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품평
(수필)
본격수필의 발현을 위하여
월간문학 05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행복한 삶은 관조적 삶이라 했다. 수필가에게 있어 삶은 창작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수필 창작의 대상이 생활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필가는 생활을 대상으로 하여 그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생활로부터 벗어나 삶의 민활성을 되찾는다. 이는 수필 창작을 통해서 진정한 삶에 대한 감각을 얻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좋은 수필은 삶과 문학이 상호 삼투되어 서로가 유리되지 않도록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상과 문학의 통합이 바람직하게 실천되기 위해서는 일상 경험의 성찰이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월간문학에 실린 이 달의 수필은 모두 열한 편이었다. 이번 월평에서는 원종린의 <소생의 작품은>과 김상연의 <삶을 뜨개질하는 기차>, 그리고 저녁연기의 <산이 푸르른 날에> 등 세 편을 집중 분석하는 것으로 하겠다. 이들 작품들은 생활을 대상으로 하되 그 현상의 이면에 숨어 보이지 않는 삶의 본질을 찾아내고자 하는 작가적 인식이 수필 쓰기의 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종린의 <소생의 작품은>은 자신을 반성적 성찰대 위에 세워놓고,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관과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는 글이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서두로 해서 문학 행사에서 한 강연의 내용을 통해 문학의 바탕은 과수원의 토양에 비유될 수 있다는 자신의 지론이 과수원 운영 경험과 참고 서적 등의 근거로 인해서 잘 뒷받침되어 있다. 문단이 흩어져 산만해보이지만 자세히 구성을 분석해 보면 매우 체계적인 개요 짜기가 되어 있다. 문학에서 말하는 논리는 질서다. 이 수필의 완성도는 삽화를 활용하는 적절한 비유에 의해서 구축된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전개 부분의 중간을 넘어서면서 시작되고 있는 자기의 반성적 성찰 부분이다. 수필을 일러 반성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 외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현실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꼭 한 번은 자신의 내부로 시선을 두지 않으면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교사 시절 동료였던 K형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평가한 대목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모습이 바로 성찰의 본 모습이다. ‘어줍잖은 글을 화제로 삼아준 것만 해도 과분한 일’로 여기는 분이니까, 그 결과 또한 인과적이다. 마지막에 가서 “버젓한 수필 한 편 못 남긴 채 세월만 방황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고백으로 끝나면 예시로만 글을 맺는 셈이 된다. 그래서 주제의식을 비유로 일반화한다. 이를테면, ‘소생의 작품은 ’방황‘인 셈일까 싶어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는 겸허한 토로다.
김상연의 <삶을 뜨개질하는 기차>는 전형적인 표준 구성인 삼단계 수필이다. 발단은 고속철 시대의 개막을 맞아 남편과 함께 경춘선 열차를 오르는 대목으로 꾸미고, 전개는 빅토리아 시대의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는 ‘철 길 위의 아이들’이란 영화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불행의 그림자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화목한 가정에 갑자기 어둠이 내려진다. 한 가정의 가장이 스파이 누명을 쓰고 잡혀 감에 따라 이들 식구는 철길이 가까운 초라한 시골집으로 이사를 간다. 날마다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마음 속을 파고드는 작가의 동심 읽기는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훔치게 한다. 작가는 목가적인 풍경과 은방울 같은 아이들을 뒤로하고 달리는 기차를 향해 ‘우리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하고 외치는 장면을 최고의 압권으로 꼽는다. 전개부 중간을 넘어서면서 장면은 바뀐다. 빅토리아 시대 증기 기관차와 총알 같이 달리는 고속철도의 대비 구도가 주제의식의 구체화를 돕는 장치로 쓰였다. 이쯤에서 작가는 패스트푸드와 인터넷 지식으로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철 길 위의 아이들이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하고 묻는다. 결말은 기차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장으로 활용한다. 작가는 기차를 ‘마음의 본향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규정한다. 먼 산을 휘돌아가면서 남기는 기차의 무수한 점을 그는 희망의 씨앗으로,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식한다. 마음의 본향으로 달리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를 통해 삶을 뜨개질하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 참 삶의 모습임을 그는 전하고 싶어 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영원히 품고 살아가야 할 그리움의 실체를 ‘철 길 위의 아이들’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이 정의 문학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감동의 드라마라 하겠다.
저녁연기의 <산이 푸르른 날에>는 예고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극진한 간호와 애정을 바치는 딸 입장에 선 작가의 푸르른 감성이 애잎 같이 곱게 빛나고 있다.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삽화가 단순한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작가는 그래서 도입부 첫 문장을 ‘물감을 사고 싶다’는 말로 장식한다. 물감에 담긴 의미는 앞으로 독자들이 읽으면서 풀어내야 할 과제다. 고급수필은 마치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거와 같다고 했다. 문맥을 따라 가면서 작가의 체취를 느끼면서, 작가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는가에 몰두해야만 한다. 작가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 나갈 때마다 독자들이 의미를 재구성에서 그것을 이미지화할 수 있도록 관념을 실체화해야 한다. 작가가 사고 싶은 연두, 연록, 압록색의 물감은 수필적 공간이 병원이라는 사실과 수필의 주요 인물이 환자인 아버지와 딸인 작가라는 사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난다. “환자복 바지를 움켜쥔 채 좀처럼 놓지 않으려 하시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간곡히 말씀드렸다”로 시작되는 전개부의 대화체는 적재적소에 놓여졌다. 끈을 놓고 난 이후 변하는 아버지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어내면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려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부녀간에 나누는 살뜰한 대화에 넘치는 혈육의 정과 뜨거운 인간애가 눈가를 적게 한다. 이 작품의 문학적 향기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의 말씀을 잡다한 잎 다 떨구고 빈몸으로 있다가 살풋이 피어나는 애잎들에 비유한 데 있다.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은 화선지를 1주기에 내어 놓아야만 하는 이유는 주제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주제 전략화가 잘 되었다는 증거다.
수필 창작은 세상을 읽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수필은 개념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꾸며지기 때문이다. 수필은 대체로 세상 읽기의 소산이다. 따라서 수필은 삶의 한 모습인 것이다. 또 삶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관심은 곧 작가의 전신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위에서 다룬 세 분의 작품은 주제 전략화에 따른 구상으로 문학작품 속에서 논리를 잘 갖추고 있어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수필가는 사회 현상이나 자연 현상, 그리고 개인적 체험, 즉 삶의 성찰을 통하여 일상의 삶 속으로 매몰되기 쉬운 본성적 감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강호형의 <자유부인>, 오경자의 <한 푼을 아끼려다>, 김명선의 <땡볕> 등의 작품도 대체적으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수필가의 집필 의도나 방향이 삶을 보여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재해석하거나 삶을 다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이처럼 더욱 가치 있는 수필이 탄생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