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신자의 원정(?) 고해성사 및 큰 은총(명동 성당에서)
늙었다. 겉늙었다고 이야기해도 좋을 정도로, 늙은 티가 많이 난다.
고집이 세어졌다. 잘 삐친다. 어디선지 자존심 비슷한 것이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다. 제어하지 못하고 바라보면, 그게 교만이다. 남 탓을 많이 한다.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부딪히기도 많이 한다. 남의 글을 보고 평을 하려 한다. 주님은 남을 판단하지 말라 하셨는데….
때로는 사제의 강론에 토를 단다. 특히 정치에 민감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신부를 보면, 그만 울화통이 터진다. 중얼거리기 예사일 수밖에. 하느님께 죄를 그래서 또 짓는다. 우리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인 어느 신부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강론(강의)하기로 유명하다. 그게 인기(?)의 비결이고말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보편적인 내용이라면, 당연히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분이 좋다.
참척이란 말이 있다. 자식을 먼저 저승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참척을 겪은 사람, 죄인이다. 원인이야 어디 있든, 그로 인해 눈물도 말랐다. 성모님을 참척과 연결 짓는 것은 언어도단인지 모르겠다. 불경스럽기조차 하다. 참척이 맞긴 한데 그건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참척이란 나약한 인간, 桎梏을 다리와 팔에 감고 싸는 죄인이다.
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안 나온다.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나는 울지 않았다. 앞에 앉은 수녀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추모관에 가서 죽은 자식에게 조화 다발을 바친 부모를 보면, 뺨이 젖는다. 신과 인간은 그래서 다르다?
로마 가톨릭 사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해서 참척과는 아무 직접적인 상관도 없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목사나, 결혼을 인정하는 일부 천주교 종파의 사제는 다르다. 그들이 참척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쨌든 모든 사제나 목사들은 성직자, 편중된 사생관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견해 충돌이 있었다. 하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겪고 있는데, 사제가 오해받은 만한 강론을 한 것이다. 나는 괴로웠다. 반기를 들고 싶었다. 그래 저항(?)의 뜻으로 의도적으로 한 달여 냉담을 했다. 중얼거렸다. 참척의 뜻도 모르면서, 쯧쯧.
그렇다고 해서 지금 와서 맞대놓고 고해성사를 보는 게 힘들었다. 힘든 나날이었다. 궁여지책, 지금 나는 명동 성당에 올라갈 준비에 바쁘다. 토요일은 특전미사가 여섯 시, 일곱 시에 있다. 거기 참례한다. 네 시까지 도착해야 미사 예물을 내고 연미사를 봉헌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단다.
물론 오늘 그 전에 고해성사를 본다. 얼굴이며 목소리도 사제가 알 턱이 없으니, 당당하게 이야기하련다. 죄를 지었지만, 그 죄의 일부는 사제도 져야 한다. 무조건 나를 낮추고 사제만을 우러러 고백하는 것은 진짜 성사가 아니다. 박완서 선생도 아들을 잃고 나서 주님을 그렇게 원망했다더라. 하물며 한갓 장삼이사인 내게 일개(?) 사제이랴.
여담에 가까운 이야기. 난 박완서 선생을 흉내 내지 못했다. 주님을 여전히 믿었다. 모두가 나의 잘못이요 죄라고 여겼다. 몇 시간 뒤를 상정해 놓고 보자. 고해 성사를 대신 받는 사제 뒤에 주님이 분명히 계신다. 그걸 믿는다. 적어도 이렇게는 들먹이리라.
“전 아버지로서 할 일을 다 못했지만, 사제의 강론은 좀 치우쳤습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다시 말해 보편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트집 잡아 냉담하다니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보속으로 무얼 주시든지 실천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데 중언부언하지만 이젠 참 마음이 편하다. 모르는 신부여서 마음이 편안해서이기도 하지만, 성사를 수시로 명동 성당에서 봐야 하겠다는 결심이 선다. 김범우 순교자가 기증한 땅위에 지은 성당이 아닌가? 내 고향은 삼랑진이고 거기 그분의 묘역이 있다. 다만, 이 성사가 상투적이나 세속적인 면피 성격으로 변하면 큰일이라는 염려가 있다. 자 가자! 명동 성당으로.
후기/ 고해소 앞에 서기까지 정말 곤욕을 치렀다. 아내가 동행했지만, 아내는 지하철 타는 걸 나보다 더 힘들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