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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5-19
우리와 함께한 자가 많으니라 / 조용기 목사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등의 원수에게 포위되고 공격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등 원수들의 깃발만 바라보면 우리는 엘리사의 종처럼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상황을 대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만 좋겠습니까? 우리는 엘리사가 경험한 체험담을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도단 성에서 당한 엘리사의 위기
엘리사의 경험담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은 놀라운 주의 종으로 주께서 언제나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분별의 은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오면 먼저 그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엘리사는 어느 곳에 아람 군대가 올테니 미리 군대를 보내어서 지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언제나 아람 왕이 군대를 파견하면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대비해서 그들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탄식을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첩자가 있다. 우리의 계획하는 바를 전부 이스라엘에게 알려주는 첩자가 있으니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한 신하가 “왕이여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종이 있어서 왕이 한밤중에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조차 전부 알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아람 왕이 말하기를 그러면 어찌하든지 엘리사를 잡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소식이 왔습니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와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빠르게 대 군대를 동원해서 밤새 도단성을 첩첩히 둘러 쌓았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일어나서 마당에 서서 보니 도단성 주위에 아람군대의 깃발이 하늘을 치솟고 말과 병거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는 혼비백산해서 벌벌 떨면서 들어와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이 성을 첩첩히 둘러 쳤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여 가로되 “야훼 원컨대 저희 눈을 열어 보게 하시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열매 사환이 눈을 떠서 보니 그 아람군대와 엘리사가 있는 그 성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 말과 불 병거가 첩첩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 종이 마음에 크게 안심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가 종을 데리고 성 밖에 나와서 그 아람 군대 장군에게 말하기를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고 저희를 인도하여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까지 데려 왔습니다. 결국 그들이 눈을 떠보니깐 완전히 적군의 수도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치려고 하자, 엘리사는 “창과 칼과 활로 잡은 사람이 아니니 밥을 먹이고 물을 마시고 도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많습니다.
2. 우리와 함께한 자가 많으니라
우선,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귀신들과 더불어 항상 우리를 포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그들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불화살을 우리에게 쏘아 대는 것입니다. 그 화살에 맞은 자는 생명을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혹은 멸망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알아야 될 것은 우리가 이 원수들에게 둘러싸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 진쳐 보호하는 십자가의 은혜의 군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안심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불안, 초조, 좌절, 절망에 처해서 뒤로 물러가면 원수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십자가 은혜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습니다. 어떠한 마귀와 귀신들도 우리를 점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군대가 삼엄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 15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용서와 은혜의 군대를 우리에게 둘러 진쳤기 때문에 마귀가 아무리 죄악과 죄책으로 우리를 치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용서와 은혜의 군대가 둘러 진쳐 있으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주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용서와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과 마귀가 우리를 부패하게 만들려고 해도 성결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9절에서 10절과 같이 성결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이상 우리가 그 은혜를 의지하면 어떠한 세속과 마귀도 우리를 점령하지 못합니다. 또한 기쁨과 평안과 확신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고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 주위에 기쁨과 평안과 확신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 11절과 요한복음 15장 11절에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초조와 절망이 꽉 들어찬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과 확신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쳐 있으므로 이를 보고 우리가 확신하고 기도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치료와 건강의 은혜의 군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병들게 하고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가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둘러 진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와 건강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보고 알 아야 합니다.
시편 103편 3절로 4절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셨으니 이 하나님의 치료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저주와 가난과 생활고의 원수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보면 낭패합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형통과 축복의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엘리사의 기도인 것입니다.
“야훼여 원컨대 저희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종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보니 아람군대의 깃발이나 창검과 그 병거와 그들의 말들을 보고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종의 눈을 열어 보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신령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환경만 바라보면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예비하신 군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만 보도록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역경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바라보면 안됩니다. 그것은 육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안에 야훼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야훼의 지팡이와 막대기라는 하나님의 군대를 통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를 안위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의 눈만 가지고 보면 인간은 환경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신령한 눈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말씀을 통하여 보므로 어떠한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을 통하여 보고 믿음에 서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 32장 7절로 8절에 보면 앗수르의 대왕이 대군대를 거느리고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앗수르의 대군대를 유다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 백성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왕과 그 쫓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야훼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한다는 말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냥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 같이 계신 주님은 지팡이와 막대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하나님이 점령한 군대인 것입니다.
앗수르 왕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나오다가 하룻밤에 18만 5000명이라는 군대가 다 전멸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만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희망의 불꽃이 다 꺼져 버리고 캄캄한 절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을 모셔 드리면 하나님은 희망을 살려 주고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도 언제나 하나님을 계산해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더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수평선 위의 모래밭을 걷는 꿈이었습니다. 긴 모래길은 자신의 일생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욱이 보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것이고 또 하나는 늘 동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었습니다. 그가 보니 일생을 통하여 극심한 고통을 당했을 때는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화가 났습니다.
