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원일 소설 『마당깊은 집』
좋은 책은
나에게 가독성이 높은 글이다. 집중하려고 노력을 안 해도 읽기에 푹 빠지게 하는 문장과 문체로 이루어진 글이 그렇다. 감동과 공감, 혹은 울림이나 교훈은 그 다음 문제다. 이 소설이 그랬다. 주변이 시끄러워도 책을 열고 글을 읽는 순간 반투명 반원형의 방음 피막이 내 주위에 만들어짐을 느낀다. 나는 1954년 4월의 대구 어느 한 지역의 인물이 된다. 그 해의 춥고, 뜨겁고, 지리한 장마를 견디며 휴전 직후 시기의 구차하고 비루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삶을 살아냈던 이들의 아픔과 설움, 끈기와 성실을 같이 겪는다.
마당 깊은 집
당시 대구는 부산과 더불어 이북과 타지역에서 피난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전쟁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가족 중 누가 전쟁통에 죽고, 다치고, 불구가 되었다.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를 찾아 다녔다. 의지할데 없는 타향에서 어떻게 하든 먹고 살아야 했다. 또한 대구에는 미군기지와 정부기관이 모여 있었다. 경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모아 들었다. 해서 대구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풍경을 가졌다. 한 쪽은 불야성이 되어 흥청망청거렸다. 다른 한 쪽은 굴뚝청소부와 장작패기, 거지와 부랑자 패거리가 추운 밤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대구는 사람들에게 먹고 살게 해 주는 터전이었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는 그런 곳이었다.
대구의 중심부인 약전골목과 종로통을 낀 장관동에 큰 한옥집이 있었다. 솟을대문 옆에 바깥채가 있고, 중문을 지나 안에 작은 연못이 있는 쉰 평 정도의 안마당이 있었다. 안마당은 지대가 낮아 이 집을 마당 깊은 집이라 불렀다. ┏ 자 모양으로 위채와 아래채가 안마당을 싸고 있었다. 위채는 방이 네 개인 안채와 한 칸 사랑채로 되어 있었다. 아래채는 네 평정도의 네 개의 방이 있었다. 안채에는 의성의 토호 집안이며 일제 때 대구동양척식주식회사에 다닌 이의 아들-주인이다-이 산다. 그는 사업가로 방직회사를 운영한다. 그의 어머니인 노마님과 안씨 성을 갖은 식모가 살림을 한다. 부인은 시내에 금은방을 한다. 자식은 대2, 고2, 중2까지 세 명이다. 주인의 조카인 고3 여학생이 의성에서 유학을 와 있다.
아래채에는 네 가족이 세들어 살고 있다. 첫째 방은 경기 연백군에서 피난 온 50대 초반의 경기댁과 그의 아들(변두리 치과 병원 기공사)과 딸(미군부대 PX근무)이 산다. 둘째 방은 퇴역 장교 상이군인 가족이 산다. 임신한 부인과 5살 아이가 있다. 부인이 채소 노점을 하고 남편이 군밤, 풀빵 장사를 한다. 셋째 방은 평양댁. 네 식구다. 40대 후반인 그 녀는 양키시장에서 헌 군복을 판다. 큰 딸은 혼기찬 처녀였고, 들째 아들은 폣병을 앓고 있었다. 막내 아들은 서울법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고3이다. 넷째 방은 바로 우리 집. 다섯 명이 산다. 재봉 수선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와 중3 누이와 중1 올라갈 나와 초등생과 5살 남동생이 산다. 바깥채는 주인아주머니의 사촌인 김천댁이 풀빵 장사를 하며 5살 아이와 산다. 이렇게 위채 8명, 아래채 14명, 바깥채 2명이 마당이 깊은 집에서 살고 있다. 경기댁과 평양댁은 이북 피난민이고 전쟁통에 남편을 잃었다. 상이군인도 인민군에 있다가 귀순하였다. 귀순 국군 부대 중대장으로 참전, 전투에 임하다 오른팔을 잃었다. 우리 집도 아버지가 전쟁 통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위채의 친일과 부, 바깥채의 항일과 가난, 평양댁 큰 아들의 사회주의와 상이용사의 반공주의, 우리집 누나와 평양댁 작은 아들의 면학, 그 속에서 열 세 살 길남이가 겪는 아프고 시큰한 일상사가 전개된다.
