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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Nidāna-vagga),
제12주제 인연 상윳따 Nidāna-saṁyutta 제7장 대품 Maha vagga
명상 경(S12:66)
Sammass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세존께서는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2.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안으로 명상을 하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안으로 명상을 합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안으로 명상을 하는가?”
그러자 그 비구는 설명을 하였지만 그 설명은 세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했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4.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 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호지할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5.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안으로 명상을 한다. ‘이 세상에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이 생겨난다. 그러면 이 괴로움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무엇이 있을 때 늙음∙죽음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늙음∙죽음이 없는가?’라고.
그는 명상하면서 이와 같이 안다. ‘이 세상에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이 생겨난다. 이 괴로움은 재생의 근거가 그 근원이며, 재생의 근거로부터 일어나고, 재생의 근거로부터 생기며, 재생의 근거로부터 발생한다. 재생의 근거가 있을 때 늙음∙죽음이 있고 재생의 근거가 없을 때 늙음∙죽음이 없다.’라고.
그는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과 일치함으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꿰뚫어 안다. 그는 여기에 준해서 도를 닦고 법에 따라서 실천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모든 괴로움을 바르게 멸진하기 위해서, 늙음∙죽음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다고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는 다시 안으로 더 명상을 한다. ‘그러면 재생의 근거는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무엇이 있을 때 재생의 근거가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재생의 근거가 없는가?’라고.
그는 안으로 명상을 하면서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재생의 근거는 갈애가 그 근원이며, 갈애로부터 일어나고, 갈애로부터 생기며, 갈애로부터 발생한다. 갈애가 있을 때 재생의 근거가 있고 갈애가 없을 때 재생의 근거가 없다.’라고.
그는 재생의 근거를 꿰뚫어 알고, 재생의 근거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재생의 근거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재생의 근거의 소멸과 일치함으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꿰뚫어 안다. 그는 여기에 준해서 도들 닦고 법에 따라서 실천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모든 괴로움을 바르게 멸진하기 위해서, 재생의 근거를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다고 한다.”
7. “비구들이여, 그는 다시 더 안으로 명상을 한다. ‘그러면 갈애는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무엇이 있을 때 갈애가 있고 무엇이 없을 때 갈애가 없는가?’라고.
그는 안으로 명상을 하면서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코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몸은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8. “비구들이여, 과거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보았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길렀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갈애를 길렀던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길렀고, 재생의 근거를 길렀던 자들은 괴로움을 길렀으며, 괴로움을 길렀던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였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였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였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보게 된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갈애를 기를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기를 것이고, 재생의 근거를 기를 자들은 괴로움을 기를 것이고, 괴로움을 기를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할 것이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할 것이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현재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본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갈애를 기르는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기르고, 재생의 근거를 기르는 자들은 괴로움을 기르며, 괴로움을 기르는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9.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청동으로 만든 잔에 좋은 색깔과 좋은 냄새와 좋은 맛을 가진 마실 것이 있는데 독이 섞여 있다 하자. 그때 더위에 시달리고 더위에 압도되었으며, 지쳐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람이 그곳으로 온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여보게, 청동으로 만든 이 잔에는 좋은 색깔과 좋은 냄새와 좋은 맛을 가진 마실 것이 있는데 독이 섞여 있다네. 원한다면 마시게. 그대가 그것을 마시면 색깔이나 냄새나 맛을 좋을 것이네. 그러나 마시고 나면 죽게 되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네.’라고 한다 하자. 그때 그 사람이 숙고하지도 않고 급작스럽게 청동으로 만든 잔에 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마셔버린다 하자. 그러면 그는 그 때문에 죽게 되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과거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보았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길렀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보게 되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본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갈애를 기르는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기르고, 재생의 근거를 기르는 자들은 괴로움을 기르며, 괴로움을 기르는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나 과거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무상하다 보고 괴로움이라 보고 무아라 보고 병이라 보고 두려움이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갈애를 제거하였다.
갈애를 제거하였던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였고,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였던 자들은 괴로움을 제거하였으며, 괴로움을 제거하였던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였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였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였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 현재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ㅣ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무상하다 보고 괴로움이다 보고 무아라 보고 병이라 보고 두려움이라 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갈애를 제거한다.
