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6-12
우리를 젊게 만드는 것 / 문기태 목사
세상에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입이 없어진다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보다 더 무서운 일은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편히 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일도 아닙니다. 무조건 편히 사는 것만 추구하다보면 우리들은 몸도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지고, 정신도 약해지고, 신앙도 약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편히 잘 살기 위하여 돈을 벌고 성공을 합니다. 돈을 벌고 성공을 하면 삶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어 편히 살면 행복해 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삶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건강해지지도 않습니다. 그 성공과 부요함이 가져다 준 편안함이 우리를 오히려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죽을 만큼 사랑하는 일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인간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당시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 시민권자였고, 학문도 높았고 집안도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편히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줄을 안 후 그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그 모든 조건들을 정말 배설물처럼 버리고 자기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정말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이야말로 진정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발견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갈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일에 욕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일도 목숨을 걸고 죽어라고 고생해야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은 85세 나이가 되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모세의 훌륭한 제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자기를 제치고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시험에 들었을 것입니다. 보통사람같았으면 평생 여호수아를 시기하며 여호수아에게 가시같은 역할을 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갈렙의 관심과 욕심은 자리가 아니라 일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도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은 산지를 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가 85세 였습니다. 85세 된 노인이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씀하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전율을 느끼게 할 만한 참으로 근사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이미 정복한 땅을 기업으로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과 전투를 벌여 대부분의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각 지파의 두령들을 모으고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이 속한 유다지파는 인구가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유대지파에게 할당된 땅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 중에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의 어른인 갈렙은 여호수아를 찾아가 남아 있는 땅 중에 비옥하고 아름다우나 높은 산지에 위치해 있으며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며 거인족인 아낙자손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어서 정복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헤브론 산지를 요구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 곳에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은퇴를 했어도 벌써 했을 나이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에 도전합니다. 당당하게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최고로 좋은 땅을 그의 지파들의 기업으로 차지하려고 도전을 합니다.
여호수아가 헤브론을 갈렙의 기업으로 허락하고 갈렙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갈렙이 담대하게 유다지파를 이끌고 올라가 아낙 자손들을 쫓아내고 헤브론 산지를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헤브론은 갈렙과 그의 후손들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 헤브론은 후에 7년동안 다윗이 왕궁을 지은 수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갈렙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 긍정적인 보고를 한 믿음도 훌륭하지만 일평생 하나님을 온전히 쫓는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산 것도 대단합니다. 그리고 노년에도 청년의 열정을 잃지 않고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슴하신 그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고 헤브론 땅을 도전하여 정복한 믿음 또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고 부르짖었던과 같은 그런 열정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이 주시려는 축복을 잃어버릴 위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아름다운 용기가 있습니까?
맥아더 장군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연설중에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은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피부를 주름지게 할 뿐이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잊어버린 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피부는 주름지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 정신은 늙도록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갈렙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산지가 어디인지 기도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각자 하나님 앞에 질문해 보십시오. 나이에 관계없이 내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나의 남은 생애 동안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히 찾으십시오. 찾고 나면 거기에 도전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활력을 되찾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찾으면 분명히 도전하게 됩니다. 갈렙처럼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정복하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겨 납니다. 갈렙은 높고 안전한 성곽에서 진을 치고 있는 강한 아낙 자손과 위험한 한 판을 벌이려고 시도합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려면 얼마나 고생스럽고 또 자신이 적의 공격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갖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다. 내 발로 밟는 땅은 다 내 것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가서 밟으면 그것은 내 땅이야.' 확신이 분명했기에 값을 지불하는 것쯤은 두려워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믿음대로 그 땅을 손에 넣었던 것입니다.
어떤 조사 내용에 의하면,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100명 중 5명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그냥 되는대로 산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선 안됩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여러분은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분명히 높을 것입니다. 모호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목표요,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영적인 산지와 현실적인 산지 두 가지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영적인 산지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했습니다. 사명을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바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사명, 사람을 양육하여 제자로 세우는 사명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사명완수를 위해서 기도하며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갈렙이 도전하였던 산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성공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평생 수고하여 얻은 부와 성공을 그냥 편히 살면서 낭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평생 수고하여 얻은 부와 성공을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산지인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부산의 큰 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잘 하시다가 정년이 되어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 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해에 있는 그보다 작은 교회의 목사님과 사역지를 바꾸어 열정을 가지고 사역하셔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몇 년이 지나 그 교회에서도 정년에 걸려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후배들에게 "나는 은퇴하면 개척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진주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70을 넘긴 연세에 개척교회를 목회하면서 얼마나 고생이 되겠습니까? 안타깝게 여기고 자식들이 "아버지 이제 그만 쉬세요." 하고 말씀을 드려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열심히 몇 년 동안 사역을 잘 하시다가 교회를 젊은 목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미 80을 바라보는 연세에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 쉬게 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에 있는 시골교회에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후임목사가 올 때까지 임시로 주일에 설교해 주십사.'하는 요청을 받고 가셨는데 교인들도 목사님을 좋아하고 목사님도 쉬다가 다시 목회를 하시니 얼마나 신나고 좋은지 모르는거예요. 그래서 80을 훌쩍 넘긴 고령임에도 지금까지 남해에서 열정적으로 목회를 잘 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목회를 얼마나 잘 하시는지 그 시골교회가 부흥이 되어 지금 앉을 자리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저도 그 목사님처럼 우리 교회를 은퇴하고서 그런 시골교회에서라도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할 일이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편안하게 노년을 보내다가 편하게 죽는 것보다 주를 위해 근사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하여 생명의 불꽃을 사르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갈렙처럼 85세가 되어도 젊게 살다가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20대의 청춘임에도 편안함과 안일함을 그리워하며 애늙은이로 살면서 인생을 낭비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