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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1428, 열일곱 대를 마치며
수도원장이 평하기를,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슈바벤에서 나서 슈바벤에서 자란 사람이 슈바벤의 일을 적었으니,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났다고 여러 번 생각하였다.
어려서 성벽 위에 서 계시던 어머니의 뒷모습과 칼을 차고 나가시던 아버지의 문간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 삼백육십이 해의 기록을 다 읽고 나서야 조금 알겠다.
사람은 제 시대를 사는 동안에는 그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간 뒤에야 겨우 알아본다.
다만 마치고 보니 기쁨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궤에 담긴 것 가운데 좀이 먹어 읽지 못한 것이 있었고, 앞뒤가 어긋나 어느 쪽을 좇아야 할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늙은 기사들의 기억은 찾아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내 붓은 무디어 본 것의 절반도 옮기지 못하였으니, 어떤 이의 한평생이 한 줄로 끝났고 어떤 이의 이름은 끝내 적지 못하였다. 이 책에 모자람이 있다면 사료의 탓이 아니라 내 재주의 탓이다.
먼저 두 형제를 보라.
노르트가우백 지크프리트는 슈바벤 공작위를 원하였다. 그가 든 명분은 장자상속이었으니 옳은 명분이었다.
영주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용병을 사들여 삼 년을 싸웠으나 끝내 항복하였고, 감옥에서 헛것을 보다가 죽었다.
그가 싸우는 동안 다른 가문이 힘 빠진 공작에게서 그 자리를 가져갔다. 옳은 것을 얻으려다 이미 가진 것까지 잃은 것이다.
그 아우 루돌프는 아무 명분도 내걸지 않았다. 막내아우를 상대 가문의 딸과 혼인시키고 열여덟 해를 잠자코 기다렸다.
늙은 공작이 죽고 어린 아들이 자리에 앉은 해에야 비로소 창을 들어 이겼다.
사람들은 그를 찬탈자라 불렀으나, 이 가문이 오늘 서 있는 자리는 그가 참아낸 열여덟 해 위에 있다.
수사학자들이 쓰는 말에 이로니아라는 것이 있다. 키케로가 풀이하기를, 말하는 바와 뜻하는 바를 어긋나게 하는 기교라 하였다.
나는 오래 그것을 사람의 재주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기록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어긋남을 사람의 입이 아니라 사람의 일생에서 자꾸 보았다.
칼로 얻은 것을 헤아려 보라.
예루살렘을 되찾던 해에 그 성은 다른 이의 몫이 되었다. 바다 건너 싸움에 나간 왕은 군사를 다 잃고 이역에서 눈을 감았으되, 그 싸움의 열매는 나가지 않은 아들의 대에 익었다.
큰 싸움 여섯을 다 이기고도 제 손에 하나만 남긴 왕이 있었다.
이제 혼인으로 온 것을 헤아려 보라.
슈바벤이 한 여인에게서 왔다. 프로방스가 한 여인에게서 왔고, 토스카나가 그러하였으며 도피네가 그러하였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제관이 한 여인에게서 왔다.
사내들이 평생 말을 타고 나가 얻은 것보다, 문서를 들고 조용히 시집온 이들이 남긴 것이 더 멀리 갔다.
그 여인들에 대하여 적힌 것은 흔히 세 줄뿐이다. 언제 왔고, 언제 낳았고, 언제 갔다.
모세의 책에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가 있다.
아들 없이 죽은 자의 딸들이 나아와 아비의 몫을 구하니 주께서 주라 하셨고, 뒤에 다시 이르시기를 그 딸들은 제 지파 안에서 혼인하라, 유산이 다른 지파로 옮겨 가지 아니하게 하라 하셨다.
이 집안도 한때 같은 것을 두려워하여 나라 밖으로 나가는 상속을 금하는 법을 세웠다.
그러나 이 집안이 가진 것은 거의 다 밖에서 시집온 이들이 들고 온 것이었으니, 담을 높이 쌓은 쪽이 도리어 담 밖의 것으로 살았다.
그 법으로 울름은 끝내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뒷날 하르트만이 창을 든 까닭도 거기에 닿아 있다.
두려움을 막으려 세운 담이 제 집 문을 잠갔다.
사관들이 칼 소리는 부지런히 적고 문서 소리는 적지 않았으니, 이 또한 어긋남이다.
내가 적은 것은 주인들만이 아니다. 남의 이름으로 이긴 이들이 있었다.
평생 말 위에서 늙어 주군의 국경을 두 배로 넓혀 놓고도 제 몫으로는 성 하나를 받지 못한 이가 있었고, 주군이 죽은 뒤에 그 어린 아들의 말고삐를 잡고 다시 전장으로 나간 이가 있었다.
그들의 공은 주군의 이름 아래 적히고 그들의 이름은 그 아래 작게 적힌다.
칼을 잡지 아니한 이들도 적었다.
도시의 시장들은 창을 들고 나가지 아니하였으되, 그들이 놓은 다리와 열어 둔 저자는 여러 번의 싸움보다 오래 남았다.
어느 해에 군사가 지나가고 성이 불탔어도 이듬해 봄이면 그 자리에 다시 장이 섰다.
