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21:9-27절) 새 예루살렘
영화를 보면 미국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請婚)할 때,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예쁜 반지를 준비해 여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바치면서 “나와 결혼해 주시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자는 대개 그 보석(寶石)이 박힌 반지를 보고 감격해 “예스”라고 대답하며, 결혼식 날짜를 정하게 됩니다. 여성들 중에 보석(寶石)이 너무나 비싸서 그렇지, 보석(寶石)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일단 보석(寶石)은 예쁘고, 멋지기 때문에 그것을 반지로 손가락에 끼거나 목걸이로 목에 걸게 되면, 사람 전체가 멋있게 보입니다.
보석(寶石)을 사랑의 표시로 받으면, 기분이 굉장히 좋을 것입니다. 보석(寶石)은 비싸고, 아름답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도 그처럼 가치 있고, 앞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훌륭하고, 변함없는 사람을 보면“저 사람은 정말 보석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가장 좋은 인사말이 있다면 “어떤 보석보다 더 가치 있는 여인이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가치(價値)있는 자는 이 세상에서 많은 연단(鍊丹)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모든 욕망(慾望)과 야망(野望)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겸손(謙遜)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끝까지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영원한 유황(硫黃)불 못에 집어넣고 난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부(新婦)가 신랑(新郞)을 위하여 단장할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의 단장(丹粧)중에 최고는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新婦)가 신랑(新郞)을 맞이하기 위하여 단장(丹粧)하는 것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을 보면, 성벽(城壁)과 성문(城門), 성(城)기초석이 모두 보석(寶石)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이 새 예루살렘의 세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어린 양(羊)의 아내 곧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이 거룩한 성(城)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곧 이 새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벽(城壁)에서부터 시작해 성문(城門)이나, 성(城)의 기초(基礎)석의 전부 보석(寶石)으로 만들어진 이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羊)의 신부(新婦)곧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끔 보석(寶石)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에서도 보석(寶石)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주위로 강(江)들이 흐르는데, 비손이라는 강(江)이 흘러가는 하윌라 지역에 금(金)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하윌라 땅에 있는 금(金)은 요즘 금(金)처럼 녹여서 제련(製鍊)해야 하는 금(金)이 아니라, 그 자체가 순금(純金)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델리엄과 호마노라는 보석(寶石)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는 햇빛에 유난히 반짝이는 빛을 보고, 하윌라 땅에 와서 보석(寶石)을 만지거나, 보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런 정금(正金)이나, 보석(寶石)들을 어디에 쓰는지? 알지 못했지만, 다른 돌에 비해 아주 아름답고,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보석(寶石)이 곧 하나님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만들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는 이런 보석(寶石)들을 보고, 이 세상에 많은 돌이 있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아름답고, 귀한 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정금(正金)이나, 보석(寶石)들이 하나님이 만들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보석(寶石)이 나타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시내 산(山)밑에서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짓고, 제사장의 옷을 만들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사장의 옷을 만들 때, 그 옷 위에 입는 조끼도 만들게 하셨는데, 그 조끼 이름이“에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입는 이 조끼 위에 열두 개의 서로 다른 색의 보석(寶石)을 붙이고, 그 보석(寶石)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도장 파듯이 새기게 하셨습니다.
