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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장코뱅 추천 4 조회 322 25.11.22 07:41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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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11.22 07:50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25.11.22 09:24

    네, 알겠습니다.

  • 25.11.22 12:31

    알겠습니다^^22

  • 작성자 25.11.22 07:54

    <호크마 주석: 시편>

    =====19:7
    여호와 - 본절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 바뀌어졌다. '엘'(* )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인 반면(1절), '여호와'(* )는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제 본절 이하에서 언약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율법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란 이름이 쓰여진 것이다(Lange). 한편, 본절에서부터 시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으나 앞에 묘사된 자연 계시와 이제 묘사되는 특별 계시 사이에는 유비 관계(類比關係)가 있다(Rawlinson). 따라서 본시를 두 개의 시편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율법 - 본절에서부터 9절까지에서 율법은 여섯 가지 이름으로 달리 표현되었다. 그 표현들은 동의어이지만 한편으로 인간을 위한 율법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 준다(Craigie). 그리고 '율법'(* , 토라)은 넓은 의미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나 특별히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뜻하기도 한다(말 4:4).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 완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밈' (* )은 제사 용어이다. 다시 말해서, 이 용어는 흠없고 점없는 제물을 가리킬 때

  • 작성자 25.11.22 07:54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율법의 완전성은 성경의 충족성(充足性)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율법이 인간의 영혼을 소성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완전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처럼 율법이 영혼을 소성시키기에 충족한 까닭은 그것이 인생의 영혼에게 좋은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Craigie).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자로 지혜롭게 하며 - 여기서 '우둔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티'(* )는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믿는 경향이 있는 순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울러 '우둔한 자'는 율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자. 또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를 의미한다(Briggs). 이러한 자가 율법의 지혜를 배우지 아니한다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죄를 저지르게 된다(잠 1:10-14;7:7). 그러나 이러한 자가 율법의 지혜를 배우게 되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한편, '증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두트'(* )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범죄한 자에게는 형벌의 증거가 되며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상급의 증거가 된다. 우둔한 자는 이 증거를 대함으로써 형벌을 피하고 상급을 얻는 지혜를 얻게 된다.

  • 작성자 25.11.22 07:55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 여기서는 율법이 교훈으로 표현되었다. '교훈' (* , 피쿠딤)은 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들을 의미하는 말이다(TWOT, Knight). 그리고 '정직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르' (* )는 옳고 바른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교훈이 옳고 바른 까닭은 (1) 성품이 올바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며, (2) 아울러 인생들을 옳은 목적지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Lange, Delitzsch).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 '개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츠와'(* )는 '명령하다'는 의미의 동사 '차와'(*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리고 '순결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 )는 주로 '깨꿋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때로 '빛나게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아 6:10;사 49:2).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Delitzch). 왜냐하면 이어지는 구절에 '밝게 하도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눈을 밝게 하도다'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와(Craigie),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 작성자 25.11.22 07:55

    만든다는 의미를(Calvin) 내포하고 있다. 또한 본 구절은 하나님의 계명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인간이 참된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선악을 분별할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계명은 인간의 영적인 지식을 밝혀 주는 유일한 등불이다(잠 6:23).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 원문에는 '도'라는 말이 없다. 본 구절을 직역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란 의미이다. 혹자는 이를 '여호와를 경의하는 자에게 베풀어진 교훈'이라고 해석하였으나(Rawlinson), 이 같은 해석은 원문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함'이란 율법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Delitzsch).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율법이 한결 같이 선포하는 대주제이기 때문이다(신 17:19;잠 15:33).
    정결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호르'(* )는 순금과 같이 아무것도 섞이지 아니한 순수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이다. 특히 이 용어는 세속적인 것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타낸다(레 13:17). 따라서 '정결하여'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자체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 작성자 25.11.22 07:55

    가장 거룩하고 순수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원까지 이르고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가장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썩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즉, 세속적인 것은 더러운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라져 버리지만 순전한 경외는 영원토록 보존된다는 의미이다(요일 2:17).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 '확실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 )는 '진리'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이다. 율법은 이방 종교의 법 조항들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유일한 진리의 표준이라는 말이다(Lange, Delitzsch). 또한 '에메트'는 '신뢰성'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율법은 인간이 믿고 따르기에 완전한 것이다.
    다 의로우니 - 이는 율법에 대한 결론적인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율법은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의롭다. (1) 질적인 면에서 율법은 그 기원이 하나님이므로 의로우며 그 목적이 선한 것이므로 의로운 것이다(Craigie). (2) 양적인 면에서 모든 율법의 조항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의로운 것들이다(Barnes).

