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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찬양으로 엮어서 우리 기도원 찬양대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이래로 가장 아름다운 칸타타였던 것 같아요. 동의하시면 아멘 박수하겠습니다. 우리 어린이들과 함께한 것도 의미가 있었고, 또 1 2부 찬양대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또 찬양을 한 것도 아름다웠고, 또 앙상블, 또 우리 찬양대 여러분들이 한 달 동안 몇 개월 동안 이렇게 준비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이 찬양이 앞으로 내내 여러분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수고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받으셨지만 우리 수고해 주신 분들께도 다시 한 번 박수 한번 하겠습니다. 우리 한양대 예 고맙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서 온다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황제나 또는 주요 인물이 올 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대림 아드벙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탄의 주님, 그리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면서 이 기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고난과 어둠의 땅에 빛과 소망의 날을 약속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의 메시지입니다. 1 2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감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서블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는도다.
오늘 본문에 여러 지명이 나옵니다. 스불론 땅, 납달리 땅, 이방에 갈릴리 등 등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북쪽 지방에 있는 지역입니다. 고난과 어둠을 상징하는 고난과 어둠의 현실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무역로였어요. 그래서 근동 지역의 열각이 이 지역을 놓고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이곳은 그 열강들이 서로 각축전을 벌이던 전쟁터였습니다. 그들은 잔인한 말발국에 짓밟혔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피할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운명과도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큰 대륙 끄트머리에 무슨 호랑이나 토끼 꼬리처럼 달려 있는 작은 나라지만 우리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부동항을 찾으려는 러시아, 러시아는 큰 땅을 가지고 있지만 주로 동토입니다. 얼음의 땅 그래서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서 늘 전쟁을 합니다. 크림 전쟁, 러일 전쟁 이런 것들이 그런 것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동쪽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중국, 우리나라만 먹으면 동해안이 자유롭게 동해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섬나라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지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해서 우리나라를 발판으로 삼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막으려는 미국도 한반도가 중요합니다. 중요한 만큼 여기는 늘 긴장 상태고 전쟁이 자주 일어나게 되고, 강대국이 일어날 때마다 위협을 받고 또 그들의 말발국에 짓밟히기도 합니다.
또 북한 땅에는 허시탐탐 노리는 그 미치광이 정권이 또 있어요. 그래서 늘 우리는 불안하고 평안한 날이 없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수불론 땅, 납달리 땅, 이방의 갈릴리와 같은 운명이 우리나라와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더 와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고통받는 자들, 흑암 멸시, 사망의 그늘진 땅, 무겁게 밴 멍에 어깨에 채찍, 압제자의 막대기,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 오늘 본문 짧은 그 본문에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 지역을 표현하는 그 지역의 아픈 현실을 대변하는 단어들입니다. 듣기만 해도 사실 심란하고 살벌하고 듣고 싶지 않은 단어지요.
오늘 이사야는 이 지역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 지역은 그렇게 짓밟혔어요. 아시리아에 의해서 신 바벨로니아에 의해서, 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 제국에 의해서 지금도 이 지역은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강대국들은 이 지역을 초토화시켰고, 이곳에 사는 백성들은 끝을 모르는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들이 이런 현실 안타까운 현실을 경험한 것은 첫째는 지정학적인 위치예요. 자기들이 원해서도 잘못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그 땅이 그런 곳이에요.
그리고 하나를 덧붙이자면 하나님 앞에 지은 죄악 때문입니다. 사실 이곳이 지정학적으로 이렇게 불안정하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붙들어 주신다면 그들은 평안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시고 그곳으로 인도하셨어요.
상황이 변한 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붙들고 계시면 그 상황을 초월해서 사막에도 길을 내시고 사막에도 물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어요. 그들이 의지하던 하나님에게서 돌아섰습니다.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고통의 땅이 된 거예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하시지만 그 백성들에게 기회와 회복의 기회,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절망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회개하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은 변함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저와 여러분들에게 회복과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이런 내용들이 나와요. 후에는 갈릴리 해변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고, 흑암에서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 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빛이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며 그들을 짓누르던 멍예와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끊으셨다.
