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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단 제작과 사용법(1-10)
분향단이 내성소에서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앞에 놓인 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심이어야 함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임을 재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너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2길이가 한 규빗, 너비가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두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이어지게 하고 3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 면과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4금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쪽에 만들지니 이는 제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5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6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7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8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9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10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1-10)
분향단은 내성소에서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앞에 위치하며, 분향단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대제사장은 매년 속죄일에 향단의 뿔에 속죄제의 피를 발라 속죄하며, 향단에서 사용되는 향료는 하나님이 지시한 특정한 조제법을 따라야 합니다. 향단을 속죄하는 행위는 제단이 죄를 지을 수 없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 제단이 오염되었음을 배상하고 정화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1) 분향단의 재료와 규격(1-5)
분향단의 기본틀은 조각목으로 짜고 전체를 순금으로 싼 뒤 금테를 두릅니다. 다른 비품들처럼 전체 표면에 금물을 칠했을 것입니다. 분향단은 비교적 작은 비품이었습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규빗/1규빗/2규빗입니다. 미터법을 따르면 0.5미터/0.5미터/1미터의 크기이므로 제사장이 향을 피우기에 적절한 높이였습니다. 상단 사면에 뿔이 만들어지고 아래쪽에는 금고리 둘을 장착하여 금으로 된 조각목 채를 만든 뒤 고리들에 끼웠습니다. 이 향단은 작고 가벼워 두 사람이 들고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랍비들은 작은 향단에 채를 양쪽면에 끼우면 폭이 너무 좁으므로(50cm) 양쪽 모서리에 하나씩 두 개의 고리만을 달았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것은 4절에서 네 개의 고리를 달도록 지시된 다른 사각형 비품들과 달리 유일하게 “양쪽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라는 진술에서 확인됩니다. 이 설계를 따르면 폭이 충분하기에 두 사람이 앞뒤에서 채를 들고 이동했을 것입니다.
(2) 향단의 위치와 사용법(6-10)
분향단은 내성소에 두는데 다른 비품들에 비해 가장 안쪽, 즉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앞에 세웠습니다. 이것은 향단이 갖는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향단은 내성소를 대표하는 기물로 나타납니다. 평일에 속죄제 짐승의 피가 내성소에 뿌려질 때는 향단에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10절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1년에 한번(속죄일) 대제사장은 지성소의 법궤와 더불어 향단 뿔에 속죄제의 피를 뿌려 향단을 속죄해야 한다는 점도 향단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증거궤 위의 속죄소에 왕으로 임재하셔서 백성들을 만나십니다(6). 향단 위에 향료를 피우는 일은 등잔대를 청소하고 등불을 교체하는 시간과 동일하게,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 실행합니다(7-8). 향단 위에서는 아무 향료나 태워서는 안 됩니다(9). 반드시 지시한 제조법에 따라(30:34-38) 유향에 여러 재료를 가루로 빻아 만든 거룩한 특수 향료만 써야 합니다.
여기 ‘다른 향’이 꼭 이방 제단에 피우는 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금 향단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불법적 향료를 말합니다. 번제단에도 소제물에 얹어 향을 태웠습니다(레 2:2,15-16). 그 향은 아마 다른 재료들이 섞이지 않은, 가루가 아닌 작은 토막의 유향 덩어리로 밀가루 위에 놓였는데(Milgrom) 값이 더 쌌습니다. 이 또한 금 향단에 어울리지 않는 ‘다른 향’에 속합니다. 또한 향단에는 놋제단에 바치는 번제나 소제와 같은 제물은 물론 전제의 술도, 즉 포도주나 다른 술도 부어선 안 됩니다(9).
한편, 10절의 ‘향단 뿔을 속죄하다’라는 표현은 주목할 만합니다. 사실 무척 기이한 표현입니다. 향단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속죄합니까?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7월 10일) 대제사장은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에 피를 뿌리고, 향단 뿔에 속죄제 짐승의 피를 발라 속죄소와 향단을 철저히 청소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가 ‘속죄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키페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29:36에서 제사장 위임식에서 속죄제의 피가 번제단에 뿌려져 그것을 ‘속죄한다’는 표현과 더불어 문제를 야기합니다. 과연 짐승의 피가 물건을 속죄(키페르)할 수 있습니까?
