거나 또렷하게 펼쳐진 모양을 뜻합니다. 헤어진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는 뜻입니다.
고한(觚翰): 고(觚)는 글을 쓰는 나무 쪽, 한(翰)은 붓을 뜻하여 '글을 짓고 쓰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큰아들이 제법 학업에 진전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봉객익(逢客匿): 다섯 살배기 막내아들이 낯가림을 하며 손님을 피해 숨는 귀여운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멀리서도 자식들의 성장 과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그리듯 생각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묻어납니다.
학내야(學乃爺): '내야(乃爺)'는 '너희 아비', 즉 화자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자식들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당부하는 대목입니다.
입미공선출환직(入未供膳出癏職): 화자의 뼈아픈 자책입니다. 집에 있을 때는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선, 膳)을 대접하며 효도하지 못했고, 관직에 나아가서는 나랏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직무를 병들게(환, 癏) 했다는 반성입니다.
지주지일직(踟躕至日稷): 직(稷)은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것을 뜻합니다.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자식 걱정과 자책감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절망적이고 쓸쓸한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월주가 구장(越州歌 九章)' 중 제9장
황윤석의 〈월주가(越州歌)〉 9장 중 마지막인 제9장입니다.
제6장(누이), 제7장(아내), 제8장(아들)에 이어 마지막 장에서는 고향 집에 두고 온 어린 딸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집을 떠나온 자의 근원적인 이별의 슬픔으로 시 전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유녀규중수이치 (有女閨中秀而癡) 규방에 딸아이들이 있어 빼어나면서도 순진한데,
조학왕모무비의 (早學王母無非儀) 일찍이 할머니를 배워 거동 하나하나에 법도가 어긋남이 없구나.
아월이오훈민음 (阿月咿唔訓民音) 아월(阿月)이는 웅얼웅얼 훈민정음(한글)을 배우고,
아갑거연지송시 (阿甲居肰知誦詩) 아갑(阿甲)이는 어느새 자라 시를 외울 줄 아네.
불사념침시보탄 (不辭拈針試補綻) 바늘 잡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해어진 옷을 꿰매어 보기도 하며,
견의문아귀래기 (牽衣問我歸來期) 내 옷자락을 붙잡고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곤 했었지.
지금산장수역원 (秪今山長水亦遠) 지금은 산이 가로막고 물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추기료률빈인미 (秋氣憭慄嚬人眉) 가을 기운이 쓸쓸하고 처량하여 사람의 눈썹을 찌푸리게 하는구나.
오호구가혜가이결 (嗚呼九歌兮歌已闋) 아, 슬프다! 아홉 번째 노래여, 노래가 이제 끝났으니,
종고막여리가비 (終古莫如離家悲) 예나 지금이나 집을 떠나온 슬픔보다 더한 것은 없으리라.
💡 핵심 시어 및 표현 해설
수이치(秀而癡): 외모나 자질은 빼어나지만(秀)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순진무구함(癡)을 뜻합니다. 딸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왕모(王母): 아이들의 할머니, 즉 화자의 어머니를 뜻합니다. 어머니 밑에서 예의바르게 자라고 있는 딸들의 대견한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아월(阿月) / 아갑(阿甲): 황윤석의 어린 딸들의 아명(어릴 때 부르는 이름)입니다.
훈민음(訓民音): 훈민정음, 즉 '한글'을 의미합니다. 어린 딸이 웅얼웅얼 한글을 소리 내어 읽고 배우는 주마등 같은 고향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견의문아귀래기(牽衣問我歸來期): 화자가 한양으로 떠날 때, 옷자락을 붙잡으며 "아버지 언제 돌아오세요?"라고 묻던 딸의 모습을 회상하는 대목으로, 시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료률(憭慄): 가을바람이나 날씨가 살을 에는 듯 처량하고 쓸쓸한 모양을 뜻합니다. 타향에서 맞는 가을의 고독감을 더해줍니다.
이가비(離家悲): 집을 떠나와 가족과 이별한 슬픔입니다. 누이, 아내, 자식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쌓아 올린 그리움의 감정이 이 한 구절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 〈월주가〉 전체 요약 및 감상
황윤석의 〈월주가〉는 타향(한양)에서 관직 생활을 하면서, 고향 고창에 남겨둔 가족들을 절절하게 그리워한 연작시입니다.
