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쓰는 詩
돌쩌귀 환하도록 가을빛이 깊은 날은
벌겋게 녹이 슬은 세월도 벗겨내고
내 천근 삶의 무게도 잠시 내려놓습니다
지울 수 없었던 어둡고 먼 기억들이
오늘은 아로새긴 무늬로 떠오고
낱낱이 맨살에 기는 나의 죄도 보입니다
용서와 참회로 내 마음의 絃을 고뤄
이름하지 않아도 오롯한 사랑을 위해
내 남은 욕심의 습기 오래오래 말립니다
●역사는 기록이다. 자고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아름다움의 결정체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문학 아닐까. 우리의 정통 시조에도 독보적 존재로는 조선시대 황진이와 홍랑이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에도 앞서 두 분과 비견될 만큼 시조의 옷감을 가장 잘 짜는 두 분 중 한 분은 지난 단오쯤에 아주 먼 우주여행에 드셨다. 또 한 분은 과연 누굴까 싶다. 참고로 서숙희 시인은 시조 작품으로 한 시대의 정수리에 죽비를 내리쳐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두 번이나 조명 받은 유일무이한 명인이다.
●시조시인 서숙희(徐淑姬·1959년~ ). 경북 포항 기계 출생. 1992년 《매일신문》,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 『손이 작은 그 여자』, 『먼 길을 돌아왔네』, 『아득한 중심』 외. 시조선집 『물의 이빨』 등. 열린시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백수문학상 수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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