여인들이 보석(寶石)을 보면, 시선(視線)이 끌리듯 하나님은 제사장이 에봇을 입고, 제사를 드리면, 눈이 끌리시게 되는데, 바로 이 에봇에 붙어 있는 열두 개의 보석(寶石)이 앞으로 변화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보석(寶石)이 되지 못하고, 그냥 평범하고, 쓸모없는 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광야에서 고난(苦難)을 받아 변화되면, 모두 보석(寶石)으로 변하는데, 하나님은 이 보석(寶石)위에 새겨진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聖幕)도 만들게 하셨는데, 성막(聖幕)의 성소(聖所)와 지성소에 있는 것을 모두 금(金)으로 싸게 하셨습니다. 성막(聖幕)은 겉에서 보면, 보잘 것 없는 시커먼 수달 가죽으로 만든 천막(天幕)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사면(四面)이 전부 금(金)으로 싸여 있고, 그 안에 있는 등대와 언약궤, 진설대가 모두 금(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겉모습은 시커먼 수달 가죽으로 된 천막(天幕)에 불과하지만, 그 안은 완전히 금(金)으로 싸여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1:7절)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끝에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온통 금(金)과 진주(珍珠)와 보석(寶石)으로 만들어진 새 예루살렘 성(城)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患難)을 당하면서 연단(鍊丹)을 받아 순결(純潔)해지고, 또 순결(純潔)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는 많은 영웅(英雄)이 있었고, 많은 미인(美人)이 있었으며, 많은 유명(有名)한 사람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남는 사람은 완전한 보석(寶石)으로 변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Ⅰ.그리스도의 신부
결혼식에서 하객(賀客)들과 신랑(新郞)이 입장한 후,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람이 그 날의 주인공인 신부(新婦)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신부(新婦)는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가장 아름다운 화장을 하고, 맨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많은 지식인(知識人)과 부자(富者), 정치인(政治人), 연예인(演藝人)이 있지만, 맨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입니다.
계21:9절)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보면, 그동안 이 지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영웅(英雄)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새 하늘과 새 땅만 남게 됩니다.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아직 아무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 세상을 주름잡고, 큰소리를 치던 그 유명하고, 잘난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모두 영원한 유황(硫黃)불 못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 이 세상을 잘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광(靈光)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조건(條件)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한평생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정욕(情慾)과 욕심(慾心)대로 산 사람들은 모두 유황(硫黃)불 못에 들어가야 합니다.
한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 주인공(主人公)을 소개해 줍니다. 그 새 주인공은 곧 어린 양(羊)의 신부(新婦)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사도 요한에게 이 새 신부(新婦)를 소개하는 천사가 다른 천사가 아니라, 일곱 대접의 재앙(災殃)을 가지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쏟아 붓던 대접 천사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어린 양(羊)의 신부(新婦)를 소개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부을 때, 이 짐승을 타고 있던 음녀(淫女)가 심판(審判)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부(新婦)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려한 옷을 입고 멋진 화장을 했지만, 실제로는 음란(淫亂)하고, 성격이 너무나도 악(惡)한 음녀(淫女)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비록 가난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숙(正肅)하고, 아름다운 성품(性品)으로 단장(丹粧)한 순결(純潔)한 신부(新婦)가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로마 황제(皇帝)나 권력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극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로마의 왕족(王族)이나, 귀족(貴族)들은 로마라는 짐승을 타고, 세상의 모든 부(富)와 사치(奢侈), 쾌락(快樂)을 누리면서 노예들을 짐승처럼 부려 먹고 살았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했고, 로마의 미움을 받고, 많은 박해(迫害)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런 고난(苦難)을 통해 더 겸손(謙遜)하게 되고, 더 성숙(成熟)하게 되어 나중에는 흠도 티도 없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부(新婦)로 준비될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들이 완전하게 준비되는 그 순간 마치게 됩니다.
잠언에 보면,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한 명은 정숙(貞淑)한 여인이고, 다른 한 명은 음란(淫亂)한 여인입니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誘惑)해 음행(淫行)하게 하는 이 음란(淫亂)한 여인은 곧 세상 지혜(智惠)를 뜻합니다.
사실 세상 지혜(智慧)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이 세상 지혜(智慧)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智慧)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 지혜(智慧)가 마치 전부인 듯 술에 취한 것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지껄여 대는데, 사람을 교만(驕慢)하게 만들고, 방탕(放蕩)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對敵)하게 만듭니다.
