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화봉 전경)
“와! 화장실에 물이 시원하게 나온다!”
12일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 6시까지 차안에서 조금 눈을 붙인 후 준비해간 주먹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성삼재로 가기위해 택시아저씨(마천택시 박 중식 기사님 011-678-5119)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서 출발 전에 전화로 문의를 하고 간 터라 그런지 반가워하시며 무쏘택시를 가지고 나타나셨는데 좀 날카로운 인상 이어서 조금은 긴장되기도 했지만 성삼재까지 40여분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아저씨는 지리산 산지기시네요. 아니, 산신령님 같으세요.” 하는 입간지러운 소리가 나올 정도로 친절했고 지리산을 잘 알고 계셨으며 지리산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지리산을 배경으로 살아 온 사람으로서 충분히 산에게 감사하고 보답하면서 살고 계시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만남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백무동에서 성삼재까지 택시비가 35000원이었는데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왠지 택시 기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배낭을 던지다시피 벗고 화장실로 달려간 큰아이의 첫마디 외침이다.
“와! 화장실에 물이 시원하게 나온다!”
지난 한 달여를 고민하고 준비했던 지리산 종주.
드디어 우리 네 식구는 11일 자정을 기점으로 설레임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지리산을 향해
배낭과 등산화를 우리와 함께 싣고 원주에서 출발했다.
사님의 순수한 마음과 다음에 이용하게 될 사람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그냥 35000원만 드렸는데 못내 죄송한 마음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출발점인 성삼재에 도착했고 7시30분 쯤부터 등산을 시작했는데, 배낭을 메는 그 순간부터 당황스러웠다.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네 개의 배낭에 나누어 넣은 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등산길이어서 준비물도 많았거니와 가벼운 것은 아이들 배낭에 넣고 나머지는 우리 부부의 배낭에 넣다보니 좀 무리가 갔던가 보다.
우리 부부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우리 배낭의 무게를 보고 우리를 걱정했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음을 느끼며 그 기쁨으로 무게를 견뎌보려 했지만 막혀 오는 숨이 너무 가쁘고 어깨가 아파서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리 배낭의 무게를 줄여 보겠다고 열심히 물을 마셔댔고, 남편은 묵묵히 그 무게를 견뎠고, 나는 아이들 어릴 때 산행이 힘들다고 떼를 쓰면 “열 발자욱 가서 조금 쉬자.”하며 달랬던 것처럼 나를 달래며 한 발자욱씩 노고단을 향했다.
1시간 40여 분이 지나 9시10분경에 어렵게 노고단에 도착.
10시30분에 예약한 노고단 정상 탐방을 위해 조금 기다리다 우리의 속도를 인식해 아쉬움과 미련을 뒤로 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능선 길이어서인지 조금 익숙해짐인지 차츰 죽을 것 같았던 숨 막힘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뱀사골을 지나 임걸령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는 물이 풍부하리라 믿고 배낭 무게를 생각해서 빈병을 다 채우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노루목을 향해 가는 길에 작은 아이가 자기 신발 끈에 걸려 넘어져 입술이 터지고 팔이 긁히는 상처를 입고는 아프다며 한동안 일어 나지 못해 가슴이 내려 앉는 느낌일 때, 아침부터 토닥거리던 큰아이가 동생을 향해 조심성이 없다며 비아냥거리는 바람에 나는나도 모르게 동생 걱정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은 큰아이가 괘씸해서 주먹으로 막 때렸다. 지나가는 많은 이들이 보고 있었지만 부끄러움 보다는 큰아이에 대한 야속함이 훨씬 더 했던 것 같다.
혹여라도 보신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그 무식한 아줌마구나!’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부끄러움을 감수하더라도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서로를 아껴주고 도와주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큰아이는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듯 했고 한 동안은 다정한 두 남매를 볼 수 있었다.
노루목에 도착했을 때 배낭을 두고 아름다운 지리산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반야봉을 올랐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했던가,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했던가.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는
반야봉! 산행기에 꼭 보고 오라고 써 있던 반야봉! 아이들이 내게 소리쳤다.
“엄마! 잠깐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라고요?”
정말 힘들었다. 그렇다고 후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엄청 힘들었다고 하소연 할 뿐이다.아이들은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은 곳이란다.
힘든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는 곳이기도 했다.