갈애를 제거하는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고,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는 자들은 괴로움을 제거하며, 괴로움을 제거하는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11.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청동으로 만든 잔에 좋은 색깔과 좋은 냄새와 좋은 맛을 가진 마실 것이 있는데 독이 섞여 있다 하자. 그때 더위에 시달리고 더위에 압도되었으며 지쳐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람이 그곳으로 온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여보게, 청동으로 만든 이 잔에는 좋은 색깔과 좋은 냄새와 좋은 맛을 가진 마실 것이 있는데 독이 섞여 있다네. 원한다면 마시게. 그대가 그것을 마시면 색깔이나 냄새나 맛을 좋을 것이네. 그러나 마시고 나면 죽게 되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네.’라고 한다 하자.
비구들이여, 그때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하자. ‘나는 이 갈증을 물로 해소하거나 커드로 해소하거나 미숫가루 물로 해소하거나 죽으로 해소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것을 마시지 않으리라. 내가 이것을 마시면 오랜 세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될 것이다.’라고.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마시지 않고 거부한다 하자. 그러면 그는 그 때문에 죽지도 않을 것이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12.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과거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보았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길렀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미래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즐거움이라 보고 자아라 보고 병 없음이라 보고 안전이라 보았다면 그들은 모두 갈애를 길렀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에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무상하다 보고 괴로움이라 보고 무아라 보고 병이라 보고 두려움이라 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갈애를 제거한다.
갈애를 제거하는 자들은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고,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는 자들은 괴로움을 제거하며, 괴로움을 제거하는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saṃyutta nikāya 12
7. mahāvagga
66. Sammasasutta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kurūsu viharati kammāsadhammaṃ nāma kurūnaṃ nigamo.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sammasatha no tumhe, bhikkhave, antaraṃ sammasan”ti.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ṃ etadavoca: “ahaṃ kho, bhante, sammasāmi antaraṃ sammasan”ti. “Yathā kathaṃ pana tvaṃ, bhikkhu, sammasasi antaraṃ sammasan”ti? Atha kho so bhikkhu byākāsi. Yathā so bhikkhu byākāsi na so bhikkhu bhagavato cittaṃ ārādhesi.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etassa, bhagavā, kālo; etassa, sugata, kālo; yaṃ bhagavā antaraṃ sammasaṃ bhāseyya.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Tenahānanda,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Idha, bhikkhave, bhikkhu sammasamāno sammasati antaraṃ sammasaṃ: ‘yaṃ kho idaṃ anekavidhaṃ nānappakārakaṃ dukkhaṃ loke uppajjati jarāmaraṇaṃ. Idaṃ kho dukkhaṃ kiṃnidānaṃ kiṃsamudayaṃ kiṃjātikaṃ kiṃpabhavaṃ, kismiṃ sati jarāmaraṇaṃ hoti, kismiṃ asati jarāmaraṇaṃ na hotī’ti? So sammasamāno evaṃ jānāti: ‘yaṃ kho idaṃ anekavidhaṃ nānappakārakaṃ dukkhaṃ loke uppajjati jarāmaraṇaṃ. Idaṃ kho dukkhaṃ upadhinidānaṃ upadhisamudayaṃ upadhijātikaṃ upadhipabhavaṃ, upadhismiṃ sati jarāmaraṇaṃ hoti, upadhismiṃ asati jarāmaraṇaṃ na hotī’ti. So jarāmaraṇañca pajānāti jarāmaraṇasamudayañca pajānāti jarāmaraṇanirodhañca pajānāti yā ca jarāmaraṇanirodhasāruppagāminī paṭipadā tañca pajānāti. Tathāpaṭipanno ca hoti anudhammacārī.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sabbaso sammā dukkhakkhayāya paṭipanno jarāmaraṇanirodhāya.
