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진철 | 날짜 : 09-03-27 20:46 조회 : 2182 |
| | | 일년을 정성껏 가꾼 결실은 가을걷이로 맺지만 이 모든것이 정월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정월의 의미는 한해를 시작하는 첫달이라는 뜻이지만 그 첫 달을 출발시키기 위해서는 지난 한해의 결실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한해동안 흘릴 땀을 지탱해줄수있는 자양분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김치이다.
김치의 어원은 채소를 소금물에 담군다고 하여 한자로 지 (漬) 또는 침채(沈菜)라고 하였는데 구개음화로 짐치가 되었다가 오늘날에 김치가 되었다 한다. 배추, 무, 갓등 야채는 첫서리가 내리기전에 뽑아다가 주로 사랑채에 달린 광에 보관해둔다. 동지 죽을 끓여 먹고 나면 김장 준비에 들어간다. 광에서 꺼낸 수백포기의 배추를 겉잎을 치고 배를 갈라 손질하려면 하루종일 걸린다. 배추에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이는데 간이 잘 배어들게 하려면 시간을 맞추어 아래 위를 바꿔가며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뿌려주어야만 한다.
집에 있는 우물물로는 그 많은 배추와 무를 다 씻을수가 없어서 냇가로 옮겨가서 씻어야 했는데 소금물이 흐르는 배추는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남정네들이 바지개에 지고 날라다 주었다. 부녀자들은 물가에 솥을 걸어 넣고 물을 끓여가며 언손을 따뜻한 물에 담궜다 뺏다 하면서 부지런히 배추를 씻었다. 무는 지푸라기를 돌돌 말아 수세미 삼아 씻는데 아무리 손을 녹여가면서 한다고 해도 찬물의 냉기에 견디지 못하고 감각을 잃고 빨갛다 못해 시퍼렇게 언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어머니를 따라나온 아이들은 솥 앞에서 장작불을 지피는 잔 심부름을 했다. 그러다가 씻어놓은 배추에 불티라도 옮게되면 어머니는 잠시 꾸중을 하시곤 다시 찬물에 담궈 깨끗하게 씻어 광주리에 차곡차곡 쌓아 바지개에 올려 집으로 날랐다. 집에서는 이미 준비해 놓은 파, 갓, 미나리, 마늘, 청강, 생강들과 무채를 썰어 배추속에 넣을 양념을 만든다. 바닷가가 있는 지방에서는 멸치젖도 직접 담그고 달여서 썼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자잘한 조기를 끓여서 채에 바치고 찹쌀 풀을 쑤어서 김치를 담그는데 가장 먼저 멸치 액젖과 조기 삶은물에 고춧가루를 풀어서 빛깔과 농도를 맞춘다.
간이 제대로 밴 푸른잎이 많은 배추는 여름까지 먹을 김치라고 하여 양념을 넣지 않고 마늘 생강을 조금 넣고 농도가 맞춰진 고춧가루 액젖 국물을 끼얹어 잘 바른후 독에 담아 웃소금을 짭짤하게 뿌린후 배추 우거지로 덮고 그위에 다시 대나무 우거지로 덮어서 굴속에 넣어두고 여름에 묵은 김치로 꺼내 먹는데 속이 노랗게 익은 그 깔끔한 맛은 특히 입맛 없는 여름에 생각만 해도 군침을 돌게 만든다. 특히 생새우를 갈아넣고 청각까지 넣어서 무채 , 갓 과 늙은 호박 삶은물로 잘 배합한 다음 고춧가루도 듬뿍 넣고 액젖과 조기 삶은 물을 적당하게 넣은다음 마늘 생강을 넣고 배추 한켜, 납작하게 썬 무 한켜를 넣어가면서 다둑이며 담근 김치맛은 천하 일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인생을 걸고 땀흘려 모은 결실로 정성을 쏟아 새로운 한해를 힘차게 출발하고 더위와 추위의 고통을 이겨낼 자양분으로 만든 금치(金菜)는 점점 사라지고 지금은 겉모양만 흉내내어 조미료로 범벅한 김치만이 한포기에 삼천원에 쉽게 대할수 있는 슬픈 세상이 되었다. |
| 임병식 | 09-03-28 07:39 | | 김치에 관한 좋은 상식을 얻을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김치'라는 어원이 침채가 구개음화로 변하여 생긴 말이군요. 지금도 고향에서는 싱건지, 짠지 등으로 말하는데, 그 역시 한자와 함께 배웁니다. 저는 김장김치를 냇가에서 씻는걸 보았지만, 불을 피워놓고 언손을 녹이는건 보지 못했는데, 윗녘은 추우니까 그런 풍경도 연출이 되었던 모양이군요. 제가 사는 곳도 중국산이 판을 칩니다. 배추가 절린 상태로 들어오는 모양이더군요. | |
| | 정진철 | 09-03-28 10:00 | | 임회장님, 어깨가 너무 무거우시겠습니다. 작가회와 수필계 편집주간까지 맡으셔서 경황이 없는가운데 홈페이지까지 관리하시느라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글은 고유의 우리 조상님들은 1년을 오로지 정월이라는데 맞춰 산 모습을 옮가고자 했습니다.물론 설빔이 또 있습니다만 김치도 설빔과 마찬가지로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결실의 문화였다고 봅니다. 그런 소중한 문화가 요즘은 인스턴트 상품화되어 단돈 삼천원에 팔리고 있으니 통탄할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 |
