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계절은 4월로 접어들었습니다. 4월이면 산에 들에 진달래가 피어납니다.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는 개나리 친구와 함께 화사한 봄의 상징이지요. 명곡 < 산넘어 남촌에는 >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가 진동한다고 선언합니다.
이 곡을 감상하노라면 전원의 평화로운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이기도 합니다. < 산넘어 남촌에는 > 1965년 발표되여 크게 유행했으며, 1979년에는 가곡 < 남촌 >으로도 발표되어 사랑을 받고 있지요.
< 산넘어 남촌에는 >에 나오는 남촌은 우리나라의 구체적 마을 이름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남촌은 이상형이 살고 있는 마을 혹은 외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조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곡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상형인 연인을 만날 때까지, 조선의 해방이 올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자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각박한 현실에 처한 현대인들에게도 시련을 견디어내면 남쪽에서 훈풍이 불어오듯이 희망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지요.
가사는 다음 같습니다.
https://youtu.be/BpBKT8FFdws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에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산넘어 남촌
< 산넘어 남촌에는 >이라는 시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지요. 아울러 이 시의 작가가 남촌이라는 이상향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작가가 그리는 남촌은 평화로운 고장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금잔디가 펼쳐진 평원에는 배나무, 진달래꽃, 보리밭이 즐비하고, 그 속을 호랑나비, 종달새 등이 날아다닙니다. 또 해마다 봄이 되면 남에서 부는 봄바람이 남촌의 그윽한 향기를 사방에 실어 나르지요. 마치 지상낙원을 방불케 하지요. 3연에 나오는 섰다기는 서있다네라는 의미이고, 영은 고갯길을 뜻합니다.
< 산넘어 남촌에는 >이라는 시는 외형적으로 볼 때 평화로운 전원의 모습을 그렸지만 이 시가 쓰여진 시점은 엄혹한 시절이었지요. < 산넘어 남촌에는 > 이라는 시가 쓰여진 1920년대는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인들이 엄청난 수탈을 당하던 시기였지요. 조선의 알짜배기 논들이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가던 시기지요. 이 시기에 씌어진 민족 저항시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바로 이 시기의 농촌의 황폐해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요. 정지용 시인도 <고향>이라는 시에서 찾아 온 고향이 그리던 고향이 아니라고 탄식하지요.
식민지 조선을 살아가던 김동환 시인은 수탈당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을 동경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동환 시인은 훗날 친일로 전향하기는 했지만 이 시를 쓰던 시기는 아직 민족의 가치를 보존하려고 노력했던 때로 보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이상적인 님을 그리는 것과 해방된 조선을 희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연에 보이는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노래라는 표현은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이 시는 본래 3연으로 되어 있지만 가요는 2연까지만 노래합니다. 사실 1, 2연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을 묘사한 것으로 그치지요. 그러나 3연에는 작가가 그리워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3연에 보이는 누가는 원문에는 각시로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 각시를 보고 싶어합니다. 이 시를 쓴 목적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곡은 2절까지만 들려주지요. 사실 3연에 작가의 의도가 실려있으므로 3연까지 노래를 잇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가의 시인 <봄이 오면>도 진달래 피는 봄에 건너 마을 처자를 그리는 내용으로서 < 산넘어 남촌에는 >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두 시 모두 식민지 조선의 농촌에 거주하던 청춘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