Athāparaṃ sammasamāno sammasati antaraṃ sammasaṃ: ‘upadhi panāyaṃ kiṃnidāno kiṃsamudayo kiṃjātiko kiṃpabhavo, kismiṃ sati upadhi hoti, kismiṃ asati upadhi na hotī’ti? So sammasamāno evaṃ jānāti: ‘upadhi taṇhānidāno taṇhāsamudayo taṇhājātiko taṇhāpabhavo, taṇhāya sati upadhi hoti, taṇhāya asati upadhi na hotī’ti. So upadhiñca pajānāti upadhisamudayañca pajānāti upadhinirodhañca pajānāti yā ca upadhinirodhasāruppagāminī paṭipadā tañca pajānāti. Tathāpaṭipanno ca hoti anudhammacārī.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sabbaso sammā dukkhakkhayāya paṭipanno upadhinirodhāya.
Athāparaṃ sammasamāno sammasati antaraṃ sammasaṃ: ‘taṇhā panāyaṃ kattha uppajjamānā uppajjati, kattha nivisamānā nivisatī’ti? So sammasamāno evaṃ jānāti—yaṃ kh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Kiñca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Cakkhu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Sot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 pe … ghān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 jivh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 kāy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 man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Ye hi keci, bhikkhave,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niccato addakkhuṃ sukhato addakkhuṃ attato addakkhuṃ ārogyato addakkhuṃ khemato addakkhuṃ. Te taṇhaṃ vaḍḍhesuṃ. Ye taṇhaṃ vaḍḍhesuṃ te upadhiṃ vaḍḍhesuṃ. Ye upadhiṃ vaḍḍhesuṃ te dukkhaṃ vaḍḍhesuṃ. Ye dukkhaṃ vaḍḍhesuṃ te na parimucciṃsu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iṃsu dukkhasmāti vadāmi.
Yepi hi keci, bhikkhave, anāga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niccato dakkhissanti sukhato dakkhissanti attato dakkhissanti ārogyato dakkhissanti khemato dakkhissanti. Te taṇhaṃ vaḍḍhissanti. Ye taṇhaṃ vaḍḍhissanti te upadhiṃ vaḍḍhissanti. Ye upadhiṃ vaḍḍhissanti te dukkhaṃ vaḍḍhissanti. Ye dukkhaṃ vaḍḍhissanti te na parimucciss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issanti dukkhasmāti vadāmi.
Yepi hi keci, bhikkhave,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niccato passanti sukhato passanti attato passanti ārogyato passanti khemato passanti. Te taṇhaṃ vaḍḍhenti. Ye taṇhaṃ vaḍḍhenti te upadhiṃ vaḍḍhenti. Ye upadhiṃ vaḍḍhenti te dukkhaṃ vaḍḍhenti. Ye dukkhaṃ vaḍḍhenti te na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Seyyathāpi, bhikkhave,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Tamenaṃ evaṃ vadeyyuṃ: ‘ayaṃ te, ambho purisa,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Sace ākaṅkhasi piva. Pivato hi kho taṃ chādessati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as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So taṃ āpānīyakaṃsaṃ sahasā appaṭisaṅkhā piveyya, nappaṭinissajjeyya. So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 pe … anāgatamaddhānaṃ … pe …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niccato passanti sukhato passanti attato passanti ārogyato passanti khemato passanti, te taṇhaṃ vaḍḍhenti. Ye taṇhaṃ vaḍḍhenti te upadhiṃ vaḍḍhenti. Ye upadhiṃ vaḍḍhenti te dukkhaṃ vaḍḍhenti. Ye dukkhaṃ vaḍḍhenti te na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Ye ca kho keci, bhikkhave,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aniccato addakkhuṃ dukkhato addakkhuṃ anattato addakkhuṃ rogato addakkhuṃ bhayato addakkhuṃ, te taṇhaṃ pajahiṃsu. Ye taṇhaṃ pajahiṃsu te upadhiṃ pajahiṃsu. Ye upadhiṃ pajahiṃsu te dukkhaṃ pajahiṃsu. Ye dukkhaṃ pajahiṃsu te parimucciṃsu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cciṃsu dukkhasmāti vadāmi.
