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모임 2주차
Stairway to Heaven
“아. 죽고 싶다.” 동우가 중얼거렸다. “죽을 방법은 생각해 봤어?” 옆에 서 있던 영희가 물었다. “아직 생각중이야.“ 동우는 대답하며 옆에 있던 돌을 주워 호수에 던졌다. “그 돌에 개구리 맞아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영희가 말했다. “그것도 뭐 그 개구리 운명이겠지.” “니가 죽으려는것도 운명이고?” “난 운명을 믿지 않는데?” 동우가 대답했다. “뚱딴지같은 소리만 늘어놓는구나.“ 영희가 웃으며 말했다.
동우는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손으로 벤치 자리를 툭툭 치며 영희를 불렀다. “물에 빠지면 고통스러울까?” 자리에 앉은 영희에게 동우는 물었다. “당연히 고통스럽겠지.” 영희가 말했다. “고통이란 몸에서 보내는 신호 같은 거잖아. 너 지금 위험하니까 무슨 조치를 취하라고. 불에 닿으면, 날카로운 것에 찔리면 아픈 이유가 위험하니까 뭔가 하란 몸의 신호잖아. 그런 신호가 없다면 불에 살이 다 타들어가도, 손가락이 잘려도 멋모르고 있겠지.” 영희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물며 죽을 정도의 위기라면 무지무지 고통스럽지 않을까. 숨이 막히는데 숨을 쉬진 못하고 목과 코로 물이 하염없이 들어가고 몇 분 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고통에 빠져 있다가 서서히 죽음으로 나아가겠지.” “그럼 물에 빠져 죽는 건 안해야겠다. 실내수영장에서 수영 배울 때도 고통의 연속이었거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더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 물에 빠지면 뭐든 이야기하고 싶어지거든.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애가 따지는 것도 정말 많구나.” “한 번 밖에 없는 기회잖아. 생의 마지막을 후회로 장식하고 싶진 않거든.” 영희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포개며 손을 무릎 위로 올렸다.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네.”
“목을 매다는 건 어때?” 동우는 벤치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장 최악의 선택이지.” 영희가 대답했다. “왜?” “가장 추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거든. 일단 자기 죽은 몸을 누군가에게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겠지? 혀는 뽑혀져 나와 있고 바지는 분비물로 잔뜩 적셔져 있는 상태로 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겠지? 누가 찾아줄 때 까지.” “추하긴 하겠다.” 동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희는 그런 동우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게다가 목에 경동맥부분을 정확하게 압박할 수 있도록 줄을 매달면 상관없겠지만 일반인들이 그렇게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아마 애매하게 매달아서 고통만 실컷 받다가 죽겠지. 뭐 마지막 가는 길 고통으로 끝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그건 좀 별론데.”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봐.” 동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근데 너 그렇게 다른 방법을 찾아봐 라고 말한다면 자살방조죄에 걸리지 않니?” 영희도 동우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살방조죄가 그렇게 쉽게 성립이 되는 죄가 아니거든. 니가 죽고 싶은데 내가 옆에서 말 한마디 했다고 자살방조죄로 걸리겠니? 내가 잡혀 들어가려면 저 나무에다가 밧줄 걸고 의자 가져다놓고 너 목에다가 밧줄까지 걸어주고 의자에 올라가라고 해서 의자 차면 죽을 수 있으니까 알아서 해 정도까지 해야 잡혀 들어갈걸?” 영희가 옆 나무둥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쉬운 게 없구나. 정말.” 동우는 영희 옆으로 가며 말했다. “쉬운 게 하나 있기는 한데?” 영희가 뒤돌아 동우를 보며 말했다. “뭔데?” “나 커피 한잔 사주는 거. 이야기 계속 하니까 목마르다.” 그렇게 말하며 영희는 동우의 차로 발길을 옮겼다. “차 문 열어줘. 어서.” 영희는 잠겨있던 차문을 한번 열어보더니 동우를 보며 말했다.
“인류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게 이 커피라는 거 알아?” 영희가 아메리카노를 받아들며 말했다. “물이 깨끗하지 못해 술만 마시던 서양 사람들이 커피가 전파된 후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사회생활이 활발해졌다는 거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알코올이 아닌 각성제인 카페인이 들어갔으니까.” “그렇구나.” 동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커피를 들었다. “자바칩 프라프치노? 죽겠다는 애가 욕망에는 충실하구나.” 영희가 동우의 커피를 보며 말했다. “원래 욕망을 제한하는 이유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잖아. 지속적이고 안정된 삶을 위해서 욕망을 절제하는 거지. 근데 죽고 싶은 마당에 욕망을 조절할 필요가 없잖아. 살이 찌던가 말던가.” “고작 자바칩 프라프치노가?” “고작 자바칩 프라프치노 한잔 정도.”