이런 곤란한 해석의 문제에 봉착하여 밀그롬은 ‘키페르’가 제단을 목적어로 취할 때는 결코 ‘제단을 대속하다’(make atonement for the altar)가 아닌 ‘제단을 씻다’(purge the altar)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단은 죄를 지을 수 없고 그래서 대속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단은 인간의 죄와 부정결로 더럽혀질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스클라(Sklar)는 인간의 죄가 제단(번제단이든 향단이든)을 더럽힘으로써 제단에 피해를 끼치게 되었기 때문에 그 피해를 ‘배상’하면서 오염을 ‘정화’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는 속죄제의 피로 ‘제단을 대속(배상)하며 청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필자도 이에 동의합니다.
이때 제단의 ‘대’ 혹은 ‘속죄’(atonement)는 ‘배상하여 씻어내다’라는 이중 의미를 가집니다. 이 ‘대속+정결’의 두 개념을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는 영어와 우리말 모두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속죄제 문맥에서 영어로는 ‘atonement’, 우리말로는 ‘대속’ 혹은 ‘속죄’라는 말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죄라는 말에는 ‘배상하고 씻는다’는 이중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백성을 위한 생명의 속전(11-16)
속전의 납부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게 책임을 지고 참여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교회나 신앙 공동체에서도 각 성도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원하고 협력하며, 공동체의 영적 및 물질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11-16)
생명의 ‘전’(코페르)은 ‘대신 지불하는 몸값’(ransom)을 뜻합니다.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 한 명당 반세겔을 거둔 은전의 총량은 100달란트 1,775세겔(약 3,420kg)에 이르는 막대한 양으로 모두 성막 건설에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20세 이상 성인들의 인구를 계수하여 반 세겔의 속전을 내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속전의 지불 목적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함이라”(12). 이 질병은 ‘네게프’로서 어떤 잘못에 대해 내리는 신적 재앙인데 흔히 ‘역병’으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언뜻 일종의 재앙을 막는 액땜인 것처럼 비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이 인구조사의 사례를 다른 유사 사례와 비교하여(삼하 24장, 민 31장), 인구의 통제와 관리는 하나님의 영역이므로 인구조사 자체가 신적 권리를 침범하여 재앙을 초래하는 매우 부정적인 성격의 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장과 2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차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인구조사를 하도록 명령하시며, 현재의 본문 또한 하나님의 지시로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이 계수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구조사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경우(삼하 24장), 인구조사의 의도가 신앙의 행위가 아니라 다윗이 왕국의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데 있었기에(삼하 24:3) 재앙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여기서 은 반 세겔이 생명의 속전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레위인을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는 성막 봉사자로 임명한 것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임재한 곳으로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그래서 따로 성별된 제사장 그룹만이 그곳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그들을 돕는 레위인들이 백성 편의 조력자로 그 임무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성막에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입니다: “(성막에 레위인이 아닌)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민 3:10). 반면에 레위인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위임되어 성막 봉사자가 되었습니다(민 3:6-13; 8:5-26).
민수기 8:19에는 레위인들이 이 본문에 나오는 생명의 속전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언급됩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에 (합법적으로) 접근할 때 레위인들로 인해 징벌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생명의 속전’ 기능이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 접근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타격을 받지 않고 역병의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반 세겔의 속전은 모두에게 적용되었으며, 또한 성막 건설에는 모든 백성들의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인 참여가 수반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역시 모든 성도가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최소한의 의무적인 헌신이 모두에게 공평히 요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향단과 생명의 속전은 신앙 생활에서 교제와 보호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평등하게 참여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규칙에 대한 순종과 정결함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공동체 내에서 공평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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