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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Å日月眞人 明 선생님Ω
♧마지막 구세주(救世主) 황발(黃髮: 明 선생님)♧
【인천(仁川) 중앙동(中央洞) 자유공원 작은 정자 옆에 있는 큰 정자(大亭:석정루石汀樓) 黃宮 】
【 鄭道令 (明 선생님)은 1946년 병술년(丙戌年)(음력 12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龍山)에서)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 후손(後孫)으로 재림(再臨)하셨다 】
규오(葵烏) 유 인길(柳寅吉)선생의 해월종택 해월헌(海月軒)의 현판
차해월헌운(次海月軒韻)
규오(葵烏) 유 인길(柳寅吉)1554년(명종 9)∼1602년(선조35)선생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휴(景休), 호는 규오(葵塢). 경기도 양주 출생. 아버지는 참봉 유언(柳漹)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현감 이예(李禮)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문과에 급제, 여러 요직을 거치는 동안 국가의 기강을 숙정하고 군심(君心)을 바로잡는 데 힘썼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596년과 1598년에는 함경도어사(御史)가 되어 길주·명천·경성 등지의 민심을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1599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600년 호조참판(戶曹參判) 이조참판(吏曹參判) 을 거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시에 능하였으며, 어사로 서북지방을 순행할 때와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여행노정의 감회나 풍물을 노래한 시(詩)는 그 뒤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회자되었다.
충청남도 예산의 도곡서원(道谷書院)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 『규오시집』 2권 1책이 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구사(龜沙) 오 정일(吳挺一)선생의 해월종택 해월헌(海月軒)의 현판
제해월헌(題海月軒)
구사(龜沙) 오 정일(吳挺一)1610(광해군2)∼1670(현종11)선생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자는 두남(斗南) 호는 구사(龜沙) 직장 오세현(吳世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오백령(吳百齡)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단(吳端)이며 어머니는 병조참판 심액(沈詻)의 딸이다.
1627년(인조5) 진사 1639년 알성(謁聖) 문과에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정언, 헌납, 이조좌랑, 사간, 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645년 도당록에 올랐으며 1646년 문과 중시(重試)에 병과로 급제 집의, 부응교, 응교 등을 거쳐 1648년 승지에 이르렀다.
황해도, 경기도의 관찰사를 1655년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1657년 이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이 되고 1659년 경기도 관찰사 1660년(현종1년) 도승지로서 <효종실록(孝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663년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이어,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거쳐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올랐다.
고양시 삼송리에 공덕비(功德碑)가 있다.
다산(茶山) 목 대흠 (睦大欽)선생의 해월종택 해월헌(海月軒)의 현판
차봉판상운(次奉板上韻)
다산(茶山) 목 대흠(睦大欽)1575(선조8)∼1638(인조16)선생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이조참판 목첨(睦詹)이며, 어머니는 증병조참판 정건(鄭謇)의 딸이다.
1601년(선조34) 진사가 되고, 1605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7년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어 부응교(副應敎) 집의(執義)를 거쳐, 1612년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공조참판(工曹參判) 우부승지(右副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여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32년 예조참의(禮曹參議)가 되고 이듬해 강릉부사(江陵府使)가 되었는데, 민심을 얻어 나중에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졌다.
통훈대부(通訓大夫)·홍문관교리(弘文館校里)·지제교 겸 경연시독관(知製敎兼經筵侍讀官)에 추증되었다.
인품과 관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다산(茶山) 목 대흠(睦大欽)은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났다 연안부사가 되었는데 날마다 쓰는 모든 물종을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서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아서 아전들이 감히 속이지를 못하였다 일찍이 게 수백 마리를 큰 단지 속에다 젓을 담가두고서 그것을 조석으로 바치게 하였다 하루는 주리(廚吏)가 게가 떨어졌다고 아뢰니 그는 “아직도 두 마리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주리가 황공히 물러나 단지 속을 뒤져보니 과연 두 마리의 작은 게가 젓국 속에 들어 있었다 이로부터 공사간(公私間)의 장부에는 털끝만큼도 숨겨진 것이 없었다.
시문에 뛰어나 저서로 『다산집』이 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 『국조인물고』 『조선도서해제』 『목민심서』 『사천목씨세보』.
【上帝之子斗牛星 西洋結寃離去后 登高望遠察世間 二十世後今時當 東方出現結寃解】
【만사이황발(萬事已 黃髮 ) 잔생수백구(殘生隨 白鷗 )】
♧ 청림도사(靑林道士) 明(黃) 선생님 ♧
조선중기 대문장가인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의 시문이 들어있는 문집 목판본(7권14책)이 현재
고려대학교와 서초동 국립도서관에 있으며 필사본은 영남대학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또한 있음.
해월헌(海月軒) -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선생의 친필
한석봉(韓石峰)선생의 해월헌(海月軒)의 갈근필병풍(葛根筆屛風 : 무이구곡가)
해월종택(海月軒):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풍수학상 강릉 이남 최고의 명당(明堂)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해월헌길70번지)
🍁🍂 가을 단풍 속, 1시간 거문고 연주🍂🍁 (휴식/명상/힐링/자연 ...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