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밭을 일군 사람들(45)- 우리 시대의 명작
이미숙무용단, 이미숙 안무의 『귀천』
천상병 시인의 예술세계 입체적으로 묘사
2013년 6월 20일(목) 오후 4시, 21일(금) 오후 2시30분, 7시30분 총3회 이미숙무용단의 이미숙(의정부시립무용단 단장)은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공연된 천상병의 시, ‘귀천’을 무용극화한 『귀천』을 2013 문예회관 레퍼토리 제작개발 지원사업 선정작 후보에 등재했다. 시제(詩題)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서정적 아름다움과 아픔을 촘촘히 그려낸 수작이었다.
안무가 이미숙(李美淑, Lee Mee Sook)은 1958년 1월 13일(음) 출생했다. 청주사범대, 중앙대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무용인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이수자로서 자신의 기본기를 수양한 무용인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그녀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장원, 진주개천한국무용제 전국대회 대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귀천』을 우리 모두의 행복한 예작(藝作)의 대상, 격상의 전범(典範)으로 만들었다. 이미숙은10여 년간 천상병의 예술세계를 무대화 하는 작업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귀천』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융복합 공연, 총체예술의 우수성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귀천』은 청량감이 넘치는 시들로 빚은 지고지순의 ‘사랑’과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연기, 약속을 지키듯 잘 배치된 사려심이 극적 구성, 정직한 디테일이 관객 모두에게 신뢰받는 작품이 된 주된 요인이 되었다. 특히 국민 무용극을 지향하는 이 작품은 형이상학적 상위규범이나 난해한 예술지향적 행위를 엄격하게 배제한다. 그래서 노련한 성찰이 돋보인다.
『귀천』은 프롤로그를 포함하여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프롤로그 2.눈물의 브람스(남자 솔로) 3. 혼돈-동백림사건(남자군무) 4.사랑의 노래(여자군무) 5.날개 잃은 새(남자군무) 6. 두려움과 고통-시인의 고통(배우) 7.그리움(여자군무) 8.만남-날개 잃은 새 짝이 되어(듀엣) 9.행복(여자군무) 10.바람의 길(배우)은 시인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이미숙은 청록의 푸르른 연기가 보랏빛으로 변하여 짙은 오일 페인팅 분위기가 나는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어른들만의 잔치, 아이들만의 유희를 우회한 자연스럽게 모두가 작품의 매력을 체득하게 만드는 테크닉을 소지하고 있다. 많은 춤 친구를 만들어 내고, 그들이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경험하게 하여 행복한 그녀의 팬들이 되게 만든다.
『귀천』을 만들어 내는 뒷 무대의 주인공들, 소홍삼의 대본은 시 이상의 묘사로 빛나고 있고, 윤우영의 연출은 춤과 연결하는 맵시가 깔끔하고, 원동규의 조명은 묘사가 현란하다. 현을 주조로 한 강상구의 음악, 환상을 창조하는 무대 디자인과 이호준의 의상, 창의적 영상의 김진태와 장창원, 자연스런 분장의 이재형 아티스트들의 호흡이 명작을 빚어냈다.
60인조 오케스트라가 내는 분위기로 만들어진 웅장하고 섬세한 선율의 리듬감이 떨어지는 밤하늘에 초승달 위에 앉아 시를 쓰는 분위기, 영롱한 밤하늘, 별동별이 떨어진다. 시가 낭송된다.이 작품은 프롤로그부터 관객을 압도하며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웃음소리, 노래로 모든 것을 다 용서하는 ‘다 괜찮다’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을 담는다.
이미숙은 낭만적 서사와 달리, 브람스교향곡 제4번 1악장에 재빨리 1967년 당시의 동백림 사건(Ost Berlin Geschichte)을 진입시킨다. 사랑과 시련을 표현해내며 여백 없이 들어앉는 음악은 가시적 무진법(舞陣法)으로 격동에 휘말린 청년들을 묘사한다. 다양한 비주얼로 압도하는 무대는 아련한 추억 속에 희생된 천상병을 일선택(一選擇)한다.
그녀는 솔로와 군무를 적절히 배치시키면서 긴장과 이완, 완급을 조절해내는 노련함을 보인다.대공 분실의 고문을 상징하는 조명이 내려오고, 춤 연기자는 시인의 분신, 고문 당사자의 양면성을 그려낸다. 시인은 처절한 고통의 춤을 춘다. 홀로 남겨진 여인, 이어 여자군무, 시인을 위로하는 위무, 페인이 되어 출옥하는 시인, 병실과 연결되고 극이 구성된다.
‘두려움과 고통-시인의 고통’을 연기해내는 이승훈은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얘기하는 시를 낭송하면서 서정을 배가시킨다. 자작나무 숲을 걷는 듯한 편안한 톤은 동정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도구이다. 바람소리, 피아노 소리를 두고 쓰러지고, 이를 위로하는 여성군무가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이 작품에는 시들이 주인공이 되어 소리로 영상으로 등장한다.
