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땅이름에 얽힌 이야기 _ 배우리
이웃집과도 왕래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땅과 땅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동네 이름은 그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내포하는 하나의 풍부한 상징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한가롭게 땅 이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이기도 하려니와 땅과 땅 이름은 곧 부동산, 집값 등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무기질 같은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땅에 대해 멀어진 만큼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다. 공중에 집을 짓고 오염으로 가득 찬 도심에서 떠돌이처럼 옮겨 다니는 도시인들에게 땅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공허한 얘기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지구에 대한 관심이 지구를 살리는 일의 시작이라면,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관심이 그저 돈으로 환산되는 곳이 아닌, 내가 사는 동네와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시 주변의 신도시들은 특히나 옛 지명과 소원하다. 그 지역의 자연을 반영했던 마을 이름들은 이제 번쩍번쩍한 신도시의 면모와는 대체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판교
판교는 원래 넓은 들
판교(板橋)는 ‘넓은 들’이라는 의미의‘널다리’ 또는 ‘너더리’로 불리던 곳이다. ‘널다리’, ‘너더리’에서 ‘다리’, ‘더리’는 원래 ‘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널다리’에서의 ‘널’도 ‘널판지(板)’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넓음’의 뜻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든 이것은 한자로 판교가 되면서 ‘넓은 다리’의 뜻을 담아 오랫동안 전해져 오더니 이곳에 큰 다리라고 할 수 있는 인터체인지가 들어섰다. 매지봉 밑의 이매동에는 ‘갓골’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은 분당 시가지가 들어설 곳의 가장자리가 되니 ‘가(가장자리)의 고을’이란 뜻의 ‘갓골’이란 이름이 기차게도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수내동(藪內洞)은 원래 ‘숲안’이라고 불려왔던 곳으로 지금은 나무의 숲이 아닌 아파트의 숲으로 둘러싸였으니 역설적인 경우이다. 땅이름을 보고 앞날을 점치는 이들은 분당 시가지는 앞으로 서쪽으로 살쪄나갈 것이라고 했다. 모두 많이 모인다는 뜻의 ‘모두만이’(대장동), 궁(宮)의 안뜰처럼 아늑한 곳이 될 것이란 뜻의 ‘궁안(宮內)’(궁내동), 늘어나는 고을(마을)의 뜻인 ‘는골(정자동), 즐겁게 산다는 뜻의 ‘낙생(樂生)’(운중동) 같은 땅이름들이 그 쪽에 많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 추측은 지형적 여건이나 지금의 도시 형태를 보아서도 현실로 옮겨질 가능성이 큰데, 지금도 그 곳에선 여기저기 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다.
`평촌
평촌에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
지금은 온통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이 지역은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닐하우스가 군데군데 있었던 너른 벌이었다. 지대가 워낙 낮아 비가 오기만 하면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이 지역엔 믿기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오랜 옛날, 며칠을 두고 비가 퍼부어 이 일대가 온통 물바다였단다. 마을 사람들은 물을 피해 각자 그 근처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 산들이 봉우리 끝부분들만 조금씩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겼었단다. 나중에 물이 빠져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피해 올라갔던 산 얘기를 하더란다. 그러나 과장이 심했던지 물 밖에 나온 산봉우리가 겨우 관((冠)만큼이었다느니, 술잔만큼이었다느니, 모래만큼이었느니 하는 이야기였단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산들에 이름을 붙였는데, 관만큼 나온 산은 ‘관악산’이라 했고, 술잔만큼 나온 산은 ‘수리산’, 모래만큼 나온 산은 ‘모락산’이라 했다고 한다. 달안이벌에서 보면 북쪽 삼성산에서 뻗어내린 지맥은 들 쪽으로 완만한 비탈을 이으면서 학의천 앞에서 숨을 죽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늘어진 뫼의 뜻인 ‘늘뫼’를 얻고 이것이 ‘날뫼’로 변해 날아가는 산의 뜻의 한자말 비산(飛山=비산동)을 얻는다. 날미는 골짜기 안쪽의 ‘안날미’와 바깥쪽의 ‘밧날미’로 구분돼 있었으나, 지금은 아파트가 이어져 들어서서 한 마을처럼 되었다.
`비산동 `날미
비산이 산 쪽인 데 반하여 평촌은 벌 쪽에 해당한다. ‘들말’이란 뜻의 평촌(平村)은 완전히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호계동은 ‘새터’가 그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이 대단위 택지 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됐을 때 평촌-비산-호계-관양동의 650여 농민들은 농토를 내어주고 정부가 다른 곳에 마련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는 이들의 섭섭함과 허전함을 땅이름이 미리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날미’의 ‘날’은 ‘나갈(出)’이고 그 근처 ‘갈미’의 ‘갈’은 ‘갈(行)’의 뜻을 담은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고장 농민들에게 있어서 ‘날미-갈미’는 좋은 의미의 땅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날-갈’이 나간다는 뜻인 데 반하여 ‘들’은 그것의 상대적 의미인 ‘들어옴’의 뜻이 된다. 평촌은 ‘들말’이니 이 뜻을 여기에 붙여 보면 ‘들어올 마을’의 뜻이 되어 새 주택단지가 될 것을 미리 암시하는 듯하다. 이곳의 땅이름 ‘날미’, ‘갈미’, ‘들말’ 등은 결국 인구의 이동을 예고한 게 아닐까?
