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 거기
송미선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거기 있잖아 왜 거기
너의 시소와 나의 정글짐은 서로 달라
내가 닿으면, 너는 비상구를 열고
네가 다가오면 비상계단을 닫는 나
놀이터에서 우리는 가닿지 못하고
서로의 기울기만 바라보잖아
거기 알지?
모래밭에 심어져 있던 페타이어가 우리를 튕겨 올렸던 곳
거기서 기다릴게
-전문-
해설> 한 문장: 두 사람에게 '거기'는 단순히 놀이터의 어느 한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곳은 '나'와 '너'가 서로의 존재를 함께 나누었던 교통의 장소이다. "내가 닿으면, 너는 비상구를 열고"라는 말로 서로의 엇갈림을 보여주었던 움직임은, 실은 서로 간에 이루어지던 독특한 소통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가닿지 못하고/ 서로의 기울기만 보라보"았던 둘 사이에 특별한 방식의 만남과 관계 맺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눔'이라는 말에 담긴 모든 뜻처럼, '거기'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차이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나누어 자신의 몫으로 가질 뿐만 아니라 함께 공유하였다. '나'와 '너'는 서로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거기'라 호명된 공동의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나누는 독특한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이 공간은 우리가 현실에서 일상적인 의미로 접하는 장소와는 또 다른 성격을 띤다. '거기'는 미셸 푸코가 '헤테로토피아'라는 표현으로 사유한, '모든 장소는 바깥에 있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는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살아있는 것으로서 품고 있는 독특한 위상으로 나타난다. (p. 시 115/ 론 137-138) (김태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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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이따금 기별』에서/ 2023. 9. 26. <상상인> 펴냄
* 송미선/ 경남 김해 출생, 2011년『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다정하지 않은하루』『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