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봉 산행
수능이 어제 끝난 십이월 첫째 금요일이다. 수능일 자택에 머문 대기 교사 역할이라 자가 연수가 주어진데 이어 하루 연가를 냈다. 며칠째 바깥 기온이 쌀쌀했다. 어제는 이른 새벽 본포 강변으로 나가 제법 걸었다. 본포다리를 건너 창녕 길곡으로 올라가 창녕함안보를 건너왔다. 이젠 산행을 위한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창원대학 앞을 지나 대방동으로 갔다.
종점 못 미친 대방성당 근처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대암산 등산로를 올랐다. 산행 들머리에서 방향을 틀어 삼정자동 아파트 단지 뒷길을 따라 걸었다. 새벽에 산행을 나섰던 이들이 간간이 나왔다. 지난여름에 더위 속에 몇 차례 찾았던 용제봉과 불모산으로 갔던 임도였다. 산 아래 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락이다. 건너편 안민고개와 불모산이 아스라했다.
임도 들머리 아파트단지에서 오르는 데크 곁에는 삼정자동 마애불상이 있다. 숲에서 낙엽이 지고 나니 임도에서는 석불이 새겨진 뒷모습 바위더미가 드러났다. 불상 앞 참배단에선 한 아낙이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뭔가 간절한 희구를 하고 있어 숙연했다. 넓은 길에는 사람들이 자주 다녀 바닥이 반질반질했다. 주변 낙엽활엽수는 나목이 되어 불모산동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농바위와 평바위를 지나 상점고개 못 미친 갈림길에 닿아 용제봉으로 가는 길로 들었다. 드물게 보이던 산행객은 거기부터 인적이 끊어졌다. 깊숙이 외진 곳인데 중장비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보여 궁금했다. 겨울이라 계곡에는 물이 말라가는데 여름날을 대비한 공사를 마쳐 놓았다. 그 곳에는 비가 많이 오면 계곡에 물이 넘쳐 신발이 젖거나 벗어야 했는데 징검다리를 놓아두었다.
넓은 산자락 숲에는 세 갈래 길이 나왔다. 상점고개로 가는 길이 산허리로 이어졌다. 용제봉으로 가는 길로 오르다가 중간에서 대암산으로 가는 길로 나뉘었다. 대암산 가는 길로 올랐다. 일부 구간은 오래전 고압 송전탑을 세우면서 낸 임시 작업도로와 겹쳤다. 산을 오르니 해발고도가 점차 높아 감을 실감했다. 산마루에 서니 대암산에서 신정봉을 가쳐오는 등산로와 합류했다.
용제봉은 창원 근교에서 고산이고 산세가 웅장했다. 사계절 가운데 가을에 찾으면 야생화를 완상하기 좋은 데였다. 나는 올해도 지난 가을 한 차례 올라 쑥부쟁이와 구절초와 미역취가 피운 꽃을 봤다. 용담 꽃도 볼 수 있었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기라도 하면 산정에는 한동안 녹지 않고 쌓여 있다. 특히 북사면 응달은 봄이 오는 길목에도 희끗희끗한 눈을 볼 수 있든 산이었다.
정상을 앞둔 가파른 구간은 자일을 타고 오르는 벼랑을 지났다. 비로소 정상에 서니 사위가 탁 트였다. 불모산 송신소 너머는 다대포 앞바다가 윤슬로 반짝였다. 안민고개 너머는 진해 바다가 드러나고 거제 일대 섬들과 통영까지 짐작되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날이라 지리산과 황매산이 드러났다. 북으로는 가야산과 화왕산도 보였다. 동북으로 천태산과 금정산이 가까웠다.
팔각정에 쉬던 부녀 넷이 정상으로 올라와 전망을 바라보다 되돌아갔다. 나는 배낭을 풀어 도시락과 곡차를 비웠다. 한 사내가 역시 장유 방향에서 올라오기에 잔을 권했더니 사양했다. 창원 방향인 대암산에서 건너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말이 아니어서인지 산행객이 드문 편이었다. 바위더미에 한동안 퍼질러 앉아 지자기를 듬뿍 받으면서 몇 지기들에게 풍광 사진을 보냈다.
정상에서 산등선 따라 가다 갈림길에서 장유사로 내려섰다. 법당에선 영가를 진혼하는 재가 있는 듯했다. 산문 바깥 주차장에 차들이 많았다. 계곡을 내려서는 지름길로 드니 가랑잎이 말라 길이 미끄러워 발을 조심스럽게 디뎠다. 찻길로 내려가니 곁의 계곡물은 줄어 바위가 드러났다. 계곡 입구는 용제봉 휴양림 사업소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류소에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