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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아 목사
도입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한을 정하시고 시간의 여로에서 두가지 때가 교차하도록 하십니다. 인생이란 이 두 사이에 끼어 몸부림치고 수고하고 애쓰다가 생을 마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습니다.
첫 째,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 누구나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한번 태어나서 반드시 한번은 죽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조절도 단축도 연장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개인의 죽음과 삶에 대하여 전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요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은 다음에는 주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삶의 여정을 거역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심었습니다. 본래는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었습니다. 불레셋 사람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 자격을 상실하고 그 땅에 옮겨다 심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는 뽑아 버렸습니다. 뽑아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로 뽑아 옴겼고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국가나 민족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이 삶의 현장에서 각기 처한 생활 조건속에다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은 이유와 목적이 있는데 그 뜻을 거역하고 자격을 상실하면 그 눙력의 손으로 뽑아 버립니다. 잎만 무성하여 열매가 없는 무화과는 저주하여 뿌리 채 말라지게 되어 뽑히게 됩니다.
그런고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의미가 있고 뜻이 있고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시편기자는 내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물질도 명예도 소유도 봉사도 헌신도 필요한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신 이유와 뜻과 목적이 있음을 깨닫고 열매맺는 삶 헌신과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둘 째,죽일 때가 치료시킬 때가 있습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습니다. 죽인다는 말은 징계한다는 말입니다. 매를 들 때가 있고 그 상처를 싸매 주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하셨고 하나님의 교회를 그렇게 세워 나가시고 선택한 자녀들을 징계하시며 또한 치료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딴 길로 나갈 때는 삶을, 육신을, 영혼을 찢어 놓으십니다. 그 아픔을 통하여 주님 앞에 엎드려 굴복하여 순종의 사람으로 길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주님은 그 아픈 상처를 다시 꿰메시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씻어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빗나갈 때 환경과 인간 막대기 혹은 가난 질병 시련의 채찍으로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과 시련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주님은 다시 회복하게 하시며 위로와 축복으로 우리의 마음과 육신의 상처를 치료하십니다.
셋째로,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습니다.
헌다는 말은 실패를 의미하고 세운다는 말은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웃게되고 실패하면 울게 되는 것입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다시 거두어 들일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설계할 때가 있고 인생의 모든 계획을 포기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명예를 얻을 때가 있고 명예를 잃고 낙심과 실망에 처해 번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재산 생명 지금 누리는 모든 소유가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잠시 머물러 사는 동안 위탁받은 기업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잠시 이 땅에 있는 동안 관리하도록 위탁받은 청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합니까? 모든 것이 내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어느날 물질을 잃어버리고 지위를 잃어 버리고 자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 찾아오는 허탈감과 상실감 좌절 낙심을 경험해 보셨나요?
지금 이순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오니
물질,명예,지위,자녀 모든 것 다 내것이 아니다고 포기각서를 선언하십시오.
아직도 내것이고 내 공로로 산다고 생가하는 한 평화도 만족도 기쁨도 행복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저 주신 모든 것을 던질 줄도 알고, 거둘 줄도 알고, 베풀줄도 알고 ,소유할 줄도, 누릴 줄도 아는 것이 참지혜요 참지식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실패하고 낭패를 당할 때 주님을 더 의지하고 성공할 때 세움을 받을 때 더 많은 물질과 시간과 젊음을 주를 위하여 쓰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 이것은 가인과 아벨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미움과 증오는 전쟁을 가져왔고 사랑은 평화를 가져옵니다.
가정도 교회도 민족도 서로 사랑하면 평화를 창조하고 서로 미워하면 전쟁과 분쟁으로 파멸이 옵니다, 파탄이 옵니다.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평화와 전쟁 모든 것을 인간의 마음대로 조정하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개입하시기 때문에 인생의 희노애락을 조정하거나 변경시킬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평화를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가 병원에 입원하여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의사야 말로 인간의 실존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노련하고 위대한 선장이 파도에 배를 잃고 나서 "배는 파도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인간사에 일어난 모든 상대적인 상황하에서 어떠한 조치도 대응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출생해서 죽고 심고 뽑히고 매맞고 치료받고 울고 웃고 버리고 취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이 있는가?