하나님의 본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그 백성, 그 자녀들을 책망도 하시고 또 징계도 하시고 때로는 심판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본래 마음,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표는 용서하시고 잘 되게 하시고 회복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징계하지만 용서하시는 하나님, 회복시키시고, 빛과 소망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역사와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허물과 죄 때문에 또는 역사적인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우리가 혼란스럽고 어둡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가 있어요. 요즘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집단의 잘못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꼭 누구를 탓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시간들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의 땅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얼마나 소중히 관리했는가 우리에게 책임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용서와 새로운 기회와 회복의 역사를 주셔서 21세기에 세계를 선도하고 또 세계를 세계의 복음을 전하는 그 선교하는 민족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관계없이 당하는 시대적 상황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때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면 그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두 번째로 이사야의 메시지는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거예요. 6절과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았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니라. 그 정사와 평강에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자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가 예언했던 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 700년 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성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기 안에 독생하시는 유일하신 아들 하나님이신 그를 이 땅에 사람의 몸, 종의 몸을 잊고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 보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사람 같으면 지금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데, 이 땅에 이스라엘의 문제 그리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보내시는데 그 현장이 험악한 곳입니다. 적대자들로 가득하고 배신자들로 가득하고 공격당하고 모욕당하다가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야 되는 그런 현장으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야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 같으면 얼마나 마음이 흔들렸겠어요 날짜를 미루고 보내지 않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구실을 찾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하는 일에 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히려 상황에 안 받쳐주면 그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보내시는 하나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그것을 이사야는 여호와의 열심히 일을 이루신다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 하나님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찌르는 아픔이 될지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신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담아놓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탄생은 700년 후에, 이 이사야의 예언이 700년 후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어요. 1장 22절 이하에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였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탄생이 뭐냐? 이사야를 통해서 700년 전에 예언하셨던 그 예언의 성취라고 오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하신 예수님은 단순한 왕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일시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통치자로 오셨습니다. 어둠의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셔서 세상은 힘과 권력으로 무력으로 세상에 평화를 준다고 하지만 주님은 그게 아니라 겸손과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셨어요. 세상에 평화를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사야는 그를 평강의 왕이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세상은 평화를 갈망합니다. 누구나 평화, 평화, 악한 사람조차도 평화를 얘기합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세계의 인사말은 평강입니다. 샬롬 우리도 평강을 가지고 인사를 해요. 평안하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평화를 강구하는 갈구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평화를 많이 얘기하는 것은 평화가 없다는 거예요. 평화가 있으면 평화를 얘기할 이유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평화를 갈망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없다. 위장된 평화, 일시적인 평화 그런 평화는 잠시 존재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여러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거예요. 평화는 하늘로부터 온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강이 없는 세상,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한 세상, 미움과 증으로 충만한 세상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어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만나면 그 마음속에 하늘의 평강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속에 하나님 평강이 임해요.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그곳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해요.
예수님은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평강은 먼저 마음에 주어지고 우리 영혼에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가정으로 공동체로, 사회로, 그리고 국가로 확장됩니다. 이 평화는 외부로부터 오는 게 아니에요. 하늘로부터 우리 마음에 임하고 그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있는 이웃이 평강하게 되고, 그리고 가정과 공동체, 국가가 평안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평강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강, 강력한 평강 이 평강을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이 평강은 전쟁 중에도 누리는 거예요. 실패하는 상황에서도 누리는 거예요. 스불룬 땅과 같은 이방의 갈릴리와 같은 척박한 곳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강이에요.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임하는 평강이에요. 이번 성탄절에 이 평강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도 주시고 치유도 주시고 우리에게 부유도 주시고 하늘의 모든 부활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어요. 그중에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평강입니다. 세상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마음의 평강을 잃어보면 잃어버리면 그 나머지는 다 무용지물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 안에 거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강이 우리 속에 넘치게 됩니다. 그 평강이 오늘 이후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차고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