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미래 여행
아버지는 먹고사는 게 힘들어 청와대에 쌀 지원을 읍소하는 가장의 눈물 편지도 썼다. 하지만 빵을 팔고 난 뒤 리어카를 끌며 집에 오던 그날 밤, 꼭 잡아준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달빚도 우리 가족의 앞길을 환히 비춰주었다. 삶이 남루해도 아버지는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그 웃음은 절망에 주저앉지 않으려는 '긍정의 몸짓'이자 '희망의 메시지'였다. 아니, 어쩌면 웃지 않고는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빵 파는 리어카 옆에서 미소 짓는 아버지의 사진은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나의 귀중한 자산이다 흥제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은 판잣집> 이라는 동시로 <소년조선일보> 에 입선했다. 판잣집의 애환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불꽃을 피우는 나를 누군가가 알아주는 듯해 뛸듯이 기뻤다.
우리 집은 판잣집, 기와집만 있는 동네 판잣집은 하나뿐. 빗방울 떨어지면 아버지는 망치 드시고 지붕 위로 올라가시고 바람 불면 어머니는 꼬깃꼬깃 종이로 바람구멍 막으셨지요 추운 새벽 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게 이불 덮어 주시고 조용한 밤, 잠드신 어머니 허리 위에 책 펴 놓고 공부하지요 어머니 몸 움직이면 책은 방바닥에 굴러떨어지고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골목길 성적표 불끈 쥐고 마구 뛰어갔어요
가난으로 날개가 꺾인 나는 선생님이 되고픈 꿈을 일단 접고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장학금을 받는 나름 모범생이었고, 1974년 7월 삼성그룹의 제일모직 관리과에 공채로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버지는 회사 첫 출근 날에 기뻐하시며 대문 앞에서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자존과 긍정이 부족하면 내가 나를 부정하고 현실과 쉽게 타협한다. 소년은 어둠 속에서도 긍정과 자존을 읽지 않으며 지금껏 평생학습을 실천했다. 비온 뒤의 무지개를 믿었고, 거친 비바람에도 꿈을 꺾지 않았다. 현재 대학교에서 청춘의 삶에 디딤돌을 놓아주는 위치에 섰으니 속 빈 강정은 아니리라 자신을 위로한다. 추억의 시간 여행을 하면서 잊고 산 귀한 것들을 새삼 발견했다. 그것은 외형보다 내면이 중요하고 고난 속에서는 어둠보다 빛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년은 개천에서도 바다를 꿈꿨다. 우물 안 개구리는 벽을 타고 세상으로 나와 강가에 이르렀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새 인생 중턱을 훌쩍 넘었다. 개구리는 어두운 벽을 타고 오르면서 깨달았다. 용도 꿈이 없으면 한낱 미꾸라지일 뿐이고, 미꾸라지도 꿈을 꾸면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사실을. 과거에서 돌아온 소년은 이제 '미래 여행'을 준비 중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긍정의 힘'을 품고 더 넓고 더 푸른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꾼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창창하니 소년의 미래 여행기에는 싱그러운 이야기들이 듬뿍 담기리라. 남은 여정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사유의 날갯짓으로 글쓰기를 향한 불꽃도 더 활활 타오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