Yepi hi keci, bhikkhave, anāga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aniccato dakkhissanti dukkhato dakkhissanti anattato dakkhissanti rogato dakkhissanti bhayato dakkhissanti, te taṇhaṃ pajahissanti. Ye taṇhaṃ pajahissanti … pe … parimuccissanti dukkhasmāti vadāmi.
Yepi hi keci, bhikkhave,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aniccato passanti dukkhato passanti anattato passanti rogato passanti bhayato passanti, te taṇhaṃ pajahanti. Ye taṇhaṃ pajahanti te upadhiṃ pajahanti. Ye upadhiṃ pajahanti te dukkhaṃ pajahanti. Ye dukkhaṃ pajahanti te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Seyyathāpi, bhikkhave,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Tamenaṃ evaṃ vadeyyuṃ: ‘ayaṃ te, ambho purisa,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Sace ākaṅkhasi piva. Pivato hi kho taṃ chādessati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as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Atha kho, bhikkhave, tassa purisassa evamassa: ‘sakkā kho me ayaṃ surāpipāsitā pānīyena vā vinetuṃ dadhimaṇḍakena vā vinetuṃ bhaṭṭhaloṇikāya vā vinetuṃ loṇasovīrakena vā vinetuṃ, na tvevāhaṃ taṃ piveyyaṃ, yaṃ mama assa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So taṃ āpānīyakaṃsaṃ paṭisaṅkhā na piveyya, paṭinissajjeyya. So tatonidānaṃ n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aniccato addakkhuṃ dukkhato addakkhuṃ anattato addakkhuṃ rogato addakkhuṃ bhayato addakkhuṃ, te taṇhaṃ pajahiṃsu. Ye taṇhaṃ pajahiṃsu te upadhiṃ pajahiṃsu. Ye upadhiṃ pajahiṃsu te dukkhaṃ pajahiṃsu. Ye dukkhaṃ pajahiṃsu te parimucciṃsu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cciṃsu dukkhasmāti vadāmi.
Yepi hi keci, bhikkhave, anāgatamaddhānaṃ … pe …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taṃ aniccato passanti dukkhato passanti anattato passanti rogato passanti bhayato passanti, te taṇhaṃ pajahanti. Ye taṇhaṃ pajahanti te upadhiṃ pajahanti. Ye upadhiṃ pajahanti te dukkhaṃ pajahanti. Ye dukkhaṃ pajahanti te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ī”ti.
saṃyutta nikāya 12
connected discourses on causation
66. Exploration
Thus have I heard.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mong the Kurus, where there was a town of the Kurus named Kammasadamma. There the Blessed One addressed the bhikkhus thus: “Bhikkhus!”
“Venerable sir!” those bhikkhus replied. The Blessed One said this:
“Do you engage in inward exploration, bhikkhus?”
When this was said, one bhikkhu said to the Blessed One: “Venerable sir, I engage in inward exploration.”
“How do you engage in inward exploration, bhikkhu?”
The bhikkhu then explained but the way he explained did not satisfy the Blessed One. Then the Venerable Ānanda said: “Now is the time for this, Blessed One! Now is the time for this, Fortunate One! Let the Blessed One explain inward exploration. Having heard it from the Blessed One, the bhikkhus will remember it.”
“Then listen and attend closely, Ānanda, I will speak.”
“Yes, venerable sir,” the bhikkhus replied. The Blessed One said this:
“Here, bhikkhus, when engaged in inward exploration, a bhikkhu explores thus: ‘The many diverse kinds of suffering that arise in the world headed by aging-and-death: what is the source of this suffering, what is its origin, from what is it born and produced? When what exists does aging-and-death come to be? When what does not exist does aging-and-death not come to be?’
“As he explores he understands thus: ‘The many diverse kinds of suffering that arise in the world headed by aging-and-death: this suffering has acquisition as its source, acquisition as its origin; it is born and produced from acquisition. When there is acquisition, aging-and-death comes to be; when there is no acquisition, aging-and-death does not come to be.’
“He understands aging-and-death,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on that is in conformity with its cessation. He practises in that way and conducts himself accordingly. This is called a bhikkhu who is practising for the utterly complete destruction of suffering, for the cessation of aging-and-death.