`여의도 `너벌섬
‘너나 가져라 섬’이
‘내가 갖고 싶은 섬’이 된 여의도
여의도는 전에는 딴 이름으로도 불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나오는 이름은 ‘잉화도(仍火島)’인데, 이는 밤섬과 여의도를 하나의 섬으로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밤섬과 여의도는 한강물이 높지 않을 때에는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국여지비고』(東國與地備攷)에는 ‘나의도(羅衣島)’로 나와 있고, 『대동지지』(大東地誌)에는 ‘여의도(汝矣島)’로 나와 있다. 이렇게 여러 이름을 가졌지만, 그 뜻은 모두 ‘너른 벌의 섬’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너벌섬’이 원래 이름일 것이다. ’나의주’의 ‘나’는 ‘너’의 소리빌기, ‘의(衣)’는 ‘벌’을 취한 한자 표기로 보인다. ‘옷’의 옛말이 ‘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羅衣)’는 ’너른 벌’의 뜻인 ‘나벌’ 또는 ‘너벌’의 표기로 보인다. ‘잉화도’에서 ‘잉(仍)’도 ‘너’ 또는 ‘나’의 옮김일 것이다.
이 ‘잉(仍)’은 ‘니’로도 읽어왔는데, 이 글자는 예부터 땅이름에서 ‘너’, ‘니’ 등의 소리빌기로 많이 써온 글자이다. ‘잉화’의 ‘화(火)’는 ‘불’로, ‘벌’과 음이 근사하니, ‘잉화도’는 결국 ‘너벌섬(니벌섬)’의 한자 표기라 여겨진다. 따라서 ‘여의도’, ‘잉화도’, ‘나의주’는 모두 ‘너벌섬‘의 다른 표기로 보이는데, 항간에 떠도는 여의도 이름풀이와는 거리가 멀다. 여의도를 쓸모없던 땅이라고 해서 ‘너나 가질 섬’의 뜻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한낱 얘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근거 없는 말이다.
`제천
제천은 물이 많은 마을
제천시는 본래 고구려의 대제(大堤)군으로 삼국시대부터 이미 ‘큰 방죽’을 예고한 듯한 지명을 썼다. 당시 이곳을 내토(奈土)라고도 했는데, 땅이 낮고 물가였기 때문에 ‘낮터’(또는 ‘내터’)라는 뜻으로 이 이름이 붙은 듯하다.
삼국 통일 후 신라 경덕왕이 내제(奈堤)군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다시 제주(堤州)로 고쳤는데, 조선 태종 때에 와서 지금의 시-군 이름인 제천이 되었다. 따라서 제천은 약 2천 년 동안을 계속 방죽(堤)과 관련된 땅이름을 끈질기게 써온 마을이다.
제천시 중에서도 한수면(寒水面)이 특히 많이 물에 잠겼다. 한수(寒水)는 ‘찬물’의 한자식 표기이다. 우리말 ‘찬’은 차갑다는 뜻과 가득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가득하다가 차갑다로 한자 표기된 듯하다. 차가운 물이 가득하다로도 볼 수 있으니, 한수라는 지명은 이 일대에 물이 가득 차게 됨을 미리 예고라도 한 게 아닐까 갸웃거리게 된다. 이 한수면의 이웃 면들의 이름이 수산면(水山面)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물뫼’의 뜻인 수산(水山) 일대에는 매봉, 야미산, 금수산 등의 산이 솟아 있어 이름 그대로 호수의 물을 시원히 내려다보고 있다.
너른 벌이 모두 아파트 숲으로
그러나 그도 다 옛날 말이다. 지금 여의도, 아니 서울 어디라도 크고 작은 세상의 모든 땅은 곧 돈이요 행복이다.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한 이래 땅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왔다. 그리고 유구한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지명 역시 그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인간의 역사, 땅의 역사는 개발의 역사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지명은 그 지역의 산수와 지세, 자연관과 세계관을 내포한 중요한 사료이다. 아름다운 마을 이름에 깃든 것은 섬세한 관찰력과 함께 자연에 대한 선조들의 겸손한 자세이다. 자고나면 새로운 건물,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는 시대라지만 내가 발 딛고 사는 고마운 땅에 대한 명상의 시간을 한 번쯤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배우리 webmaster@namelove.com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제작년월: 200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