    =====19:10
    여기서 다윗은 율법의 가치를 찬양한다.

  • 작성자 25.11.22 07:56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 정금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것을 비유한것으로 세상의 모든 재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 '송이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노페트 추핌' (* )이다. 여기서 '추핌'(* )이란 '흘러넘치다', 또는 '벌집'을 의미하는 '추프'(* )에서 파생한 것으로 '벌집에서 흘러 넘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Lange, Delitzsch). 따라서 '송이 꿀'이란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친 덩어리 꿀을 의미한다. 이러한 꿀은 팔레스틴 산지에 혼히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꿀은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다윗이 이처럼 금이나 꿀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이 그에게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외면적으로는 그의 모든 재산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내면적으로는 달콤한 행복이 되었던것이다(Delitzsch).

    =====19:11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 여기서 '경계를 받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즈하르'(* ) '권고하다', '가르치다'는 뜻의 동사 '자하르'(* )의 수동형이다.

  • 작성자 25.11.22 07:56

    이는 율법의 교훈적 기능을 보여준다. 즉, 율법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길을 제시하여 주며 아울러 심판받아 마땅한 행위들을 경고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근신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 이는 시편 전체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 표현이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사상과 모순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상급의 문제이다. 즉, 율법을 지킨 자, 곧 의를 행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상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기아' (* )는 '길을 잃다', '잘못하다', '정도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의 동사 '솨가'(* )의 명사형이다. 그러나 동사 '솨가'의 일차적 강조점은 비고의적인 범죄라는사실에 있다. 즉, 이 동사는 부지중에 범한 비고의적 행동, 또는 무의식적인 범죄를 뜻한다(레 4:13;욥 6:24;19:4). 따라서 여기서 '허물'이라는 말은 모르고 지는 죄, 또는 비고의적인 죄를 의미한다(TWOT, Lange, Delitzsch).

  • 작성자 25.11.22 07:56

    흔히 이러한 종류의 죄는 미묘한 것이거나 자신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발견되지 않지만 다윗은 율법의 말씀 안에서 이러한 종류의 무수한 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다윗은 '숨은 허물'이라는 말로 앞에서 언급된 '허물'의 의미를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벗어나게 하소서'라는 말은 죄사함을 구하는 기도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는 '깨끗하다', '무죄하다'는 뚱으로 이는 모든 허물을 깨끗이 씻어달라는 기도이다(Calvin, Briggs).

    =====19:13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 '고범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딤'(* )은 '끓다', '완고하게, 또는 건방지게 행동하다'는 뜻의 동사 '지드'(* )에서 파생한 명사형으로 '교만으로 행한 죄', 또는 '완악한 죄'를 뜻한다(TWOT, Calvin). 이러한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없었다(민 15:27-31). 한편, 혹자는 '고범죄'를 인격체로 보고 '교만한자들', '교만히 행한 자들'로 해석하였으나(Ewald, Briggs), 본 문맥이 죄사함을 구하는 기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볼 때

  • 작성자 25.11.22 07:57

    이러한 해석은 옳지 않다(Delitzsch).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 이 말은 죄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죄가 한번 행하여지기만 하면 그 죄는 인간을 종으로 삼아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창4:7).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죄가 의인화되어 표현된 것이다(Briggs).
    내가 정직하여 - '정직하여'는 원어상으로 죄악이 없는 순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는 점이나 흠없는 희생 제물을 연상케 하며 성도가 힘써야 할 성화의 상태를 암시한다(엡 1:4;5:27;히 9:14).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 '죄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솨'(* )는 '거역하다'는 의미의 동사 '파솨'(* )의 명사형으로 '반역죄'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에 대한 반역을 가리킨다(TWOT). 이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며 인간 내부에 심각한 부패의 영향을 미친다(Delitzsch). 다윗은 숨은 허물과 고범죄에서 깨끗하게 되면 이러한 죄악의 심연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 이는 다윗의 기도의 근거를 보여준다. 먼저 '반석'에 해당하는

  • 작성자 25.11.22 07:58

    히브리어 '추르'(* )는 거대한 산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힘'이다. 다윗은 모든 죄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믿음으로 이같이 표현했을 것이다. 또한 본절에서 '구속자'는 죄를 깨끗하게 속량해 주시며 그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분을 의미한다. 다윗은 자신의 무수한 죄를 깨끗이 씻어주실 분은 여호와 한 분뿐이심을 믿고 이처럼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죄의 문제를 여호와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지금까지 기도하였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 - 이는 기도의 다른 표현이다(Lange). 그리고 '말'과 '묵상'은 깊은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마음에 묵상한 것이 그대로 입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이를 다윗이 기도와 함께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으로 해석하기 보다는(Briggs) 다윗이 기도 자체를 하나의 제사로 인식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Delitzsch, Kraus). 성경에서 기도는 하나의 제사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호 14:2).

