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노래하며 역신을 물리친 처용
울산광역시에는 처용과 관련된 장소나 행사가 많다.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에는 처용암이라는 바위섬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처용은 동해 용왕의 아들로 한 바위 밑에서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바위를 처용암이라고 부른다.
처용암은 1997년 울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울산광역시에서는 처용과 관련된 자료 전시, 공연, 체험 등으로 구성된 축제인 처용문화제를 매년 9월과 10월 사이에 개최하고 있다.
처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울산 일대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처용의 이야기에서 파생된 처용가(處容歌)와 처용무(處容舞)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범하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친 처용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헌강왕이 울산 지역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노닐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시 물가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지더니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으니 일관(日官)은 “동해 용왕이 꾸민 일 같사오니 선행을 베푸시어 그를 달래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동해 용왕을 위하여 여기서 가까운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라.”라고 명하자 자욱하던 구름과 안개가 말끔히 개었다.
그 후로 그 냇가를 개운포(開雲浦)라 불렀다.
동해 용왕은 기뻐하며 아들 일곱을 거느려 왕의 앞에 나와서 “베풀어주신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일곱 아들 중의 하나가 왕을 따라가서 보필하게 되었는데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은 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이라는 벼슬도 주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처용의 아내를 사랑한 역신(疫神)은 사람으로 둔갑하여 처용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몰래 아내와 함께 잤다.
처용이 집에 돌아와서 두 사람이 함께 누운 것을 보고,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집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는 내 것이다마는 앗은 것을 어찌할꼬”
라고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깜짝 놀란 역신은 본모습으로 변하여 무릎을 꿇고
“제가 공의 아내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여 감히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런 저에게 화를 내고 꾸짖지 않으시니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앞으로는 공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는 사라졌다.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좋은 일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헌강왕이 짓게 한 절은 영축산(靈鷲山) 기슭에 세워졌으며 이름을 망해사(望海寺) 혹은 신방사(新房寺)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