반면 정숙(貞淑)한 여인은 곧 우리의 생명(生命)을 지켜 주는 하나님의 지혜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죄(罪)를 지으려고 하거나, 방탕(放蕩)한 길로 가려고 하면, 소리를 질러 막고, 끝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솔로몬은 유다의 왕(王)이 되었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의 지혜(智惠)를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기뻐하시면서 그가 구(求)하지 않은 부귀(富貴)와 영화(榮華)까지 전부 주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智慧)는 고난(苦難)으로 연단(鍊丹)된 지혜(智慧)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그로 하여금 자기도취에 빠지게 해서 이방 여인들의 말을 쫓음으로써 망(亡)하게 합니다.
이것을 보면 보석(寶石)은 불같은 연단(鍊丹)을 통과해야지, 그냥 주어지면, 반드시 오만(傲慢)하게 되고, 타락(墮落)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전 세계가 보기에 가장 아름답고, 멋진 도시는 로마였습니다.
로마는 로마 황제(皇帝)가 다른 나라와 전쟁(戰爭)을 해서 가져온 전리품(戰利品)으로 엄청난 신전(神殿)과 경기장, 목욕탕 같은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네로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황금(黃金) 궁전(宮殿)을 만들었고, 전 세계의 사치품(奢侈品)들은 모두 로마로 유입(流入)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겉보기에만 아름답고 화려했지, 실제로는 음탕(淫湯)하고, 행실(行實)이 나쁜 음녀(淫女)였습니다. 실제로 로마 황제(皇帝)의 부인(婦人)이나, 딸들 중에는 너무나도 음란(淫亂)한 짓을 하는 여인이 있어 섬에 가두거나, 추방(追放)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음란(淫亂)한 짓을 했던 이유는 황제(皇帝)나 남자들도 그런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음녀(淫女)는 아무 가치(價値)가 없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악(惡)한 세상이 다 없어졌을 때, 온 세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곧 연단(鍊丹)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평소에는 이 세상의 음녀(淫女)가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매일 화장을 하고, 머리를 치장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 잘난 체를 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정숙(貞淑)한 신부(新婦)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꾸밀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수수하고, 초라한 옷을 입고, 생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단장은 외모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단장(丹粧)은 정욕(情慾)을 이기고, 야망(野望)을 이기고, 거짓말을 이기고, 죄(罪)를 이기는 내적(內的)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윌리엄 왕세손(王世孫)의 신부(新婦) 케이트 미틀턴은 결혼식을 올릴 때,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비싼 드레스를 입지 않고, 수수한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아름답다고 스스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케이트 미틀턴은 쇼핑을 할 때도 경호원(警護員)없이 자신이 직접 카드를 끌면서 쇼핑하는 것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해도 전혀 기죽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고, 헐벗고, 무식(無識)했지만, 케이트 틀턴 왕세손(王世孫)비처럼 순결한 신부(新婦)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 입었던 누더기 옷을 벗고, 최고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丹粧)하고, 모든 사람 앞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敎會)나, 교인들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곧 음란(淫亂)한 것입니다.
신부(新婦)는 신랑(新郞)이 주는 것 외에는 더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환난(患難)과 고통 중에서 순수한 믿음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큰 교회(敎會)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손해(損害)보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일주일동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다가 일요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세상에서 성공한 것을 교회 안에서 얼마나 큰소리를 치면서 자신의 성공(成功)이나, 지혜(智慧)를 뽐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온 세상이 깜짝 놀랄 텐데, 도대체 이처럼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었느냐? 라고 할 것입니다.
나중에 철저하게 거룩한 성도들이 온 세상이 나타날 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잘못 알았고, 철저히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땅을 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신부(新婦)인 줄 알고, 욕했던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엉터리 가짜 신부(新婦)였는데, 그들이 진짜인 줄 알고, 교회(敎會)를 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진짜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모르는 중에 겸손(謙遜)하고, 순결(純潔)하게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말할 수 없는 고난(苦難)중에 조금이라도 거룩하지 못한 부분은 주님 앞에 다 고백(告白)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히 깨끗함을 받은 무리입니다.