그는 주님께 “저와 늘 함께 하신다고 하셨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그것은 네 발자국이 아니고 내 발자국이다 네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네가 너를 업고 지나 간 것이라 네 발자국은 없고 내 발자국만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없는 우리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에는 하나님을 플러스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또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4편 17절로 19절에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용서 받은 의인이 되어서도 인생을 사는데 고난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을 바라보지 말고 모든 고난에서 건지는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한 신앙 고백을 그치지 말고 입술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91편 9절로 10절에서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라고 한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외우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계속해서 시인하면 구원의 역사가 말씀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죠지 뮬러 목사는 평생에 5만번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그의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캐나다의 퀘백에서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영국에서 배를 타려 했더니 선장이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배를 운행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죠지 뮬러는 대서양을 건너가 약속한 대로 퀘백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안개가 끼어도 배를 띄워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장이 ‘정신병자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여보시오. 안개가 얼마나 짖은지 안보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뮬러는 “아니요 내 눈엔 안개가 짖은 것은 보이지 않고 모든 환경을 지배하시는 하나님만 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장은 기도하는 척 했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일어나서 선장의 등을 치면서 “기도하지 말아요. 믿음의 기도가 응답 받지 당신같이 안 믿고 기도하는 것은 백번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깐 하지 말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말하기를 “나는 57년동안 한번도 집회의 약속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문이나 열어 보시오. 안개가 그친 것을 볼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일어나서 문을 열어 보니 안개가 온데 간데 없이 다 사라져버렸고 배는 곧 출항하여 약속한 토요일 오후에 도착하여 집회를 인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믿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뮬러 목사나님이 믿음으로 기도하니 자연과 운명을 지배하는 하나님이 안개 조차 제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했으면 기대하고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7절로 9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성과 감각적인 것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린다는 것을 알고 믿고 기대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등포 대교구 조연순 집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가슴이 서늘합니다. 6월 25일과 26일 아들이 유학 가는 날 준비를 마치고 출국 당일이 되어 가족과 친척 식구들이 집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기쁨의 찬양을 불렀습니다. 예배 후 오후 6시 20분 비행기를 타기 전 시간이 남아서 어른들은 다과를 들고 얘기를 나누고 아들은 사촌형에게 킥보드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집 아래 길에서 퍽 하는 큰 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가보니 택시가 하나 서 있는데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차 앞에 아들이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습니다. 언덕길에서 킥보드를 타고 내려가던 아들을 택시가 그대로 정면으로 치고 만 것입니다. 아들은 머리를 택시 유리창에 부딪치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부서진 택시를 본 동네사람들은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눈으로는 죽은 것 같아도 그 마음속에 반드시 예수님이 살려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아들을 흔들어 보니 숨을 쉬고 있어 가족 들과 친척들을 모아 진정 시키고 함께 눈물로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도 살리심에 능치 못하심이 없었다’는 말을 기억하고 택시를 동원, 아들을 태워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피를 많이 흘렸지만 조사를 해보니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당장 6시간 후에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를 가야하는데 갈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아들 사고 상황과 택시의 상태를 보고 도저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크게 다친 것이 없어 출국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예정대로 당일 저녁 비행기로 출국해서 지금은 공부를 잘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아들과 식구들의 신앙은 더욱 성장해서 환경 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굳센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즘도 그 사고를 본 동네 사람들은 영락없이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조심스레 안부를 묻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강하게 간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기 전에 구역원들과 함께 모여 기도를 했고 하나님의 성령이 도움으로 믿음을 가지고 그 사고에 대처하니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대해야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원수를 대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 18절 말씀처럼 원수 마귀가 눈을 어둡게 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켜 놓을 때에는 대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10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마귀의 화살이 꽂힐지라도 우리는 이를 뽑아내고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고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처하여 염려, 근심, 불안, 초조로 마음이 눌릴 때 삶은 생지옥으로 변합니다.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지듯 마음의 짐에 눌려 그 짐에 깔릴 때에 격심한 고통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희망과 기쁨은 사라지고 삶이 역겨워지고 죽음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고난당한 사람은 자살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야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둘러진 친 원수와 우리 사이에 하나님이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가 둘러 진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원수들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우리는 이 은혜의 군대를 바라보고 깨닫고 믿고 알고 강하고 담대하게 일어나서 대적할 때에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 중에 고난을 당하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중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계산해 넣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보고 하나님과 함께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우리의 모든 행하는 곳에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모든 일에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아들을 아까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문제는 우리 마음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엘리사의 종처럼 아람군대의 깃발이나 창검이나 말을 보고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여 뒤로 물러가면 패합니다. 그러나 엘리사와 같이 영의 눈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싼 은혜의 불말과 불병거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여 기도하고 나가면 원수들이 오더라도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고난은 우리에게 큰 순종과 믿음을 가르치고 떠나는 선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기 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고난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고난을 당하고 마귀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불화살을 우리에게 쏘아 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우리와 같이 계신 자가 많고 크다는 사실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의 군대에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확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자세를 가진 우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