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인내(엡4:25-27)
2021.6.13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요즘 우리 사회에 끔찍한 아동학대와 살인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천안에서 40대 여성이 동거남의 9살 아들을 작은 여행용 가방에 넣고 짓밟아 살인한 일이 있었고, 최근에 정인이 사건이나 외할머니가 친모로 발겨진 구미3세 여아 살인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중에 법원에서 용인에서 9살 된 여자 조카를 화장실에 손발을 빨랫줄로 묶은 뒤 머리를 욕조에 넣고 물고문을 하다가 살인을 저지른 이모 부부의 재판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모(34세)는 무속인 이었고, 이모부(33세)는 국악인 이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수 없이 그들이 조카를 학대하고 심지어 개똥까지 먹인 엽기적인 동영상을 비롯해서 13개의 학대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그 동영상들은 무속인 이모 부부가 촬영한 것이다. 이모 A씨는 조카를 파란색 대형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게 한 뒤 개똥을 주며 “입에 쏙”, “장난해? 삼켜”라는 말을 하면서 개똥을 먹였다. 그 아이의 친모는 귀신을 쫒아들라면서 동생에게 복숭아나무를 사서 전달하기도 했다.
** 조카에게 개똥을 먹이고 살인한 이모 부부 뉴스(MBC): https://www.youtube.com/watch?v=n2kacs4NBfw
왜 이런 끔찍한 일들이 계속해서 더 심하게 계속될까?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교육이나 성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말세에 나타나는 영적인 문제들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그리고 이 모든 영적인 문제의 배후에는 사단 마귀가 있다(벧전5:8,엡6:11-12).
그렇다면 왜 마귀 사단은 이처럼 사람들을 미혹하고 공격할까? 성경에 의하면, 사단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시도하다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존재이다(타락한 천사).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충동질해서 자신이 저주받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했다(창세기 3장). 그러니까 사단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공격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사단은 갖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멀어지게 미혹한다. 그것들 중에서 이 시간에 집중하고 싶은 것은 분노에 관한 것이다(여기서의 분노는 부정적인 의미의 파괴적 분노를 뜻함).
사단은 분노라는 막대기를 이용해서 마음을 혼탁하게 휘젓는다. 그래서 평소 조용하던 성품의 사람도 분노심의 막대기에 휘둘리면, 순식간에 포악한 모습으로 돌변해서 영적인 질서와 권위를 파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사단은 분노심에 사로잡힌 틈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려고 시도한다. 또 어떤 때는 마음속에 침투하지 못해도 최소한 분노를 이용해서 행복한 관계(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깨뜨리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마음에 쓰나미 같은 맹렬한 분노심이 확~ 밀려올 때, 그것을 그냥 허용하고 품고 있으면 안된다. 그 분노심을 그냥 허용하면 정서적으로나 몸의 건강을 위해서나 영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극단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노심을 자극하는 사단의 공격은 신자라 할지라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마귀 사단이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심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 그 사람의 혈기를 자극해서 “욱하는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순간 작은 일이나 사소한 일에 마치 목숨이라도 걸듯이 “욱하는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단은 불신자나 초신자에게 욱하는 성질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초신자들이나 믿음이 약한 분들은 아직 세상의 습관들이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단의 ‘욱하게 하는 전술’에 속기 쉽다. 또한 나름대로 오랫동안 믿은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혈기를 자극해서 한 순간에 필요 이상의 극한 말들(저주, 육두문자, 불신앙의 말, 파괴적인 말들 등)을 내뱉게 하거나 극단적인 행동들(파괴, 폭력, 충동적인 살인이나 자살 등)을 하게 하는 마귀 사단의 전술에 속으면 안된다. 이것을 망각하고 파괴적인 분노심을 표출하면, 극단적인 말 한 마디에 스스로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고, 가정과 교회의 행복은 물론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린다(잠12:16, 잠25:23, 잠 14:17, 잠29:22).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처럼 분을 지속적으로 품는 것은 오히려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義)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평안과 모든 축복과 전도의 문이 열리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이런 모습들은 덕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성령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다(엡4:30)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26-3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20)
그러면 우리들이 분노를 품지 않는 대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믿음으로 인내(忍耐)해야 한다. 인내는 믿음의 성도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한 가지이다. 성경은 인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참16:32, 잠19:11).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성도들은 이러한 말씀들을 마음에 품고 분노의 파도 중에도 인내함으로 허물을 용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요, 덕을 세우는 성도의 마땅한 모습이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를 너무 잘 알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에서 사랑의 속성을 강조하면서 인내에 관한 것을 세 번이나 언급했다. 그만큼 인내가 성도에게 중요한 덕목이라는 말씀이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요즘 우리들이 애창하는 “행복”, “은혜”, “감사” 등의 찬양을 작곡한 손경민 목사님(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찬양사역자, 극동방송에서 다수의 찬양 프로그램 진행)이 얼마 전에 새로 발표한 찬양 중에 “인내”라는 곡이 있다. 이 찬양의 가사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다.
“때로는 삶 속에 고난의 밤이 와도 소망의 아침은 오리라.
내 삶을 붙드신 주의 손 강하시니 폭풍이 와도 두렴 없네.
인내하리 인내하리 인내하리 믿음으로 인내하리“
** "인내" 찬양(손경민 작사/작곡)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61yq5cRsjjw
그렇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의 삶을 붙드시는 주님의 손은 강하시다. 그러므로 분노심을 유발해서 행복을 빼앗아가려는 사단의 간계에 속지 말고, 예수님처럼 믿음과 사랑함으로 인내하자. T
그런데 이처럼 우리들이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겠다고 수없이 반복해서 결심하지만, 내 힘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것이 사람의 한계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충만이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무서워한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성령충만하여 마귀가 우리 안에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가 어떤 분노심이나 혈기를 자극해서 욱하는 함정에 밀어 넣으려고 해도 그것에 잘 빠지지 않게 된다. 영적인 맷집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41)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이 시대에 각종 흉악한 일들이 더욱더 심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교육이나 제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영적인 문제이다. 마귀 사단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더욱 악랄하게 각종 방법들 특히 욱하는 함정을 파놓고, 사람들의 분노심을 자극해서 사람들을 그곳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마귀의 간계를 이기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의 인내와 강력한 성령충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속히 무너진 기도의 단을 회복하자. 기도시간의 양(量)을 늘리자. 물론 무조건 기도시간이 길다고 능사는 아닐 수 있지만, 그러나 기도하는 시간의 양(量) 자체가 너무 적은 것은 곧 지금 그 사람의 속사람이 너무 나약해져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 지금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기도를 거의 못했던 분은 지금부터 10분을 목표로, 다른 분들은 최소한 지금보다 10분 이상 기도시간을 늘리기 바란다. 그래서 마귀를 간계를 이기고,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