왕들의 일은 한 대에 끝나고 저자의 일은 끝나지 아니하니, 무엇이 큰 일이고 무엇이 작은 일인지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이 책에는 남의 집안도 여럿 들어 있다.
폰 안데흐스는 백오십 해 동안 제관을 썼으되 오늘 그 이름을 잇는 이가 하나도 없다.
호엔촐레른과 글로가우와 뉴엔부르크는 제관을 쓴 적이 없으되 오늘도 그 성에 사람이 살고 있다.
높이 오른 집이 먼저 끊어지고 낮게 앉은 집이 남았다.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다만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 둘 뿐이다.
이 책 끝에 표를 하나 붙였다.
한 열에는 황제의 이름을, 한 열에는 슈바벤 군주의 이름을, 한 열에는 이 집안 종가의 이름을 적어 마흔다섯 줄을 만들었다.
이름만 늘어놓는 것이 사서의 일로 마땅한가 오래 망설였으나, 복음사가도 아브라함에게서 다윗까지 열넷, 다윗에게서 사로잡혀 간 때까지 열넷, 거기서 그리스도까지 열넷을 오직 이름으로만 적어 내려갔음을 생각하고 붓을 들었다.
세 열을 나란히 놓고 보니 산문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한 열이 흔들리는 해에는 다른 두 열도 반드시 함께 흔들렸다. 이 집안이 제 힘만으로 오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여기 다 적지 못한 일들도 있다.
어느 봄에 두 사람이 죽었으되 사료는 그 까닭을 적지 않았다. 어느 해에는 같은 피를 나눈 이가 감옥에서 시들었다.
나는 그 일들을 아는 대로 적었을 뿐 판단은 적지 않았으니, 사람의 마음속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하였다.
이 가문의 여러 어두운 밤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 말씀을 떠올렸다.
곧 사람이 세운 것은 거듭 무너지고, 사람이 세우지 않은 것이 거듭 이루어졌다.
삼 년을 싸워 얻은 승리가 종이 위에서 지워졌고, 그 사람이 죽고서야 아들이 나라를 받았다.
왕관을 내놓으라 하던 자가 몇 달 뒤에는 그 왕에게 군사를 꾸어 달라 하였다.
말재주로 황제를 굽히게 한 왕이 마지막에는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갔다.
그리고 열한 살 된 이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한 채 로마의 제관을 받았다.
내가 이것을 두고 사람의 애씀이 부질없다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애쓰지 아니하였더면 지크프리트의 이름도 남지 아니하였을 것이요, 열여덟 해를 기다린 루돌프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애씀과 그 열매가 같은 사람의 손 안에서 만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씨를 뿌리는 이와 거두는 이가 다르다 하신 말씀이 이 집안에서만도 여러 번 이루어졌다.
사도가 이르되,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 하였다.
나는 감히 이 가문의 삼백육십이 해를 두고 그 말씀이 다 이루어졌다 단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종의 분수를 넘는 일이다.
다만 사람의 계획이 이토록 자주 어긋나고도 끝내 한 곳으로 모인 것을 보면, 그 걸음을 인도하신 손이 사람의 손이 아니었음은 알겠다.
이로니아를 부린 이는 웅변가가 아니었다.
이제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폐하께서는 아직 열한 살이시다. 서쪽에 왕국이 있고 동쪽에 제국이 있으며 그 사이에 바다와 산과 여러 말이 놓여 있다.
어깨는 아직 좁으신데 얹힌 것은 두 나라의 무게다. 섭정들이 곁을 지키나 섭정은 늙고 왕은 자란다.
자라시는 동안 무엇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읽은 열여섯 분의 생애 가운데 편안히 끝맺은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이 책을 덮으며 기쁨보다 두려움이 크다.
다만 복된 오딜리아께서 보지 못하는 눈으로 나셨다가 세례의 물로 빛을 얻으셨듯이,
어린 폐하께서도 사람이 드리지 못하는 것을 위로부터 받으시기를 빈다.
주께서 그분의 오른편 그늘이 되시어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상하게 하지 못하기를.
이 책은 여러 손을 빌려 되었다.
호엔촐레른과 글로가우와 뉴엔부르크 여러 가문에서 집안의 기록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양피지와 잉크와 필경사의 품삯까지 대어 주셨다.
브라더 베르톨드는 라틴의 글을, 브라더 고트프리트는 그리스의 글을, 브라더 레기날드는 여러 지방의 말로 된 기록을 맡았다.
그들의 눈이 없었다면 내 붓은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에티코넨 가문에 감사드린다.
이 수도원의 주춧돌을 놓아 주신 것도, 담을 둘러 주신 것도, 군사가 지나가던 해에 우리를 지켜 주신 것도 그 가문이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붓을 들 수 있었던 것은 헤리베르트2세 폐하의 은혜였다.
남의 집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 집의 밥을 먹었으니, 나는 이 사실을 감추지 아니하겠다. 감추지 않는 것이 내가 지킬 수 있는 정직의 전부이다.
이제 이것을 세상에 내놓는다.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다.
