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이 道다
선가(禪家)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이 곧 부처(卽人卽佛)”라고 가르치고 있다. 마음을 가진 모든 생명(衆生)은 모두 본래불이기 때문에『화엄경』에서는 “마음과 중생과 부처는 하나(心佛及衆生一體)”라고 설하고 있다. 사람이 부처라고 하는 것은 나 자신이 곧 부처이며, 다른 모든 사람 또한 부처라는 말이다.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다운 생각을 하고, 부처다운 말을 하고, 부처같이 행동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생명 모든 사람을 대하기를 부처님 받들 듯이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불공(佛供)이다. 법당에 계신 형상의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부처님에게 불공하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중생 이지만 본래 마음은 부처의 성품 그대로인 것이다. 이것을 본래성불(本來成佛), 혹은 본각(本覺)이라 한다. 본래 부처의 성품이 탐진치 삼독에 덮여서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이 된 것이다. 이것을 불각(不覺)이라 한다. 삼독의 번뇌를 걷어내고 천진자성(天眞自性)을 드러내면 자연히 부처가 되는데 이것을 미래불(未來佛: 미륵불)이라하고 또한 시각(始覺)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불각의 상태인 중생은 빨리 본래불인 본각(本覺)에 의지하여 번뇌망념을 제거하여 시각(始覺)의 깨달음을 성취하여야 한다. 그래서 신수(神秀)선사는 “탐진치 삼독과 안이비설신의식의 육적(六賊)을 소멸하는 것이 가람을 짓는 것이며, 오염된 불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수행이 진정한 불사(佛事)”라고 가르치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부처가 되는 종교이다. 중생이 본래성품으로 돌아가면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본래 성품으로 돌아가는 노력이 수행이요, 본래 부처임을 자각(自覺)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열심히 수행하여 날마다 본래 부처를 드러내면 날마다 깨달음의 날이 될 것이다. 생활 가운데서 바로 부처를 드러내는 작업을 생활수행 혹은 생활선(生活禪)이라 한다. 마조선사는 불자들의 생활법문(生活法門)으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주장하였다.
즉 평상심이 도라는 것이다. 마조는 평상심에 대해 설하기를 “조작(造作), 시비(是非), 취사(取捨), 단상(斷常), 범성(凡聖)의 치우친 견해가 없음이다”라고 하였다. 즉 조작하여 분별(分別)하지 않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하는 시비(是非)의 마음이 없고, 좋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리는 취사(取捨)의 간택심(揀擇心)이 없고, 인간과 세상은 영원하다(常)거나 영원하지 않다(斷)고 보는 양 극단의 견해가 없고, 부처다 중생이다 하는 부처상(聖)과 중생상(凡)에 집착함이 없어서 늘 깨어있고 열려있는 마음이 평상심인 것이다. 말을 바꾸면 직심(直心)이 평상심이니 항상 곧은 마음으로 용심(用心)할 것이며, 평등심(平等心)이 평상심이니 일체 생명과 사물에 차별상을 내지 않을 것이며, 항상심(恒常心)이 평상심이니 언제나 변함이 없어 한결같은 마음이다. 지위가 높아졌다든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었다든지, 학문의 경지가 높아졌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평등히 대하고 한결같은 마음의 평상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경계에 흔들림이 없는 본래 마음이 평상심인 것이다.
마조선사의 설법에 의하면 사실 “도란 닦을 필요가 없는 것(道不用修)”이다. 즉 도란 닦아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이미 우리 자신에게 모두 갖추어져 있다. 다만 평상심을 오염시키지 않으면 된다. 평상심에서 보살행이 나온다.『유마경』에는 범부행(凡夫行)도 아니요, 현성행(賢聖行)도 아닌 것이 보살행이라고 설하고 있다. 범부행을 떠나 있되 현성행에 머무르지도 않고, 현성행에 머무르지 않되 범부행을 여의지 않음이 보살행이다. 다시 말하면 지혜로 생사를 떠나 열반을 얻어 생사에 머무르지 않음이 무주생사(無住生死)요, 자비로 열반에도 머무르지 않고 생사에 돌아감이 무주열반(無住涅槃)이다. 생사에도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무주행(無住行)이 보살행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지혜와 자비를 함께 운용하며(悲智雙運), 복과 혜를 함께 닦는 것(福慧兼修)이다.
생사에 머물러 윤회함이 중생살이라면, 생사를 떠나 열반락을 탐닉하면 소승 성문승이요, 생사에 있되 생사를 떠나고, 열반을 성취하였으되 열반마저 버리는 것이 진정한 보살의 의무이다. 세간에 있되 세간심을 떠나고, 출세간에 있되 출세간에 집착하지 않음이 불자행(佛子行)이다. 즉 위없는 지혜를 닦아 생사윤회를 해탈하여 열반락을 성취하고, 한량없는 자비로 열반의 피안(彼岸: 저 언덕)마저 버리고 다시 생사의 차안(此岸: 이 언덕)으로 화광동진(和光同塵: 보살이 지혜의 빛을 감추고 자비로 중생과 하나가 됨)하여 모든 중생들과 동고동락하며 진리의 길(깨달음)을 인도하는 것이 머뭄없는 보살행이다.
한 송이 연꽃은 진흙에 피되 오염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되 진흙에 뿌리내리고 주위에 향기를 주고 있다. 향기가 나는 사람이 그립다. 진정 보살행을 하는 수행자가 그립다. 우리 모두 평상심을 회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