| | 오정자 | 09-03-29 18:34 | | 금치와 김치, 잘 읽었습니다. 굴속에 넣어둔 속이 노랗게 익은 묵은 김치,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오랜 세월, 가정에서만 담가먹던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발효식품인 김치의 우수성이 근자에 들어서는 세계에 알려져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으니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노릇하는, 금치인 김치에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 |
| | 정진철 | 09-03-30 10:06 | | 오정자선생님 안녕하세요 한편으로는 우물안에만 가두어 두었던 우리 문화를 개방하여 좀더 폭넓고 쉽게 접근할수 있게 만든 공로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군요~그 고유의 정신도 자랑하고 함께 수출했으면 좋겠지만 그럴수는 없겠지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
| | 김정자 | 09-04-01 12:23 | | 정진철이사님 대단하셔요 만물 박사님이세요 여성으로 평생을 살았는데도 정선생님을 못따라 잡을만큼 박식하시네요. 옛날 어머니시절을 다시 기억하는글 잘 읽었습니다.
깊은맛으로 겨내내 밥상에서 빠지지 않던 김치가 더욱 생각나는 글 고맙습니다. | |
| | 정진철 | 09-04-01 17:54 | | 김선생님 충북문인단체를 이끌어 가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어요 제가 김치담는법을 어찌 김선생님만큼 알겠습니까. 제가 이글을 쓰기위해서 옛날 정경은 떠오르지만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 상세히 기억은 못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상당시간을 투자해서 김치담그는 방법을 들어서 배우고 메모하였지요 그것도 세분한테서 메모한 장수를 세어 보니 10장이 넘더라구요 이렇게 줄여서 썼지만 나름대로는 땀흘려 공부한끝에 만들어낸 글입니다 대단치는 않지만 저는 제나름대로 의지를 가지고 쓰고 있는데 제생각은 죽을 각오로 쓰고 싶은데 아직 그런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으니 언제쯤이나 과연 죽을각오로 쓴 기분을 느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 |
| | 임재문 | 09-04-02 10:46 | | 정진철 선생님 김장김치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김치는 사실 일년 농사나 다름이 없습니다. 연중 행사이구요. 김장을 담가야 겨울 준비를 다 하는 셈이 되니까요. 우리집은 아내가 주말농장을 가꾸어서 배추는 사지 않고 직접 가꾼것으로 김장을 한답니다. 작년 가을에 담근 김치가 맛이 좋아서 아내와 함께 좋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정진철 | 09-04-03 11:03 | | 임재문 선생님 어제 수필계에 기고하신 흑석산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제 고향은 서울이라고밖에 할수가 없다보니 고향의 추억을 가지고 계신 모습을 보니 많이 부러웠습니다. 배추도 해남 배추가 유명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해남 윤선도 선생의 종가집을 다녀온적이 있는데 그 종손 되시는 분이 제 선배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곳이드군요. | |
| | 최복희 | 09-04-02 21:32 | | 밋 있는 '김치' 만큼이나 맛깔스러운 글이네요. 요즘 집안에 우환이 있어 홈에 자주 들르지 못했지요. 암 투병을 하던 친정 오라비가 어제 끝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슬픔을 딛고 카페에 관심을 가져야 겠습니다. 좋은 글 많이 읽게 해 주십시오. | |
| | 정진철 | 09-04-03 11:05 | | 최복희 선생님 그런 아픈일이 있으셨군요.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언제나 밝은 모습인 최선생님이 그런 우환을 가슴에 담고 계셨군요. 아무쪼록 슬픔을 잊고 더욱 활기찬 시간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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