  • 25.11.22 09:23

    읽어보니 글쓴님과 비슷한 논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 25.11.22 11:58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5.11.22 08:10

    <호크마 주석: 누가복음>

    =====19:2
    삭개오(* , 재카이오스) - 이 이름은 전통적 유대인의 이름으로서 본래의 뜻은 '청결한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다. 누가의 소개에 따르면 삭개오는 세리장(稅吏長)의 직책을 맡은 사람이었다. 세리장이란 곧 세관장을 의미하는데 여기고는 베레아 지방으로 부터 요단강을 건너가는 통상인들의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세관이 있었을 것이고 그 세관에서는 주로 길르앗 지방으로부터 유입되는 향유 등 여러 상품에 대해 통관세를 징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은 발삼나무의 산지였기 때문에 특산물에 대한 세금까지도 징수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삭개오는 이 세관의 우두머리로서 세금 징수를 지휘했던 인물로 보인다. 당시 세리장은 로마의 막강한 공권력을 이용하여 의도에 다라 자율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할 수 있었고, 자기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는 삭개오를 소개할 때에 '부자'라는 말을 첨가시킨다. 이는 당시 세리에게도 '허가낸 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는데 하물며 세리장이 받고 있는 원성은 더 높았을 것이고 또 그가 누리는 '부'의 원천이 부당한 착취에 있음을 암시한다.

  • 작성자 25.11.22 08:10

    삭개오에 대한 이와 같은 배경은 그의 직책이 관료라는 점과, 부자라는 점과 함께 18:18-30의 이야기 즉 부자의 구원에 대한 질문과 연결되고 있다(Danker). 그리고 당시 세리들이 유대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삭개오의 구원에 관한 이 이야기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의 은혜를 확연히 드러낸다.

    =====19:5
    우러러 보시고 - 헬라어 '아나블레포'(* )는 '위'(up)라는 전치사 '아나'(* )와 '보다'의 동사 '블레포'(* )가 합성된 복합어로서 '쳐다본다'(look up)는 뜻이다. 예수는 뽕나무에 앉아있는 삭개오를 쳐다보셨다.
    삭개오야 - 뽕나무 위에 올라 앉아있는 삭개오에게 예수는 직접 이름을 부르셨다. 예수가 신적 전지성에 의해 삭개오의 이름을 아셨을 수도 있고 혹은 삭개오의 이름이 이미 여리고 땅에 널리 알려졌으므로 무리들 중에서 삭개오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본문에서 누가의 관심은 에수의 초자연적 능력보다는 예수가 삭개오를 지목하여 인격적으로 부른 사실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하겠다. 내려오라...유하여야 하겠다 - 예수의 인격적 초대는 단순한 부름에 그치지 않고 삭개오의 집에 함께

  • 작성자 25.11.22 08:11

    머무르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같은 이야기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예수와의 만남은 예수의 주권적인 초대(sovereign invitation)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를 보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의 한계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은 사실 호기심이었고 진정한 의미에서 만남은 예수가 인격적으로 삭개오를 부르고 그의 집에서 머물겠다고 제안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해야 하겠다'는 표현은 신적 필연성(必然性)을 강조함과 아울러 예수의 주권적 의지를 뚜렷이 드러내준다(4:43).

    =====19:6
    급히 내려와...영접하거늘 - 예수의 인격적 초청에 대한 삭개오의 응답은 전격적인 것이었다. 즉 '급히 내려와'라는 단어와 '즐거워하며'라는 단어, 그리고 '영접하거늘'이라는 단어는 예수의 제안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표현이다. 이는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의 인격적 부르심과 삭개오의 전격적인 영접은 구원의 눈부신 접촉점이 되고 있다. 이같이 누구에게든 향하고 있는 예수의 초청을(요 6:35;7:37)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영접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된다.

