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으로 가는 먼 길>
-루이즈 페니 지음/안현주 번역/피니스 아프리카에 2023년판/510page
감성적이고 섬세한 필치의 특별한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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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의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전원을 마음껏 향유하며 차분하게 작품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충분한 휴식과 사색, 자신만의 공간에서 몰입도가 높은 글쓰기, 지인들과의 편안한 대화, 맛있는 식사와 한 잔의 차가 주는 여유, 그리고 매주 주말이면 벌어지는 간소한 파티 등. 모든 작가라면, 아니 누구라도 부러워할 일상인 것이다.
이 작품은 마지막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편안하게 스케치한,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의 면면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일상을 비교하며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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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 예술가의 삶과 고뇌에 대한 작가적 통찰일 수도 있다. 작품 중에 화가로 등장하는 피터와 클라라 부부는 예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만나 결혼에 이른 커플이다. 당시 피터는 테크닉과 창의력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였던 반면에 아내 클라라는 매번 학내 전시회에 작품을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남편 피터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 속으로 자신의 실력을 접어야 했다.
승승장구하는 피터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클라라는 ‘스리 파인스’라는 전원 마을에 정착하면서 미술 작업을 다시 시도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데, ‘아방가르드’를 추구한 클라라의 작품 세계가 확장되면서 그녀의 작품이 주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 피터는 자신의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하며, 그나마 더 이상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며 클라라를 동료 예술가로서 질투하며 둘은 불화가 시작된다.
둘의 불화로 자신의 정신적 성장과 예술 세계의 또 다른 모색을 위해 피터는 집을 떠나 영감을 얻기 위한 여정을 스코틀랜드, 파리, 베네치아, 마지막으로 집이 있는 캐나다까지 쉬지 않고 방황하게 되고, 그들은 일 년 후에 집에서 재회하기로 했지만 약속한 날짜에 돌아오지 않아 클라라를 비롯한 마을 친지들이 피터를 찾기 위한 여행과 모험, 즉 이 추리소설이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예술가의 고뇌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뮤즈’와 ‘영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뮤즈’는 학예(學藝)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아홉 명의 여신이다. 대개 시나 음악을 거론하지만 넓게는 역사, 천문학 등으로 세분된다. 작가는 대부분 자신의 뮤즈를 한두 명은 염두에 두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일컬어진다. 그들은 이 영감을 통해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불세출의 작품과 발명을 하는 성과를 올리는 것이다. 이 뮤즈가 없을 경우 흔히 작가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작품 속의 피터도 그런 사람의 하나로 그리스의 고전 <오딧세이>처럼 다소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방황과 모험의 여정을 강행하게 된다.
이 작품은 삶에서 고뇌와 방황을 일삼는 그런 예술가의 초상을 여지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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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쓴 ‘루이즈 페니’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를 지닌 여성작가다. 전체 41장에서 피터와 주변 인물의 살인을 다룬 마지막 3, 4개장을 제외시킨다면 독자라면 누구나 수긍할, 지난날의 상실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인물들의 상호 교류 과정을 철저히 감정에 기반한 배경과 내용을 충실히 묘사했다고 봐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주인공 ‘아르망 가마슈’라는 전직 퀘벡주 경감을 등장시켜 피터를 찾아나서는 중간의 서술 과정이야 어떻든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이 작품을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오히려 은퇴 전 범죄세계에 몸담아 잔인한 살인범을 쫓고 검거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그럼에도 ‘가마슈’경감은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아 작품 속에서 기적적이라고 표현되고 있다-를 치유하고 일상적인 가족의 따뜻한 세계로 돌아오려고 애쓰는 ‘아르망 가마슈’의 일상 속 여정이라고 봐도 무색할 정도니까.
그런 선상에서 ‘루이즈 페니’의 다정다감하고 일상에서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는 감성적인 문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문장의 흐름을 끊어 독자의 연상을 유도하고, 음악적이고도 반복적인 시적 문구로 감성을 두 번 자극하면서 이야기의 내용보다 그 내용 속의 참된 진실을 끄집어내어 독자로 하여금 가만히 성찰케 하는 문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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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면도 있다. 사건에 관련된 마지막 살인 장면들에서 작품 전체적으로 논리적이고 필연성이 부족해보여 그 동안 지속해온 작품 속 분위기와 문맥이 다소 흔들렸다는 점이다. 수리적으로 보면 살인범들의 소행이 틀림없고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작품 초기부터 ‘루이즈 페니’가 작품 속에서 이끌어 온 인물들의 주변 배경적 상황, 철학적 비중, 그리고 그 행동들과 비교할 때 보다 더 심층적인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뒤 내용의 격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할까.
그것은 추리소설에서 노리는 극적 반전은 결코 아니었다. 그동안 친근하게 여겨졌던 인물들의 개성이 갑자기 사라지고 결과만을 향해 뛰는 과정의 난데없는 생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다른 작품보다 더 많은 생각거리와 무려 세 개의 ‘포스트 잇’을 소모할 정도로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