“근데 카페인도 많이 먹으면 죽지 않나?” 동우가 빨대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죽겠지. 많이 먹어서 안죽는게 있나?” 영희가 대답했다. “얼마나 먹어야 죽을 수 있는데?” “자판기 다방커피 기준으로 40잔 정도라던데? 카페인 함량은 비슷할테니 니가 먹는 그거 40잔 먹을 수 있으면 죽을 수 있을 거야.” “배불러서 죽는 거 아냐?” 동우가 다시 물었다.
“물도 350미리 40잔 연속으로 마시면 죽을걸. 커피로 죽긴 쉽지 않지.” 영희는 자기 앞에 놓인 커피와 물을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옛날엔 사약이라는 게 있었다며. 죄인을 명예롭게 죽음으로 인도하는 방법이었다고 하던데.” 동우가 말했다. “사약은 임금이 내리는 약이니까 뭐 목을 자른다거나 사지를 뜯는다거나 하는 것 보다는 명예롭긴 하다고 하더라. 근데 너도 알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게 아니라서, 사약을 몇잔이나 들이키고 나서도 안 죽어서 목을 매단 사람이 있다고 하잖아.” “뭘로 사약을 만들었길래?” “제조방법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더라. 왜? 사약 한번 만들어보게?” 영희가 물었다. “지금 와서 사약을 만들 필요가 있나. 농약이 있잖아. 근데 농약이라는 이름 진짜 웃기긴 하다.” “왜?” “농약은 약이 아니잖아. 독이지. 곤충이나 풀을 죽이는 독. 근데 거기다가 약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으니. 처음 농약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정말 고약한 사람인거 같아.” 영희의 말에 동우는 웃었다. “농사를 살리는 약이라고 해서 농약이겠지. 어쨋던 먹으면 죽는 약이니 우리 시대 사약이기도 하겠네. 농협에서 내려주는 사약.” 동우가 대답하자 영희는 동우를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요새 농약은 죽지도 않아. 사고가 하도 많아서 구토제 같은걸 넣어서 죽지도 못하게 만들거든. 이전에 그라목손이라고 들어봤어?” “그라목손?” 영희의 질문에 동우가 되물었다. “응 그라목손. 제초제의 일종인데 성능이 무지 좋고 잔여물질이 남지 않아서 농가에서 많이 이용한 농약이야. 가격도 쌌거든. 근데 이게 이제는 판매금지에 가지고 있으면 벌금까지 무는 물질이 되었어.” 영희가 말했다. “왜? 싸고 성능 좋고, 잔여물질까지 안 남으면 장려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문제지. 성능이 너무 좋은 거. 사람한테도 완전 잘 듣거든. 이거 먹으면 폐가 굳어서 호흡도 못하고 일주일 고통 받다가 저세상 가는 거야. 다른 농약들이야 위세척 하고 어쩌고 하면 산다지만 얜 약도 없고 치료법도 없는 극약이거든.” “너무 성능이 좋아도 문제구나.” 동우가 말했다. “그렇지 뭐. 농약 먹고 죽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간의 충동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는 거거든. 보통은 나중에 후회한다더라.” 영희가 대답했다.
“그럼 쉽게 죽는 약 같은 건 없는 거야?” 동우가 자신 앞에 놓인 음료수를 바닥까지 긁어먹으며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먹으면서 죽는 이야기 하는 너도 참 웃기긴 하다 야.” 영희는 그런 동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죽기 전까지는 살아야지. 살려면 먹어야하고.” 동우가 대답했다. “쉽게 죽는 약이 있긴 있겠지. 근데 그걸 왜 만들겠니. 자살장려캠페인 벌이는 것도 아니고.” “그럼 마약은 어때? 그거 많이 먹으면 죽지 않나?” “죽기야 하겠지. 근데 마약 맞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죽을 생각이 안 들것 같은데?” 영희가 대답했다. “그건 그러네. 죽으려고 먹었는데 죽을 기분이 안 들면 그냥 마약중독자 되는 거잖아.” “현실이 괴로운 사람이 택할 방법이긴 하네. 더 괴로워지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마약중독자들이 그런 이유로 마약을 택하는 거 아닐까?” “현실에서 도망갈 다른 방법이라는 거네?” “누구는 게임이고, 누구는 독서고, 누구는 취미생활이겠지. 현실에서 도망가는 방법 말이야. 근데 그런 건 아무래도 현실과의 연결의 끈이 강하게 묶여있는 편이니까. 마약이나 죽음은 아예 현실과 단절될 수 있잖아.”
