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중앙선
日帝, 美 함포 공격서 벗어나려 새 철도 황급히 깔았죠
중앙선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6.27. 00:35 조선일보
KTX-이음이 중앙선 양수철교(경기 남양주시)를 지나가고 있어요. /코레일
국가철도공단 강원본부가 중앙선 복선(오고 가는 열차가 따로 다닐 수 있도록 선로를 두 가닥으로 깔아 놓은 궤도) 전철 경북 안동~영천 구간의 주요 공사를 완료하고 지난 19일부터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전기를 공급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이 구간은 올해 12월 완공이 목표입니다. 얼핏 지방의 교통 단신처럼 보이는 이 뉴스는 사실 대한민국의 교통사(史)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안동~영천 구간 철도가 복선전철화를 마치면 서울의 청량리역에서 부산의 부전역까지 중앙선과 동해선 구간을 따라 한번에 KTX 고속철도가 운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년 초엔 중앙선 철도 개통 83년, 그리고 경부선 철도가 놓인 지 120년 만에 비로소 ‘제2 경부선’ 철도가 제대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겹친 서울~대전 구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철도는 1899년 서울~인천을 잇는 경인선이었습니다. 미국 기업가 제임스 모스가 부설권(철도를 설치할 권리)을 얻었으나 자금난 때문에 완공 전 일본 측에 양도했습니다. 이로부터 1945년까지 일제는 총 길이 6400㎞에 이르는 철도를 한반도에 설치했습니다.
한국인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철도망을 통해서 일본 열도와 대륙을 잇고, 한반도 내 지배력을 확산하는 동시에 물자를 반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경인선 다음으로 부설된 철도는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다음은 1906년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서 열차를 타면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됐던 것이죠.
그래픽=양인성
그런데 경부선 철도는 처음부터 경로가 크게 잘못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조선시대에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문경 새재(조령)를 넘어 상주, 안동, 대구를 지나는 ‘영남 중로(中路)’였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이 길 대신 철도를 놓기 쉬운 지형으로 경부선 노선을 정했습니다. 천안과 대전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김천과 대구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1914년 호남선이 개통한 뒤 부산에서 오는 열차와 목포에서 오는 열차가 서울~대전 구간에서 겹치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교통량이 크게 늘어나는 병목 현상이 일어났고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968~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지을 때도 이미 철도 노선을 따라 여러 도시가 발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존 경부선과 비슷하게 노선을 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때부터 이미 호남선과 겹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제2 경부선’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경부선을 부설했던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뒤늦게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전쟁 와중에 부랴부랴 만든 ‘경경선’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노골적인 침략전을 시작했습니다. 병력과 물자를 나를 수 있는 철도 인프라를 미리 깔아 놨기 때문에 전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시작하기 직전 일제 당국자는 지도를 보다 기겁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천안 구간의 경부선 철도가 해안과 무척 가까웠던 겁니다. ‘앞으로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미군 전함이 한반도 서해안으로 접근해 함포 공격을 할 경우 경부선과 열차가 파괴될 수 있지 않은가?’
1941년 경경선(현재 중앙선) 치악터널 경성 방향 갱문 공사 현장. /국학자료원
함포 공격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면 깊숙한 내륙 오지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철도, 즉 ‘제2 경부선’이 당장 필요했던 것입니다.(정재정 ‘철도와 근대 서울’) 이 때문에 1936년 착공해 1942년 완공한 철도 노선이 바로 경경선(京慶線), 지금의 중앙선이었습니다. 서울의 청량리역에서 양평, 원주, 제천, 단양, 죽령을 넘어 영주, 안동, 의성, 영천을 지나 경북 경주까지 이어지는 철도로 험준한 산악 지형을 다니는 노선이었죠. 조선시대의 ‘영남 좌도’와 비슷한 길이었습니다. 경주에서는 1935년 개통된 동해남부선을 따라 부산 방면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는 나중에 지하 철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죠.
1942년 4월 안동에서 열린 경경선 개통식 때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도 중앙부를 종관(縱貫·남북으로 꿰뚫음)해 자원 개발에 기여하고 또 부산~경성(서울) 간의 보조 간선(幹線·줄기가 되는 중요한 선)으로서 경부 본선의 수송을 완화 조절함으로써 대륙 경로를 증강(增强·수나 양을 늘려 더 강하게 함)할 뿐만 아니라….” 중앙선이 경부선에 버금가는 중요한 철도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죠.
마침내 전 구간 KTX 개통 눈 앞에
1945년 해방이 된 뒤 일제가 남기고 간 중앙선은 우리 입장에서도 ‘제2 경부선’이자 유용한 간선 철도로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선이 구불구불한 데다 상당 부분이 단선 철도였기 때문에 열차 속도가 느렸습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경제 성장기에는 교통 인프라의 무게 중심을 철도보다 고속도로에 둔 결과 오랜 세월 동안 중앙선은 낙후된 철도로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울의 청량리역에서 부산의 부전역까지 중앙선으로 달리는 무궁화호가 운행을 하긴 하지만 여섯 시간 넘게 걸리는 데다 하루에 딱 두 번 다닐 정도입니다.
하지만 올해 말 안동~영천 구간의 복선전철화가 끝나면 늦어도 내년 초부터 청량리역에서 부전역까지 KTX-이음 열차가 다닐 전망입니다. 소요 시간은 3시간 이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서울과 부산 사이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서울의 고속철도 출발역인 서울역, 수서역, 청량리역과 부산의 부산역, 부전역 중에서 어디를 이용할지 따져 본 뒤 경부고속선과 중앙선 중 고를 수 있습니다. 마침내 중앙선이 ‘제2 경부선’이라는 본래의 임무를 여실히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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