“Then, engaging further in inward exploration, he explores thus: ‘What is the source of this acquisition, what is its origin, from what is it born and produced? When what exists does acquisition come to be? When what is absent does acquisition not come to be?’
“As he explores he understands thus: ‘Acquisition has craving as its source, craving as its origin; it is born and produced from craving. When there is craving, acquisition comes to be; when there is no craving, acquisition does not come to be.’
“He understands acquisition,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on that is in conformity with its cessation. He practises in that way and conducts himself accordingly. This is called a bhikkhu who is practising for the utterly complete destruction of suffering, for the cessation of acquisition.
“Then, engaging further in inward exploration, he explores thus: ‘When this craving arises, where does it arise? When it settles down, upon what does it settle?’
“As he explores he understands thus: ‘Whatever in the world has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it is here that this craving arises when it arises; it is here that it settles when it settles down.’ And what in the world has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The eye has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in the world: it is here that this craving arises when it arises; it is here that it settles when it settles down. So too the ear, the nose, the tongue, the body, and the mind have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it is here that this craving arises when it arises; it is here that it settles when it settles down.
“Bhikkhus,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in the past regarde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permanent, as happiness, as self, as healthy, as secure: they nurtured craving. In nurturing craving they nurtured acquisition. In nurturing acquisition they nurtured suffering. In nurturing suffering they were not freed from birth, aging, and death; they were not freed from sorrow, lamentation, pain, displeasure, and despair; they were not freed from suffering, I say.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in the future will regar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permanent, as happiness, as self, as healthy, as secure: they will nurture craving. In nurturing craving they will nurture acquisition. In nurturing acquisition they will nurture suffering. In nurturing suffering they will not be freed from birth, aging, and death; they will not be freed from sorrow, lamentation, pain, displeasure, and despair; they will not be freed from suffering, I say.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at present regar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permanent, as happiness, as self, as healthy, as secure: they are nurturing craving. In nurturing craving they are nurturing acquisition. In nurturing acquisition they are nurturing suffering. In nurturing suffering they are not freed from birth, aging, and death; they are not freed from sorrow, lamentation, pain, displeasure, and despair; they are not freed from suffering, I say.
“Suppose, bhikkhus, there was a bronze cup of a beverage having a fine colour, aroma, and taste, but it was mixed with poison. Then a man would come along, oppressed and afflicted by the heat, tired, parched, and thirsty. They would tell him: ‘Good man, this beverage in the bronze cup has a fine colour, aroma, and taste, but it is mixed with poison. Drink it if you wish. If you drink it, it will gratify you with its colour, aroma, and taste, but by drinking it you will meet death or deadly suffering.’ Suddenly, without reflecting, he would drink the beverage—he would not reject it—and thereby he would meet death or deadly suffering.
“So too, bhikkhus,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in the past … in the future ... at present regar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permanent, as happiness, as self, as healthy, as secure: they are nurturing craving. In nurturing craving ... they are not freed from suffering, I say.
“Bhikkhus,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in the past regarde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impermanent, as suffering, as nonself, as a disease, as fearful: they abandoned craving. In abandoning craving they abandoned acquisition. In abandoning acquisition they abandoned suffering. In abandoning suffering they were freed from birth, aging, and death; they were freed from sorrow, lamentation, pain, displeasure, and despair; they were freed from suffering, I say.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in the future will regar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impermanent, as suffering, as nonself, as a disease, as fearful: they will abandon craving. In abandoning craving ... they will be freed from suffering, I say.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at present regar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impermanent, as suffering, as nonself, as a disease, as fearful: they are abandoning craving. In abandoning craving ... they are freed from suffering, I say.
“Suppose, bhikkhus, there was a bronze cup of a beverage having a fine colour, aroma, and taste, but it was mixed with poison. Then a man would come along, oppressed and afflicted by the heat, tired, parched, and thirsty. They would tell him: ‘Good man, this beverage in the bronze cup has a fine colour, aroma, and taste, but it is mixed with poison. Drink it if you wish. If you drink it, it will gratify you with its colour, aroma, and taste, but by drinking it you will meet death or deadly suffering. ’ Then the man would think: ‘I can quench my thirst with water, whey, porridge, or soup, but I should not drink that beverage, since to do so would lead to my harm and suffering for a long time.’ Having reflected, he would not drink the beverage but would reject it, and thereby he would not meet death or deadly suffering.
