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주문한 책은 오지 않고 새해 초부터 아프리카 종단을 준비하면서 일그려고 사둔 책을 찾았다. 10월 8일부터 50일간 여행을 계획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알렉상드르와 소냐 푸생 부부가 ‘걸어서’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한 도보여행기"아프리카 트렉"이다. 밀레니엄 첫날부터 희망봉에서 출발하여 3년간 이스라엘의 티베리아호수까지 14,000km를 걷는 대종주를 실행한 부부가 아프리카의 지붕이라는 킬리만자로를 오를 때까지 7,000여km 생생한 여정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이들 부부는 크게 두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하나는 아프리카 대륙을 직접 두 발로 걸으며 사진을 통해 보아온 아프리카 혹은 전쟁과 기아, 에이즈로만 대변되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체험하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동아프리카대지구대를 따라 걸으며 최초 인류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좇는 것으로 이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저자의 오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01년 1월 1일 첫 발걸음을 뗀 이들의 도보여행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다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모잠비크, 말라위, 탄자니아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우연한 만남이 이어지는 대로 이동하기 위해 모든 후원을 거부한 채 여행을 떠났다. 텐트도 없이 여행을 시작했고, 여행하는 내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여비를 충당해야 했던 이들을 후원한 건 오로지 길에서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쾌활한 웃음과 따뜻한 손길로 아프리카 대륙의 관대함을 보여주었다.
끔찍한 살인과 야생동물의 위협, 작열하는 태양과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 생사를 넘나드는 말라리아와의 사투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철저하게 ‘걷기’를 택한 이유는 바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걷는 이들의 생존은 순전히 사람들과의 만남에 달려 있었다.
알렉상드르와 소냐. 이 놀라운 모험가들은 도보 챔피언도 아니요, 행군의 달인도 아니다. 여행 당시 이들은 그저 평범한 부부, 그것도 신혼부부였다. 만약 이 도보여행이 걷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한 것이라면 최초 인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상징적 의미는 퇴색되고, 신기록 도전이나 '킬로미터 수확'으로 전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프리카 트렉"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편으로는 ‘지독한’ 도보여행기가 분명하다. 알렉상드르와 소냐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처럼, 달리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오로지 두 발만을 사용해 끈질기게 걸었고, 그 무수한 걸음들 속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만남의 행렬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 다가서는 그들의 발걸음은 단순히 관광을 떠나온 여행자의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열망을 실은 묵직한 것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여느 여행기들과 다른 행로로 들어서게 된다. 긴 여정 내내 이들은 아프리카의 불행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었고 그 속에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희망을 발견해냈다.
"아프리카 트렉"에는 아프리카의 가난, 인종차별, 에이즈, 독재 정권을 비롯해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사람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프리카는 차츰 제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전의 아프리카를 밀어내고 새로운 아프리카로 자리매김한다. 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저자의 물음에 아프리카인들은 ‘백인 전용’이라는 해변 표지판 문구로 각인된 아파르트헤이트의 이면에는 ‘흑인 전용’이라는 세상에 비춰지지 않은 또 다른 표지판이 있다는 사실, 또한 인종차별은 아프리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한층 더 은밀한 인종차별이 전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에이즈가 성행하는 이유는 가난 때문만이 아니며 오히려 교육 수준의 향상과 경제적 여유의 증가와 더불어 확산되는 이른바 ‘슈거 대디’ 현상과 같은 아프리카 고유의 사회ㆍ문화적 풍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도 전한다.
알렉상드르와 소냐는 아프리카 곳곳에서 고질적인 가난과 자연의 황폐화, 행정의 부재를 목격하고 이것의 주된 원인이 무능력하고 타락한 독재 정권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짐바브웨를 걷던 중 우연히 무가베 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 지도자 모건 츠방기라이를 인터뷰할 기회를 얻게 된 저자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위험을 무릅쓴 인터뷰를 감행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나눈 고민의 대화는 바로 옆에서 육성으로 전해 듣듯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게릴라나 반군의 무차별적인 습격과 약탈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힘없는 다수의 아프리카인들의 삶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희망을 찾기 힘든 고통의 나날에도 스트레스도 우울한 기분도 없이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든 과거의 짐을 끌어내지도 않고서 단순한 기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순수한 인간미를 더욱 부각시켜준다.
알렉상드르와 소냐의 길고 긴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아프리카 사람들 속에서 경험한 유쾌하고 때론 안타까운 갖가지 일화와 장엄한 열대 밀림 속 야생동물들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아프리카인들조차 두려움에 떠는 원시 부족과의 만남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