  • 작성자 25.11.22 08:11

    삭개오가 이같이 기쁜 마음으로 승낙한 것은 이미 예수에 대한 소문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명성에 대한 권위를 인정함을 뜻한다. 또 삭개오는 평소에 자신의 세리장이라는 직책과 정당하지 못한 세금 징수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샀을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소외된 아픈 심정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또 자신의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자책감으로 고민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름은 삭개오에게 있어서 어둠 속에 비추어지는 빛이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을 그 명성 높으신 예수가 초청했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고 또 자신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7절에 언급된 바처럼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배척하는 지옥 같은 상황으로부터 구원해주는 생생한 용서의 선언으로 이해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5절에서 언급한 '오늘'은 구원의 즉각성(卽刻性)을 뜻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급히 내려와'라는 말과 맛물려 구원이 주저할 수 없는 결단성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또 9절에서 다시 '오늘'이라는 말이 언급되어 구원의 즉각성을 재삼 강조한다.

  • 작성자 25.11.22 08:11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당시 세리는 죄인 취급을 당하였으므로 예수의 행위는 당연히 문제시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죄인의 집에 머물며 함께 식사한다는 사실은 죄인의 죄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5:29,30). 한편 이들의 수군거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두가지 악한 본성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눈에 박힌 들보를 보지 못하고 타인의 눈에 묻은 티를 흉보는 비판 심리이다(마 7:3). 특히 당시 유대인들은 왜곡된 선민의식에 근거한 교만과 자기의를 과시하는 형식주의로 인해 타인을 비판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둘째는 타인의 잘됨을 시기하는 심리이다. 본문의 '뭇 사람'은 죄인에 불과한 세리장이 예수의 관심과 호의를 받게 되자 시기심이 발동하였던 것같다.

    =====19:8
    서서 주께 여짜오되 - 앞절의 내용으로 보아 삭개오가 말하고 있는 장소는 삭개오의 집 안이었을 것이다. 아마 식탁이나 탁자 주위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말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일어서서 말하는 행위는 말하는 사람의 진지함과 말하는 내용의 진실성을 나타내는 엄숙성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 작성자 25.11.22 08:12

    주여 보시옵소서 - 이미 삭개오는 예수께 대한 호칭을 신앙적인 의미의 '주'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또 삭개오는 '보시옵소서'(* , 이두)라는 말로서 자신의 의지의 단호함과 실천 가능성에 있어서 자신 만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같은 말은 6절에서 언급된 바 있는 그의 기쁨과 결부되어 나오는 즐거운 선언임을 느낄 수 있다. 즉 강요에 의한 타율적 선언이 아니라 기쁨에 의한 자율적(自律的) 결단인 것이다. 내 소유의 절반을...주겠사오며 - 삭개오는 당시 랍비들에 의해 제시된 구제비 곧 소유 혹은 수입의 20%보다 훨씬 많은 파격적 액수를 제시한다. 이러한 헌신적인 태도는,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께로 나아왔으면서도 '네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던 부자 청년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이다(18:18-23). 만일 뉘 것을...사 배나 갚겠나이다 - 여기서 '만일'로 시작되는 가정문은 삭개오가 부당하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갈취한 사실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정문을 이끌고 있는 '에이'(* )라는 단어를 '...하는 무엇이든지'라는 의미의

  • 작성자 25.11.22 08:12

    관계 접속사(everythint that...)로 해석하여 '토색한 것은 무엇이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 '에이'는 '멘'(* )이라는 단어와 같이 사용되어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서약문에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삭개오의 진술은 자신이 부당하게 취한 모든 것은 본래의 주인에게 확실하게 그리고 무엇이나 돌려준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여기서 삭개오는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에게 본래의 것의 4배를 돌려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데 율법에 의하면 부정으로 취한 것을 돌려 줄때에는 1/5을 덧붙여 상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레 6:5;민 5:7). 또 남의 것을 도적질한 것은 4배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출 22:1;삼하 12:6). 따라서 삭개오의 이같은 선언은 당시 율법이 정하는 도적질에 상당하는 배상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삭개오 자신이 그같은 정도의 죄를 범하였음을 고백하는 셈이다. 이같은 삭개오의 파격적(破格的)인 행위는 자기중심적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이 방향을 바꾸는 전격적인 회개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회개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작성자 25.11.22 08:13

    회개는 죄에 대한 참회나 죄에 대한 단순한 고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적 행동을 동반해야 한다

    =====19:9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 삭개오의 선언에 대한 예수의 응답 역시 즉각적인 것이었다. 즉 구원이 오늘 이 집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죄인으로 취급받았던 죄인에게 구원을 선언한 것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실로 파격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같은 선언은 삭개오의 헌신적 자아 부인의 선언에 따른 직접적 결과임에 분명하다. 구원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자아 부인의 실천적 결단을 통해 경험되는 현재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이 말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되고 배타적인 대접을 받아온 삭개오를 공동체로 복귀시켜 당당하게 한 형제로 살아가야 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특히 삭개오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삭개오야말로 참된 믿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당시 종교적 복권은 곧 정치, 사회적 복권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는 전인적 인간 구원을 의미한다.