내가 적은 것 가운데 잘못 안 것이 있을 터이요, 마땅히 적어야 할 것을 빠뜨린 것도 있을 터이다.
뒷사람이 더 나은 사료를 얻거든 내 말을 고쳐 주기 바란다. 고쳐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다.
다만 내가 알면서 거짓을 적지 아니하였다는 것만은 하느님 앞에 아뢸 수 있다.
바울이 이르되,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본다 하였다. 나는 희미하게 본 것을 희미한 대로 적었다.
이보다 밝게 보는 이가 오거든, 이 책은 그의 발판이 되는 것으로 족하다.
주님 강생 1429년, 복된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축일이 지난 지 사흘 되는 날, 곧 삼월 열닷샛날.
폐하께서 콘스탄티노플로 떠나신 지 여섯 달째 되는 날에,
네카르 강가 성 오딜리아 수도원의 서고에서,
부족한 종 테오도리쿠스가 이 깃펜을 내려놓는다.
번역 후기
테오도리쿠스 수도원장, 당시 중세 에티코넨 사가에 대해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의 글은 여기서 끝마친다.
우리가 그동안 이 책을 보며 알게 됐듯, 에티코넨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 이후의 일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헤리베르트3세, (비잔티움 헤리베르트 1세 황제)의 탈퇴로 촉발된 신성로마제국의 분열이 일몰의 침공 후 쇠락하던 아즈텍국에게 활로를 주었다는 것,
오스만으로 대표되는 튀르크 유목민은 유제의 등극, 심지어 그 증조할아버지가 감히 포르피로게니토스를 암살했다는 정통성의 치명적인 상처로 인해 혼란상태가 된 비잔티움 제국을 갈가리 찢으며 수십년 후 발칸-아나톨리아 군벌 시대를 열었다는 것,
이 모든 일이 이 책에서 종가라고 칭하는 슈바벤계의 프로방스-룩셈부르크계 암살에서 시작되었다 믿던 신성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 간 전쟁으로, 에티코넨의 몰락이 가속화됐다는 것.
이 글이 널리 퍼지자, 슈바벤 에티코넨 일족들의 보복으로 수도원은 불태워지고 수도원장은 잔인하고 안타까운 최후까지 당했다는 후일담까지 한다면, 이 글은 에티코넨의 마지막 전성기를 대표하는 글이자, 스스로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문헌자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자료는 살아남았다. 땅이 없어서 오히려 신상이 자유로웠던, 자칭 호엔촐레른의 사생아들은 이 책을 받자마자 자유도시에 필사를 맡겼었고, 뒤늦게 책을 전부 읽은 에티코넨들이 회수하려 해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 결과 중세 유럽 400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문인 에티코넨의 자료는 현재까지 살아남아, 1차 사료로써 돈독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한 최고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를 내놓을 때, 한무제의 보복을 피해 수대를 거친 후 사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하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수도원장 테오도리쿠스는 순진하거나, 혹은 역사의식이 너무 투철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이 죽은 이후라면 오히려 이 책이 검열되고 불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라진 홍대 입구역 헌책방 구석에서 싸게 이 책을 구입한 뒤, 늘 가지고 있던 부채감이 이제야 줄어드는 것 같아, 역자는 만족한다.
재밌는 사실 하나.
현재도 토스카나를 가면 '두번째 아내'란 욕이 간혹 쓰인다고 한다.
보통 결혼 없이 만나는 경우는 '파트너', 역사적으로 불륜 상대는 '정부'라는 말을 쓰는데 두번째 아내가 왜 그렇게 쓰이냐면, 중세 토스카나공이었던 자가 자신의 문화에 따라 아내 외에 좋아하던 여인과 공개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 두번째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선언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웃국가(라고 할 수 있다면) 로마에서 파발이 오가고, 결국 그 결혼은 무효가 된다. 토스카나공이 몰락한 이후, 두번째 아내라는 말은 '이교도(괴물)의 첩'이란 뜻, Son of ~나 쌍욕에 가까운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맞다. 그 토스카나공이 한때 에티코넨의 창으로 유명했던 만데의 하르가니 쿨름바이드고, 그가 만든 용어는 수백년이 지난 오늘도 사용되고 있다.
하르가니의 목숨은 슈바벤의 감옥에서 사라지고 그 가문도 속절없이 멸문하였지만, 그가 남긴 여파는 다른 방향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 번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모두가 처음처럼 언제나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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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번역 후기는 제가 쓴 글입니다(?)
이제 다음 몇몇화들은 부록?으로 raw 데이터를 넣고, 연대기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야겠네요.
첫댓글 (사실 엄청난 분량 때문에 중간부터 읽었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이를 이루시는 것은 여호와로다." = 진인사 대천명.
편의상 서양/동양으로 나누지, 사람 사는 게 크게 보면 다 같아요.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게 크킹이지만 그래서 계속 하는 크킹... 게임도 그렇지만 인생도 정말 어려운 거 같습니다 ㄷㄷ
@통장 인생을 제조하는 게임이자 인생게임이죠. ㅋㅋ 오죽하면 10여년만에 연어처럼 돌아와서는... 따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