Ⅱ.새 예루살렘의 기초
여기서 놀라운 것은 천사가 어린 양(羊)의 신부(新婦)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예루살렘 성(城)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0절)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여기서 우리는 어린 양(羊)의 신부(新婦)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福音)을 듣고, 예수를 믿었을 뿐 아니라, 함께 모여 한 집으로 지어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2:21-22절)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신약 교회가 가지는 놀라운 신비(神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 믿고, 연단(鍊丹)을 통과하게 하셔서 정금(正金)같은 신앙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으로 두시지 않고, 함께 모여 연합(聯合)하여 건물(建物)이 되게 하십니다. 집을 짓는 것을 보면, 나무나 벽돌을 쌓아 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즘 스포츠용품 가계에서 파는 조립식 텐트는 그냥 던지기만 하면, 저절로 펴지면서 텐트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집을 세우려고 하면, 아무리 좋은 나무라고 해도 잘라야 하고, 거기에 구멍을 뚫어 다른 나무와 연결시켜야 합니다.
옛날에 솜씨가 뛰어난 목수(木手)들은 얼마나 섬세하게 나무를 깎는지, 나무끼리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게 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하면, 많은 재료(材料)를 견고하게 연합(聯合)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과 연합(聯合)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연합(聯合)하면, 자기 자신을 낮춰야 하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하다는 교회들을 가보면, 전부 엉성하게 세워진 상태에서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잘 믿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온전한 성전(聖殿)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엉성하게 세워진 나무나 벽돌을 가지고, 견고한 집을 세우려고 한다면, 성장(成長)위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교(精巧)하게 갈고, 닦아서 서로가 자신을 죽여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 말씀으로 죽어질 때,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성공(成功)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성장(成長)위주의 교회들은 사실 성전(聖殿)을 만드는데, 실패(失敗)한 교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려면, 각자가 더 죽어져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단순한 건물(建物)이 아니라, 큰 성(城)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큰 성(城)을 견고한 연합(聯合)체로 짓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완전한 하나의 교회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개 교회가 얼마나 하나 되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하물며, 인종(人種)도 다르고, 언어(言語)나 피부색(皮膚色)도 다르고, 교파(敎派)도 다른 많은 사람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寶血)로 하나가 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언어(言語)가 다르고, 피부색(皮膚色)이 달라도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참으로 겸손(謙遜)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든지, 겸손(謙遜)한 사람을 보면, 금방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믿는 것과 똑같고,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인(白人)이라고 하면, 원지 모르게 오만(傲慢)하고, 아시아 사람들을 멸시(蔑視)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백인(白人)이든, 흑인(黑人)이든, 다른 아시아 계통이든, 겸손(謙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세상의 영광과는 다른 영광이 있습니다.
11절)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어린 양(羊)의 신부(新婦)에게는 영광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즉 이들의 빛은 겉으로 좋은 화장품을 바르거나, 화려한 치장을 해서 멋있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나오는 영광인데, 보석(寶石)과 같다고 했습니다.
즉 이들은 그냥 세상에서 성공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연단(鍊丹)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진리(眞理)가 이 사람의 사상(思想)과 감정(感情)과 행실(行實)속에 스며들어 보석(寶石)으로 빛나는 것입니다.
특히 두 가지 보석(寶石)을 예로 깨끗하고, 흠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수정(水晶)은 속이 투명한 것이 특징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에서 흠이나 티가 없을 뿐 아니라, 속으로도 정직(正直)하고, 솔직한 것이 특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는 투명(透明)을 이야기하는데, 자기 것은 일체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뒤만 자꾸 캐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수정(水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굳이 많은 비밀(祕密)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비밀(祕密)이 많은 이유는 속으로 욕심(慾心)이 많은데, 겉으로 그렇지 않은 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런 사람은 정직(正直)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은 어떻게 생겼을까?