반야봉에서 내려와 지친 다리도 쉴 겸 고픈 배도 달랠 겸 준비해 갔던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급하게 출발 해 배가 아프다는 아이들을 이끌고 삼도봉에 도착했을 때 어떤 친절한 분을 만나 삼도봉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까지는 비교적 편안하게 갈 수 있어 자신감이 좀 생겼을 때 우리를 조롱하듯 지리산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고 있었다.
한발 한발 오르막이 힘들게 하는데다 임걸령에서의 자만으로 마실 물이 부족해 한 모금씩 마시기를 하다 나중에는 아이들만 물을 주는 정책으로 목마름이 절정에 다다라서야 연하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앞에 가시던 분이 하시는 힘듬에 대한 하소연이 모두 나의 것이었고 지리산 종주 계획에 관해 할 수 있는 후회와 자책을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특히 작은 아이는 나는 듯 산을 너무나 잘 타고 있었다.
연하천의 샘물을 보는 순간 바보처럼 그 힘들었던 기억을 모두 잊어 버리고 내일을 챙기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어 좋았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좁디좁은 자리를 배정 받았을 때 멋지고 호화로운 산장을 상상했던 아이들의 깨지는 환상의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어 조금 미안했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그 동안은 당일 산행만 했던 터라 도시락만 먹어 본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코펠에 밥을 같이 하고 먹으며 구슬 밥이라면서 얼마나 좋아하고 맛있어 하던지...
네 식구 꼭꼭 붙어 꿈인지 생시인지 잠을 자고는 이른 아침밥을 해 먹고는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으로 향했다.

멋스런 벽소령 대피소! 연하천에서 자고 온 우리로서는 참으로 멋져 보였지만 빈 물통을 채우러 샘가로 갔던 우리는 졸졸도 제대로 못 거리는 물 사정에 실망 대 실망!
물 대신 아끼고 아끼다가 짓이겨져 버린 천도복숭아를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부러워 하시던 주위 분들 정말 죄송! 딸아이가 워낙 잘 먹어서 나누어 드리지 못했습니다.)먹어 치우고는 다시 출발.
선비샘에 도착 해 실컷 물을 마시고 빈병 채우고 약간의 간식을 먹은 후 아름다운 칠선봉을 거쳐 세석에 도착해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황폐되다시피 했던 세석평전을 되살리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갖가지 아름다운 야생초들을 감상하며 햇살 찬란한 길을 올라 촛대봉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름다운 연하봉을 향한 능선을 바라 보았다.

큰아이가 먼저 출발 해 연하봉의 오르막길을 뛰어서 오르는 것을 보며 우리는 기가 죽어 뒤를 따를 수 밖에. 아이들은 정말 힘이 샘 솟는 듯 하다. 솔직히 말하면 부모로서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지...
연하봉에 올라서니 그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멀리 천왕봉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애들아! 봐라. 저것이 바로 우리가 가려는 천왕봉이다!”
참 선명하게도 보였다.
봉우리 봉우리 지날 때마다 어느 곳은 햇볕이 쨍쨍하고 어느 곳은 흐리고 어느 곳은 안개가 가득하고 기타등등 변화무쌍한 날씨였는데 저녁 햇살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선명하게 보이던지.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해 잠자리 배정 받고 한참 줄 서서 물 받아 밥을 했는데 밥을 먹기도 전에 산속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밥을 먹고 대충화장지로 설거지하고 나니 9시 소등시간이다.
내일의 천왕봉 일출을 위해 혹여라도 늦잠이 들까봐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고 기상 알람을 맞추자마자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비가 많이 온다는데 산은 괜찮으냐고.
얼른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았다.
참으로 많은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금은 염려가 되었지만 나의 행운을 믿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전 날보다 잠자리가 훨씬 편했음에도 통 잠이 오질 않고 시간이 더디게 흘러 가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 딸은 자유분방하게 옆사람을 괴롭히며 잘 자는 것 같았다.
드디어 캄캄한 14일 새벽3시 신입사원 연수차 온 팀의 기상을 기점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4시가 되어 나도 아이들을 깨우고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4시가 조금 지났을 때 하늘에 별들은 쏟아질 듯 초롱거렸지만 그뭄에 가까워서인지 등산로는 어둠속에 갇혀 있었다.