  • 작성자 25.11.22 08:13

    =====19:10
    인자의 온 것은...구원하려 함이니라 - 삭개오에 대한 구원 선언 후 그 선언에 대한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즉 이미 앞절의 주석에서 밝힌 바 있듯이 잃어버린 자에 대한 구원이란 소외되고 비뚤어진 인간을 다시 공동체로 복귀시켜 당당하고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말은 온갖 죄악과 허물로 말미암아 혼돈과 파멸에로 향하는 인간들을 구해내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로 인도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선언은 사실 예수의 전체적 삶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에 걸려 정상적인 인간 삶이 불가능한 귀신들린 자(마 17:18), 문둥병자(17:14), 벙어리, 귀머거리(막 9:25), 소경(막 8:23) 등과 같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공동체로 복귀시키며 삭개오와 같은 죄인들을 용서하고 공동체로 복귀시키는 모든 행위는 땅위의 평화(平和)를 위한 사랑의 치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사람다와질 수 있도록 하는 예수의 구원 행위는 오늘의 기독교가 우선적으로 따라야 할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의 선언이 이미 5:31,32에서 언급되었는데 결국 삭개오는 이와 같은 선언의

  • 작성자 25.11.22 08:14

    실천적 모델(model)이 된 셈이다.

  • 25.11.22 09:29

    삭개오 모델을 통해서 예수님의 죄인 초청 구원 사역을 더 절 이해하게 되서 감사합니다.

  • 25.11.22 12:07

    @노베 아멘! 공감합니다.

  • 작성자 25.11.22 09:00

    롬8:26

    <호크마 주석>

    이와 같이 - 이 접속사는 성도가 탄식하면서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참음으로 기다림을 지칭한다(Black).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성령은 성도를 양자로 보증해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최종적으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도와 주신다. 성도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계시면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요 16:13) 양자로서의 보증이 성도 안에서 확실히 성취되도록 도와주신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보혜사(保惠師)이시다(요 14:16, 26;16:7). 한편 본절의 '도우시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난틸람바네타이'(* )는 '쉬난틸람바노마이'(* )의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준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본절과, 마르다가 마리아의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인 눅 10:40에만 나온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연약해 있을 때에 성도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신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 본 구절은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 작성자 25.11.22 09:01

    성도는 연약하기에 영적 힘을 공급해주는 통로인 기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도는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기도의 능력도, 기도할 내용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본 구절은 성령께서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즉 성령께서 성도들 편에 서서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실들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신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C.H. Dodd). 성도가 갈등으로 인해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성도보다 더 심한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성도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며 구원에 대한 보증이다.

  • 25.11.22 09:35

    성령의 회개 인도와 이외 신앙의 약점을 지적하고 교정해 주시는 거룩한 사역에 매우 감사를 드립니다.

  • 25.11.22 09:36

    오늘 묵상을 읽고 큰 깨우침을 받습니다.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 작성자 25.11.22 11:38

    아멘!

  • 작성자 25.11.22 11:52

    묵상 본문 중 "큰 그림(구원의 서정)으로 보면 /// 거듭남이 먼저입니다. ///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안에 성령이 내주하셔서 깨우치고 인도하셔서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참되 회개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은 결과입니다." -->

    거듭남에 대해서 급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아래 두 포스팅을 읽어 보시면 조금 더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

    조엘 비키, 거듭남은 믿음에 선행하는 것이다(도르트 신조)

    https://cafe.daum.net/1107/YlDw/14

    조엘 비키, 하나님의 부르심과 거듭남

    https://cafe.daum.net/1107/Y4OK/64

  • 25.11.22 12:52

    다시 잘 읽어 보고 은혜와 유익을 얻습니다.

  • 25.11.22 12:30

    묵상 본문과 댓글을 읽고 큰 도움과 성경공부가 됩니다. 죄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수시로 최선을 다해 회개하겠습니다.

  • 25.11.22 12:54

    아멘!

  • 25.11.22 16:44

    아멘22

  • 25.11.23 00:56

    회개케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는 고의적이고 계획된 죄를 짓는 데로까지는 나아가지 않도록 성령께서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사 정직하고 깨끗한 심령, 의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거듭남과 칭의와 회개에 대한 구원의 서정을 잘근잘근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것 같은 좋은 묵상이네요. 감사합니다.

  • 25.11.24 11:35

    풍성한 내용에 매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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