12-14절)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여기에 보면 이 성(城)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이 성(城)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이 성(城)은 높은 성곽(城廓)으로 되어 있고, 문 마다 수호천사가 지키고 있어 담을 넘어서 들어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합니다.
누구든지 이 안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문(門)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존 버니언이 쓴『천로역정』을 보면, 크리스천은 죄(罪)의 짐을 지고, 사탄(詐誕)의 사자들이 쏘는 화살을 피해 가까스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천국(天國)가는 길로 가게 됩니다.
한참 가다 보니까 담을 넘어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천은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오느냐”고 물으니, 이들은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앓는다.”고 하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 담을 넘어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담을 넘어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苦難)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이 성(城)의 기초(基礎)석에는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교회(敎會)의 기초(基礎)가 인간의 사상(思想)이나, 생각이나,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바른 성경(聖經)적인 가르침 위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敎會)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져야 바른 교회(敎會)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2:20절)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교회(敎會)의 기초(基礎)는 사람들이 가진 종교적(宗敎的) 열정(熱情)이나, 어떤 교주(敎主)가 가진 환상적(幻想的) 체험(體驗)이 아닙니다.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이 가르친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교회의 기초(基礎)가 되셨습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것은 자기들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교훈(敎訓)은 아무리 은혜롭고, 유익이 된다고 해도 결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信者)가 성경(聖經)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신의 논리(論理)나 종교적(宗敎的)인 체험(體驗)을 말씀보다 더 우위(優位)에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지식(智識)을 가지고, 교회의 체계를 세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假設)에 불과합니다.
그런 가설(假設)을 가지고는 결코 이 성(城)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사도들을 통하여 가르치신 말씀이어야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는 같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성문(城門)에는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이 셋씩 새겨져 있는데, 이 구조(構造)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의 성막(聖幕)을 양식(樣式)에 두고 행진하던 구조(構造)와 비슷합니다.
결국 광야에서 행진하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단(鍊丹)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성전(聖殿)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성(城)안에 들어가려고 하면, 열두 지파에 속해야 합니다. 즉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하면, 세상의 모든 특권(特權)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부인(否認)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모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지위(地位)나 자랑을 내려놓고, 한 형제자매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야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그분의 영광 안에 들어가 그 귀한 축복(祝福)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거룩한 사귐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성(城)이 얼마나 높습니까? 절대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밖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Ⅲ.보석으로 만들어진 새 예루살렘
요즘 유명한 건설회사가 짓는 고급 아파트나, 고층 빌딩을 보면, 멋진 대리석이나, 유리를 재료로 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재료(材料)공학이 많이 발달해서 유리로 만든 고층 빌딩을 많이 짓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부작용(副作用)도 많이 생기는데, 어떤 건물은 여름에 너무 덥거나, 겨울에 너무 춥습니다. 또한 뉴욕 같은 데서는 빌딩에 하늘이 비치니까 철새들이 모르고 와서 부딪히는 바람에 수천 마리가 죽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성 전체가 보석(寶石)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 거대한 성(城)전체가 보석(寶石)으로 지어졌다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가치(價値)를 가졌을지, 짐작조차 못할 것입니다.
15-17절)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천사는 이 성(城)을 측량하는데, 금(金)갈대를 가졌습니다. 즉 이 천사는 금(金)으로 된 줄자를 가지고, 예루살렘을 측량하는데, 이 새 예루살렘 성(城)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똑같습니다.
