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와 밭의 인생철학
김기호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오늘밤도 여전하다.
이런 밤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우선 잿간 옆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루 밑
에 팔자 좋게 누워있는 바둑이를 불러본다. “워리 워리”하고 벌떡 일어나
꼬리를 치며 반갑게 달려 나온다.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좋아하고 아래위로 손을 올리고 함께 펄쩍 펄쩍 뛰면서 왕
왕 짖기도 하고 장난을 치며 놀아주는 귀염둥이 바둑이는 재래종으로 순
수하기 그지없는 우리 토종이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홑이불과 베게를 가지고 앞마당에 나왔다. 미리 피워
놓은 모닥불의 연기는 모기를 조금씩은 쫓아내고 있었다. 논에서 날고 있
는 반딧불이 며칠 전부터 마당 한구석 까지 빙빙 돌며 날고 있다. 모양이
나 크기는 파리와 비슷했지만 어떻게 저런 푸르스름한 묘한 빛을 발산할
수 있을까? 의문과 신비 속에 옛날 등잔불도 없는 가난한집 선비들이 반
딧불 밑에서 공부를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그나
마 등잔불이 있으니 다행 이라는 생각도 잠시 바로 앞에서 들리는 개구리
의 울음소 아니면 노래 소린지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하면, 나도 사
촌이라며 맹꽁이도 맹맹하며 음정 박자에 선율도 대충은 맞는 듯한 느낌
이다.
30m쯤 될까 하는 시냇가의 둑에서도 풀벌레 소리는 어찌 그리도 가냘프
고 애달프게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듯 연출을 잘하는 것일까? 자연의 풍
경은 생음악과 생미술을 겸비한 대자연의 예술가란 말인가?
홑이불을 덮고 누우니 하늘에 수많은 별이 보였다. 큰 별도 보이고 작은
별도 보인다. 낮에는 그 뜨거운 태양만 보였는데 밤이 되니 저렇게 수많은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 얘기를 하는 듯 하다. 큰 별 작은 별 그중에도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저별은 내가 항상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희망과 용기를
주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내 마음의 친구로 언제나 하늘을 보
고 있으면, 꼭 쳐다보는 마음에 별이 되기도 했다
갑자기 별똥 하나가 서쪽으로 떨어지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
을 보니 신기하기고 했고 흥미와 재미도 있었다 저기 보이는 건 또 반달
이 아닌가. 달을 보니 불현듯 보름달이 생각난다. 그때 “개불이여 쥐불이
여하고 소리치며 깡통에 줄을 매달아 팔을 원으로 돌리면 깡통의 불이
원을 그리며 활활 타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어른들이 버리
고 간 깡통을 다시 주워서 해본 경험이 있다. 그 날이 정월 대 보름 이었
다. 동네 청년들 수십 명이 깡통에 (큰 깡통 작은 깡통) 불을 지펴 좌우로
팔을 바꿔가며 힘 있게 돌리는 모습의 불은 그야말로 너무도 아름답고 보
기도 좋았으며 어린 내가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망과 충동도 일고 호기
심을 갖기에 충분 했다.
외할머니와 나는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같은 민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
서 발병 난다.
이런 노래를 불러주었고 나에게는 참외를 깎아주고 가마솥의 누룽지도 갖
다 주며 어디 한번 불러보라고 했다. 기억력이 좋았던 내가 노래를 한 줄
도 빠짐없이 잘 부르고 나면 “아이고 참 잘하네. 나보다 네가 훨씬 잘한
다.”하시며 내 양쪽 볼을 두 손으로 따듯하게 만져주고 다시 엉덩이를 토
닥토닥 두들기고 꼭 껴안아 주며 “우리 이쁜딩이 착한딩이 나는 이 세상
에서 네가 제일 예쁘고 제일로 좋아" 하시며 언제나 나를 꼭 껴안아 주었
고 다음 손은 언제나 내 고추와 강낭콩을 만지며 “이거는 커서 뭐할거
지”하고 물으신다.
아마도 외손자가 귀엽고 대견했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색시 밭에 씨앗
할거지”하고 가르쳐 준대로 무심코 대답을 했으나 오늘은 생각을 해 보
니, 아니 내 고추가 어떻게 씨가 되고 색시는 또 무슨 밭이 있다고 할머니
는 참 우스운 장난만 날마다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할머니 내 고
추가 왜 씨여? 씨는 콩이나 무 배추씨 같이 밭에 뿌리는 게 씨인데 내 고
추가 어떻게 씨를 할 수 있어. 그리고 색시는 무슨 밭이 있다고 거기다 씨
를 뿌려”하며 할머니의 말씀을 책망이라도 하듯 당당히 물었다. “색시는
누구나 밭을 가지고 있다 너도 여기 요게 더 크며 는 아주 좋은 씨가 될
수 있지.”나는 그 말이 이상했고 정말 우스웠다.
