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추상(春風秋霜) / 솔향
‘저희는 내일 오후에 출발합니다.’ 추석 연휴 전전날, 셋째 동서가 며느리 단톡방에 먼저 문자를 올렸다. 하루 종일 목 통증과 어지럼증에 시달리다 막 들어온 참이다. 셋째는 이번에 안 오겠다더니 생각을 바꿨나 보다. 다행이다. 올해는 나 혼자만 가나 걱정했는데. ‘동서들, 난 이번 추석까진 못 보겠네. 다들 운전 조심해서 잘 다녀와.’ 라고 형님이 대답한다. 그녀는 둘째 딸이 올해 고3이어서 못 온다고 일찌감치 말해 놓은 터였다. 넷째네는 근래 몇 년 동안 근무해야 해서 안 오고 있다. 아직 답은 없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일 퇴근 후 출발합니다.’ 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짧게 답글을 달았다. 몸이 안 좋으니 다 귀찮다. ‘넹~~’하는 셋째의 문자 뒤로 형님이 ‘좋겠당.’ 한다. 좋겠다고? 놀리는 건가? 하. 헛웃음이 난다. 뭐라고 답하지? 모르겠다. 일단 쉬자.
‘까톡’ ‘까톡’ 또 카톡에 불이 난다. 이번에는 친구다. 짠해서 챙겨주고 싶은 아이다. 시댁과 남편 욕을 하고 있다. 명절이 가까워지긴 했나 보다. 나도 맞장구를 쳐야 한다. 며느리 단톡방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캡쳐해서 보이고 ‘마지막 말에 할 말이 없네. ㅎㅎ 작년에는 딸 고2라서 못 오고 올해는 고3이라고 못 오신다는데. 마지막 말에 뭐라 해야 할지.’ 라고 보냈다. 답이 없다. 뭔가 이상하다. 피곤해서 눈을 감고 기다렸다.
5분쯤 지나서 셋째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냐고, 갑자기 왜 그렇게 올렸냐고 한다. 듣자마자 감이 왔다. 친구한테 보낸다는 걸 실수한 거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미 지울 수 있는 시간도 지났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에 열이 난다. 사실대로 친구한테 형님 흉보고 있었다고는 도저히 말 못 하겠다. 누구에게든 시댁 식구 나쁘게 말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그랬을까? 동서가 더 어이없는 말을 한다. 형님이 작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까지 끝냈다는 것이다. 지금은 좋아졌지만 작년 명절에 치료 때문에 못 왔다는 걸 자기도 얼마 전 알았다고 전해준다. 이건 또 무슨 소린지. 빨리 좀 말해 주지. 원망스럽다. 도망가고 싶다.
그녀와 나는 1년 간격으로 결혼을 하고 첫 딸을 같은 해에 낳았다. 2년 후에 내가 둘째 딸을, 이듬해에는 그녀가 둘째 딸을 낳았다. 네 아이 모두 똘똘하고 사랑스럽고, 서로 사이가 좋았다. 명절이나 여름방학에 시댁에서 보는 걸 기다렸다. 만나면 즐거웠다. 그녀는 맏며느리에 걸맞게 사려 깊고, 야무지고, 무엇보다 나와 말이 잘 통했다. 살림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대신 전화로 어머니께 필요한 것을 살뜰히 챙겼다. 서로 거슬리는 것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장점에 비해 미미한 것이었기에 그쯤이야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나도 그녀도 서로 좋은 동서를 만나서 좋았고, 항상 주변에 칭찬하곤 했다.
시간은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고 흘려 버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차곡차곡 쌓아 두기도 하나 보다. 아니, 어쩌면 시간 때문이라기보다 나이들면서 너그러워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속이 좁아져서라는 게 맞는 것도 같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녀에게 하나둘 서운한 것이 생겼다. 명절에 수험생 핑계로 가끔씩 안 오거나 김장은 매년 나와 남편 몫인 것, 어머니 용돈을 매달 드리는 집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 등으로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다. 형편도 우리보다 나아 보여서 더 그랬다. 더욱 힘든 것은 그렇게 효도의 무게를 재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치사하고 소인배 같이 느껴져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신혼 때 시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과 서로 가장 바라는 것을 한 가지씩만 이야기해 보기로 한 적이 있다. 내가 말한 건 떠오르지 않지만 남편은 ‘형제간의 우애를 잘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지 못한 말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 때문에 깨뜨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 늘 한편에 있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혼자 삭히고 꾹 다물고 좋은 사람인 척했다. 별것 아닌 일도 입에서 나오는 순간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동서들 앞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동안의 내 행동이 다 위선이었다는 걸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나만 행복하다는 시늉을 할 수가 없어서,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하려던 것뿐이었다. 사실 이 말도 가식인지 모른다. 한 번의 가벼운 행동으로 20년 넘게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다.
