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갈등을 뛰어넘어 복음이 돼라
(고전 11:17~34)
고린도전서 11장을 살펴보면,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고린도도시의 문화로 인하여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문화와 당시문화가 다름으로 왜 그것이 갈등의 요소가 되는지 알 수 는 없습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시에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되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가리지 않으면, 굉장히 무례한 여자, 성적으로 천박하게 사는 여자라는 이미지를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잘 가리고 오라"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지금도 전통이 남아서 카톨릭에서는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옵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하얀 것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무례하다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문화적인 차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현 시대의 예배 문화에서, 예배에 무례가 되는 행위 중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모자를 쓰고 실내로 들어오는 것,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기성세대는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자를 쓴 행위가 ‘잘못되었다’라고 보기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취업을 위하여 면접 장소에 갔을 때, 청년들을 인정하고, 채용하는 세대는 기성세대이므로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행동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으나 너무나 불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토익이나 토플을 공부하는 것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것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람을 쓸 때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뽑는 사람이 뽑을 사람을 저항 없이 받아드려야 뽑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도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에는 집중하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문화의 문제임과 동시에 예의에 문제라고 봅니다.
또한 신앙의 문제로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모자를 쓰고 오는 사람은 각자의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모자를 쓰고 온 것에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라는 차원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온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예배할 의무도 있음을 성경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이 모자를 쓰지 않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가로 막아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믿음의 연약한 부분에 대해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교회 안에서 문화와 신앙, 문화와 예배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미국에는 히피족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는 엄숙하고 경건함을 유지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히피를 받아줄 만한 교회가 없었습니다.
히피 문화가 너무나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보리채플의 『척스 스미스』목사님만은 히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에도 영혼에 갈급한 사람들이 있어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교회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히피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선 장발이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맨발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기타들고 맨발로 나타났다고 하면, 기존신자들이 겁을 냈을 것입니다.
갈보리채플교회는 바닥이 카펫 이였는데, 카펫 중에서 밝은 색이었습니다.
히피족들이 맨발로 교회를 오다보니, 그들의 발자국이 그 카펫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모여 히피족들을 교회로 오게 할 것인가? 아니면, 오지 못하도록 막을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를 했는데, 그 결과는 “카펫은 갈면 되는 것이고 영혼구원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보리채플은 히피들을 받아들인 최초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히피들이 교회에 모여서 만든 음악이 바로 마라나타 싱어즈입니다.
그들이 만든 복음성가 중 첫 번째가 작은 불꽃 하나가 입니다.
이 작은 불 꽃 하나가 라는 노래는 원래 이들이 마리화나라는 약물을 피우면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 그 가사가 마약에서 예수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를 뛰어 넘어서 복음이 증거 될 때에 그들 안에서 강력한 증거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1장과 12장이 말해주는 것은 문화라는 평상시 개념을 통해서 상위개념인 복음을 장애로 여기지 말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1장 17절 이하의 말씀에는 성만찬에 대한 내용으로 “성만찬을 통해 주 안에서 십자가로 하나 됨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2장을 통해서 몸과 지체를 설명하면서, “몸이 하나이듯 교회가 하나가 될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수용할 수 없고, 또 모두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갈보리채플 교회의 결단과 같이 영혼은 살려야 하고, 카펫을 갈면 되는 것을 통해 그들이 변화 됐듯이 청소년, 청년의 문화를 뛰어넘어서 장년문화까지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힘은 오직 복음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복음 안에서 승리하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PS.
왜 선물인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은 은혜가 믿음보다 우선한다는 말이다.
은혜가 믿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의 어원적 의미는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지는 호의’를 뜻한다.
은혜는 공짜인 것이다.
공짜는 일을 잘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보상과는 다르다.
일방적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상대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구원은 이런 것이다.
- 이승희 목사의 ‘신앙수업’에서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열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나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존재하지만, 그러나 신앙은 원인 없이 결과가 생기는 신비한 것이기에 선물이라고 하며, 찬양과 헌신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이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고 감격하신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