동우는 영희에게 손짓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었으면 가자. 넌 커피 먹자더니 손도 안 댔네.” “막상 오니까 먹고 싶진 않더라.” 영희도 동우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우는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로 발길을 향했다. 차는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새 차가워진 바람이 동우의 몸을 스치자 동우는 팔을 가슴 쪽으로 모으며 한기를 조금이나마 피하고자 했다. 뒤따라오던 영희가 동우에게 물었다. “이제 죽으러 가는 거야?” “아직 어떻게 죽을지도 정하지 못했는데?” “까다롭구나. 넌” “정하게 된다면 생애 마지막 선택이 될텐데, 신중해야지. 지금까지 신중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동우는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옆에 영희가 말했다. “운전하는데 음악도 안 틀고 가니?” 동우는 휴대폰을 건넸다. “니가 좀 골라봐.” 잠시 후 차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동우는 음악의 기타 전주를 잠시 감상하더니 영희를 바라보았다. “이런 노래를 고르다니 악취미가 따로 없네?” “왜. 좋지 않아? 나 이 노래 좋던데. 특히 제목이.” 영희가 말했다. “Stairway to heaven. 천국으로 가는 계단.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자살하겠다는 애가 천국 갈 생각을 하니? 꿈도 크셔라.” “애초에 자살하면 지옥간다는건 기독교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야? 난 기독교 안 믿는데.” 동우가 대답했다. “어느 종교에서도 자살해서 좋은 곳 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 자살을 권장하는 종교가 어디있니.” “근데 왜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에서, 문화에서는 자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까?” 동우가 물었다. “노동력이 줄어들잖아. 사람이 마음대로 죽으면.“ “노동력?”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삶이 힘든 사람이잖아. 삶이 힘든 사람들은 하층민들이 많을 테고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죽으면 일할 사람들이 줄어들겠지. 나라에서 그런걸 바라지는 않을 거잖아. 특히 어딘가 위에 있는 사람들은 밑에 사람들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영희가 대답했다. “정말 삭막하네.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그런 교리를 넣은 게 아니란 말이야?“ “뭐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 근데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야?” “몰라. 어디로 갈까?”
어두워진 밤길을 차 한대가 미끄러지듯이 지나갔다. 차 안에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구름 한 점 없는 곳에서 홀로 그 밝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동우는 차를 시내 다리 근처 공터에 주차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게?” 옆에 있는 영희가 물었다. “여기 강은 얕아서 뛰어내린다고 죽을 수나 있을까?” 동우가 대답했다. “머리부터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지. 너 수영도 못하잖아.”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면 한강 정도는 가야하지 않을까? 그냥 다리가 보고 싶어서 온거야.“ 동우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리 쪽으로 걸어올라 갔다. 다리 난간 근처에서 동우는 달빛과 도시 불빛이 비치는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있으면 자살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옆에 선 영희가 말했다. “뭐 자살명소라는 마포대교정도가 아니면 여기 있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은 없을 걸?” 동우가 대답했다.
“그렇게 죽는게 무서우면서 왜 죽을 생각을 해?” 영희가 물었다. 동우는 옆에 있는 영희를 바라보았다. 영희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던 동우가 말했다. “살 이유를 찾으려고 그러지.” “사람이 살아가는게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니잖아. 그냥 태어났으니까, 웃고 즐기고 울고 분노하며 사는 거지.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누군가는 먹기 위해서, 누군가는 게임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도중에 계속 이유를 찾아나가는 게 사람 아니야?” 영희가 말했다. “나는 그 살 이유를 잃어버렸잖아. 너라는 삶의 의미를 말이야.” 동우가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동우에 눈에 비치던 영희의 모습이 점차 흐려져 갔다. 사라져가던 영희가 동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살아. 그러니까 살아야지. 아마 넌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울먹거리는 동우의 등 뒤로 별빛이 반짝, 내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