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니크
2021년 두브로니크 인구는 41,562명.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시가지와 그곳을 둘러싼 성벽의 경관으로 유명하다. 남북으로 긴 형두브로니크태의 크로아티아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물가가 비싸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최남단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물가가 가장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수도인 자그레브의 물가는 두브로브니크의 물가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반 이상 저렴하다. 두브로브니크는 관광도시인 탓에 물가가 비싼 편인데 두브로브니크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해안 소도시 차브타트(Cavtat)만 가도 물가가 두브로브니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두브로브니크를 먹여살리는 것은 단연 관광업이다. 2015년 두브로브니크를 찾은 관광객은 2백만 명에 육박했다. 국적별로는 영국, 미국, 독일 순. # 관광의 중심인 옛 시가지는 말 그대로 굴뚝 없는 공장인 셈이다. 두브로브니크 주민들은 관광업을 제외하면 수산과 선박 정비 등 해양에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대학은 이러한 산업 인력 수요에 맞춰 수산, 요트와 마리나 기술, 선박 운용과 선박 공학, 문화재 복원 등의 학과 과정을 갖추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는 1979년에 플리트비체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유산의 영역은 성벽 안쪽 뿐만 아니라 성벽 바깥에 있는 로브리예나츠(Lovrijenac) 요새와 로크룸 섬 전체를 포괄한다. 1991년에는 지진과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위험에 처한 유산목록'에 올랐다가 복구 작업이 상당히 진척된 1998년에야 비로소 이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약 2km에 걸쳐 옛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성벽이다. 필레 게이트 근처의 입구를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가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성벽은 최고 25m 높이를 자랑하며, 가장 견고한 곳의 두께는 6m에 이른다. 육지 쪽에는 해자를 파 접근을 더욱 어렵게 했다. 성벽 곳곳에는 탑과 요새를 배치했는데,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북서쪽에 있는 민체타 탑(Kula Minčeta)이다
성 블라이세 성당
두브로브니크의 수호 성인인 성 블라이세를 기려 만든 성당. 두브로브니크에서 성 블라이세에 대한 숭배가 시작된 것은 한 전설 때문이다.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참사회원인 스토이코라는 사람이 은발의 노인, 성 블라이세의 환영을 보았다. 성 블라이세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계략을 써서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할 계획이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이 도시를 보호하고자 천국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매년 2월 3일에 성 블라이세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는 2009년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라는 이름으로 인류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로아티아를 둘로 나눈 도시 ‘네움’
스플리트를 지나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면 두 번의 국경 출입문관리소를 만나게 되는데 두 국경 사이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Neum)이라는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1984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대통령이었던 티토 대통령이 네움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넘겨 주었고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하면서 네움은 크로아티아를 두 개로 나눠 버린 큰 장벽이 되고 말았다. 현재까지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네움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네움을 크로아티아에 주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바다와 인접해 있는 도시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네움이 크로아티아로 되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첫 번째 출입문관리소를 지나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땅이고, 두 번째 출입문관리소를 통과하면 다시 크로아티아로 들어서게 된다. 여권 검사를 두 번 하니 여권은 꼭 몸에 지니고, 꺼내기 쉬운 곳에 두는 것이 좋다.
▼스지르산 잔망대ㅡ 아드리아해,붉은지붕 심 산
1808년 나폴레옹이 세운 십자가▼
두브로니크 성채 북문▼
오노프리오 분수대▼
두브로니크 성벽 투어▼
아드리아해 부자카페▼
유람선 투어▼
유람선에서 바라본 누드비치▼
루자광장▼
렉터궁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