도대체 하나님은 범사에 때를 정하시고 인생들로 측량할 수 없도록 하셨을까요.
두가지 때중에 인생의 긍정적인 사건을 경험하며 출생/치료받을 때/세울때/웃을 때/춤출 때/찾은 때/꿰멜때/웅변할 때/사랑할 때/평화할 때그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고 인생을 낙관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과 질병과 노쇠와 상실과 눈물과 패배와 파괴와 약탈과 침묵과 미움과 전쟁을 지켜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집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때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인생이 두가지 기한을 다 채우고 인생을 정리해 보면 결국은 무슨 유익이 있으며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고 애쓰게 하신 것인데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 3:9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범사에 때를 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을 소중하게 다룰 수 있고 바로 헌신할 수 있고 주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습니다.
1.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의 격량속에서 예견치 않았던 죽음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병이 노쇠가 상실이 눈물이 실패가 파괴가 약탈이 갑자기 내앞에 서있음을 발견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이런 인생의 격량속에서 구원자를 절대자를 찾게되며 복음을 요청하며 주님을 찾게 됩니다.
두가지 대비되는 때를 정하사 우리에게 수고하게 하시고 노고를 주신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행복할 때나 불행한 때 성공한 때나 실패한 때 얻을 때와 잃을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평안할 때와 불화할 때 모든 때를 정하신 주님의 주권이 이루어야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일 때는 찬송하고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신앙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섭리인 것입니다. 모두가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2.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기 위합니다.
아무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물질도 명예도 건강도 행복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젊음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춤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소유도 창조도 생산도 웅변도 사랑도 평화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 곁을 떠납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전적인 허무와 전적인 절망속에서 결국은 인간이 영생을 바라고 영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나중을 두시고 출생과 죽음을 두셨습니다.
두가지 때가 반복되면서 이땅에서 수고하고 고생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시간의 허무속에서 영원의 지평을 바라보면서 종말적인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다시 살 수 없는 유일회적인 삶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때를 정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유한하기 때문에 영원을 찾게되고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3.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출생해서는 생명을 주신 기쁨으로 죽을 때는 영생을 주신 기쁨으로 감사하고
생산을 주실 때는 주신이에게 감사하며 기뻐하고 거두어 가실 때는 연단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소유할 때는 주신 은총을 잃을 때는 겸손케 하신 은혜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질병을 맞아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성공했던 감격을 누리며 슬플 때 기 쁜 나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침묵할 때 말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범사에 기뻐하며 항상 기뻐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신이도 여호와시오니 가져가신 이도 여호와 이신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신 건강 주님의 선을 위하여 사용하고 주신 물질 주신 명예 모두가 선을 위하여 사용하게 될 때 여기에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주신 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청지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일할때가 있고 일을 거두어 가실 때가 있습니다.
4.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하시기 위합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은 두가지 때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오직 모든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온전한 지식을 주십니다.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은 지식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골수를 쪼깨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을 감찰하시는 능력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말씀은 성육신하여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안에 모든 지식과 지혜와 보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온전한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던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 지혜는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지혜입니다. 시련속에서도 인내를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아는 지혜입니다. 인간관계 물질관계 심령의 모든 문제를 주님의 지혜로 해결해 주십니다.
온전한 희락을 주십니다.
모든 지혜와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강을 주십니다.
모든 보화를 주십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라고 바울은 반문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심령의 낙은 주님이 주시는 지시과 지혜와 희락과 보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분복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5.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기 위합니다.
전 3: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때를 정하신 목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여드리고 예배하고 찬송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두 때 사이에 삶을 두게 하십니다.
천하에 범사에 때를 정하십니다.
그속에서 모든 목적이 이룰 때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인간으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하신 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의 주권을 깨닫도록하신 것입니다.
역풍과 순풍의 교차속에서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영원을 사모하게 하사 영생을 얻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시간을 아끼며 시간을 주를 위하여 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인생의 낙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하시기 위합니다. 이세상의 범사는 두가지 때를 사이에 반복되는 악순환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지식과 지혜와 희락과 보화로 인하여 진정한 만족과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범사에 모든 때를 통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때에 처해있습니까? 지금 당신이 해야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지금의 때를 주께 드리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