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의 예술사] 4편 전반부에서 스탕달에 대해 상당한 지면으로 소개하면서, [적과 흑]이 본격적인 심리소설로써 근대소설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하였다. 이 책을 독서회에 추천하였는데 선정되어 반 의무감으로 읽었다.
읽는 데 사실 힘이 많이 들었다. 총 45장인데 한 번에 2~3장 밖에 못 읽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나는 고전소설의 장르에 익숙하지 않았다. 약 800 페이지의 분량을 읽어 본 경험이 몇 번 밖에 없다. 조금만 읽어도 머리에 과부하로 열이 나서 쉬어야 했다 . 둘째는 뻔한 연애소설이 아닌 사회소설로써, 19세기 초 왕정복고가 일어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였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후 민중, 부르주아, 사제, 여러 정치세력 및 귀족들이 서로 뒤엉킨 복잡한 사회가 소설 전면에 등장한다. 세계사 점수가 낮은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다.
주인공 소렐은 나폴레옹을 좋아하는 가난한 목재소 아들로서 다른 형제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남 달리 책을 좋아하였다. 잘 생기고 소심한 사람으로 가족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혼자 커왔다. 퇴역한 친척의 도움으로 라틴어를 배우고 시골 사제에게 성서를 배워 혼자 술술 외는 수준에 이르렀다.
프랑스 시골 베리에르의 시장인 드 레날씨의 눈에 띄어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시장부인과 몰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자 수도원에 도피차원으로 간다. 그 곳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다른 신학도의 질투 속에서 지내다가 파리의 유명한 후작 집에 비서로 발탁된다. 외동딸인 마틸드와 사랑을 나누고 임신까지 시켜 결혼할 시점에서 드 레날 부인의 폭로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는다. 책의 큰 줄거리이다.
초반에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정숙한 유부녀와 어린 청년의 밀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내가 권선징악과 유교사상에 너무 고정된 인간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소설이 깊어질수록 사랑보다는 오히려 정치, 경제, 귀족 생활 및 권력 다툼에 더 흥미가 있었다. 프랑스 성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개방적이고 관대한 것도 이런 부류의 소설도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된다.
줄리엥 소렐은 나폴레옹처럼 평민에서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야망을 품고 늘 삶과 투쟁하는 소심하고 자존심 엄청 강한 청년이다. 자존심은 자신이 평민이라는 열등감에서 나온 것 같다. 특히 소렐은 신앙이 깊지 않은 상태에서 성서를 외우고, 수도원과 사제를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 디딤돌로 삼는다. 책 중간중간에 피에르 사제는 이를 예측하였다는 듯이 반응하였다.
머리가 비상하고 뛰어난 청년이 처음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아마도 외롭게 커서 주위에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친구인 푸케의 동업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줄리엥 본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짜 자기 실력과 정의로움으로 정정당당하게 나아가서야 했다.
하지만 소렐에게는 정의로움은 보이지 않고 평민으로서 귀족과 부르주아를 경멸하는 쓸데없는 자존심만 보였다. 물론 그 시대에는 나폴레옹 시대보다는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적은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소렐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혹자는 줄리엥이 계급 간의 알력인 귀족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하고 특권과 능력의 투쟁이라고 하나, 이 또한 나는 일부만 맞다고 본다. 줄리엥이 정당하게 행동했다면 귀족뿐만 아니라 더 높은 지위까지 충분히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드 레날 부인은 돈 많은 귀족의 딸로서 예수교 수녀원에서 자란 후 남편과 결혼을 하여 남자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랑도 경험하지 못한 오로지 자식만을 아는 순진녀이다.
특히 그 당시에 여자를 남자의 귀속 품으로 여기는 시대로, 부인은 남편의 따뜻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애들만을 보고 종교에 대해 덕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소렐의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능력에 유혹되어 레날부인은 허가되지 않은 사랑을 하게 된다.
마틸드 또한 귀족의 권태로움을 싫어하는 정열적인 처녀로 생각된다. 파리의 높은 가문의 외동딸로 집안의 하인과 사랑을 나누고 아버지께 편지로 알리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변덕이 심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었다. 마틸드가 가문의 명예를 생각할 때마다 소렐과의 사랑이 고민과 후회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틸드는 줄리엥이 감옥에 갇히고 처형될때 까지 끝까지 돌보고, 처형된 후 줄리엥 머리를 수습하여 묻어준다.
마지막에 소렐은 자진해서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도망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이는 아마도 레날 부인에 대한 속죄가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틸드와 레날부인을 보면서 여자가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음에 놀랐다. 과연 남자들은 사랑을 위해 여자와 같이 행동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적]은 줄리엥의 죽음을 의미하고, [흑]은 줄리엥의 모든 인생 항로점에 주요한 역할을 한 사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책을 통해 19세기 프랑스와 그 당시 시대상에 대해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힘들고 복잡한 세상을 헤쳐 나감에 있어 정의로움이 제일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읽고나서 여운이 많이 간다. 강추하는 책이다.
첫댓글 '문학과예술의사회사' 덕분에 새롭게 고전을 발견 할수 있어서 퍽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회장님의 진솔함이 듬뿍 묻어난 독후를 통해서 다시금 작품을 되새김되니 고맙습니다.^^
총무님 덕분에 좋은 책 많이 읽습니다. 총무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