원주에서 출발할 때 천왕봉 일출을 포기했던 터라 랜턴을 준비해 가지 않았는데 산신령님의 도움으로 기회를 얻었건만, 랜턴 없이는 새벽 등산이 어려웠음에도 호기있게 괜찮다며 앞장섰던 남편마저 포기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다시 산신령님의 도우심인지 그야말로 구원의 불빛이 우리의 갈 길을 비추어 주어 무사히 천왕봉에 오를 수 있었다.
이름도 성도 아니 얼굴도 모르는 그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그 불빛의 감사함이 불씨로 남아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또한 바라는 마음이다.
우여곡절 끝에 천왕봉에 올랐지만 우리를 맞은 것은 짙은 안개였다.
우리 아이들은 천왕봉에서도 싸웠다.
물론 무식한 아줌마는 지팡이를 휘둘렀고.
아마도 천왕봉에서 매 맞은 그것도 이른 아침에 매 맞은 사람은 우리 아들 뿐이리라.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그 아이를 다루기가 때론 너무 힘들다.
속 깊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귀한 내 강아지인데 때론 넘치는 그 기운에 제제가 필요한 것 같다.
천왕봉에 올랐다는 증명 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어둠 속에 갇혀 있어 오를 때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감상하며 제석봉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뿔싸! 천왕봉은 안개 속에서 벗어나 찬란한 빛으로 쌓여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하늘엔 다양한 모양의 뭉게구름이 가득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는 듯 했다.
지리산 산신령님! 그래도 우리는 만족 합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천왕봉 일출은 못 보았어도 우리 가족이 함께 했고 또한 별 탈 없이 종주를 했으니까요.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 온 우리는 산에서의 마지막 밥을 해 먹고는 가방을 정리해 백무동 쪽으로의 하산 길을 재촉 했다.
마음이 급해서였는지 3시간30분 가량의 하산길도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백무동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등산화부터 벗어 던졌고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아이들의 반대로 점심을 굶은 채 원주로 돌아와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8인분의 고기와 밥을 정신 없이 먹고는 집으로 골인 해 물 잘 나오는 화장실을 감격 어리게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무사히 지리산 종주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카페 여러분! 그리고 도움을 주셨던 두 분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산행 중 가족 챙기느라 미처 인사 나누지 못 했던 산에서 만났던 카페 여러분 내내 건강 하시고 행복하소서.
첫댓글 가족이 이렇게 함께 종주하는 기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무사히 잘 마침을 축하드립니다..^^
아줌마(닉이 참 부르기가 그래요.)님이 아이들보다 더 힘들었나 봅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산행이 부럽군요. 울 애들도 좀 더 크면....
가족이 함께한 종주라 기쁨이 더 클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참 보기 좋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별탈없이 잘 다녀오신거 축하드려요. 가족과 함께 산행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 "아줌마"라는 단어를 어색하게 생각 마세요. 저는 아줌마, 그것도 한국의 아줌마인 것이 아주 자랑스럽 거든요. 힘들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할 말이 자꾸 생각이 나는 여행이었습니다.
부럽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얼른 커서 같이 지리를 밟았으면 좋겠습니다. ^^
아이들 셋이서 올 봄에 수두를 차례로 했는데 어느날 데리고 병원 가다가 발 목을 삐끗 , 조금만 움직여도 부어 오르고 의사는 움직이지 말라하고, 인형극 연습과 공연으로 팔은 자꾸만 아프고... 갑자기 오기도 생기고 이러다가 그대로 늙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겁이 났어요.그래서 오기를 부렸죠.
무덥던 중복엔 치악산 종주(23.8km)를 했고 이번엔 지리산 종주를 강행하게 됐죠. 어느 분의 말씀대로 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치유의 힘을 주는지 아직 피로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모든 것에 자신감도 생기고 건강도 많이 좋아진 느낌이에요. 기회가 되시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 아이들은 금방 큽니다.
맞아요 .시계가 거꾸로 가도 아줌마가 아가씨로는 변신 불가능이죠... 작년에 남편이 원주에 잠깐있을때 치악산 구룡사 넘어 폭포 까지 갔었어요. 가을에 ..좋은산.좋은님과... 남편은 치악산이 아름다운 산이라고 아직도 자랑 ..언제 대전의 계룡산 한번 보러오세요.
그리고 무사히 종주 마치신거 축하드려요.백무동 매표소 앞에서산 손수건 지도 보며어디로 언제 갈까그궁리만 하고 살아요...지리산에서 우연히 만날 그날까지