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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흔적들
성경:갈 6:17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내 몸에 주 예수의 표를 지녔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온 몸에 다양한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사고나 질병 그리고 화상으로 인해 생긴 상처나 수술자국이 있거나 인위적으로 세긴 문신자국도 있다.
육신에 흔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있고 안 좋은 기억도 있으며 흰머리와 주름진 세월의 흔적도 있다.
또 사람이 다녀간 곳에도 어김없이 흔적들이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주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생긴 흔적들이 아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은 예수의 표(the marks of Jesus)를 가졌다고 고백하게 된 이유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파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유대인 중 몇 명이 믿음을 저 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서 바울의 사도권까지 부정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스스로 되었거나 사람들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도리”를 밝히면서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더 이상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표를 가졌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오늘 설교제목은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흔적들”이다.
헬라어 "스티그마타"는 영어로 마크(mark)라고 하는 단어는 “표”또는“흔적”을 의미한다.
고대(古代)에는 자기 소유의 노예나 짐승에게 화인(火印) 즉 불도장을 찍어서 소유권을 표시했다.
이것은 표를 찍으므로 확실한 주종(主從)관계 또는 소유를 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찍힌 표는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한번 노예로 표를 받으면 평생토록 주인의 뜻에 따라 절대 순종해야 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의 표"를 가졌다는 표현은 “나는 예수님께 소속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종이다.”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바울은 실제 주님의 사역을 위해 수 없이 많은 흔적들이 생겼다.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태장으로 맞기도 했고, 사십에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몽둥이로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고 수없는 핍박을 받았다.
바울의 몸에 생긴 상처들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동안 생긴 “그리스도의 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스스로 고난을 자처한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더 드러낼 것도, 드러내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갈6:14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표”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 생긴 어떤 흔적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흔적들
첫째 고통을 받은 흔적이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통을 받으셨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비록 예수님처럼 또 바울과 같은 고통을 받지는 않았을지라도 분명 고통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크던 작던 차이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지고 가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서 반드시 고통의 상처 또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십자가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표이며, 그 사랑으로 구원과 영생을 허락하신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십자가를 통해 죄인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되셨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생활 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얻은 상처, 고통, 눈물을 마치 주님을 위한 고통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리석고 부끄러운 모습이다.
고통을 받은 흔적은
1. 가정에서 받은 고통의 흔적이다.
가정에 여러 가지 갈등이 있지만 종교적인 갈등이 가장 크다.
종교적인 갈등은 가족들 간에 책임과 의무조차도 망각하게 만든다.
가족이기에 포기할 수 없으므로 갈등은 더욱 골이 깊어지기도 하고 결국 분산되거나 원수가 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이러한 문제로 인해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딤전5:8 만일 누군가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니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을 버리거나 떠날 수 없다.
언제 가족들이 구원받고 진리를 알고 주님께 헌신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에 가족들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갈6:10 그러므로 기회가 닿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배려하고 섬기고 나누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 중에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하고 야비하고 치사한 사람이 있을 수 도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또 아내가 십자가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자녀가 져야할 십자가일 수 있다.
가족이 져야 할 짐을 대신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았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구원받지 못하였다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고통을 받은 흔적은
2. 세상 속에서 받은 고통의 흔적이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가치관이 다르고 세상에서 삶의 목적이 다르다.
대부분 가식적이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따라서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 다양한 어려움과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억울함을 당하고 이용당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벧전2:12 이는 너희가 이방인들 가운데 행실을 바르게 하여 그들이 너희에게 악을 행하는 자라고 말하다가도 너희의 선한 일들을 보고 감찰하시는 그 날에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고 분리되고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도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벧전4:4 이방인들은 너희가 그들과 함께 같은 방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너희를 비방하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 받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할 수 있지만 참고, 할 수 없지만 믿고 기다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를 지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통을 받은 흔적은
3. 교회 때문에 받은 고통의 흔적이다.
교회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이다.
직분도 다르고 나이나 성격, 성별, 직업, 취미도 다르다.
또한 믿음의 분량도 다르고 가정 형편도 다르기에 오해가 생길 수 도 있고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도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재능과 은사를 주셨을 뿐 아니라 필요한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주셔서 자신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다.
따라서 각자 져야 할 짐이 있고 감수해야 할 십자가가 다르다.
롬14:2-3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지만 연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못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또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음이라.
사람이 많다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구경꾼이나 손님과 같은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모임으로 변질된다.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양한 흔적들이 남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머문 자리에는 쓰레기만 남을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칭찬이 남을 수도 있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그리스도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야 한다.
어느 날 자신이 있던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에 이름 없이 빛 없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다하는 지체들이 많을 때 교회는 강하고 안정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흔적들
둘째 고난을 받은 흔적이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고난을 감수하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참고 기다리면서 울기도 많이 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라고 해서 모두 주님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또는 고집 때문에 생길 수 도 있다.
