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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에마 미첼
이 책의 저자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며, 디자이너이자 창작자이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했고, BBC에서 발간하는 잡지 〈컨트리파일Countryfile〉에 계절 프로젝트를 연재했으며, 동명의 TV 프로그램과 〈산책 Ramblings〉, 〈여성의 시간 Woman’s Hour〉등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디언 Guardian〉과 〈컨트리리빙 Country Living〉, 〈브레스 Breathe〉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거기에서 자연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 건강에 주는 이점이 아주 많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빅토리아&앨버트 Victoria&Albert 박물관과 케임브리지대학교 식물원에서 자연물을 활용한 창작 수업을 하고 있고, 1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졌으며, 관찰하고 수집한 자연물을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히 나눈다. 저서로 《겨울나기 Making Winter》와 이 책 야생의 위로》가 있다. - 이상은 출판사가 소개한 저자의 약력이다.
저자는 여성답게 아주 섬세하고 다감하게 글을 쓴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25년 동안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는데, 그 증세 때마다 야생으로부터 나름대로 위로받았다며 태도를 정밀하게 묘사한다. 그것이 내게는 하나의 고백처럼 들리고 동식물을 전공한 사람답게 그것의 이름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쏟은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에 문외한인 내게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이 많다. 그들의 이름마저 여간 생경하지 않다.
“우울증이 탐욕스러운 잿빛 민달팽이처럼 마음을 갉아먹을 때면 온몸의 반사신경과 감각이 잠들어버리는 것 같다. 뇌의 쾌락 중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침울함은 더욱 깊어진다. 바삭한 감자칩의 맛과 살살 녹는 초코릿 케이크가 주는 미각이 그립다.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은 우울증의 주된 증상이다. 이런 결핍 상태에서는 나의 병증이 한층 교활하고 용의주도하게 느껴진다. 우울증은 식인종처럼 나를 뜯어먹으며 내게서 쾌감을 앗아가고 더욱 강력하게 뇌를 움켜쥐고 통제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환자는 세로토닌 대사가 고갈된 상태이며, 이에 대한 치료제가 나와 있으나 완전한 치료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확실한 것은 우울증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러 생화학적 변화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키는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증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다.”
“나의 세계는 좁아지고 오두막에 쳐 박혀 이 방 저 방을 느릿느릿 오간다. 머릿속이 끈끈하게 뒤엉킨다. 그림과 사진, 글에 관한 아이디어도 증발해버린다. 나는 친구들을 피하고 그들의 초대도 거절한다. 날마다 가장 단순한 일과만을 처리할 수 있을 뿐이다. 집안일을 하지도, 작업에 몰두 하지도,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무능함에서 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누른다. 자책은 내 마음을 더욱 깊이 가라앉힌다.
불쾌하고 끔찍한 소음이 퍼져나간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실감 나는지 정말로 두개골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마음속에서 나 자신을 끝내고 싶은 욕망이 왕왕거린다. 나의 온전한 부분, 자연 속에서 치유를 구하는 뇌의 일부분이 깨어난다. ‘넌 멀쩡한 상태가 아니야. 도움을 요청해’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마음을 좀 더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11번 국도를 따라 달린다. 나무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오늘 해변에서 찾은 것들을 지금껏 모은 조개껍질과 화석 옆에 펼쳐 놓는다. 채집한 식물과 화석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거나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선택한 물품을 진열하며 자그마한 임시 박물관을 조성한다. 그 과정은 위안을 주고 우울을 거둬 갈 뿐만 아니라 이 사물들을 찾아낼 때 느꼈던 만족감을 증폭시킨다. 나는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과 연결된 정신적 경로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채집 여행 후 손에 넣은 잎과 열매, 씨앗, 견과류와 조개를 처리하던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궁금하다. 이 연결고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상당한 예산과 고고학자, 뇌신경학자 같은 작은 군단이 필요하리라.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 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