제6장: 가난한 시댁에서 고생하는 누이동생에 대한 안타까움
제7장: 병약한 몸으로 가계를 꾸리며 남편의 겨울옷을 짓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제8장: 할아버지 밑에서 커가는 두 아들의 학업에 대한 기대와 아비로서의 자책
제9장: 한글을 배우고 시를 읊으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들에 대한 애틋함.
조선 시대 사대부의 시이면서도 관념적인 표현에 치우치지 않고, '훈민정음(한글)을 읽는 딸', '바느질하는 아내', '손님을 보고 숨는 막내' 등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상을 격정적인 어조로 그려낸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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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석 黃胤錫
조선후기 『이재유고』, 『이재속고』, 『이수신편』 등을 저술한 학자. 운학자(韻學者).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월송외사(越松外史).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다.
1759년(영조 35) 진사시에 합격, 1766년에 은일(隱逸)로서 장릉참봉(莊陵參奉)에 임명되고, 뒤이어 사포서(司圃署)의 직장·별제를 거쳐 익위사의 익찬이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779년(정조 3)에 목천현감이 되었다가 다음해 사퇴하였고, 1786년 전생서(典牲署)의 주부를 거쳐 전의현감(全義縣監)이 되었다가 그 다음해에 사퇴하였다.
그의 학문은 실학시대의 학풍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인데, 처음에는 이학(理學)의 공부에 힘쓰고 『주역』을 비롯한 경서의 연구도 하였으나, 북경을 거쳐서 전래된 서구의 지식을 받아 이를 소개한 공이 크고, 또 종래의 이학과 서구의 새 지식과의 조화를 시도한 점이 특색이다.
저서로는 『이재유고(頤齋遺稿)』·『이재속고(頤齋續稿)』·『이수신편(理藪新編)』·『자지록(恣知錄)』이 있다. 이 중 『이재유고』에 「자모변(字母辨)」·「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 등이 있어 국어학사의 연구대상이 되며, 운학에 대한 연구는 『이수신편』에 실려 있다.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이숭녕 (전 서울대학교, 국어학)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윤석 생가 黃胤錫 生家
시도문화유산,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내면에 있는 대한제국기에 중건된 실학자 황윤석의 생가.
명칭 : 황윤석생가 (黃胤錫生家)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조동길 33 (성내면, 황윤석선생고택)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1986년 09월 08일 지정)
지정기관 : 전북특별자치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홍승재 (홍익대학교, 건축학) 최종수정 2024년 07월 11일.
1986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생가이다. 이재(頤齋)의 선친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안채 · 사랑채 · 곳간채 · 문간채만 남아 있다.
높이 80cm의 잡석기단 위에 세워진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으로서 그 규모가 매우 큰 건물이다. 서쪽부터 간살의 구성을 보면 부엌 · 안방 · 대청 · 건넌방 순으로 방이 이어져 규모는 크지만 전형적인 남부지방의 평면구성을 따르고 있다. 다만 안방과 부엌 사이에 있는 반칸 크기의 작은 쪽방이 특이하다. 이집에서는 재방이라고 하나 정지방의 준말인 듯하다. 이 방에는 안방과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있으며 마루에서도 직접 출입할 수 있다. 대개 마루에서 부엌으로 쪽문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나 이 집은 이 방을 통하여 부엌과 안방이 연결된다. 또한 2칸의 대청 북쪽 툇칸에 짜놓은 붙박이 뒤주도 이 집의 큰 특징이다.
뒤주 상부 뒷벽에는 벽감을 만들어서 신위를 봉안하고 있다. 당초에는 사당이 안채 뒷편에 별도로 있었다고 한다. 벽체는 문을 제외하고 모두 판벽으로 마감하였으며 밑에는 머름청판으로 격식을 갖추었다. 전면의 두리기둥 및 부재의 넉넉함과 치목수법을 볼 때에도 충분히 기와집으로 지을 수 있었지만 기와를 덮으면 혈(穴)이 눌려서 집안이 좋지 않다는 믿음 때문에 초가로 한 것이다.
사랑채와 문간채, 곳간채는 소실되었던 것을 1909년에 다시 지었다. 곳간채는 5칸 규모로서 매우 큰 편이며, 바닥에는 모두 마루를 깔아 알곡을 그대로 갈무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옥 내에는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문집 50책이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