이미숙, 격정의 시대의 아픔을 울림의 씻김으로 정화해낸 『귀천』으로 헤집어 냄이 아니라 보다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심리묘사, 이동과 배치의 묘, 사운드의 배치,성공적 크로스 오버 등을 통해 그녀가 추구해온 창작무의 흐름을 엿보게 한다. 그녀는 1992년 자신의 이미숙무용단을 창단한 이래, 어울림의 춤, 농축의 춤을 연구해왔다.
이미숙은 위대한 문학이 훌륭한 춤의 소재가 되고, ‘원 소스, 멀티 유스’의 기본임을 일찍 감지한 예술적 가치 고양과 미학적 가치를 소지할 뿐 아니라 관객들과 정서를 공유하여 소통하며 이번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의지가 불러일으킨 공연의 구축물은 관객의 환호와 뜨거운 호응이었다. 척박한 토양에서 유월을 피어낸 오랑캐꽃 같은 강인함과 열정의 결과였다.
특히 익산 시립무용단(예술감독 이길주)과의 협연은 시립무용단 존재와 그 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창단 10주년을 맞은 의정부시립무용단의 성과가 드러나는 자리였다. 특히 호남 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익산시립무용단과의 교류는 지역 무용단이 선의 경쟁무대가 되어 상호보완과 발전을 꾀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마법의 밤의 요체는 다분히 작위적이다. 안무가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 이 도시에서의 춤의 사회적 행위를 통해, 그 취미를 점층적 발전, 정신적 상부구조에 접목시키려는 것 등이 그 정의를 대변해준다. 시각적 요소, 색감, 에너지의 분출이 리듬과 움직임과 결부되어 순간의 아름다움에서 영속으로 이어지는 꿈의 조형을 창조한다.
익산시립무용단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춤『왕의 남자』를, 의정부시립무용단은 사랑Ⅰ(춘향과 몽룡의 사랑), 사랑Ⅱ(꼭두쇠의 사랑), 의정부 비보이와 함께 하는『동방의 빛, 한국의 소리』를 선보였다. 『사랑Ⅰ』, 『사랑Ⅱ』,『왕의 남자』,『동방의 빛, 한국의 소리』에서 보여주는 연륜과 솔로와 듀엣, 군무에서의 세기(細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춤 단체의 발전 가상선(imaginary line)에서 시적 표현(poeia)에서의 다양성, 춤 착상(invention), 구성(disposition)에서 보이는 인간의 본성과 상황은 주제에의 밀착, 흥미인자(因子)를 발견하게끔 만든다. 춤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의 적절성을 결정짓는 정조(情調)의 통일성도 가미된다. 정형을 추구하는 억척스러움은 오히려 솜씨(tour de force)이다.
의정부에 불어온 바람은 퇴적층의 핵심을 뒤집는 연행(演行)으로 자극의 꼭짓점으로 지방자치 단체 간의 은밀한 속살, 그 고민과 항변을 우호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답연(答演)이 이루어지는 공간, 익산에서의 7월17일 합동 공연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새로운 문화 실크로드의 개척이다.관객 모두가 행복해지는 의롭고 선한 작업이다.
밤나무 숲 아래, 춤으로 초록을 피워낸 이미숙, 이길주, 넓은 가슴으로 대지를 개척하고 싶은 야망으로 무향전법(舞香典範)으로 『춤 ․ 향 바람에 흩날릴제』를 위한 의식을 거행했다.흙은 밟은 버선발 같은 간절함으로, 땀으로 황금종려를 만들어 선조를 향한 제(祭)와 ‘우리’로 이름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평강과 안녕을 빌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늘 있는 공연이지만 ‘열악’에서 여유롭게 물결치는 ‘춤’이라는 연인을 두고 벌이는 게임은 흥미진진하다. 난장 같은 무대에서 다양한 좌판을 벌이는 이미숙의 창작세계는 칠흑(漆黑)의 산봉우리를 헤치고 이슬을 향해 전진하는 느린 걸음의 산양(山羊)에 비견된다. ‘느림의 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은 작품 곳곳에 투사된다.
십년의 나이테를 가지기 때문에 의정부시립무용단은 보다 빠르게(piu mosso) 다양하게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발상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 하모니를 바탕으로 형이상학적 리듬감과 움직임으로 만다라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지속하면서 ‘교묘하게 표현되어진 공연’ 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공연, 소중한 공연이었다.
장석용(문화비평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 의정부시문화상 수상
○ 의정부시 여성상 수상
○ 경기도 여성상 수상
○ (사)한국무용협회 의정부시지부장
○ 이미숙무용단 단장
○ 이미숙도듬무용단 단장
○ (사)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경기북부지회장
○ 의정부시립무용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