“할머니 부잣집 에서는 색시가 시집갈 때 밭을 주면되지만 그럼 금숙이
처럼 가난한 집은 밭도 없잖아? 할머니는 참 나를 가지고 이상한 거짓말
이나 하시고 속이려고 만 하시잖아.” 그러자 외할머니는“땅이 없더라도
색시는 다 밭을 가지고 있어서 시집을 갈 때는 그것을 가지고 가는 거다.
금숙이도 크면 은 밭이 생기고 모든 여자들이 밭 없는 색시는 없는 거다.
너도 크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하시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어린
나에겐 이해가 안 되는 소리만 계속하셨다. “너도 크면 그때 색시가 틀림
없이 밭을 가져오니까 빨리빨리 어서 커야지." 하시는 것이었다.
그럼 나도 크면 밭이 생긴다는데 거기다 뭐를 심을까 호박은 울타리에 심
고 박은 지붕에 심으면 되지만 색시가 가져온 밭엔 참외나 수박을 심을까.
밭을 많이 가져오면 토마토, 옥수수, 땅콩도 심어야지 그래 내 색시는 밭
을 많이많이 가져와라 그래야 오이도 심고 단 수수나 목화도 심을 수 있
지(목화는 처음 작은 몽우리가 생길 때 그것을 먹으면 아주 맛이 있었다)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사람은 밤중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곡식이 잘된다고 하니,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니까
별 이상한 얘기를 다한다.' 생각하며 의문투성이 속에 소곤소곤 재미있는
얘기로 밤을 자주 보냈었다.
하여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면서 교육은 받아서 지금 까지
도 그 내용을 잊지 않고 잘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6.25 사변 때도 식구 모두가 피난을 갔어도 외할머니 와 나는 “너는 죽
어도 나랑 같아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하시며 그때도 안방 이불속 에서
고추와 엉덩이를 두들기며, 예뻐해 주던 일. 논에서 썰매를 타다가 빠져서
솜바지, 버선, 대님, 을 모두 버리고 와서 금방 새 옷을 입혀 놨더니 스케
이트 타러 나갔다가 흠뻑 버려 왔다고 혼이 난 기억들이.......! 그렇게 인
자하시던 외할머니의 기일이 내일이고 보니 새삼 그때의 어린 날들이 생
각나 오늘 이렇게 한 토막 의 글로서 표현을 해 봤지만 그때의 얘기나 사
실을 그대로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썼다고 생각한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글을 너무 쓸 줄을 몰라 씁쓸한 미소와 조용한 폭소
가 나왔고 옛날의 환형과 회상 속에 웃음도 저절로 나왔다.
지금 나는 밭을 가진 색시를 얻어 밭에 씨를 뿌렸고 세 개의 열매를 얻어
하나의 밭은 출가를 하여 외손자를 보았으며 두개의 씨는 토질이 잘 조화
된 밭을 찾아 때가 되면 씨를 뿌릴 것이고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
인가보다………. 모든 동물도 생물도 모두가 씨와 밭이 있고 그 씨를 잘 거
두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하고 생각해 본다 씨와 밭은 선
천적 원초인 동시에 자연섭리의 기초에 원천이 되는 것 같은 철학의 기조
라고 말하면 글쎄 맞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전기도 없고 라디오도 없던 시절 시골에 초가집과 천자문 하늘천
따지를 읽고 할아버지가 갓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외할머니는 낭자머
리에 비녀를 꽂고 아주까리기름을 바르던 그 시절 바로 그때가 얼마 안 된
것도 같은데 지금은 차들이 물결을 이루고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하늘처
럼 높아가고 컴퓨터와 인터넷 같은 첨단 문명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렇
게 편리하게 하고 있다. 그 옛날과 오늘의 현실을 비교 해 보니 벌써 50
년 이라는 반세기가 흘렀다 아직도 나는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지금
까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준 외할머니가 그리워 옛날을 생각하며, 외할
머니께 감사의 눈물과 죄송한 마음이 겹친다 고독과 슬픔의 외로운 낙엽
되여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무능한 사람이 되여 살고 있지만, 그
러한 삶도 참으로 어렵고 힘이 든다.
나는 이제 어떻게 남은 삶을 영위해야 좋을까?
2002/14집
첫댓글 모든 동물도 생물도 모두가 씨와 밭이 있고 그 씨를 잘 거
두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하고 생각해 본다 씨와 밭은 선
천적 원초인 동시에 자연섭리의 기초에 원천이 되는 것 같은 철학의 기조
라고 말하면 글쎄 맞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