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앤 1】
뉴욕타임즈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유명한 스캔들로 영국 국왕 헨리 8세와 앤 불린과의 로맨스를 선정했었다.
영국 역사에서 헨리8세만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도 없을 것이다
영국 기독교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도 그였으며 그는 6명의 아내와 결혼하여 그 가운데 2명의 아내를 사형에 처한다
잉글랜드 튜더 왕조 헨리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헨리8세는 형이 일찍 죽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 받는다.
에스파냐 아라곤 왕국의 캐서린은 헨리8세의 형과 결혼했으나 그가 일찍 죽자 시동생인 헨리8세와 결혼한다
캐서린은 처음 결혼 9년 동안 최소 6번의 임신이 있었지만 두번은 유산이 되고 한번은 사산된 딸을 낳았고 두 아들은 출생 후 두 달도 안돼서 사망했다.캐서린은 1516년 건강한 딸 Mary를 낳았는데 그녀가 후에 왕위에 올라 피비린내 나는 유혈극을 펼쳤던 Blood Mary이다.
캐서린은 그 후에도 유산을 거듭하다가 폐경기를 맞게 되고 헨리8세는 그를 이을 후계자로 딸 하나만 남겨지자 아직 시작단계인 튜더왕조를 이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게 된다.헨리는 영국의 왕위에 헨리 1세의 딸인 마틸다가 계승자가 되자 대부분의 귀족들이 여성의 통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났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의 아버지도 왕권다툼인 장미전쟁을 종식시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가 튜더왕조의 장래를 절박하게 걱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앤 불린은 非왕족 출신의 첫번째 영국왕비였다.
앤 불린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상인 집안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명문가 하워드 가문이었다.
앤은 프랑스의 루이12세의 왕비 메리 튜더의 시녀가 되었다가 루이12세가 승하하고 프랑수와 1세가 즉위하자 그의 정비 클로드의 시녀로 간택되어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궁정에서 수업을 받으며 예법을 닦았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숙했다.
튜더왕조시대의 전형적인 미인이란 캐서린처럼 금발머리,흰 피부,장미빛 살결에 조금 풍만한 몸매를 가진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앤은 반대로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검은 머리에 날씬한 몸매를 지닌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앤 불린의 외모에 관한 기록이다
'그녀의 어두운 안색 및 흑발과 하얀 피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주었고 대단히 매력이 있었다.앤의 매력은 그녀의 선명한 개성,그녀의 우아함,하지만 그녀는 키가 작았다'
당시 유럽유행의 첨단을 걷는 프랑스 궁정에서 받은 교육덕분에 앤은 세련된 기품과 화술에 뛰어났다.더구나 총명하고 위트가 있었으며 사교적인 성격인데다가 음악과 춤에도 능숙하여 궁정의 많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그녀는 프랑스 식 옷차림,문학,음악 그리고 종교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1521년경 앤 불린은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을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와 헨리 8세의 왕비 캐서린의 시녀가 된다.
그러나 지참금 문제로 그와의 혼담이 무산되고 앤은 명문가의 자제 헨리 퍼시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헨리 8세가 두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하여 그와의 결혼도 무산된다.
캐서린과의 결혼생활 동안 숱하게 바람을 피웠던 헨리 8세는1519년에서 1526년 사이에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을 정부로 두었다.
그러나 1526년경 헨리8세는 앤 불린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