즉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주사위 모양으로 똑바르게 만들어진 성(城)인데, 한 변의 길이가“만 이천 스다디온”입니다. 여기서 1만 2,000스다디온은 당시 로마에서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로, 현재 단위로 환산하면 2,06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600킬로미터라고 하면, 이 새 예루살렘 성(城)의 크기는 남한의 스무 배 이상 됩니다. 미국 시카고에 가면, 미시간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 하나가 얼마나 큰가 하면, 우리나라 남한이 그대로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크기는 성(城)하나가 남한의 스무 배 이상 될 정도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고 순결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제대로 믿고, 구원 받을까? 의심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많은 고난(苦難)으로 연단(鍊丹)받는 보석(寶石)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가 엄청나게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 예루살렘은 성벽(城壁)의 두께만 해도“백사십 규빗”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 성(城)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측량한 것을“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성(城)의 규모가 물리적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靈的)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12는 성도들의 숫자인데, 거기에 1,000을 곱하면,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완성된 하나님의 백성의 숫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구원 받는 자들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한 신자들을 감춰 놓는데 선수(選手)이십니다.
엘리야 때, 그가 보기에 진정한 신자는 자기 혼자 남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불평하기를 이세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죽이고 왕상19:14절)...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18절).....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눈에는 진정한 성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진정한 성도를 많이 감춰 놓고 계십니다.
이제부터는 이 성곽(城廓)을 구성하고 있는 보석(寶石)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자세히 보니까 하나의 보석(寶石)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보석(寶石)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21절)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 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 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 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새 예루살렘 성곽(城廓)은 모두 벽옥(璧玉)으로 되어 있습니다. 벽옥(璧玉)은 푸른빛이 도는 휜 돌인데, 거룩 성을 상징합니다. 성(城)자체는 금(金)으로 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황금(黃金) 궁전(宮殿)입니다.
이 금(金)은 단순히 이 세상에 있는 금(金)을 다 모아서 입힌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연단(鍊丹)받은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그리고“맑은 유리 같더라.”고 했습니다. 황금(黃金)이 유리같이 깨끗하려면, 굉장히 깨끗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곽(城廓)의 기초(基礎)석은 열두 가지 보석(寶石)으로 꾸몄는데, 벽옥(璧玉), 남보석(藍寶石), 옥수(玉髓), 녹 보석(錄寶石), 홍마노(紅瑪瑙), 홍보석(紅寶石), 황옥(黃玉), 녹옥(綠玉), 담황 옥(淡黃玉), 비취옥(翡翠玉), 청옥(靑玉), 자수정(紫水晶)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보석(寶石)들 중에 우리가 잘 아는 보석(寶石)도 있고, 잘 알지 못하는 보석(寶石)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보석(寶石)은 아름다우면서도 변(變)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결국 연단(鍊丹)받고, 변화(變化)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보석(寶石)의 특징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보석(寶石)이 될 수 없습니다. -14-
보석(寶石)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보석(寶石)이 아닙니다. 보석(寶石)은 흔치 않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싸구려는 결코 보석(寶石)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인격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동일한 색은 아니었습니다.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데, 붉은빛을 내는 것도 있고, 푸른빛을 내는 것도 있었습니다.
또 아주 하얀색 보석(寶石)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 낼 귀한 성품(性品)이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존귀한 성품들을 만들어 내어야 할 책임(責任)도 있습니다.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보석(寶石)이긴 한데, 언제나 사랑으로 뜨겁습니다. 이 사람은 붉은빛이 나는 루비나 홍보석 종류일 것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은 성격이 아주 조용하지만, 성경에 깊은 지식(智識)을 가지고 있고, 이지적(理智的)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로 흰색이 나는 보석(寶石)으로, 다이아몬드라든지, 사파이어 같은 보석(寶石)일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어떤 사람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귀티가 나면서도 연약(軟弱)한 자들을 아끼고, 언제나 투명(透明)하게 자신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은 투명한 자수정 같은 보석(寶石)일 것입니다.