길모퉁이를 도니 왼쪽 도로변에서 천천히 날아가는 가면올빼미 한 마리가 보인다. 나는 녀석을 보려고 차를 세운다. 한동안 하늘을 맴돌던 녀석이 긴 풀줄기 사이로 급강하한다. (…) 녀석이 지나갈 때 발톱에 쥐어진 작은 회색의 몸체와 짤막한 꼬리가 눈에 들어온다. 들쥐다. 나는 차를 돌려서 올빼미가 내려앉은 들판 가까이에 있는 널따란 갓길로 달려간다. 산울타리로 가려진 풀밭에 올빼미가 어깨를 수그리고 앉아 있다. 아마도 은밀한 장소를 골라 식사를 즐기고 있나 보다. 해가 지평선에 가 닿는 동안 올빼미는 먹이를 물어뜯고, 나무와 산울타리에는 황금빛 후광이 내려앉는다. 평생 목격한 것 중에서도 손꼽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새삼 내가 얼마나 우울증에 지치든, 얼마나 기만당하고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지든 간에 이런 광경과 만나고, 그에 따른 치유 효과로 머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계속 싸워나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을 할퀴던 지난 넉 달 동안 나는 초목과 야생동물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놈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해변과 습지, 숲과 초원을 찾아다니며 의기양양한 찌르레기 떼와 갈퀴덩굴 새싹의 풋풋한 신록으로 눈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날씨를 가리지 않고 산책에 나섰으며, 그렇게 옮긴 걸음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뇌 내의 화학작용을 조절하여 내가 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 우울증을 제어하려면 꾸준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연 속에서의 산책, 창의적으로 보내는 시간, 그리고 홀로 있을 때 곁을 지켜줄 호박색 털북숭이 친구라는 방어용 무기를 갖춘 일상적 전투 말이다. (…) 나는 우울증과 싸우느라 지치고 활력이 거의 소진된 상태다. 힘을 모으려면 따뜻한 나날과 펜랜드의 햇살이 필요하다.
검은지빠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렇다. 행복하다. 서정적이고 덧없는 그리운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현란한 색의 불꽃을 터뜨린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지난달에 묘사했던 암담한 상태는 끝났다. 나는 어마어마한 안도감을 느끼지만, 살아오면서 이미 몇 차례나 같은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그것은 마치 흑요석 칼날처럼 음침하고 치명적이다.
나는 엑서터대학교의 연구 결과를 읽는다. 우울증을 완화하려면 주변 경관에 새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조류학적 자가 치유를 시도하기 위해 나는 우리 정원에 새들을 끌어들이기로 한다. 지난번의 우울 삽화 기간 동안 소소한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이 끔찍한 죄책감과 슬픔의 자동 공급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예쁜 새 모이 보관소를 산다. (…) 이후 며칠 사이 참새 무리가 단골손님이 되고, 박새와 찌르레기 한 마리, 오색방울새 한 쌍, 거기다 기쁘게도 오목눈이까지 몇 마리 찾아온다. (…) 오목눈이들이 주고받는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우리 집 정원에서 들으니 기분이 짜릿하다. (…) 이 작은 새들에게 감사하는 기분이 솟구치고, 문득 마음의 변화가 느껴진다. 치유되는 느낌이다. 뒷마당에 새들의 실시간 생중계 채널이 있다는 생각이 효과적으로 우울함을 쫓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끈질기게 수행하는 사람을 제비에 비유하는 건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비의 여행길은 정말로 놀랍다. 도중에 여러 마리가 폭풍우나 포식자에게 목숨을 빼앗기긴 해도, 대부분은 무사히 도착해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운다. 여름 내내 깃털 달린 날쌘 화살처럼 들판 위를 돌아다니다가 전화선에 모여 앉아 다음 해의 이동을 준비하겠지. 내 상태가 대체로 괜찮은 계절 동안 제비들은 이 지역에서 지낸다. 경이로운 여정을 마치고 우리 집 정원에서 쉬는 저 새를 보니 전율이 느껴진다. 제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듯이 나 역시 또 한 번의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 나는 안마당에 앉은 채 잠시 조용히 운다.
언덕 뒤에 내가 보러 온 식물이 있다. 절정에 이른 블루벨들이다. 줄기 아래쪽은 꽃송이가 만개하여 꽃잎 하나하나가 바깥으로 젖혀졌고 위쪽은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직전이다. 깊고 진하고 선명한 푸른빛이 꽃과 함께 흔들리며 울려 퍼지는 듯하다. 블루벨 사이에 허브베니트, 숲바람꽃, 땅감자 줄기로 뒤덮인 땅뙈기가 있다. 나는 그 곳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블루벨을 바라본다. 햇살과 풍요로운 꽃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뇌세포에 이른다. 최고로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나 집에서 만든 짭짤한 감자칩을 먹을 때 같은 강렬한 만족감이 퍼져나간다. 마치 내 마음이 이 광경을 먹어 치우고 거기서 양분을 취하는 것 같다.
