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무공원 잔디밭이다. 학교 운동장만 한 땅에 잔디가 푹신하게 덮여 있다. 우리가 들어서자 여러개의 천막 중에서 은발의 청년이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와, 부산 아가씨들이네, 어서 온나.”
반가움에 모두 한 덩어리로 얼싸안았다.
60년대 말 경주시 네 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연합 운동회가 격년으로 열린다. 행사를 거듭할수록 친해져서 학교와 마을의 담을 무너뜨리고 하나로 뭉쳐졌다. 이날은 현실의 나이와 사회의 신분을 던져 버리고 국민학생으로 돌아가, 서로 “야, 자” 하고 거리낌 없이 이름을 부른다. 각지에서 모이니 일찍 시작하는 게 무리다. 오는 대로 김유신 장군 묘와 송화산을 둘러보고 오후부터 운동회를 시작한다.
몇 년 전이었다. 점심을 받으러 가자 한 남학생이 반갑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얼굴은 낯이 익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목에 매단 명찰은 뒤집혀 있었다. 오십 년이 지났으니 기억을 못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미안해서 더 고맙다. 얼마 후 점심을 받고 보니, 그는 우리 화랑학교가 아닌 계림학교 캠프로 간다. 그래, 우리는 한 학교는 아니지만, 같은 해에 경주의 국민학교를 다닌 동기생’이다.
족구 시합에 우리 학교 선수들이 상대편의 공을 받아치지 못하고 픽 넘어진다. 그들은 서브도 잘 넣고 스매싱도 잘해서 세 번 안에 공을 넣는데 화랑학교는 영 형편없다. 3대 0 완패다. 애타는 우리에게 상대 선수가 점잖게 한 마디한다.
“오늘 너네 학교가 주최해서 운동회를 한다고 일부러 져 주는 거겠지.”
꿈보다 해몽이 좋다.
“황남 선수 손 들어, 하나, 둘, 셋, 넷, 다음 화랑 선수….”
진행위원이 선수 아닌 사람은 뒤로 가라고 해도 빙 둘러선 친구들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윷놀이가 시작되자 왁자지껄 시끄럽다. 선수가 던질 준비를 하면 윷, 모, 백도 등 어찌나 주문이 많은지 응원이 아니라 협박 수준이다. 온 마음을 집중해 윷가치를 던진다. 발을 구르고 기뻐 손뼉 치며 엎지락 뒤치락 한 끝에 우리 학교가 이겼다. 신이 나서 서로를 얼싸안고 뛰어오른다.
화랑은 제일 적은 학교라 오늘 나온 친구 수도 적다. 줄다리기는 인원 제한 없이 나올 수 있으니, 우리가 가장 불리하다. 앞에서부터 촘촘히 꽉 잡고 숨을 모아 힘껏 당겨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대편이 끌려온다. 함성을 지르며 넘어지고 보니, 뒤에 다른 학교 친구 여럿이 매달려 있다. 화가 난 월성 아이들이 뛰어왔다. ‘야, 너 화랑 출신 아니잖아?’ 그러자 도와주던 친구들. 왈, “나 금방 화랑으로 전학 왔어.”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좋아서 뛰고, 아쉬움에 땅을 치며 운동회를 마쳤다. 150여 명이 나란히 잔디밭에 줄을 섰다. 호각 소리에 맞춰 막대 끝의 지구본이 입을 쩍 벌리자 각양각색의 종이 리본이 꽃비 되어 내린다. 삽시간에 잔디밭이 화려한 꽃밭으로 변했다. 모두가 국민학생이 되어 두 팔 벌리고 뛰어올랐다. 흥분이 가라앉자, 빗자루로 쓸어 낼 수도 없는 일이라 걱정되었지만, 한 웅큼, 두 웅큼…, 해산 직전 허리를 굽혀 종이 줍기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색 잔디만 남았다. 됐다. 역시 우리는 신라 화랑의 후손 들이다.
오늘은 화랑의 자손이 맥이 빠졌는지, 점심 식사가 끝났는데도 운동회가 시작되지 않는다. 윷놀이 시합을 알리는 방송을 해도 반응이 없다. 경기에는 관심이 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정담 나누기에 바쁘다.
한참 후, 윷가락이 던져지자 말 달리고 잡고 잡힌다. 그런데 선수와 점수를 표하는 이 외에 응원 나온 사람이 없다. 대표로 나갔는데 왠지 윷 모가 잘 나오지 않아 말 놓는 내가 던지는 자리에서 모가 잘 나온다고 바꾸자 한다. 인심 좋게 바꿔 줬지만, 그는 도와 개만 나온다. 일곱 명의 호흡이 잘 맞아 줄넘기를 열여섯 번이나 했다. 황남, 월성이 서너 번밖에 못 넘어 신이 났다. 그런데 마지막의 계림이 서른 번이나 넘었다. 다른 학교가 뛰는 걸 천천히 연구해서 비법을 찾아냈는가 보다. 달리기는 뛰다 엎어질까, 족구와 줄다리기는 힘쓰다 넘어져 다칠까 싶어 취소됐다. 신발 벗어 던지기를 한다고 20여m 앞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온 힘을 다해 내동댕이쳤더니 동그라미를 지나 왼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우리 학교가 꼴찌다.
행운권 추첨이 다가왔다. 오래 기다린 끝에 번호가 불렸다. 상품이 가볍지만 제법 크다. 기대에 차서 풀어보니 곽 휴지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기쁘다. 마지막으로 불린 부산 수자의 상품은 선풍기다. 먼 곳에서 여학생 여럿이 왔다고 제일 좋은 상품으로 특별히 신경을 썼나 보다. 고맙다.
나이를 먹으니 운동회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기려고 있는 힘을 다하고 응원했는데, 이제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 운동회라고 펼쳐 놓았지만 자잘한 놀이를 하며 먹고 마시고 담소하는 자리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패기가 쑥 빠져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이게 어릴 때 운동회 날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그땐 달리기에서 공책 상을 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가 떡, 찰밥, 고구마, 삶은 달걀 등을 가지고 와서 먹는 게 더 좋았다. 이웃 사람들과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을 주민 전체의 운동회이기도 했다.
경주 친구들이 성심으로 마련한 여러 음식이 참 맛나다. 황남의 남자 친구가, 돼지 수육 한 접시를 들고 찾아왔다. 재담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한 뒤 일어나는 그에게 쫄깃한 문어를 한 쟁반 들려 보낸다.
송화산 중턱에 해가 걸리자 아쉽지만, 다음을 약속하며 일어난다. 추첨에서 받은 휴지 한 통이 어릴 적 운동회의 공책 상처럼 기분 좋게 내 손에 들려 있다. 조그만 시골 소녀의 등 뒤로 산 그림자 길기 눕는다.
첫댓글 참으로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운동회'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강 선생님 덕분에 옛날 운동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어 좋은 작품 많이 써 주시길 기대합니다.
옛 생각을 떠올리는 작품이지 않습니까. 찾아주심 감사드립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