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약찬게 해설 열다섯번째 강설 (2)
❂ 보현보살미진중 普賢菩薩微塵衆
❂ 보현보살미진중 普賢菩薩微塵衆
보현보살 등 티끌 같이 많은 대중들이
선재가 보현보살을 만나려고 일심으로 정진하여 드디어 보현보살을 만나서 보현의 자유로운 신통을 봅니다. 그때 선재는 보현행원력의 드넓은 공덕의 바다에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내고 보현보살은 게송으로서 부처님의 공덕 바다가 한량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불보살님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변재가 자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그 수효가 무한정 늘고 줄고 합니다. 그래서 ‘미진중微塵衆’은 한 보살을 장엄하는 권속의 무리도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주 「보현행원품」 10행원 중에 두 번째가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입니다. ‘칭찬여래원‘은 여래의 공덕을 끝없이 찬탄하겠다는 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찬탄의 대상은 부처님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소리 내어 찬탄하는 것입니다.
’칭稱‘은 ’일컫다‘의 뜻입니다. ‘벼 화禾‘와 ’들어 올릴 칭稱‘으로 이뤄진 글자입니다. ‘화 禾‘는 저울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칭稱‘의 자형적 의미는 ’들어 올려서 무게를 달다‘. 그리고 ’저울‘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건은 바닥에서 들어 올려 땅에서 떨어져야 무게를 잴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높여 칭찬하다‘, ’일컬어 칭찬하다‘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찬讚‘은 ’말씀 언言‘과 ’도울 찬贊‘으로 이뤄진 글자입니다. ‘찬贊‘은 폐백을 들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한자에 ’조개 패貝‘가 들어간 글자는 재물이나 보물, 때로는 화폐 같은 재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조개껍데기를 화폐처럼 썼습니다. ’찬讚‘은 ’말로 존경과 경배를 표시하다“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 ‘칭찬’은 ‘소리를 밖으로 내서 하는 찬탄’입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와 예불과 독경은 모두 소리를 내서 해야 합니다. ‘칭’이나 ‘찬’이나 밖으로의 소리가 울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 전달도 혼자만 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듣게 밖으로 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때의 말은 타인에 대한 선언과 같아서 훨씬 구속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같은 계획이라도 남에게 말을 한 경우가 훨씬 실천력이 강하다고 하잖습니까?
불보살님을 찾고 그분들의 공덕을 찬탄한다는 것은 내가 닮아간다는 것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시방 삼세에 두루 하신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중생을 향한 공덕의 바다에 함께 머물 수 있음을 감사하고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발원을 담아서 찬탄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원력이 부처님의 공덕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둬야 합니다. 복덕과 지혜를 갖춘 부처님의 위대하고 거룩한 위신력은 모든 중생의 귀감이요 이상적인 선망의 대상이며, 공덕을 닦아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를 부처님은 언제나 감응하시기 때문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찰진심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세계 티끌 수 같은 마음 헤아려 알고
큰 바닷물을 마셔 다하고
허공을 측량하고 바람을 맬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말로 다 할 수 없어라.
이 게송은 우리가 매일 하는 사시예불 중에 나옵니다. 예불과 공양에 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겠습니까? 그것은 공덕의 바다가 한량없고 거룩한 만큼 나의 기도 공덕도 커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구를 소리 내어 외쳐야 합니다.
*주 「보현행원품」 10행원
보현행원 열가지 행원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시방세계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치 많은 수의 세월 동안 계속하여 연설할지라도 끝까지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려면 응당 열 가지 넓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합니다(화엄경 보현행원품 ; 불교성전 3-5).”
열 가지 넓고 큰 행원(十種廣大行願)은 예경제불(禮敬諸佛,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함), 칭찬여래(讚如來, 부처님을 찬탄함), 광수공양(廣修供養, 널리 공양을 올림), 참회업장(懺悔業障, 업장을 참회함), 수희공덕(隨喜功德,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함), 청전법륜(請轉法輪, 법륜을 굴려 주시기를 청함), 청불주세(請佛住世,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시기를 청함), 상수불학(常隨佛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움), 항순중생(恒順衆生, 항상 중생들의 뜻에 수순함), 보개회향(普皆向, 모두 다 회향함)이다.
이 열 가지 원력(행원)은 실로 보살로서 살아가는 삶의 진실로서 어느 하나 뺄 것도 없고 어느 하나 더할 것도 없는 이 자체로 완전한 가르침이라 하겠으며, 그렇기에 불교신행의 충만으로서 널리 인용되고 지남이 되어 왔다. 고려 광종대 균여대사는 <보현십원가>를 향가로 지었고, 현대에도 보현십원은 불교신행의 결정체로 두루 수용 변용되고 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 의해 보리심을 내어 53선지식을 참례하면서 마지막에 뵌 보현보살이 일러준 가르침인데, 지덕(智德)의 문수보살로부터 행덕(行德)의 보현보살로 귀결되는 설법구조가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높다. 석가여래의 왼쪽 협시가 문수보살이고, 오른쪽 협시가 보현보살이다. 문수(文殊, 文識의 뛰어남)에는 지덕이, 보현(普賢, 보편적 어짊)에는 행덕이 표현되어 있다.
보현보살은 열 가지 행원을 차례대로 하나하나 설하기를 마칠 때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업이 다하고 중생번뇌가 다해야(虛空界盡 衆生界盡 衆生業盡 衆生煩惱盡)” 이 원력을 다하려니와, “이들이 다함이 없으므로(無有盡故) 자신의 원력도 다함이 없으며(無有窮盡), 생각생각이 계속하여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이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念念相續 無有閒斷 身語意業無有疲)”라고 보살다운 거룩한 서원을 하는 것을 독송하게 된다.
보현십원 중 특별히 독송해야 할 한 말씀을 적시하면 항순중생원의 아래와 같은 놀라운 말씀이다. 이 말씀만큼 큰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씀도 달리 없다고 할 것이다. 불자 신행의 정화(精華)라 할 만한 말씀이다.
“중생으로 인해 대비심을 내고, 대비심으로 인해 보리심을 내며, 보리심으로 인해 정각을 이룹니다(因於衆生而起大悲, 因於大悲生菩提心, 因菩提心成等正覺). (…) 일체중생은 나무의 뿌리가 되고, 모든 불보살들은 꽃과 열매가 되어, 대비의 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 모든 불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게 달렸으니, 만약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들이 마침내 가장 높은 정각을 이룰 수 없습니다(화엄경 보현행원품 ; 불교성전 3-5).”
[출전:불교신문 3750호/2023년1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