나는 우울증에 붙들릴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무기를 동원해 맞서 싸우고, 간신히 벗어나 서서히 회복하며 다시 인생을 살아나가려 애쓴다. 벗어날 수 없는, 진 빠지는 악순환이지만 오늘도 나는 굳건하게 견디고 있다. (…) 내가 이 상태를 완전히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안다. 이 병은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에 걸쳐 삶을 온전히 누릴 능력을 빼앗았다. (…) 이 병은 거대한 잿빛 민달팽이처럼 내 마음을 깔고 앉았지만, 나는 할 수 있을 때마다 그놈에게 타격을 가하며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숲속의 새와 식물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놈에게 한 방을 먹이고,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기분 전환 활동을 통해 좀 더 긍정적인 정신상태를 조성하며 그놈을 걷어찬다. 상담 치료사를 찾아가고, 날마다 약을 먹고, 우울감에 압도당할 것 같으면 복용량을 늘린다. (…) 딱 하루만 아침에 일어나 내가 하는 일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기대를 줄이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렉퍼드 호숫가에서 작고 희귀한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소리 내어 운다. 거기 선 채 눈물이 흘러나오게 놔둔다.
어느 여름에 나는 신기한 무늬가 있는 조약돌을 주웠다. 조약돌에는 작고 뾰족한 화산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주변의 바위에 있는 것과도 비슷했다. 조약돌이 마음에 든 나는 그것도 양동이에 집어넣었다. 내가 만든 작은 웅덩이에 갇힌 새우와 게들이 꿈틀대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 무언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고 조약돌이 살짝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 그때 작은 화산의 꼭대기가 뚜껑 문처럼 활짝 열리더니 가느다란 분홍빛 술 모양 촉수들이 손아귀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촉수들은 위쪽의 물을 훑다가 일제히 뚜껑 문 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라이프 온 어스〉에서 본 것과 비슷한 장면이 눈앞에서, 그것도 내가 모래밭에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던 반 리터 분량의 바닷물 속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짜릿한 경험은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를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 나는 나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하는 매혹적인 생명체를 목격했다. 그것은 자연과의 접촉, 화사한 빛깔의 플라스틱 양동이 속에 살아 숨 쉬는 야생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체험에서 희열을 느꼈고 비슷한 체험을 더욱더 많이 하길 원했다.
해양생물학자 월리스 니컬스 Wallace Nichols에 따르면, 해안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거나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볼 때 눈과 뇌는 시각적 자극에서 벗어나게 된다. 뇌를 위한 휴가이자 현대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부산하고 끊임없는 자극으로부터의 휴식, 일종의 해양 명상인 셈이다. 물살에 발을 맡기고 있는 동안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낀다. 파도가 밀려들었다가 스러져 가는 동안 마음은 차분한 정체상태로 흘러든다. 코바늘 뜨개질이나 스케치를 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내면의 소란이 가라앉고 어두운 생각도 사라진다.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은 나의 부서진 정신을 치유해주었다. 3월의 가장 암담했던 날, 내 생각을 되돌리고 나를 자살의 목전에서 붙잡은 것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있던 은은한 초록빛을 띤 묘목이었다. 지난 열두 달은 힘겹다 못해 비현실적이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지만, 정말로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어느 새의 모습이나 숲에서의 짧은 산책이 최악의 우울증 증세를 피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위안을 준다. 야생의 장소는 내게 꼭 필요한 약이자 안전망과도 같다.”이상은 ‘인터넷 교보문고’의 서평을 참고한 것이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숲은 자연과 나의 필수적인 연결고리이며 3월 이후로 나의 회복에 결정적인 열쇠가 되어 주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망가진 곳처럼 보이고 암담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나는 집에서 나와 나무들이 있는 곳까지 5분 동안 걸었다. 이 땅뙈기에서 자라는 토끼풀, 잔개자리, 등장미, 검은수레국화, 사양채, 가시자두 등의 친숙한 식물을 바라보노라면 잎사귀들이 그리는 무늬와 미묘하고 다양한 색의 꽃들, 그리고 다채로운 녹음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효과적으로 내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오솔길을 거니는 것은 숲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내 발걸음의 궤적을 더하는 나만의 정신적 만트라(힌두교의 명상 주문)와 같다. 평안하고 익숙한 리듬을 따라 숲속에서 두 발로 하는 요가라고나 할까. 그것은 마음에 위안을 주지만, 그 느낌은 매번 다르다. 제비들이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앉아 있다. 다가올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지나면 그들도 내년을 기약하며 떠나게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