“So too, bhikkhus,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in the past … in the future ... at present regard that in the world with a pleasant and agreeable nature as impermanent, as suffering, as nonself, as a disease, as fearful: they are abandoning craving. In abandoning craving ... they are freed from suffering, I say.”
잡아함경 제12권
291. 촉경(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 '안의 접촉법[內觸法]'에 대하여 너희들은 이해하느냐?"
이 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안의 접촉법에 대하여 저희들은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이 때 그 비구는 부처님 앞에서 이러이러하다고 스스로 설명하였지만, 이러이러하다는 그 설명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만족해하지 않으셨다.
그 때 존자 아난(阿難)은 부처님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법(法)과 율(律)에서 말하는 안의 접촉법은 이 비구가 말한 것과는 다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거룩한 법과 율의 안의 접촉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설법을 들으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이 모든 비구들이 안의 접촉에 대하여 이해하려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만일 중생들에게 갖가지 많은 괴로움이 생긴다면, 이 괴로움은 무엇이 그 인(因)이 되고, 무엇이 발생[集]이 되며, 무엇이 태어남[生]이 되고, 무엇이 접촉[觸]이 되는가?' 하고 이와 같이 이해할 때,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괴로움은 억파제(億波提)3)가 그 인이 되고, 억파제의 발생이며, 억파제의 태어남이 되고, 억파제가 변한 것이다.
또 비구들아, 그 안의 접촉법이나 또는 억파제는 무엇이 인이 되고, 무엇이 발생이 되며, 무엇이 태어남이 되고, 무엇이 접촉이 되는가? 그것을 이해하였을 때, 또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억파제는 애욕[愛]이 인이 되고, 애욕이 발생이 되며, 애욕이 태어남이 되고, 애욕이 접촉이 되느니라.
또 비구들아, 안의 접촉법을 이해하려면 마땅히 또 알아야 한다. 애욕은 무엇이 인이 되고, 무엇이 발생이 되며, 무엇이 태어남이 되고, 무엇이 접촉이 되는가? 이와 같이 이해할 때,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간에서 사랑하는 단정한 색, 거기서 애욕(愛欲)이 생기고 또 생기며, 매이고 또 매이며, 머무르고 또 머무른다.
만일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하는 단정한 색에 대해서 영원하다는 생각, 한결같다는 생각, 안온하다는 생각, 병이 없다는 생각,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또 본다면, 곧 그 색에 대한 애욕은 더 늘어나고 자라게 된다. 애욕이 더 늘어나고 자라게 된 뒤에는 억파제가 더 늘어나고 자라나게 되며, 억파제가 더 늘어나고 자라난 뒤에는 괴로움이 더 늘어나고 자라나게 되며, 괴로움이 더 늘어나고 자라난 뒤에는 곧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는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하리라.
비유하면 길 가에 맑고 시원한 못이 있어 향기와 맛이 모두 훌륭한데, 어떤 사람이 그 안에 독을 넣었다고 하자. 따뜻한 봄날에 길 가던 모든 사람들은 바람과 더위에 목이 몹시 말라 다투어 찾아와 마시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사부(士夫)들이여, 이 맑고 시원한 못물은 향기와 맛은 모두 훌륭하나 그 속에는 독이 있으니 여러분은 마시지 마십시오. 만일 마신다면 당신들은 죽거나 혹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목마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것을 마셨다. 그들은 비록 좋은 맛은 얻었지만 잠깐 사이에 혹 죽거나 혹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였다.
그와 같이 사문(沙門) 바라문(婆羅門)들이 세간에서 사랑할만한 단정한 색을 보고, 영원하다는 소견, 한결같다는 소견, 안온하다는 소견, 병이 없다는 소견,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을 일으킨다면 ……(내지)……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할 만한 단정한 색에 대해서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공한 것이고 나라고 할 것이 아니다'라고 관찰한다면, 그 애욕은 곧 사라진다. 애욕이 사라졌기 때문에 억파제가 사라지고, 억파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괴로움이 사라지며, 괴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사라지느니라.