30년 이후 그들
길남이는 경상도 진영에서 친척집 불목하니로 지내다가 어머니가 불러 대구로 왔다. 중학교에 바로 입학 못한 그는 신문팔이와 배달을 하고 장작패기등 집안의 허드렛 일을 도왔다. 어머니는 장남인 아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아버지가 없는 가족의 장남은 일머리를 빨리 익혀야 했고, 굿세야 했다.
30년이 지나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길남이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막내 동생 길수는 뇌막염으로 8살에 죽었다. 큰 누나 선례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3년 전에 돌아가셨다. 평양댁 첫째 아들 정태는 평양사범학교 출신으로 바깥채 김천댁과 아들 복술이와 함께 월북을 시도하다 잡혀 20년 실형을 살았다. 그는 사상범으로 전향하지 않고 보호 감호소에 잡혀있다. 둘째 민이는 연좌제로 서울법대를 포기하고 경북의대를 나와 내과개업의가 되어 있었다. 경기댁 큰 딸은 미군 장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났다. 상이군인은 서점을 하고 있고, 부인은 여전히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나의 친구 한주는 부모를 잃은 소년 가장으로 인쇄술을 배워 기술자가 되었으나 소식이 끊겼다. 안채 주인은 사업이 번창하였고 한옥집을 헐어 양옥집을 지었다. 이 때문에 세든 사람들은 1955년 4월에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주인댁 여조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녀 혼숙을 하다가 들켜 퇴학을 당했다. 놀고 먹는 큰 아들 성준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어머니 쪽 집안이 항일독립운동과 좌익활동을 했기에 연좌제를 푸느라 아버지가 욕을 봤다. 김천댁이 이북으로 올라간 것도 남편이 월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태씨가 도와주다가 잡힌거고. 식모 안씨는 장작패기 주억술과 서로 눈이 맞아 시골로 농사지러 내려갔다.
구구절절하게
독후감을 썼다. 우리의 개인사가 바로 현대사다. 항일과 친일, 좌익과 우익의 대립, 그 속에 녹아 있는 고단한 개인사를 어떻게 설명하겠나. 그대로 들여다 볼 수 밖에. 변소간 하나로 줄을 서 용변을 보는 아침 풍경이나 여름 장마에 안마당에 물이 차 물을 퍼 내는 장면이나 특무대가 들이닥쳐 평양댁 셋집을 샅샅이 뒤지거나,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옆 집의 맛나는 냄새를 견뎌내는 그런 거나, 고관대작들의 파티를 구경하다 어머니에게 쥐불나게 혼구멍이 나거나, 매질과 엄한 훈육에 가출하다 돌아와서 어머니가 끓여준 고깃국을 먹는 풍경들이 그렇다. 그 풍경에 내가 있고, 내가 변주되어 그 속으로 들어간다. 책을 덮으니 비로소 독서 피막이 사라지고 2023년 4월의 나로 돌아왔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 소소한 일상:
나는 걷는다. 아침에. 출근길을. 휴먼시아 입구 사거리에서 대청로로 죽 이어지는 간선 도로를 걸어가면 횡단보도가 나온다.
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벗나무 두그루가 있다. 두 그루의 가지들이 만들어 낸 형상이 묘하게 문을 닮았다. 특히 절의 일주문 같은. 그 밑으로 실제로 판석이 깔려 인도길을 만들었으니 더욱 그렇다.
봄 꽃이 한창일 때 모습이다. 이 문을 나서며 심호흡을 한다. 생활의 터전으로 나가는 맘을 다시금 다진다. 샐러리맨들은 넥타이를 매면서 전투력을 장착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 문을 나서며 그리한다. 퇴근하며 돌아오는 길 또한 이 문을 들어서며 오늘 하루 잘 살았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긴장을 풀어내곤 한다.
겨울날 일주문이다. 23년 1월 어느 날. 푸근한 겨울의 모습이다.
벚꽃이 떨어지고 잎이 나기 시작하는 4월의 어느 날이다. 맘이 우울하고 과제로 약간 힘겨워지는 느낌이 들 때, 계절의 변화를 시각화해 본다. 이 세상 온 만물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애쓰며 사는데, 나라고 별소냐. 이 정도면 다행이고 어찌보면 별거 아닌 것. 굳굳하게 하루 하루 애쓰며 가다 보면 누구에게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세상에 빚은 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되겠지. 뭐. 내일도 저 일주문을 지나가겠지. 밤새 안녕으로 나무야 밤새 잘 지내고 있어 다오. 내일 보자 일주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