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눈 침침하고 빙빙 어지러울 땐 ‘감국차’ 한 잔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국화는 모름지기 가을의 꽃이다. 어릴 적 장독대 옆이나 앞마당 작은 화단에 심어진 국화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이제 제대로 가을이 왔구나’라는 걸 실감했다. 가을꽃 국화는 보기에도 좋지만 먹어도 좋다. 식용 국화는 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국화를 식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맛이 단 국화를 감국(甘菊)이라고 해서 약용해왔다. 감국은 동전만 한 크기로 들녘에서 보이는 작은 꽃봉오리를 피우는 국화다. 참고로 화훼농가에서 관상으로 키우는 국화들은 독성이 있을 수 있고 그 자체로 독성이 없는 종이라 할지라도 진딧물 제거를 위해 농약을 많이 치기 때문에 식용해선 안 된다.
<동의보감>에는 ‘국화의 종류는 매우 많다. 이 중에 꽃잎은 홑잎이고 꽃은 작고 노란색이며 잎은 짙은 녹색이면서 작고 얇으며 제철에 꽃피는 것만이 진품(감국)이다’라고 했다. 본 칼럼에서 단지 감국(甘菊)으로 칭하겠다.
감국은 성질이 평이하면서 맛은 달고 독은 없다. 꽃잎의 맛이 달기 때문에 감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들국화 중에서도 쓴맛이 나는 국화를 고의(苦薏)나 의국(薏菊)이라고 하는데 <동의보감>에는 ‘감국화는 달고 의국(들국화)은 쓰다. 감국화는 수명을 연장시키지만 의국은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고 했다. 쓴맛이 나는 국화도 별도로 약용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단 것은 약에 넣지만 쓴 것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감국은 두통과 어지럼증을 없앤다. <급유방>에는 ‘열(熱)과 풍(風)을 없앤다. 머리가 어지럽거나 눈이 충혈된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풍으로 어지럽고 머리가 아픈 데 주로 쓴다’고 했다. 열(熱)과 풍(風)의 성질은 가볍고 위로 뜨는 성질이 있어 머리와 얼굴과 관련된 증상을 보인다. 감국은 그러한 풍열(風熱)을 제거하기 때문에 두면부 증상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감국이 치료한다는 어지럼증의 특징은 땅이 빙빙 도는 듯해서 넘어질 것 같은 증상이다. 이러한 어지럼증을 회전성 어지럼증이라고 하는데 중풍에 의한 비회전성 어지럼증과 달리 ‘눈앞이 돈다’ 또는 ‘천장이 돈다’ ‘땅이 올라온다’ 등으로 표현되는 말초성 어지럼증이다. 말초성은 귀의 평형감각에 문제가 생기거나 눈의 이상에서도 발생하는 어지럼증을 말한다.
실제로 임상에서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있을 때 보면 눈이 침침하면서 시력저하 등을 호소하고 눈은 쉽게 충혈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감국이 두통, 어지럼증을 치료하는 효과는 안구증상도 개선하기 때문에 이들 증상이 동시에 호전된다고도 할 수 있다.
감국은 눈을 밝게 하고 눈 건강에 좋다. <단곡경험방>에는 ‘예막(瞖膜)을 없애고 눈을 밝게 하며, 눈의 혈액을 공급하고 내장(內障, 백내장이나 녹내장)을 다스리며 바람을 맞으면 나오는 눈물을 멎게 한다. 가루를 내어서 복용하거나, 달여서 먹는다’고 했다. 또 <본초강목>에는 ‘베개를 만들어 쓰면 눈이 밝아진다’라고 했다. 이런 내용을 보면 감국은 눈 건강에 전반적인 도움을 주면서 향기요법적인 측면에서도 좋다고 할 수 있다.
가을철 들녁에 피는 노란색 국화는 식용으로 먹어도 좋다. 일상에서 흔히 겪는 두통과 어지럼증 개선은 물론, 눈도 맑게 하는 등 건강에 이로운 효능이 많다. 단 식용 국화라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감국은 피부의 종기에도 좋다. <단곡경험방>에는 ‘옹독(癰毒)과 정창(疔瘡), 종독(腫毒)으로 죽을듯한 것을 다스린다’고 했다. 감국잎을 짓찧어 즙을 내서 한 사발 마시거나 감국잎과 줄기를 짓찧어 종기 등에 붙여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 처방을 도잠고(陶潛膏)라고 불렀다. 감국에는 소염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감국은 팔다리가 저린 증상에도 좋다. <동의보감>에는 ‘오맥(五脉)을 잘 통하게 하며 사지를 조절한다. 풍습비(風濕痺)를 치료한다’고 했다. 감국은 팔다리의 혈액순환을 돕고 관절이 붓고 저린 듯한 증상에도 좋다는 것이다. 또 <본초강목>에는 ‘허리가 도도(陶陶)하게 왔다 갔다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도도(陶陶)는 축 늘어진 모양이라고 했는데 허리에 기운이 없으면서 통증이 있다는 것이다. 감국은 소염진통 작용도 있다.
감국은 타박상에도 좋다. <본초강목습유>에는 타박상을 치료하는 비방(祕方)으로 중상을 입어 죽을 지경에 처했더라도 한가락 숨만 붙어 있으면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처방은 바로 들국화를 잎과 가지 채로 그늘에 말려 달여 먹는 것이었다. 역시 감국은 혈액순환을 촉진해 어혈을 제거하고 진통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국은 항노화작용이 있다. <신농본초경>에는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가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안 늙고 오래 산다’고 했다. 또 <동의보감>에는 ‘몸을 가볍게 하고 늙지 않고 오래 살게 한다’고 했다. 감국은 꽃뿐 아니라 싹, 잎, 줄기까지 식용이 가능한데 이것들을 그늘에 말려서 가루 내 술과 함께 먹거나 환으로 빚어 장복한다고 했다. 국화주도 좋은데 생지황, 지골피와 함께 술을 고아 마시면 근골을 강하게 하고 골수를 보하며 수명을 늘린다고 했다.
감국은 잎, 줄기, 꽃 모두 비슷한 효과가 있다. <식료본초>를 보면 ‘그 잎은 정월에 채취하여 국을 끓일 수 있고 줄기는 5월 5일에 채취하며 꽃은 9월 9일에 채취한다. 모두 두풍증(頭風症)과 어지러움, 눈물 나는 것을 치료한다. 번열을 없앨 수 있고 오장에 좋다’고 했다. 과거부터 잎은 국을 끓여서 먹고 꽃은 차로 달여서 마시거나 술을 빚어서 마셨다.
최근 꽃차들을 많이 만들어 먹는데 꽃들도 식용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보통 식용이 가능한 꽃은 홑꽃이고 겹꽃은 독성이 있어서 식용이 불가능하다. 참고로 감국은 가을철 들녘에 피는 노란색 홑꽃잎 국화로 식용 가능하고 장례식장에서 보는 수북하고 화려한 곁꽃잎 국화는 식용이 불가능한 종이다. 단 식용꽃이라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면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본초강목>에 보면 ‘국(菊)은 국(鞠)을 따랐고 국(鞠)은 궁(窮)이다’라고 했다. 궁은 다한다는 의미다. 궁(窮)은 음력 9월에 이르러 꽃이 활짝 피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국화는 가을이 돼 꽃을 모두 피움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다 한’ 것이다. 활짝 핀 국화는 눈으로 보아도 좋고 건강을 위해 먹어도 좋다. 이 모든 것 또한 국화 자신의 소임일 것이다.
첫댓글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