심호흡하고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형님, 죄송해요. 왜 아프다는 말을 안 하셨어요. 제가 오해하고 서운해 했잖아요.” 눈물이 나온다. 진심으로 죄송해선지 그녀가 알리지도 않고 혼자 아팠던 게 슬퍼선지 아니면 이 순간이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눈물이 북받쳤다. 그녀도 같이 운다. 걱정할까 봐 비밀로 하기도 했지만, 아플 때 아주버님에게 실망해서 시댁에 알리기 싫은 것도 있었다고 속내를 말한다. 자기도 미안하다고. 나와 남편에게는 항상 고맙고 빚진 것 같다고 한다. 나를 이해한다고 도리어 위로한다. 그래도 상처는 남았겠지.
<채근담>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하고, 스스로에게는 가을 서리 같이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기 사정은 세심하게 속속들이 알고, 남들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잘 모르므로 대체로 반대로 한다. 나도 내 처지만 가엾게 생각하고 그녀에게 꿍했다. 그녀도 나름대로 불가피한 사연이 있으리라고 춘풍같이 대하기 어려웠다. ‘구구절절 사정을 늘어놓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이 별로 없고, 자기변명 없이 욕먹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더 많다.’ 고 신영복 교수님이 그의 책 <담론>에서 말했다. 몇 년 전에 읽고 나한테 하는 말 같아 적어 놓은 글귀이다. 이 말이 사람을 자꾸 찌른다. 맞는 말이다. 형님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다.
한동안 우울했다. 이제 거기서 나와야겠다. 공든 탑이 흔들려 조금은 무너진 곳도, 삐뚫어진 곳도 생겨 손봐야 하지만 이전보다 더 튼튼하게 만들면 된다. 자기혐오를 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수정해야겠다. 자기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중이라는 자기위로로. 춘풍추상하도록 노력하되 잘 안되더라도 열심히 자신을 격려해 주자.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며칠 전 형님네 둘째가 연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배가 아프려고 한다. 안됀다. 이런 마음은 금지! 아이는 엄마가 치료받는 걸 보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까? 이 선물이 가족에게 힘들었던 시간 뒤의 단비같은 기쁨이 되었을 걸 생각하며 아낌없이 축하한다. 괜찮은 사람 되기 참 힘들다. 그래도 알아차리고 성장하는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첫댓글 글 잘 읽었어요.
무거운 주제를 잘 풀어 썼네요. 대단해요.
선생님 가슴 졸이며 잘 읽었습니다.
카톡 사건에서 제가 아찔했네요.
덕분에 오해도 풀고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연세대에선 저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하하!
와! 정말 잘 쓰시네요. 바로 책 내셔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의 여러 감정을 글 을 읽으며 같이 느꼈습니다.
선생님. 몇 번에 나눠 읽었습니다.
재밌는 글은 아껴 읽거든요.
세상 사는 게 참 복잡해요. 신혼 때 신랑이 형제끼리 우애를 강조한 했다니
신랑이 지혜롭네요. 그래요 형제가 우애하려면 누구보다 동서들(아내들)이
의 역할이 큰 것 같아요. 선생님은 지금 잘하고 있네요.
아이고 얼마나 멋적었을까요? 그래도 정면돌파로 해결해서 다행입니다. 참 괜찮은 사람 되기 힘들어요.
위기를 지혜롭게 잘 넘기셨네요. 형제간의 우애를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노력이 대단하십니다.
정말 당혹스러웠겠어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 받고 화내고 자책하는 거 같아요. 다들 그런듯요. 솔직한 감정 표현, 아주 공감하며 읽었어요.
동서들이 많은 집은 다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이럴땐 두 동서면 이러지 않을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맏며느리로 많이 배워갑니다. 대단하세요.
차라리 외며느리인 제가 나을까요?
아찔합니다.
정면돌파.
현명한 솔향님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