비유하면 길 가에 맑고 시원한 못이 있어 향기와 맛이 모두 훌륭한데, 어떤 사람이 그 안에 독을 넣었다고 하자. 따뜻한 봄날에 길 가던 모든 사람들이 바람과 더위에 목이 몹시 말라 다투어 찾아와 마시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사부(士夫)들이여, 이 맑고 시원한 못물은 향기와 맛이 모두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독이 있으니 여러분은 마시지 마십시오. 만일 마신다면 당신들은 죽거나 혹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이 물에는 독이 있다. 만일 마신다면 나는 죽거나 혹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나는 우선 목마른 것을 참고 마른 보릿가루를 먹자'고 생각하고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와 같이 사문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할 만한 색에 대해서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무상한 것이고[無常], 괴로운 것이며[苦], 공한 것이고[空], 나라고 할 것이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한다면 ……(내지)……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이 법에 대해서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깨닫고,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과거나 미래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은 길을 이와 같이 관찰하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3) 팔리어로는 upadhi이고 우파제(優波提)라고도 하며 유의(有依) 소의(所依), 태어남의 요소라는 뜻이다. 즉 모든 법이 의지하는 발생의 조건이므로 의인(依因)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새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인 우파제가 없어진다.
雜阿含經
SA 291 (二九一) 觸法
如是我聞: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爾時,世尊告諸比丘:「我說內觸法,汝等為取不?」
時,有異比丘從座起,整衣服,稽首禮足,合掌白佛言:「世尊!所說內觸法,我已取也。」時,彼比丘於佛前如是如是自記說。如是如是世尊不悅。
爾時,尊者阿難在佛後執扇扇佛,佛告阿難:「如聖法、律內觸法,異於此比丘所說。」
阿難白佛:「今正是時,唯願世尊為諸比丘說賢聖法、律內觸法,諸比丘聞已,當受奉行。」
佛告阿難:「善哉!諦聽,當為汝說。此諸比丘取內觸法,應如是思惟:『若眾生所有種種眾苦生,此苦何因、何集、何生、何觸?』作如是取時,當知此苦億波提因、億波提集、億波提生、億波提轉。
「復次,比丘內觸法,又億波提何因、何集、何生、何觸?彼取時當復知億波提愛因、愛集、愛生、愛觸。
「復次,比丘取內觸法,當復知愛何因、何集、何生、何觸。如是取時當知世間所念諦正之色,於彼愛生而生、繫而繫、住而住。
「若諸沙門、婆羅門於世間所念諦正之色,作常想、恒想、安隱想、無病想、我想、我所想而見,則於此色愛增長;愛增長已,億波提增長,億波提增長已,苦增長;苦增長已,則不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我說彼不解脫苦。譬如路側清涼池水,香味具足,有人痢著中,陽春之月,諸行路者風熱渴逼,競來欲飲。有人語言:『士夫!此是清涼,色香味具足,然中有毒,汝等勿飲。若當飲者,或令汝死,或近死苦。而彼渴者不信而飲,雖得美味,須臾或死,或近死苦。』如是,沙門婆羅門見世間可念端政之色,作常見、恒見、安隱見、無病見、我、我所見,乃至不得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若諸沙門、婆羅門於世間可念端政之色觀察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苦、空、非我,彼愛則離,愛離故億波提離,億波提離故則苦離,苦離故則生、老、病、死、憂、悲、惱、苦離。譬如路側清涼池水,香味具足,有人痢著中,陽春之月,諸行路者風熱渴逼,競來欲飲,有人語言:『此水有毒!汝等勿飲,若當飲者,或令汝死,或近死苦。』彼則念言:『此水有毒,若當飲者,或令我死,或近死苦,我且忍渴,食乾麨飯,不取水飲。』如是,沙門、婆羅門於世間可念之色觀察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苦、空、非我,乃至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是故,阿難!於此法如是見、如是聞、如是覺、如是知,於過去、未來亦如此道。如是觀察。」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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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시네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