육신의 고통이나 마음의 고난도 자신의 잘못이나 욕심으로 인해 얻은 것이라면 아무리 힘든 역경의 세월을 살아 왔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얼마나 고난을 받았느냐이다.
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으로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이다.
주님을 위해서 또 주님으로 인하여 받은 것이라면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주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사람들은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상과 유업을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상과 얼마나 유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고 만약 부끄러움과 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실 때 멀지 않았다고 입으로 찬송가만 부를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고난을 받은 흔적은
1.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 흔적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이 말은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거나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포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은 아무리 많고 좋은 것이라도 또 결과가 좋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도구로 일꾼으로 군사로 사용되어질 때가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눅9:23 또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주님을 믿고 따르고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상고해야 할 말씀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부인하는 일을 날마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지만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정이 어려움을 당할 수 도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주님께서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아야 한다.
어떠한 이유나 변명도 주님 앞에서 죄가 될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님을 따르기 위해 포기했다면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
만 포기 할 수 있다.
고난을 받은 흔적은
2. 헌신하기 위해 받은 흔적이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왔다는 희생의 흔적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뒤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시간을 사서 얻어야 한다.
경배를 드리고 수요기도회와 지체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빠서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과연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인색해선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절제하고 꼭 필요한 곳에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주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고전6:20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자신의 몸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또 그리스도의 군사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가졌던 '핍박과 고난의 흔적'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 마음 상하고, 눈물을 흘리고, 손해를 보고, 아픔이 있어야 한다.
고난을 받은 흔적은
3. 박해와 핍박을 받은 흔적이다.
신앙생활 잘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조롱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두려워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특히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증거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이며 또한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 일을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며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박해가 없었던 적이 없다.
딤후3:12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
적당히 눈치나 보면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박해는 물론 영적 전쟁도 없다.
왜냐하면 마귀가 볼 때 아무런 영적인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진리를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마귀는 구경만 하지 않는다.
마귀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가족과 교회지체들을 이간질 시키고 분열을 일으키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해서 치명타를 날리기 때문에 영적으로 연약한 지체나 병든 지체들은 쉽게 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깨어 있으므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어떠한 비판을 받을 지라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참고 인내하며 자신의 행실을 더욱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흔적들
셋째 성령의 열매가 열린 흔적이다.
열매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육신적인 열매를 맺을 수 도 있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도 있다.
얼마나 먼저 바른 성경을 알았느냐 보다,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느냐 보다, 얼마나 성경지식을 알고 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으며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이다.
또한 참으로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열매를 맺어놓고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맺은 열매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칭찬을 듣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지만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시간 그리고 은사를 통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열린 흔적은
1. 믿음을 실행함으로 얻은 흔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에 사로 잡혀있다.
의외로 '나는 부족합니다, 못합니다, 틀렸습니다, 안됩니다…'라고 절망적인 생각을 갖거나 낙심하여 시작조차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시기 전에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는 말도 못하고, 무지하며, 자격이 없기에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하면서 가기 싫다고 했다.
그러나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눅18:27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들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니라."고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
다윗을 택하실 때도 용모와 신장을 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실 때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천하보다 귀한 혼을 주님께로 이겨오는 특권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괜찮지만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서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는 증거다.
이처럼 자격지심을 가지고 열등감에 빠져있는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성령의 열매가 열린 흔적은
2. 자신을 낮추며 산 섬김의 흔적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교만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도 많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나 직분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런 것을 할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큰일을 맡기시거나 중요한 것부터 행하기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사울 왕이 실패한 이유는 "왕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사울왕은 스스로 교만에 빠져 선지자, 제사장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으로 번제를 드림으로 왕권을 빼앗긴 것이다.
눅14: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시더라.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신실하며, 또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한 사람은 큰일에도 부정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일에 신실한 종은 잘하였다고 칭찬과 함께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든지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고 들어내는 것은 교만에 빠진 증거다.
교만에 빠진 자들에게서는 어떠한 성령의 열매도 맺어지지 못하며 온갖 육신적인 열매들만 맺어진다.
성령의 열매가 열린 흔적은
3. 주님 사역에 동역자로서의 흔적이다.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한 것이 아니라면 게으름의 늪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이만 하면 됐지 뭐.' 또는 '이만하면 잘했다, 나도 예전에 해 봤다'고 하는 것은
곧 게으름에 빠진 증거다.
그런 사람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나님이 "끝"이라고 선언하시기 전에, "잘했다. 이젠 쉬어라"고 선언하시기 전에
스스로 결론짓고 안주해버리면 안 된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부르실 때까지 절대로 믿음의 경주를 멈추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은 아직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을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오실 때가 심히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의 대열에서 끌어 내리려고 한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나태하게 만들어서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많은 지체들로 구성된 한 몸이다.
모두 다 열심히 해도 나 한 사람이 게으르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부지런해야 한다.
나태한 농부는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