보석(寶石)은 많은 종류가 있지만, 모두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기 달라서 더욱 아름답고, 충만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보석(寶石) 상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안에 똑같은 기질(器質)과 똑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석(寶石)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가치(價値)없는 잡석(雜石)같은 사람들을 하늘의 보석(寶石)으로 변화시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가치(價値)를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문(城門)은 진주(珍珠)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진주(珍珠)는 아주 조그만 구슬같이 생겼는데, 새 예루살렘에서는 진주(珍珠)가 얼마나 큰지, 성문을 진주(珍珠)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진주(珍珠)는 조개 안에 작은 돌(石)이 들어가서 변화(變化)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나중에는 엄청난 보물(寶物)로 변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城)의 길은“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고 했습니다. 이 성 안의 길이라면, 서로 교제(交際)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그것은 모두 깨끗한 유리 같은 정금(正金)이었습니다.
성도들의 교제(交際)가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들 사이의 교제(交際)는 정말 악(惡)한 생각 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교제(交際)해야 아름다운데, 간혹 다른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제(交際)는 나중에 아름답지 못하게 나타납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 천국(天國)생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원래 예루살렘 안에는 성전(聖殿)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까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聖殿)이 없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자체가 성전(聖殿)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제는 어떤 건물(建物)이 성전(聖殿)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자체가 성전(聖殿)이었기 때문에 성전(聖殿)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聖殿)이 없다는 말씀을 보고, 어떤 학자(學者)들은 이미 이때 예루살렘 성전(聖殿)이 불타서 없어졌을 거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예루살렘 성전(聖殿)이 불에 탄 것은 도미티아누스 황제(皇帝)때로, 그는 예루살렘을 함락(陷落)시키고, 불을 질렀던 티투스 황제(皇帝)의 동생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성전(聖殿)이고, 우리의 모임도 성전(聖殿)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건물(建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 자신이 성전(聖殿)이면서 예루살렘입니다.
더욱이 이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羊)이 우리를 완전히 덮어 버리기 때문에 따로 성전(聖殿)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성전(聖殿)으로, 우리의 신앙은 굳이 예배당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祝福)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 전체를 성전(聖殿)으로 만들이야 합니다. 이 성전(聖殿)에는 더 이상 햇빛이나 등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23절)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이 세상에서는 물리적(物理的)인 빛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물리적(物理的)인 빛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사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피를 가지고 들어갔던 지성소에는 물리적(物理的)인 빛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영감(靈感)과 말씀의 빛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길을 비추는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靈感)의 빛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音聲)이 있어서 언제나 가야 할 길을 밝혀 주시기 때문에 함정(陷穽)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고, 독사(毒蛇)에게 물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성(城)에는 무한정의 사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24-26절)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이 새 예루살렘에는 단순히 유대인들이나, 이스라엘 자손들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복음(福音)을 듣고, 예수 믿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어닥치게 됩니다. 그리고 성문(城門)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데, 거기에는 밤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각자가 믿음으로 승리한 것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城)에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여전히 양심(良心)이 악(惡)하고, 더러워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입니다.
27절)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이것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장차 만들어질 성(城)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우리 중에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進行)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은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로 이루어지는 신약 교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빛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며, 우리는 지금 보석(寶石)으로 변(變)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세상적인 뿌리들을 모두 다 뽑아 버리고, 우리가 하고 있는 거짓말이나, 교만(驕慢)한 말들을 모두 다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히 거하시는 성전(聖殿)이 되고, 예루살렘이 되어 아무도 상처 받지 않고, 그동안 비참하고, 불행했던 모든 인생이 치료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239장 *저 뵈는 본향 집*
선교 센타 설립를 위한 지원 헌금
농협 302-8772-0191-01 정의영
성경 토의
Ⅰ.어린 양의 신부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사회적으로 비난 받고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교회와 목회자가 어떻게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Ⅱ.새 예루살렘은 그 성곽의 기초석이 모두 각각의 보석으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우리 교회는 어떤 보석으로 집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또한 성은 네모반듯하다고 했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치우친 데가 전혀 없는가? Ⅲ.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빛이 되시기 때문에 세상의 해와 달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도덕이나 가치관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에는 속된 사람이나 가증한 자나 거짓말하는 자는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
진리의 복음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